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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자장면 한 그릇에도 양심과 노력이 숨겨 있다. 손수군 씨가 즉석에서 볶아 만든 자장면
▲ 자장면 맛있는 자장면 한 그릇에도 양심과 노력이 숨겨 있다. 손수군 씨가 즉석에서 볶아 만든 자장면
ⓒ 윤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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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자장면을 만들려고 춘장을 즉석에서 볶다 보니 요리가 늦어 배달은 않습니다."

대전시 유성구 노은동의 한적한 주택가에 자리 잡은 중화요릿집 '일품향'의 주방장 겸 사장인 손수군(48)씨는 '천하일품 자장면'에 양심을 건 사람이다.

손씨는 "자장면의 맛은 춘장에 달렸다"며 춘장만큼은 최고급 재료를 고집하고 있다. 또 춘장을 볶아 놓는 게 아니라 주문이 들어오면 즉석에서 볶아서 내놓는다. 손씨의 자장면을 맛 본 사람은 자동차로 40분을 달려서라도 자장면 한 그릇을 먹으러 오곤 한다는 손씨 부인의 설명이 군침을 돌게 했다. 일품향 손씨의 자장면은 춘장의 향이 강했다. 면발이 쫄깃 거리면서 씹히는 맛도 좋았다. 무엇보다도 갓볶은 채소와 돼지고기의 신선함이 만족스러웠다.   

자장면은 6~7가지의 공정을 거쳐 완성되는데, 요리 경력 20여년이나 됐지만 아직도 자장면 요리가 가장 어렵다고 말하는 손수군씨가 중화요릿집을 열게 된 사연을 이렇다.  

화교 3세인 손씨 가족이 한국에 살게 된 것은 일본 강점기 때, 할아버지가 군산에서 비단 장사를 하면서부터다.

"아버지와 삼촌들이 모두 중화요릿집을 하고 있어요. 화교로서 잘살 수 있는 건 중화요리를 하는 것밖에 없다는 걸 20살이 넘어서야 알았지요."

한때는 손씨도 한국인 친구처럼 한국에서 출세해보려고 대만까지 유학해 대학을 졸업했지만, 한국 땅에서 화교로서의 벽이 높은 것을 실감하고는 인생의 방향을 틀었다고 말했다. 손씨의 아버지와 삼촌이 그랬듯이 손씨도 중화요리에 자부심을 품고 어엿한 중화요릿집 사장이 되기까지는 온갖 고초를 겪은 후다.

"서울 명동의 '아서원'이라는 유명한 중화요릿집에서 처음 요리를 배웠는데, 온종일 프라이팬만 닦기를 일 년 동안이나 했어요. 삼촌이 잘 아는 집이라서 봐줄 줄 알았는데, 정말 힘들었습니다. 도망치려고도 몇 번이나 마음을 먹었지만, '한국에서, 중화요리사는 화교의 운명이다'라는 것을 깨닫고는 이를 악물고 배웠지요."

대전에서 중화요릿집 일품향을 운영하는 손수군(48) 씨가 동네 아이를 안고 있다.
▲ 중화요리사 손수군(48) 씨 대전에서 중화요릿집 일품향을 운영하는 손수군(48) 씨가 동네 아이를 안고 있다.
ⓒ 윤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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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씨는 서울 아서원과 부산의 크라운호텔 중화요리부 등을 거치면서 높은 수준의 중화요리 실력을 갖췄다. 손씨가 자칫하면 '중화요리사는 화교의 운명이다'라는 신세타령으로 빠질 뻔한 것을 실력을 쌓아 극복했다는 설명이다.

"일부 중화요릿집에서는 아이들이 단 것을 좋아하니까 설탕을 많이 사용하는데, 큰 문제죠. 내 아이가 먹을 수 있는 요리를 해야죠"라는 손씨는 '양심적인 요리, 맛있는 요리'를 좌우명으로 여기며 부인과 함께 15년 전에 대전에 정착했다.

일품향에서는 자장면 4000원, 짬뽕 5000원이다. 천원의 차이를 둔 것은 서민들이 짬뽕보다 자장면을 더 많이 찾기 때문이란다. 좀 더 속 깊은 이유를 밝히자면 '박리다매(?)의 경제논리에 따른 서민을 위한 양심적인 배려'라고 말하는 손씨가 머쓱한 웃음을 짓는다.


태그:#자장면, #중화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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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깎는다는 것은 마음을 다듬는 것"이라는 화두에 천칙하여 새로운 일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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