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TH A CUP(위더컵) 캠페인은 편리와 풍요를 향해 과속 질주하는 우리를 돌아보며 삶의 속도를 한 박자 천천히 늦추기 위한 '여성환경연대 슬로 라이프 운동'의 일환으로 제안되었습니다. 자기 컵과 함께 하는 즐거운 불편을 통해 새로운 관계와 소통 그리고 느린 시간의 유쾌한 경험을 나누려 합니다. [편집자말] |
# 사례1. 집에서 받은 수돗물을 끓여 냉장고에 넣어 시원하게 만든 보리차와 500원에서부터 1만 원이 넘기도 하는, 이제는 어디서나 살 수 있는 생수. 이 두 가지의 물이 주어진다면 당신은 어떤 물을 선택할 것인가? # 사례2. 서울시에서는 '아리수'를 생산하며 PET(Polyethylene Terephthalate, 폴리에틸렌 테레프탈레이트) 병에 담아 여러 행사 시 무료로 제공하기도 한다. 집에서 받는 '수돗물'이 페트병에 담겨 나오는 신기한 경험. 당신은 '아리수'를 좋아하는가?몇 년 전에 이와 같은 질문을 받았다면, 위 첫 번째 사례에서 생수를 선택할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았을 것이다. 그만큼 물을 사서 마신다는 것이 우습게 느껴졌던 게 불과 얼마 전이다. 그런데 이제는 생수를 여러 브랜드에서 다른 음료수와 마찬가지로 경쟁적으로 출시하고 있고, 심지어 물만 골라 먹을 수 있다는 '워터카페'까지 생겼단다.
드라마도 생수, 연예인도 생수... 언제부터 이랬지그 시대 사람들의 일상을 보여준다는 드라마 속에선 너무나 자연스럽게 집에서도 모든 가족이 생수를 따라 마신다. 고현정이 마신다던 어떤 생수는 어느새 고가의 생수 상품 중에서도 부동의 판매율 1위를 차지하고 있고, 미국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에서 주인공들이 늘 마셔대는 무슨 워터, 패리스 힐튼이 마신다는 또 무슨 생수, 제니퍼 애니스톤이 마신다는 무슨 워터가 인기를 끌고 있는 게 요즘 현실이다.
'유행'이나 '패션'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이제 생수 시장은 하나의 소비문화, 그리고 일상이 되어 버렸다. 그러다보니 생수 안의 미량성분들뿐 아니라, 물병의 디자인 역시 생수를 선택하는데 하나의 기준이 되기까지 한다.
그렇지만 아무리 예쁜 생수병이라고 해도, 예쁜 텀블러나 심플한 머그컵만큼 아름다울까? 최근 여성환경연대에서 활발히 진행하고 있는 'with a cup(위더컵)' 캠페인은 우리의 일상에 이런 물음을 던진다. 이번 캠페인은 '아름다움'의 기준을 겉모양새뿐 아니라 그 안에 담긴 내용물로, 또 나아가서는 지구환경과 내 몸까지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생수는 안전하다'에 의문 제기하는 실험들2010년 4월, 환경보건분야의 주요 저널인 <EHP>(Environmental Health Perspective)에 발표된 한 논평은 새로운 사실을 알게 해준다. 이 논평의 저자는 다양한 생수, 음료 등을 판매하기 위해 사용되는 페트병을 통해, 내용물(물이나 음료)에 특정 화학물질들이 스며들 수 있다는 가설을 세워 이와 관련된 여러 실험과 연구 결과들을 검토하여 정리했다.
페트병의 원재료인 PET 물질을 제조하기 위해서는 그 전구체로 프탈레이트류 물질들이 필요한데, 실험에서는 이 프탈레이트류가 유출될 수 있지 않을까에 주목했다. 저자는 결국 페트병의 음료를 대상으로 한 노출평가, 생수를 이용한 독성시험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한 결과 페트병을 통해 그 안에 담긴 음료 등 내용물에 화학물질들이 다수 스며들어 오염될 잠재적 가능성이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또다른 연구에서는 페트병을 만들 때 발생하는 프탈레이트류 물질들이 생수에 영향을 주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여러 브랜드 생수를 조사했다. 그 결과 페트병에 담긴 생수에선 유리병에 담긴 생수에 비해 최소 12배 이상 높은 농도의 프탈레이트 물질들이 발견되었음을 보고했다(Montiori 등, 2008). 이후에 이뤄진 또 다른 실험에서는, 페트병에 담긴 생수를 이용해 직접 세포 독성실험을 했는데, 이들 생수에 의해 유방암 세포의 증식이 촉진되는 결과를 보였다(Wagner and Oehlmann, 2009).
