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5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된 지 꼭 1년이 된다. 1년 전 정부는 거대시장 미국으로의 경제고속도로가 연결됐다고 자축했다. 자동차부품과 섬유의류 등을 중심으로 수출이 늘어 국내 기업들이 큰 이익을 볼 것이라고 했다. 반면 국내 농축산업 등의 피해도 우려됐다. 지난 1년 한미FTA는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오마이뉴스>는 중소 수출기업과 감귤농장 등의 현장의 목소리와 전문가 등과 함께 향후 대안을 고민해본다. [편집자말] |
"1년이라는 시간이 짧을 수도 있어요. 그래도 한미FTA(자유무역협정)라는 괴물이 어떻게 우리의 민주주의와 정책들을 좌절시켰는지를 보여줬다고 생각하죠. 물론 정부는 이를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항상 느끼지만 그는 말을 조근조근하게 한다. 송기호(50) 변호사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한미FTA가 발효된 지 1년을 맞아 그의 생각이 궁금했다. 그는 국내서 통상법을 전공한 몇 안되는 통상전문 변호사다. 한-EU, 한미FTA 체결과 발효를 두고 사회적 논란이 거셀 때마다 그는 항상 그 중심에 있었다.
1년 전 그는 기자에게 "이제 한미FTA라는 괴물이 동굴 밖으로 나왔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젠 책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직접 거리를 휘젓고 다니고, 사람들은 실체를 알게될 것"이라고도 했다. 지난 8일, 서울 서초동 그의 사무실에서 마주 앉았다. 그 '괴물'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 송 변호사께서 말씀하신 '괴물'이 활보한 지 1년이 됐다."(미소를 띄우며) 벌써 그렇게 됐다. "
- 어떻게 보셨는가."그동안 꾸준히 FTA 문제점을 제기했던 사람으로서, 과연 그런 문제들이 실제로 얼마나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를 모니터링 해왔다."
- 국민들 사이에선 아직 괴물의 실체가 피부로 크게 느껴지는 것이 없다는 이야기도 있는데."1년이 짧은 시간일 수도 있다. 한미FTA의 본질이 단지 미국과의 수출입 양을 늘리는 숫자의 문제뿐 아니다. 우리 사회의 제도와 문화까지도 바꿀수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좀더 유심히 봐야 한다."
"한미FTA라는 괴물의 실체, 정부는 보이지 않게 하려 한다"그는 말을 이어갔다. 정부의 수출입 통계자료도 내보였다. 이어 "적어도 통계만 보면 한미FTA를 통해 경제가 살아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이제 거의 없다"고 말했다. 그의 말을 옮겨본다.
"관세청이 내놓은 지난 2월 20일까지의 잠정치 통계를 보면 미국과 FTA를 맺기 전인 2011년보다 수출입이 늘지 않았어요. 정부도 1년 치 최종 통계치를 내놓겠지만,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 같아요. 적어도 FTA를 통해 경제가 살아날 것이라든가, (경제가) 좋아질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죠. 불과 1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요."실제 기획재정부가 14일 내놓은 '한미FTA 발효 1년간 주요성과' 자료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해 3월 15일부터 지난 2월 28일까지 한미 두 나라 사이의 교역액은 969억 달러였다. 이는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3.2% 감소한 수치다. 대신 수출액은 570억 달러로 1년 전보다 1.4% 증가했다. 수입액이 399억 달러로 전년보다 9.1%나 줄어 전체 교역 규모가 줄어들었다.
송 변호사의 관세청 자료에는 대미 수출액이 510억8401만 달러(전년대비 -0.6%)였다. 기간도 작년 4월부터 2월 20일 치까지였다. 정부 최종 통계에는 23일 동안의 대미 수출액이 추가로 포함된 것이다. 정부는 이를 토대로 "한미FTA로 인해 대미 수출이 늘고 무역흑자도 커졌다"고 평가했다.
- 정부는 꾸준히 한미FTA를 통해 수출이 늘고 경제가 좋아질 것이라고 해왔다."그렇게 믿고 싶은 것이다. 미국과 FTA를 맺지 않은 중국이나 일본은 우리보다 대미 수출이 훨씬 늘었다. 요즘 수출기업들 상당수는 FTA보다는 환율에 더 민감하다. 미국과의 FTA 본질은 단지 수출을 늘리는 것이 아니다."
- 소비자들 입장에서는 미국산 제품 값이 떨어지면서 이익을 보는 측면도 있는 것 같은데."물론 일부 품목들은 관세가 없어지니까 값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지만 우리가 피부에 느낄 정도로 그렇게 떨어졌을까. 오히려 중간에 수입유통업자들 이익만 늘었다. 국가 입장에선 관세라는 세금 수입만 줄어들었다."
"바뀐 법률 등 66개... 시민 삶을 지탱해주는 정책들, 미국 이익에 맞춰 바뀐다"- 좀전에 한미FTA의 본질을 말씀하셨는데."(곧장) 잘 알지 않은가. 그동안 한미FTA를 둘러싼 사회적·정치적 갈등이 무엇 때문인가. 우리가 미국이라는 경제영토를 넗히는 차원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다. 일부 수출대기업의 이익이 늘지는 몰라도 대신 우리나라 사회제도·법·문화가 미국식으로 바뀌는 것이다."
