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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많이 내는 대안학교, 적게 내는 대안학교

기온이 많이 떨어진 추운 겨울 밤,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이하 '책방')에서는 아주 특별한 졸업식 행사를 했다. 12월 20일, 오늘은 서울시 은평구에 있는 자그마한 청소년 대한학교인 은평씨앗학교(이하 '씨앗학교') 제 10기 졸업식이다. 요즘에는 대안학교라는 말이 낯설지가 않다. 여기저기서 참 많은 대안학교가 생겨났다가 사라지곤 한다. 그런 곳 중 하나에서 졸업식을 한 것이 무슨 특별한 것이 있을까 생각하겠지만, 씨앗학교 졸업식은 늘 깊은 감동을 만들어 내고 있어서 적지 않은 관심을 받는다.

우리나라에서 대안교육이라는 이름이 쓰이기 시작한 건 오래된 일이 아니다. 최근 들어 대안교육에 관심이 많아진 건 공교육이 위태롭다는 말이 나오면서 부모와 학생들이 먼저 대안학교 문을 두드리기 때문이다. 마치 춘추전국시대처럼 많이 생겨난 대안학교를 몇 가지 분류로 나눈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지만 지금 대안학교는 크게 두 가지 결이 있다.

하나는 입학하고 거기서 공부를 하는 일에 돈을 많이 써야 하는 곳이고, 다른 하나는 반대로 아주 적은 돈을 내고 공부하는 곳이다. 두 가지 모두 장단점이 있다. 돈을 많이 내고 공부하는 곳은 학교 시설이 좋고 학식이 뛰어난 선생님들이 많다. 그 대신 그렇게 큰돈을 부담할 수 없는 부모는 학생을 거기에 보낼 수 없다. 돈을 적게 내는 곳은 그만큼 재정이 열악하기 때문에 학교 규모가 작고 전문 지식을 가진 선생님들이 많지 않다. 하지만 돈이 많고 적음을 떠나서 누구나 공부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씨앗학교는 후자에 속한다. 이 학교에서 말하는 대안교육이란, 경제력에 구속받지 않고 누구라도 의지만 갖고 있다면 공부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걸 기본으로 삼는다. 비록 커다란 단독 건물 없이 다른 빌딩 한 층에 세 들어 있는 학교이지만 교사와 학부모는 언제나 대안교육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다. 그러한 고민만큼은 그 어떤 높은 학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보다 크고 깊다.

그렇기 때문에 2년, 혹은 3년을 씨앗학교에서 배우고 졸업을 하게 된다는 건 무척 큰일이다. 졸업이라는 게 학교는 물론 부모와 학생 자신에게도 굉장히 각별한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에 졸업식 행사도 매번 똑같지 않고 특별하다.

아이들이 연습한 기타연주로 졸업식 축하공연을 한다. 졸업식을 위해서 따로 연습한 것이라고 한다.
▲ 축하공연:기타연주 아이들이 연습한 기타연주로 졸업식 축하공연을 한다. 졸업식을 위해서 따로 연습한 것이라고 한다.
ⓒ 윤성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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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함께 축하하고 축하 받는 졸업식

보통 학교가 졸업식을 오전에 하는 것과 달리 씨앗학교는 오후 7시에 졸업식을 한다. 그 이유는 모든 학부모가 졸업식에 참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졸업식이 그저 졸업장을 주고 사진 찍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여러 가지 재미가 많아서 함께 어울려 즐길 수 있도록 저녁에 한다.

졸업식 첫 시작은 학생들이 한 해 동안 연습한 젬베 공연으로 시작한다. 불광동에 연습실을 갖고 있는 아프리카 타악그룹 '두드리카'의 리더인 김예수 선생님이 아이들 연주를 도와주었다. 젬베 연주도 씨앗학교 수업 중 하나다. 아이들은 악기 연주를 통해서 서로 협력하고 어울리는 방법을 배운다.

축하 공연을 마치고 나서는 지금까지 수업했던 내용들로 만든 결과를 하나하나 학생들 스스로 소개하며 졸업식 참가자들과 함께 나눈다. 씨앗학교는 보통 학교에서 하는 정보수업 비중한 작지만 영화 만들기나 애니메이션 제작, 요리하면서 배우는 수업들이 많다. 교실에 앉아서 딱딱하게 배우는 게 아니라 다양한 방법을 통한 통섭교육(여러 학문을 조화롭게 엮어서 함께 교육하는 일)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수업을 하면서 아이들과 선생님 모두가 성장하는 경험을 한다.

