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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내비게이션을 따라 차를 몰고 가다가 애먼 곳에 도착한 일은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했을 것입니다. 내비게이션을 업데이트하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마찬가지로 우리도 모두 함께 어우러져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미래의 목적지로 가기 위해서는 지금 이 순간 인생의 내비게이션을 업데이트해야 합니다. 왜냐면 지금까지 우리가 사용한 인생 내비게이션은 우리를 애먼 곳으로 인도했기 때문입니다. <기자 말>

'안녕하세요 ㅎㅎ 지난 7월. 원광대 진보학교 때 연사님 강연들었었는데… ㅎㅎ 사회인이 되면 ○○이 없다는 말씀이 참… ㅠㅠㅠ인상적이었어용'

한 대학생이 제 페이스북에 남긴 글입니다. 제가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인생관 강연을 할 때마다 직장을 다니면 ○○이 없어진다고 강조해서 얘기를 하는데, 이 친구는 제 페이스북을 일부러 방문해서 글을 남길 만큼 그 얘기가 기억에 남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가 과연 뭘까요? 이 글을 읽는 분들도 직장을 다니면 무엇이 없어지는지 한 번 예상해보세요. 그러면 답을 한 번 알아보기 위해 제 강의 장면을 글로 재현하겠습니다.

"여러분. 대학생의 가장 큰 고민이 뭐죠?"
"그거야 당연히 취업이죠."
"네에. 그렇지요. 아실지 모르겠는데 저는 전자공학을 전공했습니다. 게다가 제 전공을 살려서 관련 업체에서 5년 가까이 일을 했는데요."
"그래요? 저는 선생님이 쓴 책을 보고 당연히 선생님이 인문 사회 쪽 전공자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의외네요."
"하하. 책 내용만 읽지 말고 저자 소개도 좀 읽어주세요. 아무튼 대학원에서 반도체 소자 분야로 석사 과정을 마치고 IT업체에 입사해 다니면서 정말 충격을 많이 받았어요."
"왜요? 무슨 충격을 받았는데요?"
"음... 직장을 다니니 제 인생에서 이것이 없어지더라고요."
"이것이요? 그게 뭔데요?"
"방학이 없어지더라고요."
"하하하하. 방학이요? 하하하하."

의외의 대답에 약간은 재밌고 약간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웃는 대학생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저는 그들 한 명 한 명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다가 웃음이 잦아들 즈음 이내 정색을 하고 다음과 같이 얘기를 꺼냅니다.

"여러분! 그렇게 정신없이 웃기만 할 일이 아니에요. 지금까지 방학이 없는 삶을 생각해 본 적이라도 있나요?"
"아니요! 방학 없이 어떻게 살아요?"
"대학생이 돼서 가장 좋은 것이 뭐죠?"
"방학이 길어서 좋아요!"
"그렇죠. 한 번 따져보죠. 7월과 8월 내리 놀죠. 그리고 사실상 6월 중순 이후로는 방학 모드로 들어갑니다. 게다가 9월에 개강을 하지만 사실상 9월 중순까지는 방학이나 다름없죠. 이렇게 따져보면 대략 세 달 정도의 기간인데요. 잘 아시다시피 이런 것이 하나 더 있죠. 그게 뭐죠?"
"크크크. 겨울방학이죠."
"네에.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을 합치면 거의 6개월입니다. 대단하죠. 1년 중에 6개월 가까이가 사실상 방학이니 말이에요. 대학교 때만이 아니라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때도 역시 방학만 바라보면서 사는 것이 우리의 속마음 아닙니까?"
"그렇지요."
"그런데 여러분 직장을 다니면 '방학'이 없어집니다. 이것은 직접 회사를 다녀보지 않으면 전혀 상상도 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직장을 다녀야만 생생하게 느낄 수 있지요."

1년에 362일 출근한 친구, '방학' 없는 삶 괜찮은 걸까요?

그렇습니다. 정말로 상상도 할 수 없는 상황이지요. 말도 못 할 정도로 당황스럽지요. 1년 내내 직장을 나가는데 방학 비슷한 기간이라고는 달랑 일주일 정도밖에 안 되는 여름휴가가 전부입니다. 게다가 제가 몸담았던 IT업계는 월화수목금금금의 삶을 사는 분위기가 대세였지요. 월화수목금금금이라니 감이 안 잡히나요? 언젠가 고등학교 동기동창 모임을 나갔다가 역시 IT업계에 몸을 담고 있는 친구에게 충격적인 얘기를 들었습니다. 강연 때 꼭 다음과 같이 그 얘기를 하는데요.

