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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 안녕하세요? <이도남> 연재를 즐겨보는 열혈독자 원민(가명·남·25세)입니다. 저는 아직 미혼이고 젋기 때문에 당연히 이혼보다는 결혼에 관심이 많습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혼 기사 덕분에 결혼할 때 지켜야 할 일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이혼의 역은 결혼이니까요.

제 얘기를 해 볼 게요. 저는 자폐성장애 3급 장애인입니다. 정확히는 '아스퍼거 증후군'이라고 해서, 자폐증과 조금 유사합니다. 지적능력이나 언어능력은 비장애인들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뛰어나지만 사회성이 조금 부족하다고 할까요. 제가 이런 장애를 딛고 곧 대학을 졸업하게 됩니다. 축하해주세요. 졸업 후 진로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할지, 아니면 대학원에서 공부를 더 할지 고민하고 있어요.  

사실 제가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거든요. 얼마전 교제를 시작한 O씨에요.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서 알게 되었어요. 거의 매일 문자와 메일을 주고 받으며 교제 중이에요. 서로 사진도 주고받고 최근에 읽은 책과 생활 이야기도 나눕니다. O씨도 저에게 호감을 갖고 있는 눈치에요. 좀 더 관계가 발전하면 정식으로 청혼을 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어요. 저는 제 장애를 굳이 밝히고 싶지 않아요. 생활하는 데 지장이 없고 육체적·정신적으로도 일반인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니까요. 그냥 아무말 하지 않고 결혼해도 될까요. 만일 결혼을 한다면, 나중에 배우자가 제 장애를 알게 되었을 경우에 이혼 사유가 될 수 있을까요. 답변 부탁드립니다.

이혼법정의 모습.
 이혼법정의 모습.
ⓒ 김용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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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남(제대로 이혼 도와주는 남자)입니다. 장애를 딛고 대학졸업까지 앞두고 계신다니 정말로 축하할 일입니다. 아무쪼록 진로를 잘 결정하시고, 현재 교제 중인 여성과도 행복한 미래를 가꾸시길 바랍니다.

원민씨는 자폐성장애가 있으시군요.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을 정도는 아니라니 다행입니다. 장애를 상대에게 굳이 알리고 싶지 않은데, 나중에 결혼 후에 배우자가 알게 되었을 경우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는지 질문하셨습니다.  

먼저, 제가 궁금한 게 있습니다. 자신의 장애를 왜 감추려 하시는지요? 이성과 본격적으로 교제하기 전부터 뭔가를 숨기려 하는 것이 저는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결혼을 전제로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면 자신의 장단점과 장애를 모두 털어놓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요. 혹시라도 상대가 나중에 알게 되었을 때 배신감이나 실망감을 느끼지 않을까요.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봅시다. 만일 결혼을 하게 된 여성이 신체적 결함이나 정신적 장애가 있거나, 혹은 결혼 전력이 있는데 원민씨에게 그걸 속이고 결혼했다면 어떤 심정이겠는지요. 결코 모르는 척 그냥 넘어갈 수는 없을 겁니다. 그래서 법을 떠나서, 자신에게 장애나 부족함이 있다면 반려자가 될 사람에게 솔직하게 드러내고 이해를 구하는 편이 정도라고 봅니다.   

이혼, 혼인무효, 혼인취소 어떻게 다를까

이제 법적인 문제를 살펴봅시다. 만일 결혼 전에 자신의 중요한 정보를 숨기거나 속였다면 어떻게 될까요. 혼인 취소를 걱정해야 합니다. 

