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열아홉이고, 제도권 교육에 속해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이라는 말이지요. 제가 다니는 학교의 교실에 가면 달력이 아닌 수능일자를 기한 '일력'을 걸어놨고 전년도 수능 성적에 따른 대학 배치표를 다른 한편에 붙여놨습니다.
그리고 각 대학의 홍보책자를 교실 뒤편 책꽂이에 꽂아놨습니다. 모든 시간표는 '자습'으로 대체됐고 교실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돕니다. 모두가 대학 입시 때문입니다.
3년 전 촛불소년, 대학에 최종합격했습니다...그러나

▲10월 31일 대학입시거부, 할로윈 행진
ⓒ 투명가방끈
열흘 전쯤 저는 제가 입학을 원하는 대학교에 최종합격했습니다. 그 순간 앞서 피력한 모든 살벌한 풍경들이 '남 이야기'가 된 것입니다. 저는 학교에서 '대학생' 대접을 받으며 마음껏 집에서 가져온 책이나 등굣길에 지하철역에서 가져온 무가지를 읽습니다. 조금 피곤하면 그대로 책상에 몸을 기대어 선생님도 친구들도 깨우지 않는 깊은 잠을 잘 수 있습니다. '합격자'이기 때문이지요.
3년 전, 저는 흔히 말하는 '촛불소년'이었습니다. 당시 촛불집회에 나가 현 정권의 부당함에 대해 나름의 저항을 했고 그곳에서 많은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그곳에서 만난 친구들에게서 청소년인권을 접했고 일제고사 반대 운동에 함께하며 청소년인권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사회 곳곳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며 여러 가지 사회운동에도 참여했습니다.
3년 후인 지금, 저는 그동안 해온 활동들을 정리해서 해당 관련 '수시 전형'을 지원, 제가 원하는 대학교에 합격했습니다. 학교 안에서는 '네가 인 서울을 해?'라며 '한턱내라'나 '그래도 내가 너보단 좋은 대학에 갈 거다'라는 반응들을 보였습니다.
학교 밖, 같이 활동했던, 같이 활동해온 친구들. 어떤 친구는 해당 관련 수시 전형을 통해 대학에 붙었고 또 어떤 친구는 저보다 열심히 청소년인권운동을 했음에도 해당 전형에 떨어져 대학에 붙지 못했습니다. 이에 활동가 친구들에게서 '왜 쟤가 아니라 얘냐?'라는 반응을 듣기도 했습니다.
저는 괴리에 빠졌습니다. 학교에서, 학교 바깥에서 같이 어울리던 사람들에게서 유리된 것 같았습니다. 이곳에서도 저곳에서도 속하지 못하는 주변인이 된 것만 같은 느낌. '대학이라는 게 사람을 이렇게 갈라놓나?'라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괴리에 빠져 있던 중 다른 선택을 한 친구들을 보았습니다. 대학입시거부선언. 당당하게 대학이라는 강요를 박차고 입시라는 치열한 경쟁을 거부한 친구들! 그리고 그 선언에 쏟아지는 '비현실적'이라거나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보았습니다.
"대학입시거부를 선언한 친구들에게 지지를 표합니다"이 선언을 지지하는 것 역시 대학에 합격한 제겐 '남 이야기'에 껴드는 것일까요?
그럴지도 모릅니다. 저는 어디까지나 대학 거부를 선언한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 대학엔 거부하고 싶은 점이 많습니다. 제게 당장 문제가 될 높은 입학금과 등록금부터 학벌 그리고 취업을 위한 경쟁까지···. 현 입시체제와 비교해서 전혀 다를 바 없는, 무한경쟁이라는 굴레 내에서 작용하는 갖가지 문제점이 대학엔 팽배해 있습니다. 저는 그 대학에 가게 될 것입니다. 가족의 요구에 의해. 저의 필요와 선택(배움에 대한 욕구를 대학에서 충족하고 싶은 것)에 의해.
제게 '비현실적'이고 '공감대를 형성하기 힘든' 것은 대학입시거부선언이 아닌 대학입니다. 대학을 선택한 저는 대학이라는 곳에 들어가기 위한 많은 불만스러운 과정을 거쳐야 했고, 대학에 붙은 지금 수많은 괴리에 빠져야 하며 대학에 들어가서도 불만스러운 과정을 겪어야 합니다.
대학입시거부선언은 '남 이야기'가 아닙니다. 대학을 선택했고 대학에 붙었지만, 대학을 거부하고 싶은 '내 이야기'입니다. 대학을 강요하고 강요당하며 그 강요 속에서 수많은 경쟁의 굴레를 살아야 하는 '우리 이야기'입니다.
대학입시거부를 선언한 친구들에게 지지를 표합니다. 11월 10일 대학입시거부선언 발표, 그리고 12일 청계광장에서 거리행동에 힘닿는 데까지 동참하겠습니다. '내 이야기'로써, 그리고 '우리 이야기'로써.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주플린 (서울, 고3) 학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