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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사정으로 '아는 만큼 보이는 법' 연재를 사실상 중단한 지 반 년이 넘었다. 극소수 마니아층 독자들의 간곡한(?) 요청으로 다시 돌아왔다. 예전보다 더 유익하고 신선한 글로 보답하고자 한다. <요즘판결> 28번째 이야기이다.

① '내가 제일 잘 나가사끼 짬뽕'... 표절이냐 아니냐 (서울중앙지법 7.23. 결정)
②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노래방 도우미의 비극 (부산지법 동부지원 6.29., 서울중앙지법 7. 10. 판결)
③ "잔업거부, 무조건 업무방해 아니다" (울산지법 7.13. 판결)

[판결①] "대중가요 제목은 독립된 창작물로 보기 어려워"

여성 4인조 아이돌 그룹 '2NE1'
 여성 4인조 아이돌 그룹 '2NE1'
ⓒ YG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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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제일 잘나가>. 아이돌 그룹 투에니원(2NE1)의 히트곡 중 하나다. 제목과 같은 "내가 제일 잘 나가"라는 구절이 반복되는, 은근히 중독성 있는 노래다. 라면 만드는 S 회사가 이걸 이용해서 광고를 했다. "내가 제일 잘나가사끼짬뽕". 노래 제목에 라면 상품을 합한 것이다. 요즘 유행하는 KBS 개그프로그램 <개그콘서트>의 '꺾기도'식 광고인 셈이다. 

일반인들은 재미로 받아들였지만 창작자는 그게 아니었나 보다. 노래를 직접 만든 '테디'(가수 겸 창작자)는 라면 광고를 중단시켜달라고 법원을 찾았다. 광고사용게재금지가처분 신청서를 낸 것이다. 테디의 주장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내 노래는 제목 자체가 저작권법에서 말하는 저작물에 해당한다. 라면회사가 제목을 무단으로 사용하는 바람에 저작재산권, 동일성유지권, 저작인격권을 침해당했으니 문구사용을 금지해달라.'

"내가 제일 잘나가사끼짬뽕" 문구가 들어간 삼양의 나가사끼 짬뽕 광고
 "내가 제일 잘나가사끼짬뽕" 문구가 들어간 삼양의 나가사끼 짬뽕 광고
ⓒ 삼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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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제목, 책 제목, 제호 등도 저작물로 보호받을 수 있을까. 대법원 판례는 부정적이다.

"저작물이라 함은 문학, 학술 또는 예술에 속하는 것으로서 사상 또는 감정을 창작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말하는바, 음악저작물인 대중가요의 제호 자체는 저작물의 표지에 불과하고 독립된 사상, 감정의 창작적 표현이라고 보기 어렵다."

저작자의 권리
저작권법상 저작자가 갖는 권리는 크게 저작인격과 저작재산권 2가지이다.

저작인격권은 저작자의 명예와 인격을 보호하는 권리로서 공표권(저작물을 공표할 권리), 성명표시권(이름을 표시하거나 표시하지 않을 권리), 동일성 유지권(저작물의 내용이나 형식에서 동일성을 유지할 권리) 등이 여기에 속한다.

저작재산권이란 복제권, 공연권, 전시권, 공중송신권, 대여권 등 경제적인 권리이다. 저작재산권은 저작자가 사망 후 50년간 존속되는 것이 원칙이다. 
이 사건을 맡은 서울중앙지법도 같은 이유로 "저작물로 보호받을 수 없다"고 결정했다. 법원은 "제호를 독립된 저작물로 보호하는 입장에 선다고 하더라도, 이 사건 제호는 '내가 인기를 많이 얻거나 사회적으로 성공하였다'는 단순한 내용을 표현한 것으로 문구가 짧고 의미도 단순하여 독창적인 표현이 포함되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결론적으로 노래 제목을 상품광고에 사용한 정도로는 저작재산권, 인격권침해로 볼 수 없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다.