그는 기자에게 한미FTA로 바뀌는 법률 목록을 보여줬다. 관세법을 비롯해 지방세법·대외무역법·상표법·약사법 등에 이르기까지 모두 23개 법률이 바뀌었다. 여기에 시행령과 시행규칙 등까지 모두 합하면 바뀌는 제도만 63개에 달한다. 송 변호사는 "민변에서 꼽아본 것이 이 정도지만 누락된 것들도 있다"며 "더 큰 문제는 앞으로 더 많은 법률 등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 법률을 고친다는 것은 말그대로 제도를 바꾼다는 것인데."아마 앞으로 엄청난 변화들이 있을 것이다. 지난번 미국과 재협상으로 시행을 미뤘던 의약품의 특허와 시판 허가를 연계하는 것은 2년 후에 시행된다. 법을 또 바꿔야하는데, 아마 국민 건강권 문제 등도 본격적으로 불거질 것이다."
그는 "이미 1년만에 미국쪽에서 우리의 환경 등 각종 사회정책에 제동을 걸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송 변호사의 이야기를 좀더 자세히 들어보자.
"환경부가 원래 올해 7월부터 저탄소차 보조금 제도를 하려고 했어요.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적은 소형차를 사는 사람에게 적게는 50만 원부터 300만 원까지 돈을 주는 거예요. 대신 중대형차에는 부담금을 물리는 것인데, 이것을 미국쪽에서 한미FTA 위반이라고 압력을 넣었어요. 결국 정부는 이와 관련된 법안을 수정해서 시행을 2015년 이후로 연기해 버렸어요."- 지난해에 미국 자동차 업계에서 반발을 했었다. "문제는 2015년에 정부가 이 제도를 시행할수 있느냐다. 한국수입차협회에서 환경부 장관에게 의견서를 보내서 아예 저탄소차 지원금제도 자체를 도입하지 말 것으로 제안하기도했다."
"저탄소차 지원금 제도 연기 등 사회·환경정책들이 줄줄이 연기되거나 포기"
인터뷰 시간이 1시간을 훌쩍 넘었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는 이제 시작처럼 보였다. 다시 그의 이야기다.
"우체국 보험 문제도 마찬가지예요. 2011년 11월에 정부는 우체국 보험의 가입한도를 4000만 원에서 6000만 원으로 올린다고 입법 예고를 했어요. 근데 암참(주한미상공회의소)에서 한미FTA의 약속을 거스리는 것이라고 강력히 반대하면서 결국 좌절됐어요. 대표적인 서민금융인 우체국 보험의 가입 한도까지도 미국 눈치를 봐야하는 것이죠."뿐만 아니다. 동반성장위원회에서 올 2월에 외식업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했지만, 미국 기업이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 우리 정부가 직간접적으로 규제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송 변호사는 "우리 국민의 삶을 위한 중요한 환경 사회정책들이 한미FTA라는 덫으로 인해 줄줄이 걸려 넘어지고 있다"고 했다.
- 미국 쪽은 우리와의 FTA로 어떤 변화는 없나."우리는 FTA를 통해 그동안 미국으로부터 일방적으로 당했던 무역보복조치 등을 바꿔보겠다고 했다. 하지만 과연 그런가. 지난 1년 동안 미국은 우리 삼성과 엘지 등 제품에 대해 반덤핑 상계 관세를 부과했다. 오히려 보호무역주의 성향이 더 강해졌다. 미국 시스템은 적어도 지난 1년 동안 전혀 변한 게 없다."
- 과거 김현종 전 통상교섭본부장 등 통상당국자들은 미국과의 무역 마찰이 줄어들 것이라고 하긴 했는데."(고개를 절레 흔들며) 현실은 정반대다. 한미FTA로 인해 미국의 개입 여지가 더 커졌다. 통상압력 뿐 아니라 투자자 국가 소송제(ISD) 등을 통해 훨씬더 자기들의 이익을 내세우고 있다."
- 황교안 신임 법무부장관은 ISD가 한국 사법주권을 침해하지 않는다고 했는데."한미FTA 체계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싶다. 한미FTA 협정문과 국내법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헌법상 한미FTA가 법이 된다. 문제는 한미FTA로 인한 정부의 공공정책 결정권이나 사법권 등 정당한 주권을 제대로 행사할 수 없게 돼 있다는 것이다. 이미 대통령도 이같은 문제를 인식해서 미국과 재협상하겠다고 하지 않았나."
그와의 이야기는 어느덧 2시간째를 향하고 있었다. 그는 어투는 여전히 큰 변화가 없다. 가끔 웃음을 짓기도 했지만 표정은 진지했다. 정부를 향한 비판은 여전히 매서웠다. 그는 "FTA 찬성론자들은 지금 무엇하는가"라고 되물었다. 이어 "한미FTA 발효된 지 1년이 다 돼가지만 무엇을 어떻게 얻을 것인지 전략과 전술이 나오지도 않는다"고 비판했다. 기자가 '이제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까'라고 물었다.
"지금보면 한중FTA 뿐 아니라 한중일FTA·아세안플러스·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등 각종 통상 협정이 난무하고 있어요. 그렇다고 하나같이 국민들의 삶과 직결되는 것들인데도 제대로 논의나 소통조차 되지도 않아요. 국회나 시민사회가 현재의 외교통상전략이 올바른지 심각하게 논의하고 재검토해야죠. 정말 앞으로 새 정부 5년이 우리의 미래가 결정될 수도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