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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17일 아내와 함께 오른 선학산에는 배꽃, 앵두꽃, 탱자꽃, 개나리가 흐드러지게 피어있었습니다. 몰랐던 꽃 이름도 하나 알았는데 조팝꽃입니다. 선학산은 흰꽃누리였습니다. 흰빛깔 꽃들을 보면서 생명의 경이로움을 느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생명의 경이로움이 잠시 사리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눈을 사로잡은 것은 '오밀조밀'(?)할 정도로 많은 묘지들이었습니다.

"여보 묘지 보세요. 공동묘지 아니에요?"
"그런 것 같아요. 여기가 공동묘지였구나."
"보세요. 묘지가 아주 작아요."
"이런 말일 어울리지 모르겠지만 오밀조밀할 정도로 많고, 작네."

"그런데 무섭지가 않아요."
"나도 처음 본 순간 멈칫했지만 전혀 무섭지 않네요."

"비석보세요. 아주 작은 비석이에요."
"비석도 작지만 아주 오래된 것 같네요. 글씨도 잘 보이지 않고.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선학산이네요."


공동묘지 가운데를 지나갔지만 왠지 두려움보다는 '친근함'을 경험했습니다
 공동묘지 가운데를 지나갔지만 왠지 두려움보다는 '친근함'을 경험했습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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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비석하나가 그가 누구인지를 짧게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작은 비석하나가 그가 누구인지를 짧게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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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은 아주 작은 비석 하나를 남겨두라고 했는데, 이들도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을 남겼습니다. 조금 더 오르니 이번에는 제법 큰 묘지가 보였습니다. 묘지 앞에 쌓은 돌을 부르는 이름이 있지만 무지한 사람이라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도 흙으로 돌아갔습니다. 다들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가는데도 우리네 인생은 생명이 붙어 있는 순간까지 조금이라도 더 가지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흙으로 돌아간 이들을 보면서도 탐욕의 때를 완전히 씻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 큰 비석을 두고 부부가 누워있습니다. 살았을 적에도 정답게 지냈을까요? 분명 그랬이라 믿습니다. 사랑하지 않았던 부부라면 이렇게 정답게 누워있진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구조를 부르는 이름이 있을 것인데 지식이 부족해 그냥 돌담으로 합니다. 살았을 적에 조금 작은 벼슬이나, 물질의 풍요를 누리는 이지만 그도 어쩔 수 없이 흙으로 돌아갔습니다.
 이런 구조를 부르는 이름이 있을 것인데 지식이 부족해 그냥 돌담으로 합니다. 살았을 적에 조금 작은 벼슬이나, 물질의 풍요를 누리는 이지만 그도 어쩔 수 없이 흙으로 돌아갔습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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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비석을 두고 부부가 누워있습니다. 살았을 적에도 정답게 지냈을까요? 분명 그랬이라 믿습니다
 큰 비석을 두고 부부가 누워있습니다. 살았을 적에도 정답게 지냈을까요? 분명 그랬이라 믿습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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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묘지라 그런지, 이곳저곳에 이장한 흔적이 눈에 띕니다. 작은 흔적 하나 남겨두고 어디로 갔을까요. 살아있을 때 그는 이곳을 저처럼 지났는지도 모릅니다. 죽으니 후손들이 그를 이곳에 묻었을 것이고, 시간이 더 지나 성묘를 하기 힘든 또 다른 후손이 다른 곳으로 이장해 갔을 것입니다. 우리 인생이 그렇습니다.

흙에 묻으면 묻히고, 이장하면 이장될 수밖에

살았을 적에는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생명을 놓는 순간, 흙에 묻으면 묻히고, 이장하면 이장 되고, 화장을 하면 불구덩이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파헤친 작은 흔적을 보면서 교만하지 말고, 미워하지 말고, 겸손과 사랑만 하면서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 다짐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요.

이장을 한 것 같았습니다. 작은 흔적 하나 남겨두고 어디로 갔을까요.
 이장을 한 것 같았습니다. 작은 흔적 하나 남겨두고 어디로 갔을까요.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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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흔적 하나 남겨두고 어디로 갔을까요. 흙으로 왔으니 흙으로 갑니다
 작은 흔적 하나 남겨두고 어디로 갔을까요. 흙으로 왔으니 흙으로 갑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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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멀리 정상이 보였습니다. 공동묘지는 이어졌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다 묘지라 그냥 흙무더기를 쌓아둔 것처럼 보입니다. 그때  한 여인이 공동묘지를 가운데를 지나가고 있습니다. 먼 훗날, 그도 흙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흙으로 돌아가는 그날까지 조금은 겸손하고, 사랑하고, 섬기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선학산 묘지들은 가르쳐주었습니다.

공동묘지를 가운데를 지나가는 한 여인. 살아있지만 먼 훗날. 그도 흙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공동묘지를 가운데를 지나가는 한 여인. 살아있지만 먼 훗날. 그도 흙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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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선학산, #공동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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