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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는 양날의 검입니다. 국가는 법과 제도를 만들어서 사회를 통제하고 이를 지키지 않는 사람의 자유를 제약할 수 있습니다. 이 서슬이 퍼런 검을 누가 이용하느냐에 따라 민중들의 삶은 큰 굴곡과 변화를 겪어왔습니다.

 

기득권층이 자신의 이득만을 위해 '국가'라는 정치권력을 사용할 때는 항상 '거짓말'이 존재했습니다. 그 거짓말로 국민을 속이고 기만해 자신들의 잇속을 챙겼습니다. '국가의 거짓말'이라는 연재기사를 통해 구체적인 사례들을 들여다보고 혼란의 시대에 국가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자 말>

 

 

[거짓말] 그린피스 선박 폭파사건, 대통령은 몰랐다

 

프랑스 국민 여러분, 그리고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 시민 여러분, 1985년 7월 10일 일어난 '그린피스 선박(일명 레인보우워리어호) 폭파사건'은 프랑스 정부와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이 폭파사건으로 귀중한 생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는 끔찍한 범죄행위이자 미친 짓이라 아니 말할 수가 없습니다.

 

자유, 평등, 박애를 원칙으로 하는 프랑스의 이념과는 전혀 맞지 않으며 저 미테랑은 이 사건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는 사실을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저는 이 사건의 진상을 명명백백히 밝혀내야 한다고 조사를 지시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이 공작을 최종 결정한 사람은 샤를 에르뉘(Charles Hernu) 국방장관이라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그 와중에 프랑스의 유력 일간지 <리베라시옹>의 국방 전문기자 장 기스넬은 자신이 저술한 에르뉘 전기에서 "에르뉘는 당시 사랑에 빠져 있어서 건성으로 이번 공작을 승인했다"고 밝혀 더욱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는 "당시 62살이던 에르뉘가 새로 사귄 애인과 밀애를 나누느라 업무를 소홀히 하는 기색이 뚜렷했다"며 "측근들도 '그는 사랑의 열병을 앓는 10대 소년 같았다'고 회상했다"고 적었습니다.

 

이 전기에 따르면 지난 1984년 말 그린피스 소속 선박이 프랑스의 핵실험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일 것이란 첩보를 입수한 에르뉘는 1985년 2월 DGSE(데제에스에, 프랑스비밀정보국)와 해군에 대책을 강구하라 지시했다고 합니다.

 

이에 따라 작성된 3개의 시나리오가 있었습니다. 첫째는 선박 엔진에 설탕을 퍼부어 엔진 작동을 방해하거나 승객(그린피스 대원)들에게 질병을 일으키게 한다. 둘째는 선박의 프로펠러를 경미한 폭탄으로 파괴해 3~4개월간 운항하지 못하도록 한다. 셋째는 선박 전체를 폭파하는 방법으로 '최후의 수단'이라는 메모까지 붙어 있었다고 합니다.

 

DGSE의 국장 피에르 라코스트 해군제독이 이 시나리오를 들고 장관을 찾았을 때 에르뉘는 건성으로 훑어보고 결국 셋째 방안을 골랐다고 합니다. 저에게 보고조차 하지 않고 단독으로 이런 결정을 내리다니, 너무나도 끔찍한 일이지 않습니까?

 

[진실]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은 그린피스 선박 폭파를 직접 지시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환경보호 단체는 무엇일까? 환경 분야에 큰 관심이 없더라도 '그린피스(Greenpeace)'라는 이름은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전 세계 40여 개 나라에 지부를 두고 350만 명의 회원 수를 자랑하는 '그린피스'는 1971년 미국의 알래스카 암치카(Amchitka) 섬 핵실험을 저지하기 위해 캐나다 서부의 밴쿠버 항구에서 12명의 환경 보호 운동가들이 모여 결성한 국제 환경보호 단체다.