졸업식에서 스스로 자기가 해온 수업을 사람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이 아이들은 한해동안 열심히 만든 단편영화 한 편을 보여주었다.
▲ 씨앗학교 졸업식 졸업식에서 스스로 자기가 해온 수업을 사람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이 아이들은 한해동안 열심히 만든 단편영화 한 편을 보여주었다.
ⓒ 윤성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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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 수업인 '쿡쿡'과 함께 한 아이들이 그동안 해왔던 수업 내용을 사람들에게 말한다.
▲ 요리 수업 발표 요리 수업인 '쿡쿡'과 함께 한 아이들이 그동안 해왔던 수업 내용을 사람들에게 말한다.
ⓒ 윤성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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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학교는 교사가 학생을 평가하지 않는다. 학교에서 학생은 주체이다. 교사는 학생의 성장을 돕고 길을 안내하는 역할을 할 뿐이다. 그래서 씨앗학교에는 시험이 없고 당연히 성적표나 학급석차가 없다. 학생들 간에 등수를 매길 필요가 없으니까 누가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경쟁할 일이 없는 거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묻는다. "그렇다면 학생이 어느 정도로 수업을 이해하고 있는지 어떻게 알 것인가?" 대답은 간단하다. 그것은 교사가 할 일이 아니다. 경쟁이라는 것이 없어지면 아이들은 스스로 배우고 성장한다. 마치 산에 있는 꽃과 나무들이 스스로 조화롭게 자라듯이 말이다. 아이들이 스스로를 주체라고 생각하면 배우고 가르치는 일이 평등해진다.  교사가 학생을 평가하기 전에 아이들이 먼저 자기에게 부족하다고 느끼거나 잘 모르는 것을 질문하고 보충하려는 노력이 자연스럽다.

졸업식 분위기가 여느 학예회와 다른 것이 바로 여기에 있다. 아이들은 스스로 계획해서 자기들끼리 사회를 보고 졸업식 행사를 만든다. 여기에는 잘 하거나 못 한다는 게 있을 수 없고 누구에게 무엇을 뽐낼 필요도 없기 때문에 오롯이 자기가 성장한 만큼 보여주면 된다. 이러면 모두 대충 하게 되는 거 아니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전혀 그렇지 않다. 아이들 스스로 자유롭게 선택하고 만들어가는 수업이기 때문에 누가 시키거나 따로 연습시키지 않아도 최선을 다한다. 학생과 선생님, 그리고 졸업식에 온 모든 사람들은 이런 모습을 보며 '최선'과 '최고'는 다르면서 한편 같은 것이라는 걸 안다.

졸업장 세 개 받는 아이들

축하공연과 수업 발표가 끝나고 나면 이제 가장 중요한 시간이다. 졸업하는 학생이 졸업장을 받는 순서다. 씨앗학교를 졸업하는 학생은 무척 특별한 졸업장을 받는다. 한 개가 아니라 세 개를 받는다. 학교에서 학생에게 주는 졸업장이 첫 번째다. 두 번째는 학생이 스스로에게 주는 졸업장이다. 세 번째는 부모님으로부터 받는 졸업장이다. 학생 하나하나 이름을 불러가며 세 장씩 받기 때문에 졸업장을 받는 시간이 길게 느껴질 만도 한데 전혀 그렇지 않다. 오늘 받는 졸업장은 여기 모인 사람 모두에게 주는 졸업장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가운데 있는 분이 씨앗학교 교사이다. 졸업장 수여식 사회 역시 학생 스스로 한다.(사진으로 보아 왼쪽)
▲ 학교에서 주는 졸업장 가운데 있는 분이 씨앗학교 교사이다. 졸업장 수여식 사회 역시 학생 스스로 한다.(사진으로 보아 왼쪽)
ⓒ 윤성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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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하는 학생이 부모님께 졸업장을 받고 즐거워하고 있다.
▲ 부모님께 받는 졸업장 졸업하는 학생이 부모님께 졸업장을 받고 즐거워하고 있다.
ⓒ 윤성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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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는 학생이 지금까지 활동한 것을 세밀하게 살핀 다음, 졸업할 자격이 있는지 판단한다. 이것은 시험을 통해 나오는 수치적인 결과가 아니다. 수행평가라든지, 그 어떤 서류상의 평가 작업이 없다. 오로지 학생과 교사간의 인간적인 교류를 통해 나오는 진심어린 마음이 졸업을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그러니까 학교에서 학생에게 졸업장을 주는 것은 한 학생이 교과목을 이수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서류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졸업장은 자기 스스로에게도 줄 필요가 있다. 내가 학교를 졸업할 준비가 되었는지 판단할 수 있는 가장 주체가 되는 것은 바로 학생 자신이다. 그 누구도 학생이 학교를 졸업하는 것에 대해서 정확한 판단을 하는 건 어렵다. 그래서 학교는 학생이 자기 스스로 무엇이든 판단할 수 있는 주체성을 가장 중심에 두고 교육한다. 물론 자유에 근거한 판단에 대해서는 책임 역시 중요한 문제다. 씨앗학교가 중심에 두고 있는 교육방향은 바로 이런 것이다.

