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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요금이 부당하다며 이런 사실을 한국 언론에 알리겠다고 하자 당황한 주인이 얼른 자리를 피해 얼굴이 선명하지 않다. 낙푸르역 대합실에 있는 전화부스에서
 전화요금이 부당하다며 이런 사실을 한국 언론에 알리겠다고 하자 당황한 주인이 얼른 자리를 피해 얼굴이 선명하지 않다. 낙푸르역 대합실에 있는 전화부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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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서 한국으로 전화하려면 노란 간판에 PCO, STD, ISO를 써놓고 영업하는 전화가게를 이용해야 한다. 남인도 일부 도시들을 제외하고는 공중전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한국의 통신망과 인터넷이 얼마나 발달했는지를 실감할 수 있다. 

이런 가게들은 일반 전화망 또는 인터넷 IP전화망을 사용한다. 음질은 일반 망이 낫고, 요금은 인터넷 망이 저렴하다. 인터넷 전화 가게들은 관광객들에게 관광기념품을 팔거나 인터넷 카페를 겸한다. 관광기념품을 파는 한쪽에 전화 한 두 대를 설치한 곳도 있지만 대개 한 두평 정도의 칸막이를 사용해 전화를 사용하도록 한다.

가게에는 분당 몇 루피, 또는 최저가라는 문구를 걸어놓고 손님을 끌어들인다. 전화이용법은 두 가지다. 한 가지는 한국까지 분당 얼마를 확인하고 타이머에 계산되는 대로 요금을 낸다.

한국으로 전화했던 전화기. 증거확보를 위해 촬영했다
 한국으로 전화했던 전화기. 증거확보를 위해 촬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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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하나는 전화기 위 또는 혹은 주변에 타이머가 달려있다. 이 기계는 사용자가  거는 지역번호를 인식해 초당 요금을 계산해 준다. 이때 주의할 것은 가게 주인이 타이머를 조작해 초를 빨리가게 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 따라서 전화를 사용할 때 자신의 시계로 시간을 체크해야  요금시비에 휘말리지 않는다. 나머지는 국제전화를 사용하는 방법과 같다.

인도사람 중에는 나쁜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순박하고 친절하다. 하루하루를 연명하기 힘든 극빈층을 제외하고는 외부인에게 가진 것을 내놓고 극진히 대접한다. 그러고 보면 가난과 사람의 친절함은 무관하다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많이 가질수록 이기적이지 않을까 생각도 해봤다.

낙푸르역사
 낙푸르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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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은 불가촉 천민의 아버지로 유명한 낙푸르 방문을 마치고 다음 목적지인 아그라로 가기 위해 초저녁쯤 낙푸 역에 도착했다. 아그라행 열차는 밤 11시쯤에 출발하니 아직 네 시간이나 여유가 있다. 마말라푸람에서 한국에 있는 아내에게 전화를 했으니 남편이 어떻게 지낼까 궁금해 할 것은 당연지사. 

인도 열차역 어디나 마찬가지지만 사람들이 인산인해다. 국제전화 부스가 어디 있나 확인해보니 대합실 바로 앞이다. 때마침 이용자가 없어 국제전화를 하겠다니 사용하라고 한다. 한평이나 됨직한 전화부스에는 한 남자가 앉아 있고 사용하라며  선선히 응한다. 약 2분 정도 아내에게 "집에 별일없냐? 나와 일행은 무사히 일정대로 움직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며 전화를 끊었다. 이제 전화 요금을 치를 차례.

전화기 위에 223이라는 숫자가 선명하게 적여있는  타이머.  주위사람들에게 큰 소리를 칠 수 있었던 결정적 증거다 . 시끄러워지자 주인이 얼른 삭제했지만 이미 내 카메라에 증거가 잡혀 있었으니---
 전화기 위에 223이라는 숫자가 선명하게 적여있는 타이머. 주위사람들에게 큰 소리를 칠 수 있었던 결정적 증거다 . 시끄러워지자 주인이 얼른 삭제했지만 이미 내 카메라에 증거가 잡혀 있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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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뿔사! 큰일이다. 전화요금을 223루피나 내란다. 전화기 위에 있는 타이머에 223이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적혀있었기 때문이다. 아차! 싶었다. 보름동안 인도에서 지내며 가난하지만 친절한 사람들을 만나 경계심을 놓아버린 것이다. 전화걸기 전에 한국까지 분당 얼마며, 시간체크는 어떻게 하는지를 확인하지 않고 전화를 건 것이 실수였다. 내 시계로 체크를 했어야 하는 것이었는데 … 