 

이 단체의 원래 명칭은 핵실험을 하지 말라는 의미의 '파문을 만들지 마시오(Don't make a wave)'였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이 핵실험을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기 위해 알래스카 암치카 섬으로 출발하며 배 중앙에 '그린피스'라고 쓴 녹색 깃발을 걸었던 일을 계기로 '그린피스'가 단체의 이름이 되었다.

 

이렇게 태생부터 핵실험 반대와 연계돼 있던 '그린피스'는 프랑스의 핵실험 덕택에(?) 세계적인 유명세를 타게 된다. 1985년 7월에 일어난 '레인보우워리어(Rainbow Warrior)호 폭파사건'이 그것이다. 프랑스 정보기관이 그린피스의 대표적 선박에 테러를 가한 이 사건이 보도되자, 덩달아 그린피스의 평상시 활동도 전 세계인들에게 알려졌기 때문이다.

 

'레인보우워리어'는 북아메리카 원주민이 그린피스 대원들에게 건네준 책 덕분에 붙여진 이름이다. 그 책의 제목이 <레인보우 워리어>였다. 북아메리카 원주민의 전설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고 한다.

 

불의 눈을 가진 여자가 예언하기를, 사람들이 자신들의 탐욕 때문에 자연을 파괴해 지구가 병들어 아파하는 날이 오면 언어와 인종과 피부와 문화를 달리하는 전 세계의 사람들이 지구를 살리기 위해 모이기 시작하는데, 이들을 사람들은 '레인보우 워리어' 즉 '무지개 전사'라고 부를 것이라고. 이런 아름다운 이야기를 가진 멋진 이름을 그린피스는 자신들의 근사한 범선에 붙여주었다.

 

하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무지개 전사(戰士)는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바로 전사(戰死)했다. 1985년 7월 10일 오후 11시 45분, 뉴질랜드 오클랜드항에서 이 무지개 전사는 누군가 몰래 설치해놓은 폭탄 2개 때문에 산산조각이 난 것이다.

 

선체 길이 40m의 트롤 어선이 불과 4분 만에 침몰할 정도로 강력한 폭발이었다. 이 때문에 배 안에 타고 있던 포르투갈 출신 프리랜서 사진기자 페르난도 페레이라가 장비를 가지러 선실로 돌아갔다가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채 목숨을 잃었고, 다른 10명의 승무원은 긴급히 피신하여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무고한 생명 앗아간 폭탄 테러... 누가 이런 짓을 했을까

 

애초에 레인보우워리어호는 일본의 히로시마 원폭 투하 40주년을 맞아 1985년 8월 6일 프랑스 핵실험 기지인 남태평양 프렌치 폴리네시아 뮈뤼로아(Mururoa) 환초 일대를 시위 항해할 예정이었다.

 

또 마침 프랑스 정부가 뮈뤼로아 환초에서 공중 핵무기 실험을 계획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렸다. 이를 항의할 겸 5월 초에 실시된 핵실험의 낙진과 뮈뤼로아 주민의 건강 상태를 조사하기 위해 뮈뤼로아로 가기로 했고, 그 와중에 잠시 뉴질랜드에 정박했는데 이 같은 변을 당하고 만 것이다.

 

누가 봐도 명백한 격침이었다. 그렇다면 누가? 왜 이런 짓을 했을까? 프랑스의 핵실험을 모니터링해 온 그린피스였기에 프랑스가 유력한 용의국으로 떠올랐다. 게다가 프랑스 정보기관은 1972년에도 뉴질랜드 반핵단체 '피스메디아'의 보이로엘호가 핵실험을 방해하자 이를 폭파시켜버린 전과가 있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강력한 용의국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미테랑 당시 프랑스 대통령은 프랑스 정보기관의 개입 혐의를 극구 부인했다.

