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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초중고교생을 대상으로 일제히 치러지는 전국 학업성취도평가(일제고사)를 앞두고 2010년 7월 9일 저녁 서울 중구 태평로 서울파이낸스 빌딩 앞에서 '청소년인권단체 아수나로' 소속 학생들이 일제고사 반대를 주장하며 손피켓을 들어보이고 있다.
 전국 초중고교생을 대상으로 일제히 치러지는 전국 학업성취도평가(일제고사)를 앞두고 2010년 7월 9일 저녁 서울 중구 태평로 서울파이낸스 빌딩 앞에서 '청소년인권단체 아수나로' 소속 학생들이 일제고사 반대를 주장하며 손피켓을 들어보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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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창의교육'이란 말을 자주 듣게 됐다. 이명박 대통령도 언제부턴가 이 말을 자주 입에 올린다. 그는 꽤 오래 전인 2009년에도 이런 말을 했다.

"경제위기 이후 다가올 새로운 시대에는 창의적 인재 육성이 가장 중요하다."

3년이 흐른 지금, 그는 자신이 밀어붙인 교육정책 결과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올 3월 '교육기부공동체 선포식'에서 행한 연설이 실마리를 준다. 이 대통령은 현재 학교 교육이 "자유롭게 생각하고 창의로운 교육을 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좀 더 자세히 들어보자.

"지금은 주입식이나 교과서적 교육만 갖고는 안 되고 지식도 융합하고 과학과 예술을 합친 교육으로 변화하고 있다."

대체 무엇을 보고 듣기에 이런 말을 할까? 드러난 현실이나 객관적 지표와는 정 반대의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5월 15일 공개된 한국직업능력개발원 보고서를 보자. 포괄적 내용이 담긴 이 자료는 '이명박표 교육정책'의 참담한 결과를 보여줄 뿐이다. 평가항목 10가지 가운데 무려 9가지가 추락한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그토록 강조한 창의력과 예술적 능력은 오히려 악화되었다. 여기에 언어능력, 자기성찰능력, 대인관계능력, 자연친화력, 신체·운동능력, 손재능, 공간·시각능력 등 9가지 항목 모두가 10년 전보다 퇴보했다. 그야말로 '잃어버린 10년'인 셈이다.

뒷걸음 치지 않은 유일한 영역은 수리·논리력 하나 뿐이다. 하지만 폭등한 사교육 시간과 비용을 생각하면 현 정부의 교육정책은 총체적 실패라는 낙인을 면할 수 없다. 10년 전에 비해 중학생 주당 평균 사교육 시간은 남학생은 71분에서 107분으로 늘었고, 여학생은 48분에서 101분으로 배 이상 뛰었다. 보고서는 대폭 늘어난 중고교 사교육 시간을 지적한 후, 다음 같이 결론을 내린다.

"우리 교육이 표면적으로는 다양한 소질과 적성 개발, 전인적이며 창의적인 인재교육을 목표로 하지만, 실제로는 여전히 인지적인 능력이 강조되고 경쟁이 심화된 상태임을 보여준다."

사람 잡는 교육

하지만 정말 심각한 문제는 평가 지표로 드러나지 않는다. 잘 알려져 있듯, 한국 어린이·청소년 행복지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다. 한두 해도 아니고, 이명박 정권 4년 내내 굳건히 꼴찌자리를 지키고 있다. 또 '노무현 정권' 탓을 할 것 같아 덧붙이자면, 한국 젊은이들은 이명박 정권 이후 확실히 더 불행해졌다.

여성가족부 '한국청소년상담원 상담통계'를 보자. 자살을 고민하는 고등학생은 2008년 214명에서 2010년 476명으로 갑절 이상 뛰었다. 중학생은 256명에서 2010년 627명으로 2.5배 가까이 증가했고, 초등학생은 37명에서 99명으로 무려 2.6배나 늘었다. 어린 학생들이 자살을 생각하는 이유 중 '성적과 진학에 대한 고민'이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현 정부의 가혹하고 무책임한 교육정책이 어린 학생들을 죽음으로 몰고 있는 것이다.