여담인데, 정작 S사의 라면광고에 저작권을 주장해야 할 쪽은 말개그의 아이디어를 제공한 개콘의 '꺾기도'일 듯싶다. 물론 개그 아이디어가 법적으로 저작권까지 인정받기는 힘들 것이다람쥐. 그렇지 않을까나리?

[판결②] 비극적 죽음 맞은 노래방 도우미, 보험금은 어떻게...

40대 여성인 A씨는 4년 전 남편과 이혼한 뒤 홀로 살아왔다. 그는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해왔으나 항상 수입은 변변찮고 살림은 적자였다. A씨는 고수입을 올릴 수 있다는 말에 솔깃해 노래방에서 도우미로 일하게 되었다. 그는 빚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에 손님들의 '2차' 제의에도 가끔씩 흔들렸다.

그날도 적지 않은 돈을 주겠다고 손님이 제의하자 A씨는 싫은 표정을 애써 감추며 모텔로 향했다. 하지만 그곳은 참극으로 가는 길이었다. 모텔에 들어서자 남자는 A씨의 몸 위에 올라탄 뒤 갑자기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A씨는 발버둥쳤지만 키 180㎝, 몸무게 95㎏의 건장한 남성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A씨의 얼굴은 붉게 충혈되고 몸에서 힘은 점점 빠져나가고 결국엔 축 늘어졌다.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몸부림치던 한 여성은 그렇게 비참한 모습으로 세상과 작별을 고하고 말았다.      

A씨를 살해한 남성은 물론 법의 심판을 받았다. 하지만 형량은 징역 5년. 부산지법 동부지원은 이 남성에게 "살인의 고의가 인정되지 않는다"며 살인죄가 아닌 상해치상죄를 적용했다(이 판결에 검사와 피고인 모두 불복, 사건은 항소심인 부산고법으로 올라갔다).

불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2011년 A씨는 사망보험에 가입해두었다. 상해로 사망한 경우 1억여 원을 상속인들에게 지급한다는 계약조건이었다. 유족들은 사망보험금을 청구했으나 보험사는 지급을 거절했다. "A씨가 고지의무를 위반했기 때문에 보험금을 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유족들은 소송을 제기했지만 1심은 보험사의 손을 들어줬다. 무슨 이유에서였을까. A씨가 보험계약 체결 당시 자신의 직업이 노래방 도우미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았기 때문이란다. A씨는 직업란에 '주부'라고 기재하고 하는 일에 '가사'라고 적었다.

상법(651조)에 따르면 보험계약 당시에 보험계약자 또는 피보험자가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하여 중요한 사항을 고지하지 아니하거나 부실의 고지를 한 때에는 보험자는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해지 후에는 보험금을 지급할 의무가 없다.

그런데 직업에 도우미도 포함이 되는 것일까. 포함된다면 보험계약서 직업란에 도우미라고 적을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유족들은 "노래방 도우미라고 직업을 밝히는 건 기대하기 힘들다"고 항변했다.

서울중앙지법은 우선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계속적 소득활동으로서 일정기간 종사할 의사가 있었다면 도우미도 직업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이어서 법원은 "밝히기가 쉽지 않다는 점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나 A씨가 보험계약상 중요한 사항인 직업을 제대로 알릴 의무를 위반하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다"고 일축했다.

법원은 "비록 노래방 도우미라는 직업 자체가 생명을 담보로 한다거나 신체에 중대한 상해를 입을 가능성을 내포하는 것은 아니라도 A씨의 고지의무 위반 사실과 사망사고 사이에 상당 인과관계가 존재한다"면서 원고패소 판결을 내렸다.   

A씨는 별다른 잘못도 없이 억울하게 희생되었다. 게다가 유족들은 가해자에게 별다른 배상도 받지 못하고, 보험금마저 받지 못한 상황에 처해 있다. "법이 그렇다"는 말로 납득할 수 있을까.

[판결③] "잔업 거부, 업무방해죄 아니다" 이유는?

