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시간 여유가 있어서 차분히 인생을 돌아보고 정리하려고 합니다. 최근 이혼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시간 여유가 있어서 차분히 인생을 돌아보고 정리하려고 합니다. 최근 이혼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 sxc

관련사진보기

[사연] 안녕하십니까, 황금기(가명·남·55)라고 합니다. 저는 젊은 시절을 화려하게 보내고 지금은 자그마한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시간 여유가 있어서 차분히 인생을 돌아보고 정리하려고 합니다. 

최근 이혼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아니 이혼을 꼭 해야겠습니다. 나이들 만큼 들어서 무슨 이혼이냐고요?

최근 어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따뜻한 밥과 반찬으로 극진히 대접해 드리지 못한 게 한이 됩니다. 문제는 아내입니다.

아내는 어머니 생전에 잘 모시지 않았습니다.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를 건성으로 대하고, 따뜻한 말 한 마디 제대로 건네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고 나니 마음이 무겁습니다. 어머니에 대한 아내의 불효가 제 마음을 차갑게 했습니다.

더 이상 같이 살고 싶지 않습니다. 꼭 갈라서고 싶습니다. 아내는 거절하겠지만 저는 마음을 굳혔습니다. 이혼할 방법이 없을까요.

지난 기사에 이어 이번에도 시댁·처가와의 갈등과 이혼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사연을 보내주신 황금기씨는 돌아가신 어머니 때문에 상심이 크겠습니다. 하지만 그 상심 때문에 아내를 향한 증오를 키워서는 곤란하지 않을까요.

일단 마음을 가라앉히시기 바랍니다. 사연에 대한 답변을 바로 드리는 것보다 최근 판결을 몇 가지 소개해 드리는 게 낫겠습니다. 

명절에 시댁이냐 친정이냐... 결국 이혼까지

부부가 결혼을 한 뒤에는 명절을 어디서 보내는지도 중요합니다. 부부가 서로 자기 입장만 고집하다가 이혼까지 간 사례도 있습니다.

[사례] 결혼 10년 차 부부 A씨(40대 남성)와 B씨는 5년 전부터 명절 때마다 싸우게 됐다. 명절을 누구 집에서 얼마나 보내느냐가 싸움 거리였다.  

B씨는 해마다 추석 다음날인 친정 아버지 생일과 설 다음날인 할아버지 제사에 참석하지 못하는 게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시댁에 명절 다음날에는 시댁에 오지 못하겠다고 선언했다. A씨가 반대하자 A씨의 아버지가 며느리의 제안을 받아들이자고 중재에 나섰다.

그런데 B씨는 앞으로 계속 명절에 시댁에 오지 않아도 된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A씨는 일시 허락한 것으로 여겨 다툼은 끝없이 이어졌다. 가사와 육아분담을 둘러싼 의견 차까지 보인 두 사람은 결국 각자 편하게 살자는 이야기까지 하게 됐다. 말이 씨가 됐는지 두 사람은 별거를 시작했고 다시 합치지 못한 채 이혼 법정을 찾았다.

누구 잘못이 더 클까요. 법원은 "책임이 누가 더 중하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대등하다"고 판결했습니다.

명절 연휴를 어디서 주로 지낼 것인지, 맞벌이 부부의 가사와 육아 분담은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따라서 "서로 애정과 인내를 갖고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합리적인 방안을 제시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법원은 지적했습니다. 그런데도 "서로 입장만을 고수한 채 다툼만을 반복하고, 쉽게 별거에 들어가 이혼 소송을 제기한 양쪽 모두의 잘못"이라는 게 법원의 결론이었습니다.      

명절·제사 때 시댁 가지 않아서 이혼? 사유 안 된다

부부가 서로 자기 입장만 고집하다가 이혼까지 간 사례도 있다. 사진은 어느 법정의 법대에 놓인 법전.
 부부가 서로 자기 입장만 고집하다가 이혼까지 간 사례도 있다. 사진은 어느 법정의 법대에 놓인 법전.
ⓒ 김용국

관련사진보기

그렇다면 명절이나 제사 때 시댁에 가지 않는 것도 이혼 사유가 될까요. 판례를 보면 부정적입니다.

