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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가리가 두어 살 때 똥가리 아빠와 낙엽지는 어느 가을 날 추풍낙엽 위에서 칼싸움을 하고 있다.
▲ 왼손잡이 붕어빵 부자의 황야의 결투 똥가리가 두어 살 때 똥가리 아빠와 낙엽지는 어느 가을 날 추풍낙엽 위에서 칼싸움을 하고 있다.
ⓒ 조영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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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달귀신이다아

[#장면 하나] "띵동~ 띵동~." "삐이꺽, 빼꼼"

똥가리아빠가 퇴근 후 초인종을 누르는 소리, 그리고 똥가리가 달려 나와 부리나케 문을 따 주는 '동영상'이다. 그런데 문을 따 주는 소리만 들릴 뿐 똥가리 녀석, 얼굴 '코빼기'도 안 보인다. 녀석 나름의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아빠 안녕?" 하고 건성으로 인사를 하고 텔레비젼 앞으로 '우당탕탕' 요란한 발소리를 내면서 내 빼던 녀석이다.

요럴 땐 백이면 백 문짝 뒤에 숨어서 아빠가 들어서면 '와앙~' 하고 놀래키려고 잔뜩 몸을 웅크리고 있을 터이다. 장난끼가 발동한 똥가리 아빠, 쓰고 있던 모자를 턱 밑까지 눌러서 얼굴 없는 몽달귀신을 만든다. 그리고 잔뜩 긴장하고 아빠가 들어서기를 기다리고 있는 똥가리에게 "으히히히. 몽달귀신이 우리 똥가리 잡아 먹으려 왔다아~"

[#장면 둘]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띵동~."

인기척이 없다.

'아하! 우리 똥가리가 더 이상 여기에 없지? 그래, 나, 궁상맞은 기러기 아빠 대열에 합류했다는 걸 깜빡 했네.' 똥가리 아빠, 전신에 힘이 쭈욱~ 빠지면서 아무도 없는 텅 빈 공간으로 들어선다.

허전하고 공허한 기운이 회오리 바람 되어 전신을 칭칭 동여 매어서는 냅다 공간 한 복판으로 패대기를 친다. 똥가리 아빠, 얇은 카펫이 깔린 마루바닥에 맥없이 털썩 주저 앉는다.

똥가리가 네 살인가 다섯 살 때 그린 엄아와 아빠와... 얼레리꼴레리, 큐피터의 화살이 꽂혔네.
 똥가리가 네 살인가 다섯 살 때 그린 엄아와 아빠와... 얼레리꼴레리, 큐피터의 화살이 꽂혔네.
ⓒ 조영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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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5일, 10월 15일, 흠! 오늘이 엄마 손을 잡고 똥가리 녀석이 한국으로 유학간지 딱 두 달째군.'

눈길 가는 집안 구석구석에 똥가리의 체취가 묻어 나온다. 금방이라도 집안 어느 구석인가에서 "아빠아~" 하고 달려올 것만 같다. 그러면 나는 훌쩍 커 버린 녀석의 무게에도 번쩍 안아 예전처럼 무등을 태워 녀석의 지시대로 이방 저 방을 신나게 돌아 다닐 터인데.

"에이, 이놈의 말이 말을 잘 안 듣네. 이랴, 이놈의 말아. 오른 쪽으로, 그래 그래. 다음은 왼 쪽, 앞으로 똑 바로 돌격! 다음은 화장실로, 이랴 이랴."

녀석을 태워 처음에는 무릎으로 엉금엉금 기다가 무릎이 아파오면 녀석을 내 등허리에 열 십자로 안아 들고는 이렇게 외쳤다.

"엿 사시오. 엿이요오. 둘이 먹다가 하나 죽어도 모르는 울릉도 호박엿이요. 말만 잘하면 공짜요. 자아 단 돈 일원. 우리 똥가리도 덤으로 팔아요. 단 돈 십원에 팔아요. 어얼 씨구씨구 들어간다. 저얼 씨구씨구 들어간다. 작년에 왔던 각서얼이, 죽지도 않고 또오 왔네…."

재미있다고 깔깔거리는 녀석을 이번엔 두 손으로 안아서 방 천정이 닿을 듯 말 듯 허공으로 힘껏던지고는 "서울이 보이냐, 백두산이 보이냐" 하면 녀석은 "서울은 안 보이고 베를린이 보여. 헤헤헤" 하며 늙은 아빠를 약 올리곤 했다.

그러면 가련한(?) 늙은 아빠는 다시 '무등전환'으로 포지션을 바꿔 녀석을 태우고는 그리 넓지 않은 집안 이곳 저곳을 '왔다리갔다리'하면서 흥얼거린다.

