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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늦은 밤 으슥한 골목길에 A씨(40대 남성)가 서 있다. 골목에 젊은 여성이 들어서자 A씨는 기다렸다는 듯, 갑자기 여성의 앞길을 가로막는다. 그는 씩 웃으며 바지와 속옷을 내리더니 당황하는 여성에게 자신의 은밀한(?) 부위를 보여주었다. 여성은 비명을 질렀고 때마침 길을 지나던 남성 2명이 A씨를 붙잡았다.

A씨는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수사기관에서 조사를 받은 뒤 법정에 서게 되었을 것이다. 최소한 벌금형을 받았을 테고, 상습범이었다면 교도소 신세를 졌을 수도 있다.   

여러 사람이 보는 앞에서 음란행동(성적 수치심을 일으키거나 성도덕을 침해하는 행동)을 하면 처벌을 받는다. 형법 245조 공연음란죄이다. 어렵게 얘기할 것 없다. 법을 잘 모르는 일반인도 A씨의 행동은 범죄라고 인식할 것이다. 그렇다면 다음 장면은 어떨까. 

B씨는 상점 앞에 주차를 했다가 상점 주인과 시비가 붙었다. 상점주인이 "술을 ○구멍으로 먹었냐"고 말한 것에 화가 난 그는 바지와 팬티를 내린 다음 엉덩이를 들이밀며 "항문으로 어떻게 술을 먹느냐, 술을 부어 보아라"고 언성을 높였다.

B씨는 유죄일까, 무죄일까. 대법원은 유사한 사례에서 "성적 흥분을 유발하거나 정상적인 성적 수치심을 해할 정도에 해당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즉 부적절한 행동일지는 몰라도 음란한 행위는 아니므로 무죄라고 판결했다.

같은 사안도 법정에서 무죄, 경찰 단속은 유죄?

3월 22일부터 과다노출을 하거나 무전취식, 구걸행위, 호객행위를 하면 처벌하는 '경범죄처벌법 시행령 개정안'이 시행되는 가운데,  3월14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과 교수가 경범죄처벌법은 일제시대부터 계승한 권위적 시대의 개악이라며 국민의 삶을 규제하고 형사처벌 할 수 있다며 법 폐지를 촉구하고 있다. 이날 이들은 법률 조항의 모호성과 추상성 때문에 법률로서 자격미달이라는 평가를 받아온 경범죄처벌법을 경찰이 국민의 안전을 빙자해 자의적 판단으로 사법처리를 할 수 있다며 경범죄처벌법 폐지를 요구했다.
▲ "시대에 역행하는 경범죄처벌법 폐지하라" 3월 22일부터 과다노출을 하거나 무전취식, 구걸행위, 호객행위를 하면 처벌하는 '경범죄처벌법 시행령 개정안'이 시행되는 가운데, 3월14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과 교수가 경범죄처벌법은 일제시대부터 계승한 권위적 시대의 개악이라며 국민의 삶을 규제하고 형사처벌 할 수 있다며 법 폐지를 촉구하고 있다. 이날 이들은 법률 조항의 모호성과 추상성 때문에 법률로서 자격미달이라는 평가를 받아온 경범죄처벌법을 경찰이 국민의 안전을 빙자해 자의적 판단으로 사법처리를 할 수 있다며 경범죄처벌법 폐지를 요구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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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B씨의 행위를 형법이 아니라 개정된 경범죄처벌법의 잣대로 보면 유죄가 될 수도 있다. 경범죄처벌법의 '과다노출' 조항을 그대로 옮겨본다.

'여러 사람의 눈에 뜨이는 곳에서 공공연하게 알몸을 지나치게 내놓거나 가려야 할 곳을 내놓아 다른 사람에게 부끄러운 느낌이나 불쾌감을 준 사람.'