"고등학교 동창 중에 연세대학교 전파공학과에서 학사, 석사, 박사를 마치고 삼성전자에 과장 대우로 입사한 친구가 있습니다. 대학생들이 가장 가고 싶은 직장 1위가 삼성전자라던데요. 맞나요?"
"네에~ 쩝. 부럽네요."
"이 중에는 아마 삼성전자가 일을 많이 시킨다는 얘기를 들은 친구도 있을 겁니다. 그렇다 해도 주5일 근무인데다 달력에 빨간 색으로 표시된 각종 휴일들이 있는데 어느 정도는 쉬지 않을까 생각하겠지요? 이 친구가 동창회에서 자기가 입사 첫 해에 1년 365일 중 며칠을 출근했는지 얘기를 해줬는데요. 여러분이 한 번 맞춰보세요."
"음… 아무래도 출근한 날이 많아서 얘기하시는 걸 테니… 320일?"
"많이 부족한데요?"
"네에? 음… 그러면 350일?"
"아직 부족해요."
"뭐요? 어떻게 그런… 그러면 360일?"
"아직도 부족해요. 그냥 제가 얘기해 드리죠. 362일입니다."
"헐! 진짜요? 어떻게 그럴 수가…"
"그러게요. 구정, 신정, 추석, 크리스마스, 이렇게만 해도 벌써 4일인데 말이죠. 362일이면 일 년에 3일밖에 안 쉬었다는 말이죠. 결국 이 친구는 삼성전자를 그만두고 지금은 다른 회사를 다니고 있어요."

물론 제 경우는 삼성전자 다녔던 친구만큼 심하지는 않았지만, 저 역시 다른 직장인들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IT업체에서 일할 때 여름휴가 한 주를 제외하고는 일 년을 꼬박 '월화수목금토일'과 '월화수목금금금' 모드를 바꿔가며 출근했습니다. 직장에 입사한 첫 해는 제 인생에서 방학이 없어진 첫 해와 정확히 일치하지요. 그런데 첫 해에 열심히 직장에 다니면 2년차에는 방학 비슷한 것이 생길까요? 아닙니다. 2년차에도 첫 해와 똑같은 삶이 반복됩니다. 이렇게 2년을 보내면 3년차에는 방학이 생길까요? 어림 반 푼 어치도 소리지요. 3년차, 4년차, 5년차, 여러분이 직장을 그만둘 때까지 방학 없는 삶이 지속됩니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5년차 정도 되면 지독한 슬럼프가 찾아옵니다. 왜냐면 방학 없는 삶이 5년이나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지요.

제 책을 읽고 저의 인생 경로에 대해 알게 된 많은 분들이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인생의 진로를 극적으로 바꿀 수 있느냐?" 사실 IT분야의 엔지니어와 인문 사회 분야의 저자는 아무리 공통분모를 찾으려 해봐도 찾기 힘들지요. 솔직히 저라도 그런 질문을 하겟습니다. 이런 질문을 받으면 저는 대외적 이미지를 고려해 "세계관과 인생관이 바뀌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라고 좀 '간지나게' 대답을 했습니다만, 여기서는 솔직한 답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사실 '방학이 있는 삶'을 살고 싶었던 겁니다. 그래서 직장을 그만두고 지금은 글을 쓰고 있지요. 솔직히 요즘에는 방학이 너무 긴 것은 아닌가 살짝 걱정도 되지만요.

최근 대통령 후보군의 한 명으로 거론되는 손학규씨가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슬로건을 내걸어서 후보의 예상 득표력과는 별개로 굉장히 인상적인 슬로건이라는 세간의 칭찬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 입장에서는 솔직히 많이 부족하게 느껴집니다. 저라면 좀 더 과감한 슬로건을 내걸고 싶네요.

"여러분! 저를 대통령으로 뽑아주신다면 노동법, 아니 헌법을 고쳐서 '방학이 있는 삶'을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저에게 꼭 한 표를…"


태그:#직장, #방학, #저녁있는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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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와인에 몹시 진심입니다만,> <피아노에 몹시 진심입니다만,> <사회주의자로 산다는 것> <나는 행복한 불량품입니다> <삶은 어떻게 책이 되는가> <원숭이도 이해하는 공산당 선언> <원숭이도 이해하는 마르크스 철학> 등 여러 권의 책을 쓴 작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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