화가 난 나는 "내가 전화를 사용한 시간이 2분이다. 마말라푸람에서는 1분에 20루피로 40루피 줬다. 그렇게 많은 요금은 낼 수 없다"며 강경하게 맞섰다. 해외여행을 많이 해본 나를 완전 촌놈으로 보다니... 자존심에 상처를 받아 그냥 물러날 수는 없다.  

주인은 옆에 친구까지 데려와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똥개도 자기 집에서는 큰소리친다는 데 여기는 한국이 아닌 인도. 일행은 밥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이동했고 주위에는 한국 사람이 아무도 없다. 약간 위압감을 느꼈다. 할 수 없어 요구하는 돈을 내며 사진을 찍었다. 다행인 것은 대합실에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

나는 큰소리로 외치며 영수증을 달라고 했다. 영수증이 없다는 주인. 순간 방심이 나를 바보로 만들었다. 그래도 여기서 물러설 수는 없다. 다시는 한국인들을 봉으로 못 보게 만들어야겠다는 오기가 발동했다. 나는 큰소리로 외치며 주인의 부당함에 대해 따졌다. 이럴 때 증거확보는 필수. 카메라로 전화부스와 타이머를 촬영하고 주위의 인도 사람들에게 부당함을 설명했다.

"내가 한국에 있는 아내에게 전화를 사용한 것은 2분밖에 안 됩니다. 그런데 타이머에는 223초 즉 3분 7초쯤으로 찍혀있네요. 그런데 주인은 223루피를 내라고 하니 부당합니다. 마말라푸람에서는 1분에 20루피를 냈습니다. 나는 한국 언론에 이런 사실을 고발하겠습니다. 이래가지고 외국인이 인도를 방문하겠습니까?"

주위사람들이 그 주인을 바라보며 인도말로 뭐라고 나무라며 손가락질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역무원실로 들어가 역장을 불러달라고 말했다. 역장은 밤이라 퇴근했다며 민원담당 역무원이 나와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난 자세한 내막을 말하며 도저히 참을 수 없다고 말했다. 민원담당은 민원용지를 주며 자세한 사항을 적어주면 내일 역장에게 보고하겠다고 한다.

내가 낙푸르역에서 민원 담당자에게 써낸 불만 보고서. 어처구니 없는 일을 당하지  않으려면 증거확보가 필수다.
 내가 낙푸르역에서 민원 담당자에게 써낸 불만 보고서. 어처구니 없는 일을 당하지 않으려면 증거확보가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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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와 인적사항, 부당한 사실을 기록하고 있는데 정복을 입은 또 다른 사람이 나한테 와서 전화부스로 같이 가잔다. 자세한 사항과 기록내용을 훑어본 그 사람은 전화가게 주인에게 호통을 쳤다. 옆에 있는 사람들이 몰려와 가게 주인에게 초당 요금이 얼마인지를 묻자 3초에 1루피란다. 

나는 마말라푸람의 요금체계를 설명하고 말도 안 된다고 화를 냈다.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와 주인을 추궁하자 주인은 얼굴이 빨갛게 변했다. 사람들은 내게 얼마를 돌려주면 되겠냐고 물었다. "3초당 1루피면 74루피를 내겠다. 나머지 부당요금을 돌려달라"고 하자 정복 입은 담당자는 주인에게서 나머지 149루피를 받아 나에게 돌려줬다. 주위사람들과 담당자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일행에게로 돌아왔지만 지금도 한순간 방심으로 바보가 됐다는 생각이다.

외국여행시 방심은 금물이다.

덧붙이는 글 | '여수넷통'과 '문화촌뉴스'에도 송고합니다



태그:#국제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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