결혼을 해소하는 방법은 크게 3가지가 있습니다. 이혼과 혼인 무효, 혼인 취소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혼이 부부생활을 하는 도중에 발생한 사유를 원인으로 한다면, 혼인무효와 취소는 혼인성립과정이나 신고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를 원인으로 한다는 점이 다릅니다. 그 중에 혼인취소 사유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①혼인적령(18세)에 이르지 않은 미성년자의 결혼
②부모의 동의를 받지 않은 미성년자의 결혼
③근친혼(혼인무효사유인 8촌내 혈족간 결혼 등을 제외)
④중혼(중복결혼)
⑤악질(惡疾) 등 중대한 사유가 있음을 알지 못한 결혼
⑥사기·강박에 의한결혼

하나씩 살펴봅니다. 먼저 ①과 ②는 미성년자에게 해당되는 사항입니다. 쉽게 말해 17살 이하는 결혼할 수 없고 18, 19세는 부모 동의를 얻어야 결혼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오는 7월부터는 성인나이가 만 19세로 낮춰집니다.
 
실제로 몇 년 전 18살 남녀 학생이 혼인신고를 했던 적이 있습니다. 이들은 처음엔 부모 동의를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구청에서 거절당했습니다. 그러자 부모의 이름을 새긴 도장을 판 뒤 혼인신고서 부모 동의란에 찍어 제출하는 방식으로 법적인 부부가 됐습니다. 물론 그 뒤 부모들이 재판을 청구해서 결혼을 취소하는 바람에 이들의 결혼은 해프닝으로 끝났습니다. 

③에 따르면 형수 또는 처제(6촌이내의 혈족의 배우자)와의 결혼, 아주버님(배우자의 6촌이내의 혈족)과의 결혼은 혼인취소사유가 됩니다. ④중혼은 배우자있는 자가 다시 결혼하는 것을 말하는데 요즘은 흔치 않습니다. 혼인 취소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사례는 ⑤, ⑥입니다.

악질 등 중대한 사유가 있는 혼인은 취소사유

⑤악질(惡疾) 등 중대한 사유가 있음을 알지 못한 결혼에서 '중대한 사유'란 부부생활을 계속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할 때만 해당됩니다. 실제 사례를 통해 알아보겠습니다.

[사례] A(28·여)씨는 결혼하기 전부터 '모야모야병'을 앓아왔습니다. 모야모야병은 발작, 두통, 시야장애 또는 언어장애 등이 나타날 수 있는 희귀병입니다. A씨는 발병 사실을 알리지 않고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1년 남짓 결혼생활 뒤에야 아내의 병명을 알게 된 A씨의 남편 B씨는 혼인취소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법원은 "혼인 당시 당사자 일방에 부부생활을 계속할 수 없는 악질이 있음을 알지 못한 때에 해당한다"면서 남편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사례] 30대 남성 C씨는 결혼 직후 홀로 객지생활을 했습니다. 그는 아내 D씨에게 "집을 얻은 후 부르겠다"면서 떠났습니다. 하지만 C씨가 1년이 넘도록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D씨는 수소문 끝에 남편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오래전 얻은 지병으로 장애 2급의 장애인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배신감을 느낀 D씨는 남편과의 결혼을 이어갈 뜻이 없다며 법원을 찾았고, 혼인취소판결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중병이 있으면서도 배우자가 알지 못한 채 결혼했다면 나중에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악질이란 보통의 질병을 넘어서는 불치의 정신병이나, 성병, 중증의 암 등이 해당됩니다. 사연을 보내주신 원민씨의 자폐성장애는 제가 판단하기 어렵지만, 앞서 말씀드린대로 일단 배우자에게 알리는 게 바람직합니다. 혼인취소 사유가 되지 않더라도 이혼사유가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반복성 우울장애로 정신장애 3급 판정을 받은 남성이 이를 숨기다가 이혼을 당한 판례가 있습니다. 그는 결혼생활 중에도 우울증과 자폐증세가 있어서 약물치료를 받았습니다. 아내에게는 이 사실을 숨겨 왔지만 결국 밝혀지고 말았습니다. 이 때문인지 두 사람은 원만한 부부관계를 갖지 못하고 마침내 별거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 상대에게 책임이 있다면 이혼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법원은 주된 책임이 남성에게 있다고 보았습니다. "정신장애 3급 장애를 갖고 있다는 것은 상대방이 혼인의사를 정하는 데 있어 결정적인 부분인데 이러한 사실을 혼인 전 미리 알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사기결혼, 어느 정도가 '사기'일까

