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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2012 총대선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전경.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전경.
ⓒ 선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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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강남을 잘 아는 편이다. 한국을 떠나기 전까지 강남에 살았고, 그곳에서 꽤 오랫동안 다양한 배경의 학생들을 가르쳤다. 흔히 서울을 '강북'과 '강남'으로 구분한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강남-강북 잣대로 주민들의 소득수준과 정치성향을 재단하곤 한다. 나는 이게 큰 오해라는 사실을 안다. 강남에는 부유층만 살지 않는다. 내 자신이 강남에 살면서도 '부유층'과 거리가 멀었다는 것이 이 사실을 입증한다.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이유로 강남에 산다. 단지 그곳에 태어났기에 사는 사람이 있고, 직장 때문에 옮겨온 사람이 있고, 자식 교육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 허리띠를 졸라매고 들어온 사람도 있으며, 그저 강남 사는 게 좋아서 옮겨와 하루하루를 힘겹게 지탱하는 사람들도 있다. 여기서 마지막 부류의 사람을 비웃고 싶어진다면, 차분히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길 권한다.

'강남'이라는 기호가 당신의 꿈이나 욕망에 아무런 파문을 던지지 않는다면, 당신은 진창과 같은 한국사회에 살면서도 내면적으로 인식의 단절을 성취한 현인이거나, 방송, 신문, 인터넷은 물론 주위 사람들과 담 쌓고 사는 '반사회적 동물'일 것이다(물론 이 글을 읽고 있지도 않을 것이다).

한국 언론은 이상화된 소비와 계급 담론을 '강남'이라는 이름으로 끊임없이 유포하고 재생산한다. 보통 사람들이 이런 지배적 인식을 벗어나 살기란 쉽지 않다. 한국 어디에 살든 마찬가지다. '강남'은 드라마, 뉴스, 광고, 주위사람의 입을 통해 지겹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뭐, 한국만이 아니다. 지난 여름 캘리포니아의 한인 타운에서 '강남에서 유행하는 화장품'을 써 보라는 권유를 받기도 했고, 올 겨울에는 뉴저지의 슈퍼마켓에서 '강남 베이커리에서 불티나게 팔린다는' 크림빵 샘플을 받아먹기도 했으니 말이다.

흥미롭게도, 현실과 별 상관없는 이상화된 담론이 거꾸로 실제 현실을 좌우하는 모습을 본다. 아파트, 옷차림, 머리모양, 화장품, 크림빵 선택만이 아니라 정치적 선택도 그렇다. 부자이기 때문에 강남에 살고 '부자정당'을 지지하는 게 아니라, 강남에 살기에 부자라고 믿고 부자정당에 투표하는 것이다. 심지어 부자정당에 투표하면 부자가 되어 강남에 살게 될 거라고 믿기도 한다. 사람은 이렇게 현실, 꿈, 이해타산, 순진한 욕망이 뒤섞인 복잡하고 모순적 존재다.

양극화가 강남의 목을 조른다

미국 공화당은 70년대 이래 부유층 감세, 노동유연화, 공공서비스 민영화 등 '레이거노믹스'를 추진해 왔다. 그 결과 상위 1%의 소득(파란색)만 증가하고, 나머지 소득은 정체되거나 가파르게 추락했다. 국민 대다수인 90%의 소득이 급속히 하락했으며, 심지어 상위 5%의 소득(하늘색)마저 정체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이것마저 옛날 이야기가 되었다. 이제 미국은 '상위 1%'가 아니라 '상위 0.01%'의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미국 공화당은 70년대 이래 부유층 감세, 노동유연화, 공공서비스 민영화 등 '레이거노믹스'를 추진해 왔다. 그 결과 상위 1%의 소득(파란색)만 증가하고, 나머지 소득은 정체되거나 가파르게 추락했다. 국민 대다수인 90%의 소득이 급속히 하락했으며, 심지어 상위 5%의 소득(하늘색)마저 정체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이것마저 옛날 이야기가 되었다. 이제 미국은 '상위 1%'가 아니라 '상위 0.01%'의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 워싱턴 먼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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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옛 강남주민'이 현 강남 주민에게 드리는 고언이다. 앞으로도 내 신분은 쭉 '옛 강남주민'으로 남게 될 것 같다. 외국에 살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귀국한 후에도 강남으로 되돌아가기는 불가능할 것 같기 때문이다. 내 월급으로는 그곳에 변변한 거처 하나 마련하기 어려울 게 틀림없다. 안타깝게도, 이것은 현재 강남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 닥칠 문제다. 지금 별 어려움 없이 사는 사람들을 포함해서.