 

하지만 이는 오래가지 못했다. 뉴질랜드 경찰은 사건 발생 다음 날 폭파 현장 부근에서 캠핑카를 타고 있던 스위스인 튀랑주 부부를 체포하고, 부근 해안에서 폭파 공작에 이용된 것으로 보이는 고무배 '조디악'을 찾아낸 후 프랑스 정보기관의 소행이라고 발표했다. DGSE가 뉴질랜드 당국의 발표를 '근거 없는 중상모략'이라고 즉각 반박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DGSE가 이 폭파사건에 관련됐음을 말해주는 증거가 연일 뉴질랜드 수사 당국에 의해 계속 드러났다. 당초 이 사건은 그린피스의 자작극으로 알려지기도 했지만 배에 뚫린 구멍이 배 밖에서 붙인 2개의 지뢰 때문이었음이 밝혀졌고, 마침내 <르몽드>가

 1985년 8월 14일 자체 조사 결과 DGSE의 공작이 틀림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이를 1면에 보도하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르몽드>의 보도는 오보가 아니었다. 체포된 튀랑주 부부가 소지하고 있던 스위스 여권이 위조임이 드러났고 튀랑주 부부가 DGSE의 정보원이라는 사실이 곧 밝혀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공작에 합류하기 위해서 프랑스령 뉴칼레도니아로부터 범선 우베아호를 11만 프랑(1100만 원)에 전세 내 오클랜드에 도착, 폭파 임무를 끝내고 종적을 감춘 나머지 3명도 DGSE가 징발한 프랑스 군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오클랜드에 와서 레인보우워리어호의 항해계획을 알아낸 후 자취를 감춘 프레데릭 봉리유라는 그린피스 단원도 사실은 그린피스의 반핵운동 계획을 탐지하기 위해 DGSE가 침투시킨 정보원이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뉴질랜드 경찰은 튀랑주 부부를 폭발 행위와 살인 혐의로 구속했다. 이로써 프랑스가 이 사건에 관여했음이 명백해졌다. 뉴질랜드 총리 데이비드 롱이(David Lange)도 레인보우워리어호의 침몰을 "국제적으로 국가가 지원한 지저분한 테러행위"라고 비난했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국제 시민단체마저도 공격의 대상으로 삼고, 공권력을 이용해 철저히 파괴해버리는 프랑스의 추한 맨얼굴이 드러난 것이다.

 

레인보우워리어호 공격 계획 "대통령이 분명히 승인해주었다"

 

세계의 여론은 경악했다. 모두가 미테랑 대통령의 얼굴을 주목했다. 누가 최종적으로 명령을 내렸는가? 만약 미테랑 대통령이 그 장본인이라면, 프랑스가 정부 차원에서 힘없는 국제환경 단체의 민간인을 살해하라고 명령한 셈이 된다. 하지만 프랑스 정부는 DGSE의 해당 부서가 독자적으로 수행한 작업이었다며 국가 책임을 부인했다. 예상 가능한 주장이었다.

 

국내외적으로 최악의 위기에 처한 미테랑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듯 레인보우워리어호 폭파사건의 진상조사를 지시했다. 역시나, 프랑스가 자체적으로 조사한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뉴질랜드가 일방적으로 프랑스를 낙인 찍은 것일 수도 있다'는 기대도 물거품으로 사라졌다. 3주간의 조사 끝에, 15명의 프랑스 DGSE 잠수부 요원들이 배에 어뢰 폭탄을 장치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프랑스 언론들은 이를 '프랑스판 워터게이트'라며 대대적으로 다뤘다. 로랑 파비우스 총리가 텔레비전에 나와 국민에게 사죄했고, 이어 에르뉘 국방장관이 인책 사임했으며 DGSE 국장 피에르 라코스트 해군제독도 해임됐다. 이에 하루아침에 선박을 통째로 잃은 그린피스도 프랑스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손해 배상금으로 800만 달러를 받았다.