[사례] 50대 여성 C씨는 남편 D씨의 사업 실패로 돈벌이에 나섰다. 공장에 근무하면서 1주일은 주간에, 1주일은 야간에 교대로 근무했다.

그런데 명절에 시댁에 가지 않고 잠을 자거나 시아버지 제사에 참석하지 않는 날도 있었다. 평소에 밥을 잘 차려주지 않는다는 불만까지 있던 D씨는 집을 나간 뒤 C씨를 상대로 이혼 소송을 냈다.

법원은 D씨의 이혼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법원은 "C씨가 교대근무를 하면서 피곤 등의 이유로 D씨와 많은 대화를 나누거나 적극적으로 시댁식구들과 어울리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이것이 혼인관계의 파탄을 가져올 정도의 잘못이라고 볼 수는 없고, C씨에게 귀책 사유가 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오히려 부부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은 채 이혼을 요구하며 집을 나간 D씨에게 주된 책임이 있다고 꼬집었습니다.

"아내보다 부모" 효자 아들·마마 보이 남편, 이혼당하기도

남편 G씨는 결혼을 하고도 부모의 말을 거스르지 못하는 전형적인 '마마보이'였다. 항상 부모에게 의존하고 어린 아이처럼 행동했다. 아내 H씨는 그게 불만이었다.
 남편 G씨는 결혼을 하고도 부모의 말을 거스르지 못하는 전형적인 '마마보이'였다. 항상 부모에게 의존하고 어린 아이처럼 행동했다. 아내 H씨는 그게 불만이었다.
ⓒ 김지현

관련사진보기


아내의 입장을 이해 못한 '효자 아들'이나 '마마 보이 남편'이 이혼당한 사례도 있습니다.  

[사례] E(50대 남성)씨는 고생하며 자신을 길러준 부모에 대한 마음이 각별했다. 항상 부모를 잘 모시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하지만 아내 F씨는 소극적인 성격이어서 시댁을 방문할 때마다 혼자 책을 보는 등 어울리지 못할 때가 많았다. F씨는 형편이 넉넉지 못한 상황에서 시댁에 생활비를 주는 것도 힘에 부쳤다. 그때마다 E씨는 아내를 심하게 비난했다.

반면, F씨는 남편이 시댁식구들에게 하는 것만큼 친정 식구들에게도 잘 해주길 바랐으나 기대에 크게 못미쳤다. F씨는 자신의 마음을 전혀 헤아리지 않는 남편과 결별을 원한다며 이혼소장을 제출했다.

법원은 부부관계가 회복 불가능하고 두 사람 모두 노력도 하지 않는다며 이혼 판결을 내렸습니다. 법원은 "E씨가 F씨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비난하고 무시한 점이 주된 원인"이라고 진단하면서 정신적 피해를 입은 F씨에게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했습니다.

[사례] G(30대 남성)씨는 결혼을 하고도 부모의 말을 거스르지 못하는 전형적인 '마마보이'였다. 항상 부모에게 의존하고 어린 아이처럼 행동했는데, 부모들은 2세를 갖는 문제도 간섭했다. 아내인 H씨는 그게 불만이었다. H씨가 아들을 낳은 뒤 또다시 쌍둥이를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된 G씨 부모는 '내 아들은 애를 많이 키울 능력이 없는 아이다, 둘은 몰라도 셋은 우리가 책임져 줄 수 없다'라며 낙태를 권유했다.

H씨는 시부모의 말에 큰 충격을 받았는데, 남편인 G씨가 부모에게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 하는 모습을 보면서 더 큰 슬픔에 빠지게 됐다. H씨는 '더 이상 저런 사람을 의지하고 살 수 없겠다'는 생각으로 이혼을 결심했다.

법원은 "G씨의 부모가 낙태를 권유했고, G씨가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점이 인정된다"며 이혼 판결을 내렸습니다. H씨는 시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쌍둥이를 낳아서 자신이 기르고 있다고 합니다.  

이밖에도 아내가 낯선 곳에서 시부모를 모시며 직장생활과 자녀 양육을 병행하는데도 위로해주기는커녕 폭언을 일삼은 남편에게 법적 책임을 물은 판결도 있습니다.

