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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가 생산한 T-50 고등훈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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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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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유일의 항공기 생산업체인 한국항공우주산업(아래 KAI)의 민영화 작업이 각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급물살을 타고 있다.

KAI 전체 주식의 26.4%를 보유한 최대주주인 정책금융공사는 30~31일 매각공고를 내고 다음 달 16일까지 인수의향서(LOI)를 받을 계획이다. 연내에 민영화 절차를 마무리 짓겠다는 것이 정책금융공사의 계획이다. 하지만 KAI 민영화를 두고, KAI 노동조합과 한국노총, 본사가 있는 경남 사천지역의 시민사회 단체는 '대기업 특혜', '보은성 선물' 등의 의혹을 제기하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특히 노조는 "특정 재벌사에 소유권을 귀속시키려는 민영화는 국책사업에 대한 민간업체 독점권 부여와 다름없다"면서 "국방 예산 증가에 따른 국민 경제 손실과 전력 증강 사업의 차질이 우려된다"고 비판했다.

KAI는 한국의 대표적인 군용기 분야 방위산업체이자 민간 항공기 부품 생산업체다. 삼성과 현대, 대우(이후 두산이 인수) 등 재벌들이 무리하게 항공산업에 진출해 위기를 맞자 지난 1997년 정부가 이들 기업 항공 부문 사업을 통·폐합해 만든 회사다. 3사가 각각 20.54%씩의 지분을 갖고, 산업은행이 30.54%의 지분을 소유하는 '반(半) 국영기업' 성격으로 출범했다.

정부는 그동안 8조6000억 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했고, KAI는 지난 13년 동안 1000여 명에 달하는 구조조정과 임금동결을 통한 자구노력으로 그야말로 '알짜 기업'이 됐다. KAI의 2011년 매출액은 1조2857억 원, 영업이익은 1060억 원에 달하며, 올해 1분기 매출액이 3333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3.2% 늘었다. 당기순익 역시 같은 기간에 비해 492%나 증가했다. 올해는 매출 1조6902억 원에 영업이익 1449억 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특히 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3차 차기 전투기(FX) 사업은 KAI의 미래 가치를 낙관하기에 충분하다. 전투기 기종이 선정되면 계약 내용에 따라 해당 전투기의 국내 조립·제작·부품 납품 등은 사실상 KAI가 독점하게 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차세대 전투기 사업의 최대 수혜자는 KAI가 되는 셈이다.

KAI 유력한 인수자로 거론되는 대한항공... 특혜 시비

ⓒ 오마이뉴스 고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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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화를 주도하고 있는 진영욱 한국정책금융공사 사장은 "KAI는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항공우주산업을 하는 곳이다. 차세대 전투기를 들여오면 기술 이전도 받고 할 텐데 그 수혜는 바로 KAI가 본다"고 말하기도 했다. 현재 KAI 지분은 정책금융공사(26.4%)·삼성테크윈(10%)·현대자동차(10%)·두산 계열사(10%)·산업은행(0.3%)이 갖고 있다.
민영화와 효율성을 동일시하는 MB 정부는 지난 4월 KAI 매각을 발표한 데 이어 본격적인 민영화 수순을 밟기 시작했다. 최대주주인 한국정책금융공사가 보유한 지분 중 최소 10% 이상, 삼성테크윈·현대자동차·두산 계열사 등은 보유지분 전부인 각 10%를 내놓아 매각하는 방식으로 민영화하겠다는 것이었다. 매각 대상 지분은 41.7%로 경영권이 포함된다.

KAI의 유력한 인수자로 거론되는 곳은 지난주 BofA 메릴린치를 인수 주간사로 선정하고 KAI 인수전 참여를 공식화한 대한항공. 바로 특혜 시비가 나오는 대목이다. 이런 지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대한항공의 모그룹인 한진그룹과 역대 정권 사이의 역학관계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박정희 정권부터 김영삼 정권까지 역대 정권과 우호 관계를 유지해왔던 한진그룹은 사주 일가가 보인 '반(反) 김대중' 행보로 김대중 정부와는 갈등을 빚었다. 김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이례적으로 대한항공에 대한 고강도 제재 의사를 내비쳤는가 하면 3개월 동안 특별세무 조사를 받기도 했다. 1999년 11월 조양호 회장은 1161억 원의 회사 돈을 횡령해 비자금을 조성하고 273억 원을 조세포탈한 혐의로 구속되어 항소심에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과 벌금 150억 원을 선고받았다.

대한항공의 시련은 노무현 정부까지 이어졌다. 노무현 정부 출범 직후 검찰의 대선 자금 수사에 한진그룹이 휘말리면서 조양호 회장이 2004년 4월 한나라당에 불법 대선 자금 20억 원을 제공한 혐의로 기소된 것. 이런 분위기 속에서 대한항공은 숙원이던 완제기 시장 진출 시점을 앞당기기 위해 KAI 인수를 여러 차례 타진해 왔지만 번번이 성사되지 못했다.

이런 상황이 바뀌기 시작한 것은 '친 재벌 코드'를 갖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 취임 직후부터다.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은 대통령 해외 순방에 단골 수행인사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청와대에서 열린 '민관투자합동회의'에도 여러 차례 참석했다.