'현대차 비정규직 정규 전환과 4대강 삽질 저지를 위한 제정당, 종교, 시민사회 비상대책회의' 참가자들이 2010년 12월 2일 오전 서울 여의도 CCMM빌딩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과 4대강 사업의 즉각 중단을 요구하며 손피켓을 들어보이고 있다.
 '현대차 비정규직 정규 전환과 4대강 삽질 저지를 위한 제정당, 종교, 시민사회 비상대책회의' 참가자들이 2010년 12월 2일 오전 서울 여의도 CCMM빌딩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과 4대강 사업의 즉각 중단을 요구하며 손피켓을 들어보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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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울산공장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2010년 11월부터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파업을 벌였다. 정규직 노조도 파업을 지지하였고 상급단체인 민주노총 금속노조도 대의원대회를 열어 산하 노조에 잔업거부 투쟁지침을 전달하였다. 이 결의에 따라 금속노조 현대차지부는 잔업을 거부하기로 결의하고 4일 동안 하루 2시간가량씩 잔업을 거부하였다.

그러자 현대차 사측은 노조의 잔업 거부로 1000대 이상을 생산하지 못해 217억 상당의 손해를 입었다며 노조 간부들을 업무방해죄로 고소했고, 검찰의 기소로 노조 간부들은 울산지법 형사법정에 서게 됐다. 

사측에 맞서는 노조의 쟁의행위가 우리 사회에서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찾기로 인정된 사례를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한국 사회에서 파업은 그 자체로 불법이라는 인식이 강하게 깔려 있다. 파업을 처벌하는 대표적인 조항으로는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위반, 도로교통법위반과 함께 업무방해죄가 있다. 이 사건에서 문제가 된 부분은 "위력으로써 사람의 업무를 방해한 자를 처벌한다"는 업무방해죄다.

대법원은 "파업이 당연히 위력에 해당한다는 것을 전제로 정당한 쟁의행위로 위법성이 조각되는 경우가 아닌 한 업무방해죄를 구성한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그러다가 작년 3월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입장을 바꾸게 된다.

"전후 사정과 경위에 비추어 사용자가 예측할 수 없는 시기에 전격적으로 이루어져 사용자의 사업운영에 심대한 혼란 내지 막대한 손해를 초래하는 등으로 사용자의 사업계속에 관한 자유의사가 제압·혼란될 수 있다고 평가되는 경우에 비로소 업무방해죄가 성립한다."(2011년 3월 17일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따라서 울산지법은 파업을 업무방해죄로 처벌하려면 그 기준은 '손해가 발생하였는가'가 아니라 '사용자의 사업계속에 관한 자유의사를 제압할 만한 위력으로 평가할 수 있을지'가 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울산지법은 △ 현대차 노사가 비정규직 문제로 대립해온 점 △ 노조가 잔업거부를 결의한 뒤 기자간담회, 홈페이지와 소식지 등을 통해 알렸던 점에 주목했다. 또한 △ 노조가 노사 동의로 이뤄지는 잔업을 거부한 것에 불과하고, 거부 횟수, 시간도 많지 않은 점 △ 거액의 손해는 오로지 파업의 전격성 탓이라기보다는 생산설비가 대규모인 데에서 기인한 바가 크다는 점 때문에 '막대한 손해'가 발생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법원은 결국 "잔업거부가 사용자의 사업계속에 관한 자유의사가 제압·혼란되었다고 단언하기에는 무리가 있고 검찰이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유죄로 인정하기에 부족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항소심에서 법정공방은 계속될 전망이다(다만 일부 간부들에게 적용된 집시법과 상해죄 등은 유죄 판결이 내려졌다).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대한민국 헌법 제33조 1항)

노동 3권은 헌법이 보장하고 있다. 섣불리 제한할 수 없는 '신성한' 권리라는데, 현실은 그렇게 녹록지 않다.


태그:#노래방도우미, #파업, #내가제일잘나가, #저작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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