그런데 언뜻 보기에도 의문이 샘물처럼 솟아오른다. '알몸'은 말 그대로 '아무것도 입지 않은 몸'을 뜻하는데 '지나치게' 내놓는다는 건 무슨 말인가. 또 사람의 몸 중에서 '가려야 할 곳'은 어디까지일까. '부끄러운 느낌이나 불쾌감'은 성적 수치심과는 어떻게 다른가.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한 여성이 아래로는 팬티가 보일 정도로 짧은 치마에, 위로는 '노브라'에 속까지 훤히 비치는 윗옷 하나를 걸치고 돌아다닌다. 그야말로 아찔하다. 이건 과다노출일까 아닐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변호사에게도 물어봐도 마찬가지일 터이다.

확실한 건 단속경찰의 판단에 따라 범죄가 될 수도 있고, 안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앞서 소개한 B씨의 사례처럼 법정에서 무죄를 받을 만한 사안도, 재판 대신 경찰의 단속을 받게 되면 처벌할 수 있다.

개정된 경범죄처벌법과 시행령이 3월 22일부터 개정되어 시행 중이다. 어떤 이들은 경찰이 기초질서 단속한다는 데 불편해도 좀 참고 협조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경범죄처벌법은 단순한 불편을 넘어서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일제 경찰범처벌규칙 모태로 1954년 제정

경범죄처벌법의 역사부터 살펴보자. 일제 강점기 경찰범처벌규칙을 이어받아 만들어진 경범죄처벌법은 1954년 국회에서 만들어졌다. 처음에는 '일정한 주거를 가지지 않고 제방에 배회하는 자', '적, 주소, 성명, 연령, 직업 등을 사칭하고 투숙 또는 승선한 자', '공공장소에서 난폭한 언동으로써 공중을 소란하게 한 자' 등 45개 경범죄로 시작했다. 그러다가 10여 차례 법이 개정되었는데 금연장소 흡연, 무임승차, 무전취식, 비밀춤 교습 및 장소제공, 새치기, 암표매매 등까지 포함되면서 경범죄는 한때 58개까지 늘어났다.

현재는 금연장소 흡연, 정신병자 감호소홀, 비밀춤교습 등이 제외되어 총 45개가 처벌 대상이다. 주요 내용으로는 빈집 침입, 거짓신고, 노상방뇨, 자연훼손, 구걸행위, 인근소란, 물품강매·호객행위, 공무원 원조불응, 장난전화, 과다노출, 지문채취 불응 등이 있다. 이런 경범죄를 저지르면 10만 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의 형으로 처벌한다.

이들보다 처벌이 좀 더 무거운 경범죄도 생겼다. 경제적 부당이득을 목적으로 하는 출판물의 부당게재, 거짓광고, 업무방해, 암표매매 등은 벌금 액수를 20만 원까지 높였다. 또한, 관공서에서 술주정한 경우는 구류나 과료 처벌 외에 최고 벌금 60 만원형까지 처벌할 수 있다. 그렇다면 뭐가 문제란 말인가.

[문제①] 모호한 법조항 ... 명확성 원칙과 거리감

첫째 모호한 법조항이다. 형법의 기본원칙 중 하나가 죄형법정주의다. 어떤 행위가 범죄인지, 그 범죄를 어떻게 처벌할지를 미리 법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원칙이다. 국가가 형벌권을 남용하거나 자의적으로 행사하지 못하게 하고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중요한 내용 중 하나가 명확성의 원칙인데, 어떤 행위가 죄가 되는지 쉽게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어린이 출입금지'라는 말보다는 '15세 미만 출입금지'가 법조문으로는 명확한 표현이 된다.

그렇다면 경범죄는 어떤가. 명확성과는 거리가 있는 조항이 적지 않다. 몇 가지만 소개한다(강조 표시는 기자가 했음).