프탈레이트류 물질들은 흔히 '환경호르몬'이라고도 하는 내분비계 장애물질로 알려져 있다. 이는 인체 내의 성호르몬, 특히 여성호르몬을 흉내 내어 몸의 항상성에 교란을 일으킬 수 있다. 결국 이 실험 결과는 유방암 세포와 접촉한 생수 내의 어떤 물질이 여성 호르몬으로 인식되어, 유방암세포가 더 많이 증식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세포 독성시험은 인체에서 작용하는 방식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또 이러한 연구들이 인체를 대상으로 한 역학 조사나 임상 실험은 아니기 때문에, 당장 생수를 사 마신다 해도 우리 몸에서 성호르몬이 크게 증가해 유방암을 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세포 독성시험은 특정물질이 인체에 어떻게 독성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판단해볼 수 있는 중요한 실험으로, 우리 인체에 나타날 수 있는 잠재적 독성을 파악하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 안전하다고 생각해 돈 주고 사먹는 생수가 실상은 꼭 그렇지만도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수돗물이 생수보다 더 안전하다?그 뿐 아니다. 최근 미국에서 판매되는 여러 종류의 생수를 대상으로 미국의 환경운동단체인 EWG(Environmental Working Group)가 실험에서 검출된 화학 물질의 종류와 그 위해성, 상수원 정보 등을 기준으로 등급을 매긴 결과는 매우 흥미롭다. 수돗물만이 A를 받았을 뿐, 그 외의 주요 상품들은 모두 B, 또는 C를 받은 것이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수돗물에서 소독에 사용되는 염소 냄새가 난다고 몸에 좋지 않을 거라 생각하는데, 이번 EWG의 조사 결과를 보면 대부분의 생수에서 염소는 수돗물과 비슷한 수준으로 검출되었다. 게다가 생수에선 소독의 부산물로 생기는 좀 더 유해한 화학 물질들(트리할로메탄)이나, 안티몬(금속의 하나, 발암 가능 물질), 불소, 카페인, 아세트아미노펜 (타이레놀의 원료), 방사선 동위원소, 비소 등이 검출되기도 했다.
특히 트리할로메탄은 발암성이 있는 물질로 알려져 우리나라에서도 수돗물 내 총 트리할로메탄의 농도를 0.1 mg/L로 규제하고 있다. 미국의 캘리포니아 주는 좀 더 엄격한 기준인 0.01 mg/L로 먹는 물을 관리하는데 이번 EWG의 조사 결과, 생수에서 검출된 트리할로메탄의 농도는 이보다 높은 수준이었다.
탄소발자국을 생각하면 선택은 한 가지
그러나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기꺼이 사먹는 오늘날의 생수, 아마도 청정지역에서 생산된 생수가 더 깨끗하다는 생각에서 사먹을 것이다. 그런데 앞선 EWG의 조사에서 또 한 가지 문제가 됐던 것은 생수의 원수(原水)가 어디인지 기재조차 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우리나라에서 판매되는 대부분의 생수는 상수원을 기재하는 것 같다. 아마도 수돗물과는 다른 상수원에서 물을 가져온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함일 것인데, 실상 우리나라 생수 규제기준은 수돗물과 거의 다르지 않다.
최근 '프리미엄' 생수를 표방한 해양심층수, 탄산수, 빙하수 등 다양한 원수를 이용한 마케팅도 눈에 띄는데 이들 역시 규제기준이 다르지는 않다. 그렇기 때문에 생수가 수돗물보다 더 안전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기준은 없는 셈이다.