현정부 4년 내내 자살은 청소년 사망원인 가운데 단연 1위였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2010년에 자살한 청소년은 교통사고, 암, 심장질환으로 사망한 청소년들을 합한 것보다 많았다. 어린이들조차 10명 중 1명이 자살충동을 느끼며 산다. 오죽하면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마저 한국 아동·청소년의 극심한 경쟁으로 인한 스트레스에 대해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겠는가.

이명박 대통령은 어린이날에 청와대에 아이들을 초청한 자리에서 "북한은 말 안 듣는 나쁜 어린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바쁜 어린이들을 불러내어 (아이들이 왜 바쁜지는 대통령이 더 잘 알 것이다) 철 지난 반공교육을 하기에 앞서, 현 정부만 아니었다면 살아 있을 어린 영혼들에게 사죄부터 했어야 옳다. '나쁜 어른'들의 탐욕과 무지가 어린 학생들을 건물 난간으로 몰아세웠기 때문이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한국 교육의 병폐를 분석하면서 한국을 '한 방 사회(one-shot society)'라 불렀다. 단 한 번의 시험으로 인생이 판가름나는 곳이라는 뜻이다. 물론 어제 오늘의 이야기는 아니다. 시험 한 번이 인생의 성패를 가르는 건 과거에도 마찬가지였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달라진 게 없는 건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 집권 이후 '한 방 사회'에 대비하는 시점이 고등학교에서 초등학교나 유치원으로 내려 갔고, 대학에 합격해도 공부에 전념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대다수의 학생들이 입학하자 마자 등록금 마련을 위해 아르바이트에 매달려야 하고, 졸업을 앞두고는 '자소서 뽀개기'에 매달려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회에 경쟁력이 생긴다면 '기적'이라 불러야 할 것이다.

'글로벌 인재'의 허상

21세기 한국 교육의 '키워드'는 '글로벌 인재'일 것이다. 근사한 말이다. 하지만 나는 이게 무슨 뜻인지 모른다.

'글로벌 인재'는 한국 교육의 이상이지만, 이 말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는 분명치 않다.
 '글로벌 인재'는 한국 교육의 이상이지만, 이 말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는 분명치 않다.
ⓒ 강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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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해외 취업자'를 뜻하지는 않는 듯하고 (그렇다면 나도 '글로벌 인재'에 포함될 것이다), 자신의 판단과 행위를 세계적 맥락에서 파악하고 책임을 지는 '세계시민'이라면, 한국 교육은 한참 거리가 멀다. 한국의 교육은 '세계'는 커녕, 주위사람을 배려하는 법조차 가르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 교육에서 남은 '적' 아니면 이익을 취할 대상일 뿐이다. 그런 면에서 한국 교육은 오직 나 자신만 생존하고 내 욕심만 채우도록 가르치는 '서바이벌 교육'이다. (어쩌면 '애니멀 교육'이 더 적합한 말인지도 모르겠다.)

한국 학생들의 창의성은 '글로벌 인재'라는 말이 유행하기 전보다 떨어졌으니, '글로벌 인재'를 '창의적 사고'와 연관짓기도 어렵다. 그렇다면 한국 정부와 학교가 기른다고 주장하는 '글로벌 인재'란 무엇일까? 그들이 좋아하는 '기업이 원하는 인재'를 세계적으로 확장한 개념으로 보면 될까?

한국 정부와 기업은 '세계'를 말하며 늘상 미국 이야기를 꺼내곤 한다. 자유무역협정(FTA)을 강행한 논리도 '세계 최대인 미국 시장을 선점해야 한국 경제의 미래가 있다'였다. 그렇다면 이들이 생각하는 '글로벌 인재'는 '미국 기업이 원하는 인재'일까? 미국 기업은 어떤 사람을 뽑고 싶어할까? 특히 금융위기 이후 황폐화된 취업시장에서 어떤 조건을 갖춘 구직자를 선호할까?

최근 공개된 고용주 설문조사가 좋은 단서가 될 것 같다. 컨설팅 회사인 밀레니엄 브랜딩 사가 미국의 225개 회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고용주들은 구직자가 갖출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 '소통능력(98%)'을 꼽았다. 그 다음이 '긍정적 태도(97%)'와 '타인과의 협력(92%)'이었다.