이 말을 믿기 어렵다면, 최근 발표된 <뉴욕타임스> 통계를 보길 바란다. 한국 상황을 말하다가 미국 일간지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미국의 현재가 한국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막대한 재정적자, 소득 양극화, 공교육과 공공서비스의 붕괴, 천문학적 등록금, 고용불안 등 두 사회의 경제구조와 사회문제는 쌍둥이처럼 닮아가고 있다. 게다가 미국식 '체질개선'을 서둘러야 한다며 무역협정까지 맺었고, 현재 그 수장이 강남의 선거구에 국회의원으로 출마한 상태다.

미국의 소득양극화 문제가 심각하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셨을 것이다. <뉴욕타임스>가 보도한 통계를 보면, 2010년 소득증가분의 93%가 상위 1%에게 갔고, 나머지 7%가 대다수 국민 99%에게 돌아갔다. 한국에서도 똑같은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강남 거주민 가운데 상당수가 상위 1%에 속할 텐데, 뭐가 문제냐고? 그게 아니라는 데 문제가 있다.

2010년 한국 통계청 자료를 보면 이른바 '상위 1%'의 평균 순자산액은 34억 원에 달한다. 이들의 연평균 소득은 2억 4천만 원을 넘어선다. 하지만 2008년 기준으로 강남구에서 월평균 소득이 500만 원 이상인 가구는 10가구 중 3가구에 지나지 않았다. 서울 전체 평균보다는 높지만, 강남구 10가구 중 7가구가 상위 1%의 월 평균 소득인 2000만원의 4분의 1도 벌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다시 말해 강남 안에서도 양극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강남의 양극화'는 수치가 아니라 경험적으로 증명할 수 있다. 대학원생 시절, 강남 아파트촌을 돌며 과외지도를 했었다. 여기서 강남의 교육열에 대해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한국 대부분의 가정이 그렇듯, 강남 부모들 역시 자녀 교육비를 줄이는 일은 좀처럼 하지 않는다. 교육비를 줄이는 건 가계경제가 취할 수 있는 최후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가 닥치자, 수년간 해오던 과외자리가 한꺼번에 우수수 떨어져 나가는 놀라운 경험을 했다. '강남 부자'가 얼마나 허약한 토대에 서 있는지 절감하는 순간이었다. 물론 이때도 상위 1% '수퍼부자'들은 오히려 쏟아지는 부동산 매물을 사 들이고 보유한 외환을 굴려 더 많은 돈을 긁어모았지만 말이다.

심화되는 부유층 양극화... 실직 걱정하는 상위 1%

미국의 소득양극화는 심각한 사회문제다. 2010년 소득증가분의 93%가 상위 1%에게 갔고, 나머지 7%가 미국인 99%에게 돌아갔다.
 미국의 소득양극화는 심각한 사회문제다. 2010년 소득증가분의 93%가 상위 1%에게 갔고, 나머지 7%가 미국인 99%에게 돌아갔다.
ⓒ 강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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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상위 1%에게는 아무 문제가 없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뉴욕타임스> 통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상위 1% 안에서조차 양극화 조짐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미국은 2010년 소득증가분의 93%가 상위 1%에게로 갔지만, 이 몫의 배분에도 큰 격차가 있었다. 증가분 전체의 37%를 1%의 1%, 즉 0.01%가 가져갔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머지 0.99%가 56%를 나눠가졌다(소득증가분의 7%는 하위층 몫으로 돌아감). 이런 '부유층 양극화'는 날로 심화되고 있다.

지난달 <월스트리트저널>은 흥미로운 설문조사 결과를 보도했다. 아메리칸 익스프레스·해리슨그룹 공동조사 결과, 상위 1% 중 무려 28%가 실직을 걱정한다는 이야기였다. 심지어 기업 소유주의 21%가 자기 회사가 한 해를 버티지 못할 것 같다는 암울한 전망을 내놓았다.