[과다노출] 여러 사람의 눈에 뜨이는 곳에서 공공연하게 알몸을 지나치게 내놓거나 가려야 할 곳을 내놓아 다른 사람에게 부끄러운 느낌이나 불쾌감을 준 사람
[업무방해] 못된 장난 등으로 다른 사람, 단체 또는 공무수행중인 자의 업무를 방해한 사람
[무단출입] 출입이 금지된 구역이나 시설 또는 장소에 정당한 이유 없이 들어간 사람
[불안감조성] 정당한 이유 없이 길을 막거나 시비를 걸거나 … 몹시 거칠게 겁을 주는 말이나 행동으로 다른 사람을 불안하게 하거나 귀찮고 불쾌하게 한 사람 또는 … 공공장소에서 고의로 험악한 문신을 드러내어 다른 사람에게 혐오감을 준 사람

경범죄처벌법에는 '정당한 이유 없이'가 10번이나 나온다. 그 밖에도 '몹시', '함부로', '지나치게'와 같이 추상적인 단어들이 등장한다. 경범죄도 엄연히 국가가 처벌하는 범죄이다. 누가 보더라도 알기 쉽고 명확해야 한다. 죄형법정주의의 원칙에 비춰볼 때 경범죄처벌법은 그다지 좋은 법은 아니다.  

[문제②] 경범죄 상당수는 형법으로도 처벌 가능

둘째, 경범죄 중 상당수는 형법과 겹치거나 형법으로 충분히 처벌할 수 있다. 몇 가지만 보자. 거짓신고(있지 아니한 범죄나 재해 사실을 공무원에게 거짓으로 신고한 사람)는 사안에 따라 무고죄나 공무집행방해에 해당할 수 있다. 최근 112 허위신고를 한 시민에게 법원은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죄를 적용, 징역형을 선고한 사례도 있다.

또한, 무임승차나 무전취식은 판례로 볼 때 사기죄에 해당하기 때문에 굳이 경범죄로 분류할 까닭이 없다. 지속적 괴롭힘(스토킹)도 범칙금 8만 원을 내면 되는 가벼운 사안으로 여길 우려가 있다. 스토킹도 지나치면 중범죄가 된다. 짝사랑하던 여성에게 "만나주지 않으면 가만있지 않겠다"는 문자를 계속 보내고, 남들에겐 부부 사이라고 속이면서, 여성을 따라다니면서 위협적인 언행을 한 남성에게 법원은 징역 8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이 남성에게 적용된 죄는 경범죄가 아니라 명예훼손, 협박, 폭행, 정보통신망법위반이었다.

이번에 신설된 '관공서 술주정'도 마찬가지다. 만일 술에 취해 공무원에게 폭력을 행사했다면 공무집행방해나 상해죄로 처벌할 수 있다. 욕설을 했다면 모욕죄를 적용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도 단순히 술주정하거나 시끄럽게 한 사람까지 처벌 대상으로 삼고 있다.

이렇게 형법상 범죄와 유사하거나 이에 약간 못 미치는 행동의 상당수를 경범죄로 규정한 의도는 인권보다는 단속의 편의를 우선순위에 두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엄격하게 따지면 죄가 될지 안될지 모호한 내용을 경범죄로 집어넣어 처벌이 쉽게 만들겠다는 것 아닐까. 정식으로 입건하기에 부담스러운 사건을 단속하기엔 경범죄가 제격이라는 말이다.

정말로 죄가 된다면 형법조항으로 엄중히 처벌해야 하고, 그게 아니라면 경범죄에서 삭제하는 것이 맞다.

[문제③] 처벌이 필요한지 의문이 드는 죄도 있어

3월 14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인권단체연석회의, 민주사회르위한변호사모임, 홈리스행동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경범죄처벌법 폐지를 촉구하고 있는 가운데, 한 시민이 짧은 치마를 입고 거리를 지나가고 있다.
▲ 경범죄처벌법, '유신시대 회귀' 3월 14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인권단체연석회의, 민주사회르위한변호사모임, 홈리스행동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경범죄처벌법 폐지를 촉구하고 있는 가운데, 한 시민이 짧은 치마를 입고 거리를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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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범죄 중에는 처벌이 필요한지 의문스러운 죄들도 적지 않다. 대표적인 예가 과다노출이다. 과다노출이 범칙금 대상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시민들은 경찰이 미니스커트 길이를 재던 유신 시대 회귀를 걱정했다. 그러자 경찰청은 보도자료를 내고 "과다노출이란 일반인들이 수치심을 느끼는 수준으로 알몸을 노출하는 것"이라며 "미니스커트, 배꼽티는 처벌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걸로 다 해명이 된 걸까. 아직까지도 어디까지가 과다노출인지 잘 모르겠다. 