최근 공개된 '밀레니얼 브랜딩'의 설문조사 결과. '고용주들이 가장 원하는 자질' 1위도 소통능력이었고, '가장 중요한데도 찾기 어려운 자질' 역시 소통능력이었다.
 최근 공개된 '밀레니얼 브랜딩'의 설문조사 결과. '고용주들이 가장 원하는 자질' 1위도 소통능력이었고, '가장 중요한데도 찾기 어려운 자질' 역시 소통능력이었다.
ⓒ Millenial Bra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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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언급한 한국직업능력개발원 보고서는 한국교육이 언어능력과 대인관계능력을 길러주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 주었다. 다시 말해, 학생들을 죽도록 괴롭히면서도 국제 경쟁력은 도리어 떨어지는 한심한 교육정책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학생 괴롭히며 국가 경쟁력도 잃는 어리석음

국민들 다수가 비싼 학비를 걱정하지만, 등록금이 내릴 희망은 보이지 않는다. 비싼 등록금을 원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대학만 그런 게 아니다. 부자들도 비싼 등록금을 좋아한다. 돈 있는 사람만 입학할 수 있고, 돈 있는 사람만 아르바이트 걱정 없이 다양한 경험을 즐기면서 '스펙'을 쌓을 수 있으며, 돈 있는 사람만 빚 없이 사회에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천문학적 등록금은 돈 없는 사람을 경쟁에서 배제시키는 효과적인 방법이 된다.

공식적인 기여입학제가 아니어도, 한국사회는 이미 돈으로 대학 졸업장을 사는 사회가 된 셈이다. '있는 자를 위한, 있는 자에 의한, 있는 자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부자들은 이 체제를 공고히 하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정말 그런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세상에 돈으로도 할 수 없는 게 있음을 증명하는 게 필요하다. 예컨대 멍청함을 없애는 일 같은 것 말이다. 현재의 교육제도를 혁명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없는 자들이 고통 받는 것은 물론, 궁극적으로는 가진 자들도 낭패를 면치 못하게 될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국가 경쟁력을 잃게 될 것이고, 장기적으로 나라 자체가 소멸하고 말 테니 말이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경쟁력'을 위해 경쟁체제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교육 스트레스로 아기 낳기를 포기하고, 낳아 놓은 아이들은 성적 스트레스로 자살을 고민하는 사회가 궁극적인 경쟁력을 갖추는 날, 인구는 '0'이 될 것이다. 상황이 악화되지 않고 현재의 출산율이 지속되기만 해도 한국사회의 인구는 300년 이내에 자연 소멸하게 돼 있다.

물론 상위 1%는 살아남을 것이다. 그들이 상위 1% 내에서도 급격히 진행되고 있는 부의 편중현상을 견뎌낸다면 말이다. 현재 인구의 1%면 50만이다. 싱가포르 인구의 1/10인 50만의 경쟁력 있는 '최상위 엘리트 국가'를 만들면 경쟁력이 생길까? 현재 5000만 인구로도 충분한 내수시장을 이루기 어려운 게 현실인데 말이다.

하다 못해 부자들은 자신이 1%임을 과시할 대상이 그리워지지 않겠는가. 물론 1%끼리도 서열을 매겨 0.99%를 따돌리는 짓을 계속 하겠지만 말이다. 설사 국민 대다수가 소멸하지 않고 살아남는다 해도 그들이 높은 지식, 기술, 구매력을 갖추지 못하면 상위 1%도 행복해지기 어렵다. 부유층 거주지를 제외한 전국이 슬럼화되어 황량한 거리를 방탄차를 타고 누비면 스릴을 누릴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등록금이 비싸야 대학 경쟁력이 생긴다?