마지막으로 ⑥사기·강박결혼입니다. 여기서 사기는 거짓말로 속여서 결혼을 결정하게 하는 것을 말하고, 강박은 해를 끼칠 것처럼 협박해서 상대가 공포심을 느끼게 한 뒤 결혼하게끔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가 사기결혼일까요. 사실 청혼을 하는 과정에서는 다소 과장이 섞이게 마련입니다. 특히 남자들은 "평생 손에 물에 안 묻히게 하겠다", "공주로 떠받들겠다" 등등의 온갖 감언이설(?)로 여성을 유혹합니다. 저도 결혼 전 아내에게 지키지 못할 약속을 남발했습니다. 하지만 이 정도를 사기로 보기는 어렵겠지요. 아주 중요한 사실, 그러니까 미리 알았다면 결혼을 하지 않았을 정도로 중요한 사실을 속여야만 결혼을 취소할 수 있습니다.

[사례] E(32·여)씨는 직장내 같은 부서의 동료 F씨와 교제를 시작한 지 1년 만에 결혼을 했습니다. E씨는 결혼기간 중 혼자 친정집에 자주 다녀왔는데 그때마다 돈을 많이 썼습니다. 이 사실을 의아하게 생각한 남편 F씨가 물었지만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F씨는 아내 E씨의 혼인관계증명서와 가족관계증명서를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E씨는 20대 초반에 결혼한 전력이 있으며 아이를 둘이나 낳았는데, 전 남편이 키우고 있는 아이들을 남편 몰래 만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E씨는 뒤늦게 이혼전력을 숨긴 것을 사과했으나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법원은 "배우자의 이혼전력 및 자녀 유무는 혼인의사를 결정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라면서 "이를 숨겨서 알지 못하고 혼인신고를 하게 된 이상 사기로 인하여 혼인의 의사표시를 한 경우에 해당한다"며 두 사람의 혼인을 취소했습니다.  

판례를 볼 때 법원은 배우자의 학력, 경력, 결혼전력, 출산유무, 임신사실 등을 결혼에서 중요한 요소로 보고 있습니다. 사기·강박 결혼은 사실을 안 때로부터 3개월 안에 제기해야 합니다. 3개월이 지나면 이혼사유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과거를 묻지 말아야겠지만, 과거는 말해야 한다

이제 정리할 때가 되었군요. 행복한 결혼생활을 위해선 배우자의 과거를 묻지 말아야 합니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니까요. 역설적이지만, 배우자가 알아야 할 과거가 있다면 결혼 전에 먼저 말해야 합니다. 그것이 훗날 큰 탈을 막는 길이기도 합니다.

결혼을 앞둔 연인 사이라면 치부를 드러낼 필요도 있습니다. 상대방에게 흠이 있다고 해서 쉽사리 이별을 떠올려서는 곤란하지만, 자신의 결함을 감추는 것도 바람직하지는 않습니다. 상대의 배려나 이해를 구하려면 먼저 솔직해져야 합니다. 

특히나 원민씨처럼 지적능력이나 신체적 능력에 별다른 문제가 없는 장애라고 한다면 더더욱 밝히는 게 맞지 않을까요. 굳이 감춘 다음에 나중에 이혼이 될지, 혼인취소가 될지 따지는 건 불필요한 일입니다. 원민씨, 좀 더 당당해지세요. 그리고 사랑이 결실을 맺게 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 1. 김용국 기자는 법원공무원으로 일반인을 위한 생활법률 책 <생활법률상식사전>(2010)과 <생활법률해법사전>(2011)을 썼습니다.
2. 기사에서 언급한 상담내용은 개인의 신상 정보를 보호하기 위해서 가명을 사용했으며, 사연과 판결 등을 바탕으로 각색했음을 알려드립니다.
3. 여러분이 보내주신 사연은 개별적으로 답변을 드리며, 이와 별도로 각색하여 기사나 출판에 사용될 수 있음을 알려 드립니다. (이메일 주소 : jundorapa@yahoo.co.kr)



태그:#이혼, #혼인취소, #장애, #아스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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