"원숭이 똥구녘은 빠알게. 빨가면 사과, 사과는 맛있어, 맛있는 건 바나나, 바나나는 길어, 길으면 기차, 기차는 빨라, 빨르면 비행기, 비행기는 높아, 높은 것은 백두우~산!"

아빠와 아들의 이중창은 창문 너머 이역의 하늘 멀리 울려 퍼진다.

"원숭이 똥구녘은 빠알게…."

똥가리의 방 벽면에 어린 왕자 똥가리가 똥폼을 잡고 있다.
어설픈 솜씨로 똥가리아빠가 심심풀이로 그렸다.
▲ 아빠별 나오라 오바! 똥가리의 방 벽면에 어린 왕자 똥가리가 똥폼을 잡고 있다. 어설픈 솜씨로 똥가리아빠가 심심풀이로 그렸다.
ⓒ 조영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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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가리의 흔적들

똥가리가 내 곁을 떠나갈 때 미처 챙겨가지 못한, 녀석의 손 때 묻은 물건들을 하나하나 쓰다듬고 보듬어 보지만, 시도 때도 없이 밀려오는 그리움과 공허로움을 물리칠 방도가 없다.

'아! 이건 원시인처럼 괴성을 지르며 가지고 놀았던 공룡이군. 아, 저 칼을 차고 녀석은 인디언 흉내를 잘도 내었었지. 요건, "페어틱(끝났어)! 아빠 똥 닦아줘" 하며 팽개쳐 놓기 일쑤였던, 녀석의 쬐끄만 엉덩이를 감쌌던 팬티로군.'

새삼 놈의 내음이 아직도 남아있는 모든 것이 정겹고 살갑다.

휴! 이제 겨우 두 달 녀석과 떨어져 지내고 있을 뿐인데 항차 긴긴 밤과 날들을 어떻게 보듬고 살아갈꼬. 정말 걱정되네.(엄살을 조금 보탰다) 

나는 똥가리를 떠나 보내고 혼자 살기에 적합한 좀 더 작은 규모의 집을 얻어 옮길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그냥 버텨 보기로 했다. 왜냐하면 구석구석 녀석의 흔적이 남아 있는 이 집을 떠나고 싶지가 않아서다.

어린왕자를 가운데 두고 좌 피터판과 졸개들 그리고 우 백설공주와 졸개들을 그려 보았다.
 어린왕자를 가운데 두고 좌 피터판과 졸개들 그리고 우 백설공주와 졸개들을 그려 보았다.
ⓒ 조영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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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가리의 아지트였던 아이 방, 침대 맞은 편 벽에는 어설픈 솜씨지만 내가 직접 그린 어린왕자 똥가리가 아빠별을 그리워 한 듯한 표정으로 서 있다.

그리고 주변엔 녀석이 좋아했던 동화 속 주인공들이 빈 공간을 차지하고 있고, 문지방 너머 벽면에는 녀석이 그린 그림들이 잘 익은 7월의 포도송이처럼 주저리주저리 달려 있다. 해서 나는 이 집을 벗어날 생각이 없는 것이다. 혼자 살기엔 부담이 되기는 하지만,

똥가리와 나는 매주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인터넷 무료통화 시스템으로 일주일간의 애틋한 회포를 푼다. 독일과 똥가리가 있는 한국의 시차는 대략 8시간이다. 해서 내가 퇴근하고 집에 오면 벌써 한국은 늦은 밤이거나 새벽이 시작된다. 평일 날 부자간의 대화는 '대략난감'인 것이다.

"한얼아, 유치원에서 친구들 많이 '사귀었어'? 오늘 점심은 뭘 먹었는데?"
"응, 아빠! 친구들도 많이 많이 '사겼고' 선생님도 참 좋아. 근데 아빠, 유치원이 아니고 어린이 집이야. 아빠는 그것도 몰라? 아빠는 별거별거 다 알쟎아."

녀석이 이젠 나를 가르치려고 하지만 똥가리 아빠인 나, 흐믓하게 미소를 짓고 대견스런 마음으로 곁다리를 걸친다.

"뭐, 점심 때 아빠가 좋아하는 비빔밥을 먹었다고? 아니 이녀석이 아빠도 안주고 그 맛있는 것을 혼자 다 먹었단 말이야? 아빠가 지금 아, 하고 입을 벌릴 테니 한 입만 주라."
"에이, 아빠. 아빠는 독일에 있고 여기는 한국인데 어떻게 줘. 아빠는 진짜 웃겨. 헤헤헤."
"그래도 한 입만 주라아. 자, 아? 아빠 입 벌렸다."

"그래, 아빠 알았어. 자, 한 번만 줄께. 맛있게 잘 먹어. 아? 아빠, 맛있지. 그치, 응?"
"아이구, 맛있다. 냠냠냠."

