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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비게이션을 따라 차를 몰고 가다가 애먼 곳에 도착한 일은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했을 것입니다. 내비게이션을 업데이트하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마찬가지로 우리도 모두 함께 어우러져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미래의 목적지로 가기 위해서는 지금 이 순간 인생의 내비게이션을 업데이트해야 합니다. 왜냐면 지금까지 우리가 사용한 인생 내비게이션은 우리를 애먼 곳으로 인도했기 때문입니다. <기자 말>

신용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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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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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나 저 구두(사실 신발, 옷, 자동차, 컴퓨터, 뭐든 상관없다) 사고 싶은데. 너무 비싸네? 당장 돈이 없는데 어떻게 하지?"
"무엇을 고민하십니까? 신용카드로 구매하세요. 12개월 할부로 구매하시면 매달 조금씩만 내셔도 되잖아요."
"에잇! 그래, 긁자 긁어."

신기하죠? 당장 돈이 없어도 원하는 바로 그 물건이 내 것이 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신용카드는 미래의 수입을 저당 잡혀서 현재의 소비로 바꿔줄 수 있는 수단입니다. 그런데 미래의 수입이란 다른 말로 표현하면 미래의 '시간'입니다. 미래에 돈을 벌려면 내 시간을 써야 할 테니까요.

그래서 정신줄 놓고 신나게 긁어대다가는 카드빚 때문에 인생이 상당히 고달파지기도 하지요. 미래의 시간 대부분을 카드빚을 갚는데 쓰게 생겼는데, 결국 빚의 노예로 살아야하는 셈이니까요. 한마디로 신용카드는 결국 미래의 인생을 팔아 현재의 소비로 바꾸는 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신용카드 할부 구매 내역을 보면 그 사람의 인생관과 가치관을 알 수 있습니다. 미래의 인생을 저당 잡혀서까지 구매하고 싶은 상품이라면 그 사람이 매우 원하는 것일 테고, 그 상품을 그렇게까지 원하는 이유는 해당 상품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그 무엇인가가 자신이 추구하는 인생과 가치에 부합하기 때문일 겁니다.

예를 들어 왕년의 농구 스타 우지원씨의 아내인 이교영씨는 SBS <스타부부쇼 자기야>에 나와서 남편 우지원과 연애시절 선물을 사느라 카드빚을 지고 돌려막기까지 한 사연을 얘기했습니다. 이교영씨의 어머니는 카드명세표를 보고 '남자한테 미쳐서 카드빚까지 지냐'고 야단을 쳤다는데요. 당시 이교영씨는 농구스타 우지원과의 연애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미래의 인생을 저당 잡히면서까지 선물을 한 것이죠. 어쨌든 두 분이 결혼을 했으니 카드빚을 통한 연애전술은 성공한 셈입니다.

미래의 인생을 팔아 현재의 소비로 바꾸는 신용카드

저는 트위터의 자기소개, 그리고 블로그 제목 등에 '카드 할부로 떠나는 여행'이라고 적어놨습니다. 간혹 제 트위터나 블로그를 방문했다가 '카드 할부로 떠나는 여행'이라는 문구를 보고 '인생을 카드 할부로 떠나는 여행에 비유했나요? 멋지네요'라는 반응을 보이는 분들이 있습니다. 뭔가 문학적이고 은유적인 멋있는 표현이라고 생각하시는 거죠.

그런데 제가 '카드 할부로 떠나는 여행'이라고 적어놓은 이유는 제가 정말로 여행을 카드 할부로 다니기 때문입니다. 무슨 문학적 비유나 은유가 아니라 팩트 그 자체를 써 놓은 것이죠. 제가 가끔 강연에서 이 얘기를 하면 청중들이 유쾌하게 웃습니다. 무슨 여행을 카드 할부로 다니느냐며 말이죠. 그러면 저는 솔직히 이렇게 되묻고 싶어집니다.

'그러면 어떻게 카드 할부로 자동차나 옷, 가구 같은 것을 살 수가 있죠?'

카드 할부로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여행을 일시불로 갈 수 있을 만큼 벌이가 넉넉하지는 않다는 뜻입니다. 둘째는 미래의 인생을 저당 잡혀 떠날 만큼 여행을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뜻입니다.

카드 할부로 떠난 첫 번째 여행지는 오스트리아와 체코였습니다. 자초지종은 이렇습니다. 때는 2009년, 기자였던 아내가 다니던 신문사를 그만두고 전업 작가를 선언하면서 저에게 통보했습니다. 퇴직금을 가지고 해외여행을 가겠다고 말이죠. 그래서 저는 단서조항을 달았습니다. 나를 데려가면 동의하겠다고 말이죠.

그래서 함께 오스트리아와 체코에 가기로 결정했는데 빠듯한 기자 월급 덕택에 안 그래도 적은 퇴직금의 절반이 여행경비로 날아가게 됐습니다. 퇴직금도 생활비로 이용해야 하는 헉헉대는 살림살이인데 그렇게 큰 목돈이 당장 없어지면 가계에 타격이 크기 때문에, 결국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6개월 카드 할부 결제를 했지요.