 

결국 이렇게 프랑스의 비도덕적 테러에 대한 비판은 잘 봉합(?)되었지만, 미테랑 대통령이 이 사건에 개입됐다는 주장은 꾸준히 제기됐다. 하지만 모든 책임은 에르뉘·라코스트 두 사람에게 지워졌다. 심지어 에르뉘는 그의 사생활까지 거론되며 '늦은 나이에 주책없이 여자에게 홀려 그릇된 판단을 했다'고 비판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끝내 침묵했다. 라코스트 역시 1997년 자서전에서조차 미테랑 대통령의 개입 사실을 부인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국가에 대한 충성'으로 말미암은 거짓이었음이 밝혀졌다. 레인보우워리어호 폭파사건 20주년인 2005년에 이르러서야, 당시 미테랑 대통령이 폭파 공작을 직접 승인했다는 사실이 <르몽드>의 보도를 통해 드러난 것이다.

 

<르몽드>는 라코스트가 사건 발생 1년 뒤인 1986년 자필로 쓴 보고서에서 "샤를 에르뉘 국방장관의 요구로 이 공격 계획을 검토했고 대통령에게 이를 실행해도 되는지 문의했다. 대통령은 핵실험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이를 분명히 승인해주었다"고 적었다고 보도했다. 그는 이어 "나는 아직도 세부 내용을 잘 모르지만 대통령의 승인은 명백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결국 미테랑은 도마뱀 꼬리 자르듯이 실무 책임자에게 책임을 넘겨 자신의 도덕성은 보존시켰다. 최고 책임자가 승인을 안 했다고 발표함으로써 프랑스의 이미지도 지키고 외교적 파장이 더 커지는 것도 막았다.

 

프랑스 입장에서는 정보 공작의 'ABC'에 입각해 슬기롭게 대처했던 셈이지만, 너무나 세련되고도(?) 비겁한 거짓말에 진한 배신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듯하다. 제3세계에서 공작을 저지르는 미국을 "테러는 나쁜 짓"이라며 욕하는 프랑스도 알고 보면 똑같은 서방 제국주의 국가이며 테러 국가였던 것이다.

 

'테러는 나쁜 짓'이라던 프랑스, 그들의 추악한 맨얼굴

 

하지만 프랑스 내부적으로는 그들 자신이 테러 국가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은 듯하다. 오히려 'DGSE는 애국적 행동을 했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뉴질랜드 경찰에 의해 체포된 2명의 DGSE 공작원의 경우를 봐도 알 수 있다.

 

그들은 1985년 11월 말, 10년 금고형이 선고되었지만 "그것은 과실치사였다"고 줄곧 항변했다. 그들은 "레인보우워리어호가 정탐설비를 갖추고 있었는데 그대로 폭파된 것은 수상하다"며 심지어 "숨진 페레이라는 KGB 소속 스파이였다"고까지 주장했다.

 

그런 덕인지, 그들은 이듬해 7월, 프랑스 정부의 끈질긴 물밑교섭으로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뉴질랜드 수상이 사고 배상금으로 프랑스로부터 700만 달러를 받고, 범인 2명을 프랑스에 인도했기 때문이다.

 

복역한 지 1년도 못 돼 남태평양의 한 프랑스령 산호초 섬에 위치한 군사시설로 이감된 그들은 마침내 프랑스 본토로 돌아갔고, 고국에서 '영웅 대접'을 받았다. 그리고 이 사건은 세계인의 뇌리 속에서 점점 잊혀갔다.

 

일개 환경단체 소유의 선박이 한 거대국가의 테러에 의해 폭파되었다는 것을 상기시켜주는 건 1989년부터 새로운 그린피스의 선박 '레인보우워리어 2호'가 산산조각 난 1호의 자리를 대체했다는 사실, 뉴질랜드 밴드 '더머튼버즈(The Mutton birds)'가 레인보우워리어호 폭파사건 20주년을 기념해서 <앵커 미(Anchor me)>라는 노래를 만들어 그린피스의 모금 운동에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뿐이다.

 

그리고 프랑스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양, 모범적이고 도덕적인 국가로서의 이미지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너무도 영리한 프랑스, 미국이 한 수 배워야 하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거짓말' 부분은 이해를 돕기 위해 가상으로 재구성한 것임을 밝힙니다.


태그:#국가의 거짓말, #그린피스, #레인보 워리어, #미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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