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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저는 불효자입니다. 제 글을 끝까지 읽고 저 같은 불효자 녀석 사람 되라고 따끔한 야단을 쳐 주셨으면 합니다.

얼마 전의 일입니다. 집안에 결혼식이 있어 고향인 전주에 내려갔습니다. 고향에는 현재 부모님께서 살고 계십니다. 저는 부모님을 모시고 전주역에서 가까운 결혼식장에 갔습니다. 저희는 30여 분 일찍 예식장에 도착했고 어머니는 고모님과 함께 일찌감치 식장 앞쪽 자리를 잡고 앉으셨습니다.

그리고 곧 예식이 시작됐습니다. 그런데 차를 타고 올 때부터 어머니의 안색이 좋지 않고 말씀도 힘이 없어 보인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올해로 고희(古稀)가 지난 아홉 그러니까 일흔아홉(79)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5년여 전부터는 고혈압 약을 계속 복용하고 계십니다.

저희 가족은 8남매이고 그중에 저는 막내입니다. 그래서인지 어려서부터 부모님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습니다. 아무튼 어머니는 평소에도 그리 건강이 좋은 편은 아니셨기 때문에 늘 신경이 쓰였던 것도 사실입니다.

몇년전의 어머니 모습입니다. 이때만해도 손을 떨지 않으셨습니다
▲ 어머니와 누님들 몇년전의 어머니 모습입니다. 이때만해도 손을 떨지 않으셨습니다
ⓒ 박승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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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어머니께 "어머니 어디 아프세요?"라고 물었고, 어머니께서는 "아침에 밥을 잘못 먹었나보다. 체한 것 같아"라며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작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니, 어머니는 어린애도 아니고 왜 밥을 제대로 못 드세요. 약이라도 사올까요?"라고 저는 천연덕스럽게 말을 꺼냈습니다. "그래라. ○○활명수하고 한약 환으로 된 소화제 있어. 그걸로 좀 사와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급하게 예식장을 빠져나와 근처에 있는 약국에 가서 말씀하신 약을 구입해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어머니께 건넸습니다.

"어머니 이거 드세요. 약 사왔어요"라고 말씀을 드렸고 어머니는 제게서 약을 건네 받으셨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약을 손에 쥐고만 있을 뿐 드시지는 않았습니다.

"어머니 왜 안 드세요? 빨리 드세요"라고 저는 조금은 다그치듯 어머니께 말씀을 드렸고 어머니는 "예식 다 끝나면 나가서 먹으마"라고 살짝 웃으셨습니다.

저는 단순히 어머니께서 예식에 방해가 될 것 같아서 그런다고 생각한 나머지 어머니가 들고 있던 약병을 뺏어 뚜껑을 깐 후 다시 어머니께 건넸습니다.

"어머니 이제 드세요. 제가 약봉투도 따 드릴게요"라고 말을 건넸고 어머니는 "있다가 먹는다는데 그래"라며 조금은 짜증스럽게 말씀을 하시며 다시 뚜껑을 닫으려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얼마동안 어머니와 저는 실랑이 아닌 실랑이를 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는 마지못해 약병을 들어 드시려는 순간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제대로 병에 든 약물을 얼마나 흘리셨는지 모릅니다. 저는 황급히 휴지를 꺼내 어머니의 입 주위와 옷깃을 닦아 드렸습니다.

"왜 그러세요 어머니 어디 많이 아프신 거 아니에요?"라고 물었고 어머니는 괜찮다는 표정을 제게 연신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저를 안심시키시려는 듯 다시 약병을 들어 어머니의 입 가까이로 가져가는 모습을 보는 순간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어머니는 손을 심하게 떨고 계신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 형이 해준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승일아, 어머니가 요즘 손을 많이 떠신다. 병원에서는 고혈압 약을 계속 드시면서 나타나는 합병증 같은 거라고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지만 더 조심하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걱정이다"라는 말이었습니다. 저는 사실 그때 한귀로 흘려 들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머니는 자신의 손 떠는 모습을 저는 물론이고 어느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 것도 모르고 저는 어머니께 계속해서 약을 드시라고만 고집을 피웠던 것입니다.

저는 눈물이 울컥 나왔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의 뒷 목을 한손으로 잡아 드리고 말했습니다. "어머니, 제가 잘 드실 수 있도록 도와드릴게요. 죄송해요"라며 다른 한손으로는 약병을 들고 조금씩 드실 수 있도록 도와드렸고 결국 어머니께서는 무사히 약을 다 드셨습니다.

그런데 그 시간 예식이 계속 진행 중에 있었지만 저희 뒤쪽에 몇 분은 분명 저희의 광경을 유심히 보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그리고 드는 생각은 조금은 창피하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언제나 젊고 건강한 어머니라고 생각했던 모습이 이렇게 나약해지신 것도 부끄럽고 그런 어머니의 마음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던 제 자신도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그리고 예식은 끝이 났고 어머니는 식사를 하러 식당에 가서도 제대로 식사를 못하셨습니다. 그리고 죽을 조금 드셨고 과일을 조금 드셨을 뿐입니다. 그리고 보니 어머니께서는 언제부턴가 저와는 식사를 같이 안 하셨습니다.

제가 서울에서 내려가면 꼭 어머니께서는 꽃게탕을 해주십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전 같으면 어머니는 꽃게탕을 같이 드시며 제게 건네기도 하시고 했는데 최근에는 그런 적이 없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저와 식사를 하다보면 당신이 손을 떨고 제대로 식사를 할 수 없는 모습을 제게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단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서울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로 저는 매일같이 어머니에 대한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어떤 약이 좋은지도 몇 차례 인터넷을 검색해 봤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고향집에 내려가면 국 없이 밥을 먹을 생각입니다. 제가 그렇게 좋아하는 꽃게탕도 이제는 맛이 없다며 먹고 싶지 않다고 말씀드릴 생각입니다.

우리네 부모님은 그렇게 살고 계십니다.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저는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떡합니까? 지금 이 시간에도 어머니는 이 못난 자식을 위해 기도하고 계실 테니 말입니다.

저희 어머니 손은 갈라지고 트고 흙물이 잔득 드신 손입니다. 수십 년 동안 밭일을 하셨고 직접 손을 빨래를 하셨고 또 제 차에 묻은 기름때로 직접 벗겨내신 손입니다. 그런 어머니의 손이 이제는 떨리기까지 합니다. 저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저는 정말 나쁜 아들입니다. 저를 많이 욕하시고 야단쳐 주세요. 정신을 바짝 차려서 앞으로라도 그런 실수를 하지 않고 살도록 말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공개적으로 글을 씁니다. 저희 어머니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실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해 주세요. 꼭 부탁드릴게요.

덧붙이는 글 | '제가 제일 불효자입니다' 응모글입니다



태그:#박승일, #어머니, #고혈압, #손, #불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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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방경찰청에 근무하고 있으며, 우리 이웃의 훈훈한 이야기를 쓰고 싶은 현직 경찰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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