'지문채취 불응'도 인권침해 논란이 있는 조항이다. 헌법이 피의자에게 진술거부권을 보장하고 있는데도, 피의자의 신원확인을 위한 지문채취를 거부하는 행위를 처벌하겠다는 것은 수사 편의를 위한 것 아니냐는 의견도 많다.

또한, 자릿세 징수, 무단소등, 행렬방해, 자연훼손, 노상방뇨, 호객행위 등은 범죄의 영역보다는 공중도덕의 영역에 가깝다. 따라서 과태료 징수 등 행정제재로 처리하는 것이 오히려 타당하다. 굳이 경찰이 나설 까닭도 없다.

[문제④] 법원 판결 거치지 않고 경찰 단속으로 규제 가능

여러 가지 논란에도 60년 가까이 경범죄처벌법이 존속했던 이유는 뭘까. 아무래도 규제의 용이함 때문이리라. 경찰 입장에서 볼 때 경범죄는 검찰이나 법원을 거치지 않고 손쉽게 단속하고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경범죄는 일반 형사사건과 처리 방식에서 큰 차이가 있다. 먼저 일반 형사사건은 보통 이렇게 처리된다.

사건 발생-경찰 조사-검찰 송치-법원 기소-판결-형벌 집행

하지만 경범죄는 검찰이나 법원 단계를 거치지 않는 게 원칙이다.

사건발생-경찰 조사-경찰서장 범칙금 부과

경범죄는 처벌의 특례를 두어 범칙금을 내면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다. 예컨대 한 남성이 노상방뇨를 했다고 치자. 이를 발견한 경찰은 범칙금 5만 원을 부과한다. 남성이 10일 안에 범칙금을 내면 이걸로 사건은 종결된다. 다만, 납부를 거부하거나 범칙금을 제때 내지 않을 때는 경찰서장이 법원에 즉결심판을 청구한다. 이때는 무죄가 되지 않는다면 전과기록이 남게 된다.

재판절차 없이 경찰이 곧바로 범칙금을 부과하는 절차는 장점도 있다. 재판을 통해 유죄가 밝혀지면 전과가 남는 것과 달리, 범칙금 납부만으로 책임을 면할 수 있고 사소한 사건으로 법정에 출석하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된다.

반면, 법원과 검찰의 법적 판단 없이 경찰의 자의적인 기준에 따라 얼마든지 처벌할 수 있다는 치명적인 단점을 안고 있다. 경범죄처벌법으로 단속된 건수를 최근 5년간 살펴보니, 한해 적게는 5만여 건(2012년)에서 많게는 30만 건(2008년)이나 되었다.   

그 중에 경찰이 권한을 남용하여 무리하게 범칙금 스티커를 발부한 사건도 분명 있을 것이다. 또한 재판을 통해 결백을 밝히는 절차가 번거로워서 그냥 범칙금을 납부하고 만 시민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경범죄처벌법은 모호한 법조문으로, 처벌근거가 약한 행위들까지 경찰관의 기준으로 단속이 가능하게 한다. 국가가 시민에게 벌금 대신 범칙금만 낼 수 있게 아량을 베풀었으니 경범죄는 웬만하면 인정하라는 식일까. 

경찰 재량만 키워주는 경범죄처벌법, 60년이면 오래되었다. 과다노출, 자연훼손, 행렬방해, 구걸행위를 처벌하지 않는다고 해서 국가기강이 무너지거나 무질서한 세상이 되지는 않는다.

박근혜 정부가 3월 11일 첫 국무회의를 통해 경범죄처벌법 시행령을 개정한 것을 두고 말이 많다. 하지만 그 이전에 법률을 만든 건 국회다. 2012년 3월 개정법을 통과시킨 국회의원들의 인권감수성을 탓할 문제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경범죄처벌법 존폐를 진지하게 고민했으면 한다.

덧붙이는 글 | 김용국 기자는 법원공무원으로, 일반인을 위한 법률책 <생활법률상식사전>과 <생활법률해법사전>을 썼습니다.



태그:#경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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