마지막으로 부모님께 받는 졸업장은 학교 교육이 단순히 학생과 교사의 문제만이 아니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면 그것으로 교육에 대한 책임과 권한이 학교로 넘어갔다고 믿는다. 이것은 위험한 생각이다. 한 사람을 자라게 하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학교가 아니라 가정이고 교사가 아니라 부모다. 학교에 아무리 뛰어난 교사가 있다고 하더라도 낳고 기른 부모와 비교 할 수 없다. 아이들은 청소년 시기에 여러 환경과 관계를 맺으면서 자기를 만들어 가는데, 가장 큰 영향은 멀리 떨어진 곳이 아니라 바로 가정에서 부모를 통해 사람됨이 다져지는 것이다.

교육은 예술이다

교육은 교사와 학생, 부모가 함께 가르치고 배우면서 성장하는 과정이다. 교육은 한 사람을 어떤 특정한 수준에 이르도록 만드는 데 목적이 있지 않다. 학교는 그 수준을 정하고 사람을 평가하는 장소가 아니며, 교사는 가르치기만 해서는 안 된다. '학교(學校)'는 한자 뜻풀이 그대로 배우고 가르치는 곳인데, 이것은 교사와 학생, 그리고 부모에게 모두 해당하는 말이다. 교사가 학생에게 가르치는 일을 통해 오히려 교사가 배우고 성장하는 경험이 일어나야 한다. 학생은 오로지 배우는 사람만이 아니라는 주체적인 생각을 키워야 한다. 부모는 학교와 더불어 배우고 가르치며 또한 이 모든 교육 활동과 함께 성장하는 계기를 찾아야 한다.

나는 교육이라는 것이 노래를 하듯, 그림을 그리듯, 춤을 추듯 예술이라고 믿는다. 예술은 똑같은 것을 하더라도 늘 틀린 결과가 나온다. 같은 악보를 보고 연주하지만 악기를 다루는 사람마다 모두 느낌이 틀리다. 같은 사람이라도 똑같은 연주를 할 수 없다. 하물며 한 사람을 교육하는 것이 어찌 매번 같을 수 있을까? 교사는 매번 새로운 느낌으로 학생을 대하고 그가 어떤 방식으로 성장할지 미리 알 수 없다. 다만 최고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 온 힘과 정성을 기울이는 것이다.

이를 통해서 위대한 작품인 한 인간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씨앗학교를 졸업하는 아이들은 영어단어나 수학공식을 외우기 전에 이런 가치를 공부한다. 그리고 앞으로 발을 내딛을 사회도 이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배운다. 복잡하고 소음이 가득한 세상이지만 결국 진심어린 마음을 갖고 다가가면, 이것이 그 어떤 깜냥보다 앞서는 것이라는 걸 몸과 마음으로 깨닫는다.

한 사람을 자라게 하는 것은 예술과 같다.누구도 정답을 알 수 없다.최선을 다하고 묵묵히 지켜 보는 일이다. 10기 졸업식을 마치고 학생과 학부모들이 모여 기념사진을 찍었다.
▲ 교육은 예술이다. 한 사람을 자라게 하는 것은 예술과 같다.누구도 정답을 알 수 없다.최선을 다하고 묵묵히 지켜 보는 일이다. 10기 졸업식을 마치고 학생과 학부모들이 모여 기념사진을 찍었다.
ⓒ 윤성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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