언젠가 엄지 엄마, 똥가리, 그리고 똥가리 아빠가 살고 있는 보금자리 처마 밑에 '베스페'라고 하는 고기를 즐기는 땅벌 떼가 둥지를 튼 적이 있었다. 똥가리아빠는 당연히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땅벌 떼를 그냥 살게 두자니 똥가리와 엄지엄마가 물릴까봐 걱정이고, 내치자니 무자비한 행동이 뒤 따를 것 같고, 하! 이거 어쩐다?

혼자라면 걱정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스스로 그러한 자연처럼 자연스럽게 같이 살 것이다. 여왕벌을 정점으로 군집 사회생활을 하는 벌들은 자극을 주지 않으면 절대 먼저 공격하지 않는다. 똥가리 아빠야 어지간한 동물들의 생리를 상식 수준이나마 알고 있어서 문제가 없지만, 문제는 똥가리와 엄마가 문제인 것이다.

특히 똥가리는 한 번 땅벌에게 물린 경험을 갖고 있는지라 벌을 보면 기겁을 했다. 물론 지금은 아빠 곁을 떠나기 전에 아빠와 산으로 들로 숲으로 많이 헤집고 다녀서 예전처럼 질겁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어쨌거나 안방에 까지 들어와 앵앵거리는 땅벌들을 '똥가리를 위해서'란 변명을 달아 눈 딱 감고 내치기로 한 날, 똥가리 아빠는 고기를 좋아하는 땅벌 들에게 마지막 고깃덩어리 보시를 했다.

"땅벌들아. 이거 맛있게 냠냠 많이 묵고 나를 용서하거라. 하고 많은 집 처마 다 놔두고 하필이면 우리집에 둥지를 틀어 자연과 더불어 사는 생활을 동경하는 나를 고민하게 만드노 말이다. 정말 미안하다."

까맣게 타들어 가는 아빠 속도 모르고 똥가리 녀석은 고기 먹는 벌들이 신기한 듯 한참을 물끄러미 쳐다 보더니 "히야. 벌들이 꿀은 안 묵고 고기를 묵네. 아빠, 그거 맛있는 고기지? 나도 먹을래. 아빠도 먹어. 아, 하고 입벌려. 아빠, 자아.  아빠, 맛있지. 그치, 응. " 

똥가라 아빠의 바람은 말이다...

필자가 망명수용소 시절, 수용소 난민들을 염두에 두고 전시회를 열 목적으로 그림을 그릴 때 수용소의 작업실에 걸어 놓았던 것을 지금 똥가리의 방에 걸어 놓고 뭔가를 고민하고 있다.
 필자가 망명수용소 시절, 수용소 난민들을 염두에 두고 전시회를 열 목적으로 그림을 그릴 때 수용소의 작업실에 걸어 놓았던 것을 지금 똥가리의 방에 걸어 놓고 뭔가를 고민하고 있다.
ⓒ 조영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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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마눌님과 똥가리는 경남 하고도 함안의 시골에서 생활하고 있다. 주변 도시인 산청인가에 간디학교라는 대안학교도 있다고 하니 똥가리와 마눌님이 적응을 잘 해서 눌러 앉는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당장 내일 일도 잘 모르는데 자기 의지와는 무관하게 실타래처럼 이리저리 엮일 수 있는 한참 후의 일을 어찌 알겠는가. 그냥 흐름에 맡길 뿐이며 희망사항일 뿐이다.

요즘 나는 똥가리를 직접 못 보는 허허로움 속에서도 녀석의 우리말 구사능력이 두 달 동안 일취월장(?)한 느낌이 들어 그나마 궁상맞은 기러기아빠 생활을 감내하고 있다.

깨끗한 백지 위에 이제 막 내일의 그림들을 하나하나 여과 없이 담아가는 아이들, 온갖 찌든 세파에 구석구석 곰팡내가 나는 어른들의 느려터진 흡수력에 비하면 똥가리 또래 아이들의 세상을 받아들이는 흡수력은 놀랍기만 하다.

걸러지지 않은 흡수력이 때론 아이를 어렵고 힘들게 하기도 하겠지만, 온실 속에서 자란 화초는 온실 밖을 벗어나면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이내 시들어 버린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

나의 분신 똥가라. '내 나라 내 땅'의 시골에서 여름엔 개울가 올챙이를 벗삼아, 가을엔 빠알간 고추잠자리를 벗삼아, 겨울엔 정월 대보름날 쥐불놀이를 벗삼아 마음껏 뛰어 놀고  가슴이 충만하도록 자연을 호흡하거라. 사랑한다. 내아들 한얼아!


태그:#똥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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