카드 할부의 힘을 빌려 떠난 유럽... 그곳에서 받은 충격

오스트리아의 카를 대성당 내부 모습. 바로크 양식이란다. 바로크를 글로 배우면 뭐하나, 라는 생각이 정말 많이 들었다.
 오스트리아의 카를 대성당 내부 모습. 바로크 양식이란다. 바로크를 글로 배우면 뭐하나, 라는 생각이 정말 많이 들었다.
ⓒ 임승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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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카드 할부의 힘을 빌려 정신없이 떠난 오스트리아와 체코에서 저는 너무나도 큰 문화적 충격을 받았습니다. 당시 받았던 충격은 제가 2010년에 출간한 책 <원숭이도 이해하는 마르크스 철학>의 서문에 잘 담겨 있습니다. 일부를 여기에 옮겨보겠습니다. 좀 길지만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제가 여행에서 받은 충격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오스트리아에 갔을 때 빈의 미술사박물관에 들렀습니다. 유명한 박물관인 만큼 엄청나게 많은 미술품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그중에서 14세기, 15세기 정도에 만들어진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는 곳을 방문했어요. 거기 전시된 작품들을 보고 깜짝 놀랐고 말았습니다. 왜 놀랐는지 궁금하시죠? 모든 작품의 소재가 전부 똑같더군요. 전부 기독교에 관한 내용이지 뭡니까. 예수님이나 성모 마리아, 아니면 순교한 성인들 모습을 담은 것들뿐이더라고요. 살다 보면 여러 가지 다양한 일을 보고 듣게 될 텐데 그 시대에 서양에서는 거의 모든 예술가가 기독교 그림만 그리고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저는 오스트리아 미술사박물관에서 '철학'을 느꼈습니다.

도대체 무슨 소리냐고요? 철학은 세계관(世界觀)에 관한 학문입니다. 세계관이란 세계를 보는 관점이나 방식을 얘기하는 단어인데요. 중세 서양 사람들은 기독교라는 종교의 관점으로 세계를 봤습니다. 당시는 모든 것이 죄다 하느님의 뜻에 의한 것이라고 믿었죠. 모든 것이 하느님의 섭리에 따른 것이니 그림도 당연히 기독교에 관한 내용을 많이 그렸겠지요. 하느님의 뜻이라는 명목으로 십자군 전쟁 같은 야만적인 짓도 저지르고 마녀로 낙인찍어 수많은 여성들을 고문하고 죽이는 몰상식한 일도 발생했지요. 하지만 하느님의 뜻이라고 포장되어 있으니 문제없었습니다. 이것이 세계관의, 아니 철학의 위력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왜? 그것이 당시의 세계관, 즉 철학이니까요.

지금은 중세가 아니니까 괜찮을까요?

중세의 '신' 중심 세계관은 현대에 와서 '돈' 중심 세계관으로 바뀌었습니다. 사실 우리 사회에서는 평가 기준을 '돈'에 두는 경향이 있잖아요. 돈이 되는 일이면 좋은 일이고, 그렇지 않으면 안 좋은 일이라는 식으로 많이 생각합니다. 돈 버는 데 도움이 안 되는 사람이라는 이유로 회사에서 멀쩡히 일하던 수많은 사람이 정리해고를 당한다든지, 돈 버는 데 도움이 안 되는 사람들이라는 이유로 수많은 청년학생이 일자리를 얻지 못하고 실업자로 지내고 있지요. 한번 우리 사회가 돌아가는 방식을 생각해보세요.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세계관은 바로 '돈'을 중심으로 한 세계관입니다. 예전에는 하느님의 뜻이냐 아니냐에 따라서 선악이 갈렸다면, 지금은 돈을 버는 데에 도움이 되느냐 그렇지 않느냐로 선악이 갈리죠. 하느님의 자리를 돈이 대신했다고나 할까요?

철학이 없는 것이 아니라 '돈'을 숭배하는 철학을 가지고 있는 것이 우리 사회입니다. 맹목적으로 '하느님'을 숭배하던 사회가 그랬던 것처럼, 맹목적으로 '돈'을 숭배하는 사회가 과연 바람직한 것일까요? 우리는 역사를 공부하고 현재를 살아가면서 이미 그 답을 알고 있습니다.

당신의 '카드 할부 사용내역'에는 무엇이 적혀 있나요

낯선 곳에서 나를 만난다는 말이 이런 의미일까요? 발 닿는 곳마다 수백 년 된 교회들이 있고 미술사박물관의 14세기, 15세기 미술품 전시 공간에는 기독교 소재의 그림만 있는 이역만리(異域萬里) 오스트리아. 그 낯선 시공간에서 저는 저 자신과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을 객관화시켜 더욱 또렷이 볼 수 있었습니다. 어둠이 있어야 빛이 더욱 돋보인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그런 상황이었죠. 내가 사는 대한민국을 떠나지 않았다면 절대 느낄 수 없었던 그런 깨달음을 해외여행을 통해 느낀 것입니다.

그렇구나. 이런 것이라면 미래 인생의 일부를 저당 잡혀서라도 지금 이 순간 경험해야 하는 것이구나! 6개월에 걸쳐 오스트리아, 체코 여행경비를 다 메우고 2011년에는 캄보디아를 다녀왔습니다. 역시 6개월 카드 할부로 말이죠.

앞으로도 저의 '카드 할부로 떠나는 여행'은 인생관과 가치관이 극적으로 바뀌지 않는 이상 계속될 것 같습니다. 정 어려우면 24개월, 아니 48개월 할부를 돌려서라도 말이죠.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확신하니까요. 시간이 날 때 카드 할부 사용내역을 꼭 한번 확인하세요. 그리고 거기에 적혀 있는 상품들이 나의 미래를 저당 잡힐 만큼의 가치가 있는 것이지를 진지하게 고민해 보십시오.

어쨌든! 솔직히 언제 목돈 모아서 해외여행 떠나겠습니까? 다른 것은 몰라도 카드 할부로 떠나는 여행, 완전 강추입니다!


태그:#해외여행, #카드빚, #카드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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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와인에 몹시 진심입니다만,> <피아노에 몹시 진심입니다만,> <사회주의자로 산다는 것> <나는 행복한 불량품입니다> <삶은 어떻게 책이 되는가> <원숭이도 이해하는 공산당 선언> <원숭이도 이해하는 마르크스 철학> 등 여러 권의 책을 쓴 작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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