MB, 취임 직후부터 KAI 지배구조 바꿔야 한다는 의향 내비쳐

2009년 7월 31일 경남 사천 한국항공우주산업(KAI)에서 열린 한국형기동헬기 KUH(수리온) 출고식에 참석한 이명박 대통령이 KAI를 둘러보고 있다.
 2009년 7월 31일 경남 사천 한국항공우주산업(KAI)에서 열린 한국형기동헬기 KUH(수리온) 출고식에 참석한 이명박 대통령이 KAI를 둘러보고 있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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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3월 12일 조 회장은 전경련 회장단 회의에 참석해 "대한항공은 이미 방위 산업 부문 사업을 하고 있어 국가 산업에서 KAI의 중요도에 대해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다. 좋은 제안이 온다면 KAI의 대주주인 두산 쪽과 만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KAI 지분 인수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힌 것이다.

조 회장의 이런 발언에 대해 꼭 보름 뒤인 3월 27일 두산 주총에서 ㈜두산 이사회 의장으로 선임된 박용현 두산건설 회장은 "KAI 지분 매각에 관심 있다"고 화답했다. 그해 4월 15일 당시 KAI의 최대주주였던 산업은행은 "KAI 매각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다만, 매각 일정 등과 관련해서는 구체적으로 결정한 바 없다"라고 밝혔다. KAI 민영화가 다시 수면위로 떠오르게 된 것이다.

이와 관련 방산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KAI의 지배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의향을 여러 차례 내비쳐왔으며, 이를 가장 반긴 기업이 바로 대한항공이었다"고 말했다. 사실 KAI 민영화를 앞두고 정부의 '전방위 밀어주기' 정황은 이미 곳곳에서 포착되었다.

KAI 민영화와 관련, 지난 2009년 2월 T-50이 UAE 고등훈련기종 선정에서 탈락한 직후 보인 이 대통령의 반응을 유심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신동아>는 2009년 4월호에서 T-50이 패했다는 보고를 받은 이 대통령이 "이런 일(T-50 수출)은 민간 기업이 해야지 반(半) 국영기업인 KAI가 해서야 되겠느냐"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당시 이 대통령의 발언은 공기업이나 반 국영기업은 '주인이 없기 때문에 책임지고 경영하지 않는다'는 대통령의 평소 생각이 반영된 것이란 지적도 나왔다.

하지만 UAE 수출실패 원인에 대해서는 핵심 방산수출 사업을 이명박 정부가 사실상 방기했기 때문이라는 지적들이 이미 방산업계 내부에서 제기된 바 있다. 사실상 수출을 KAI에만 내맡겨두고 수수방관했던 3년 전 정부의 태도는, 손해도 무릅쓰고 수출실적을 올리려 전방위적 활동을 벌이고 있는 현재와는 너무 대비되는 모습이다.

정부는 지난해 6월 기업공개를 앞두고 KAI가 제작한 T-50을 인도네시아에 출혈수출한 것을 비롯해 UAE, 이스라엘, 페루 등에도 T-50과 KT-1 수출을 밀어붙였다. 한국과 인도네시아간에 체결된 양해각서(MOU)에 따르면 대당 2500만 달러에 달하는 T-50을 사실상 2000만 달러에 팔아야 한다. KAI 민영화를 앞두고 현 정부가 출혈을 무릅쓰고 실적과 일감 몰아주기를 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는 지점이다.

당장 야권은 '빛 좋은 개살구'란 표현까지 쓰면서 비판에 나섰다. 특히 당시 진보신당은 "출혈을 감수하고 시장을 개척하면 출혈은 계속되기 마련이다. 결국 훈련기 수출은 성과는커녕 국민들의 세금부담으로 돌아오게 되어 있다"며 "국정원이 벌인 어리숙한 첩보전으로 시작한 T-50수출 드라마는 결국 국민들 호주머니를 터는 결말로 끝날 것"이라고 꼬집었다.

공적자금 들여 탄탄한 기업 만들어 놓곤 민간매각, 앞뒤 안 맞아

KAI 노조는 민영화 추진 핵심세력으로 MB 최측근인 강만수 산업은행장과 진영욱 정책금융공사 사장, MB 대선캠프 출신인 김홍경 KAI 사장을 지목했다. 노조는 매각 주관사로 선정된 크레디트스위스(CS)에 대해서도 이 회사가 UAE 원전 파이낸싱과 BBK 김경준 씨 다스 송금사건, 카메룬 다이아몬드 대출사건에서 주거래은행이었다는 이유로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정상욱 KAI 노조위원장은 "정부가 공적자금을 들여 탄탄한 기업으로 만들었는데, 이제 매각한다면 앞뒤가 맞지 않다"며 "KAI를 흡수하려는 재벌기업의 사리사욕에 동조하는 일이 없도록 끝까지 투쟁하겠다"고 밝혔다.

민주통합당 대선 경선 후보로 나선 문재인 의원도 KAI 민영화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 20일 경남과학기술대학교 100주년 기념관에서 열린 '균형발전과 지역경제 발전을 위한 간담회'에 참석한 문 의원은 "항공우주산업은 먼 미래를 내다보는 사업으로 장기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국가가 단기적인 실적만 봐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참여정부 시절 대통령 집무실에 T-50고등훈련기를 전시할 정도로 관심이 많았다"며 "정권교체기에 우리 산업들을 민영화하는 것은 여러 의혹이 생길 수 있어 이 정부에서 하는 것은 맞지 않다, 국회활동을 통해 막아내도록 하겠다"고 공언했다.

무엇보다도 자주국방과 국가안보에 기여하고 있는 핵심 방산기업을 경제논리만을 쫓아 민간에 매각하려는 것은 작은 흠이나 결점을 고치려다가 도리어 일을 그르치는 '교각살우'의 어리석음을 범할 수 있다는 것이 KAI 민영화를 바라보는 전문가들의 대체적 여론이다.


태그:#KAI, #공기업 민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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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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