미국사회의 양극화는 서민의 문제만이 아니다. 상위 1% 내에서도 부의 쏠림현상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최상위 0.01%가 2010년 소득증가분의 37%를 차지했고, 나머지 0.99%가 56%를 나눠가졌다. 부의 재분배 문제는 '극빈자 구제'나 '포퓰리즘'이 아니라 건강한 산업발전을 위한 필수적 조건이다. 소비자 90%의 소득이 하락하는 사회에서 성공적인 기업활동을 기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사실은 '분배냐 성장이냐'는 이분법이 얼마나 허구적인지를 말해준다.
 미국사회의 양극화는 서민의 문제만이 아니다. 상위 1% 내에서도 부의 쏠림현상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최상위 0.01%가 2010년 소득증가분의 37%를 차지했고, 나머지 0.99%가 56%를 나눠가졌다. 부의 재분배 문제는 '극빈자 구제'나 '포퓰리즘'이 아니라 건강한 산업발전을 위한 필수적 조건이다. 소비자 90%의 소득이 하락하는 사회에서 성공적인 기업활동을 기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사실은 '분배냐 성장이냐'는 이분법이 얼마나 허구적인지를 말해준다.
ⓒ 강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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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자아실현 도구로서의 직업을 잃게 되는 것뿐 아니라, 돈 걱정도 했다. '죽기 전에 돈이 떨어질까 봐 걱정'이라는 사람이 38%에 달했다. 파산에 대한 우려로 인해 부유층 사이에 저축률이 상승하는 재미있는 현상도 일어나고 있다.

이 사실은 무엇을 말해줄까?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정책과 후보는 상위 1%에게조차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양극화가 심화될수록 한국의 상위 1%의 99% 역시 미국 부유층처럼 불안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통계청에서 발간한 <한국의 사회동향 2009>는 외환위기 이후 "중산층의 보루로 여겨지던 전문·관리직 직장에서조차 대량 실업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한국에서 스스로 부유하다고 느끼는 사람들 가운데 다수는 실제 부자가 아니며, 객관적 의미의 '부유층'조차 서민경제의 기반인 내수시장에 몸을 맡기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부자들에게 이익이 될 거라고 막연히 믿는 반서민 정책과 한미자유무역협정은 내수시장을 심각히 위협할 것이다.

'나는 지배층'이라는 착각이 당신 삶을 비참하게 만든다

한미FTA 협상을 이끌었던 김종훈 전 통상교섭본부장이 지난 3월 21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새누리당 중앙선대위 발대식 및 공천장 수여식에서 참석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한미FTA 협상을 이끌었던 김종훈 전 통상교섭본부장이 지난 3월 21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새누리당 중앙선대위 발대식 및 공천장 수여식에서 참석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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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착시투표'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부자이기 때문에 부자정당을 지지하는 게 아니라, '부자라고 생각해서', 혹은 '부자가 되고 싶어' 부자정당에 투표한다고.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2007년 발간한 보고서는 이런 착시현상의 흥미로운 사례를 보여준다.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지지자일수록 자신을 '중산층 이상'으로 인식하는 비율이 높았다. 한나라당 지지자 가운데 절반 이상이 스스로를 '중산층 이상'이라고 답한 것이다. 한국인 전체 평균은 이보다 훨씬 낮아 37.4%였다. 정말로 한나라당 지지자들은 잘 사는 것일까.

실제 현실을 보자. 한 보수언론의 통계보도가 실마리를 준다. 2009년 7월 29일자 <조선일보>는 동서리서치 조사를 인용해, 저소득층일수록 보수정당과 보수정치인을 지지하는 경향이 있다고 보도했다.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지지율이 가장 높은 계층은 월소득이 100만 원 미만으로 41.9%의 지지율을 보였다.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무려 53.7%에 달했다.

오히려 소득이 늘어날수록 여당과 이명박 대통령 지지율이 줄어드는 경향을 보였다. 잘 살기 때문에 보수정당과 정치인을 지지하는 게 아니라, 보수정당을 지지할수록 잘 산다고 착각하기 쉬운 것이다. 물론 자신이 0.01%에 속한다고 믿는다면 주저 없이 '부자정당'에 투표하면 된다. 바로 당신을 위한 정당이니까.

하지만 잘 판단할 일이다. 물론 여기서 상위 0.01%는 강남주민 대부분과 상관없는, 막대한 부를 축적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양극화가 심해질수록 당신이 그 부류에 속하게 될 가능성도 줄어들 것이다.

혹시 잘 판단이 서지 않는다면 이 기준이 도움이 될 것이다. 사교육비가 만만치 않고, 등록금이 부담스럽고, 자식의 미래가 염려되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이 부류에 속하지 않는다.

현실을 보고 투표하라. 당신의 현실을 제대로 보고 투표해야 당신의 미래도 있다.


태그:#4.11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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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학 교수로,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 기술과 문화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미디어기호학>과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를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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