아직까지 결혼에서 유리한 건 남성... 여성에 배려를

결혼
 결혼
ⓒ sxc

관련사진보기


저는 대한민국의 결혼은 여자보다는 남자에게 남는 '장사'라고 생각합니다. 아직까지 남성에게 유리한 사회 분위기도 그렇고 육아나 가사에 대한 부담이 여성에게 쏠리는 것도 그렇습니다.

배우자의 부모에 신경을 쓰는 일도 여성에게는 부담입니다. 사위는 처가에서 주로 대접받는 입장이지만, 며느리로서는 시댁에 가는 것 자체가 고통스럽고 힘든 일일 수도 있습니다. 이 때문에 남편의 배려·이해·양보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제, 황금기님의 사연을 살펴보겠습니다. "아내가 어머니를 잘 모시지 못해서 이혼하고 싶다"고 하셨는데요. 하지만 며느리의 시부모 봉양은 남편이 협조를 구해야 할 일이지 이혼으로 풀 일이 아닙니다. 부부 갈등이 아니라 고부 간의 문제로 이혼에까지 이르는 일이야말로 커다란 불효 아닐까요.

법으로 따지더라도 폭행·학대·심각한 모욕 정도에 이르렀다면 모를까, 단지 '시부모나 장인·장모에게 쌀쌀맞게 대했다', '자주 찾아보지 않았다'는 정도는 혼인 파탄 사유로 볼 수도 없습니다. 황금기님, 부디 아내와 관계를 회복하셔서 함께 노후를 잘 보내시길 기원합니다. 

물론 배우자가 자기 부모에게 살갑게 대하지 않을 때 서운한 감정이 드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저는 현실을 인정하자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현실적인 대안, '효도는 셀프다'

그래서 대안을 제시해봅니다. 효도를 하고 싶거든 자기 부모는 자기가 알아서 하자! 효도는 셀프다!

너무 냉정한가요. 어쨌거나 배우자를 향한 기대치를 낮춰야 합니다. 혹시 아내나 남편이 효도를 거든다면 감사하게 여기자는 말입니다. 그리고 자기 부모에게 대하는 만큼 상대 부모에게도 똑같이 대하려는 노력도 해야 합니다.  

가족의 우선순위는 부부라는 사실을 기억합시다. 결코 부모나 자식이 중심이 돼서는 안 됩니다. 특히나 남편들로서는 결혼한 뒤에는 자신의 부모형제와 독립해 가정을 꾸렸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고부간의 갈등이 생기는 밑바탕에는 결혼 후에도 부모를 중심으로 하는, 자기 집안의 둥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남편의 태도가 자리잡고 있다고 봅니다.

끝으로 고부간의 갈등으로 힘들어 하는 여성분들에게 한 말씀 드립니다. 한 번쯤 입장을 바꿔 놓고 열린 마음을 가져보시길 바랍니다. 지금은 며느리지만 앞으로는 시어머니나 장모가 될 수도 있습니다.

애지중지해서 키운 아들과 딸이 결혼한 뒤에도 나에게 잘한다면 어떻겠습니까. 아마도 자식 키운 보람이 있다고 느낄 겁니다. 그런데 만일 이 문제로 아들과 딸이 며느리나 사위와 다툰다면 기분이 어떨까요. 때로는 남편의 부모 사랑을 인정해주는 아량도 베풀면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1. 김용국 기자는 법원공무원으로 일반인을 위한 생활법률 책 <생활법률상식사전>(2010)과 <생활법률해법사전>(2011)을 썼습니다.
2. 기사에서 언급한 상담내용은 개인의 신상 정보를 보호하기 위해서 가명을 사용했으며, 사연과 판결 등을 바탕으로 각색했음을 알려드립니다.
3. 여러분이 보내주신 사연은 개별적으로 답변을 드리며, 이와 별도로 각색하여 기사나 출판에 사용될 수 있음을 알려 드립니다. 개인신상과 관련된 비밀은 절대 보장합니다. (이메일 주소 : jundorapa@yahoo.co.kr)



태그:#이혼, #불효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2,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