유럽의 많은 대학은 무료에서 수십 만 원의 낮은 등록금을 받으면서도 세계적 경쟁력을 자랑한다. 왼쪽 사진은 스웨덴의 카롤린스카 의대로, 유럽연합 출신 학생들에게는 한 푼도 받지 않는다. 오른쪽은 아인슈타인 등 20여 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취리히 연방공과대로, 한 한기 등록금이 500유로(약 70만 원)에 지나지 않는다. 스위스 국민소득이 한국의 4배가 넘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현지 학생들이 느끼는 부담은 훨씬 적을 것이다. 두 학교의 2012 <더 타임스> 세계대학 순위는 각기 32위, 15위다.
 유럽의 많은 대학은 무료에서 수십 만 원의 낮은 등록금을 받으면서도 세계적 경쟁력을 자랑한다. 왼쪽 사진은 스웨덴의 카롤린스카 의대로, 유럽연합 출신 학생들에게는 한 푼도 받지 않는다. 오른쪽은 아인슈타인 등 20여 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취리히 연방공과대로, 한 한기 등록금이 500유로(약 70만 원)에 지나지 않는다. 스위스 국민소득이 한국의 4배가 넘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현지 학생들이 느끼는 부담은 훨씬 적을 것이다. 두 학교의 2012 <더 타임스> 세계대학 순위는 각기 32위, 15위다.
ⓒ 강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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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학은 취업학원이 된 지 오래다. 대학생들이 보편적 교양은 커녕, 제 분야의 공부마저 포기하고 기업 직무적성시험 준비에 나서는 상황에서 국가 경쟁력을 기대할 수는 없다(입사 시험에는 '용산참사는 경찰 탓인가?'같은 질문도 나온다). 물론 학생들은 많은 시간을 아르바이트와 '스펙 쌓기'에도 바쳐야 한다. 이런데도 기업이 대학을 떡 주무르듯 주무르게 내버려 두고, 대학이 원하는 대로 등록금을 받을 수 있어야 '경쟁력'이 생긴다고 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등록금 걱정하는 국민들에게 "등록금이 싸면 대학 교육의 질이 떨어진다"고 주장했다. 1000만원 대 등록금을 받는 한국 대학이 무료에서 수십 만 원 수준인 독일, 프랑스, 스위스, 스웨덴 등의 대학들보다 나은지, 또 이 나라들이 한국보다 경쟁력이 떨어지는지는 길게 생각할 필요도 없다.

2012년 <더 타임스> 선정 '세계 100대 대학'에 이름을 올린 한국 대학은 '등록금 저렴한' 포항공대와 한국과학기술원(KAIST) 뿐이라는 사실도 기억할 만하다. 물론 등록금을 국가가 보조하기 때문이지만, 그건 유럽도 마찬가지다. 만에 하나 사립대 등록금을 억제해 수준이 떨어진다 하더라도, 비싸서 다닐 수도 없는 '수준 높은 대학'보다는 '다닐 수 있는 대학'이 낫다. '경쟁력'을 이유로 의료민영화를 해서는 안 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국민 대다수가 누릴 수 없는 '경쟁력'이 대체 무슨 소용인가?

국가가 세금을 들여서라도 학비를 낮추는 건 낭비가 아니다. 졸업생이 학위장을 들고 하늘로 승천하는 게 아니라, 갈고 닦은 지식과 기술을 사회에 되돌려주기 때문이다. 정말 낭비가 무엇인지 알고 싶은가? 그건 어렵게 들어간 대학에서 전공 공부 대신 아르바이트나 취업준비에 매달리게 만드는 것이다. 특히 국가가 보조하는 대학에서 '기업이 원하는 인재'를 배출하는 것은 세금을 기업에 퍼주는 행위와 같다.

세금을 기업에 갖다 바치는 게 한국 정부의 오랜 전통이긴 하다. 4대강 사업처럼 말이다. 자연하천을 인공구조물로 도배하는데 막대한 세금을 쏟아부었지만, 이 어리석은 낭비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 어리석은 구조물을 한동안 유지하다가 결국 다시 뜯어내는 비용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자연을 거스른 대가를 혹독히 치른 후 말이다.

차라리 건설사에 그냥 돈을 갖다 주는 편이 현명했다. 돈은 날렸겠지만, 적어도 강은 망가지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물론 정말 현명한 정부라면 그 돈을 강바닥과 건설사 주머니 대신 젊은이들의 미래에 투자했겠지만 말이다.


태그:#이명박, #교육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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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학 교수로,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 기술과 문화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미디어기호학>과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를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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