오히려 앞서 연구 결과들을 돌이켜본다면, 원수가 아무리 깨끗하다 해도 페트병에 담겨 운송되는 과정에서 여러 종류의 인공화학물질들이 생수 속으로 스며들어, 결국은 수돗물보다 건강에 유해한 결과를 낳을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안전성'을 키워드로 생수와 수돗물을 비교해보았지만, 우리의 건강에 대한 점들 외에도, 환경을 생각한다면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는 분명하다.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물을 마실 때 사용되는 용기. 바로 페트병 및 종이컵으로 인해 발생하는 쓰레기 처리 문제다. 종이컵이나 페트병은 재활용품목으로 모아지고는 있지만, 실제로 10~20%만이 재활용되고 나머지는 폐기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페트병의 알려지지 않은 문제점을 다루다보니 종이컵의 건강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못했는데, 종이컵 역시 내부 코팅에 사용되는 폴리에틸렌 또는 과불화화합물이 인체에 내분비계 교란을 일으킬 수 있는 물질이므로 안전하다고 할 수 없다).
물을 채수하기 위한 공사 역시 환경파괴에 일조하고 있다. 또한 상수원 및 하수처리과정을 거쳐 사용되는 수돗물과 달리 지하수를 과도하게 끌어와서 생수를 따로 생산하려다보니 물을 더 과다하게 사용하게 된다. 이외에도 이렇게 생산된 생수를 담고, 저장하고, 운송하는 과정에서 직간접적인 에너지가 어마어마하게 발생된다.
현대사회에서 우리가 사용하는 대부분의 물품들은, 심지어 간단한 먹을거리까지도 운송, 포장, 판매 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탄소를 발생시킨다. 수돗물을 집까지 끌어올 때도, 수돗물을 끓여먹을 때도, 또 그것을 종이컵에 마신다면 종이컵을 만들 때도 탄소가 발생한다. 이렇게 발생하는 탄소 등을 모두 합산하여 계산할 수 있도록 한 것이 '탄소발자국'이라는 개념인데, 이와 같이 수돗물을 끓여마시는 데도 여러 단계를 거치면서 탄소가 발생된다. 그런데 수돗물을 집까지 끌어오는 것은 언제나 사용되고 있는 에너지이고, 여기에 추가로 생수를 사 먹게 된다면 어떨까? 분명 당신의 탄소발자국은 더욱 커질 것이다.
환경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지구적인 문제임을 상기하면 이유는 더 명확해진다. 우리가 깨끗하다는 인식만으로 비싼 생수를 생산하고 사먹는 동안, 씻을 물조차 안전성을 담보 받지 못하는 제3세계 국가들의 사람들이, 그리고 환경파괴로 고통 받고 있는 지구가 아무 이유 없이 우리 대신에 그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이다.
같은 아리수라도 내 컵에 마시는 것이 안전
서울에서 생산되는 수돗물 '아리수'는 지금 우리집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그리고 우리가 마시는 바로 그 물이다. 그런데, 앞서 살펴본 것과 같이 그 수돗물이 또 페트병에 담겨 나오는 아이러니함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기왕 질 높게 관리되는 수돗물이라면, 마실 때 안전한 컵을 사용해서 마시는 것이 가장 좋다(깨끗한 수돗물이 수도관을 통해 들어오는 동안 오염될까봐 우려된다면... 자신의 지역 수도사업소에 문의하면 우리집 수도꼭지에서 채수해 먹는 물이 기준에 적합한지 검사해볼 수 있으므로, 이용해 보는 것이 좋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냥 마시기 어렵다면 집에서는 물을 받아두거나 끓인 후에 마시고, 회사나 공공장소에서는 수돗물 정수기를 이용하면 된다. 마실 때는 종이컵이나 페트병을 이용하는 것보다는, 자신의 머그컵이나 텀블러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다시 'With a cup'으로 돌아왔다. 굳이 비싼 돈을 지불하지 않아도 안전한 물을 마실 수 있는 방법, 내 컵 사용하기! 나의 건강과 함께 지구도 챙기고, 더불어 이 작은 불편을 통해 자신의 삶을 '슬로 라이프'로 바꿀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오늘은 어떤 컵을 들고 다닐지, 부엌에서 즐거운 아이쇼핑을 해보면 어떨까?
내 컵 찍어서 인증샷 올리면 선물이 '슝슝'
|
여성환경연대가 작은 일에서부터 환경을 지키기 위해 자기 컵을 사용하자는 '위더컵 캠페인'을 벌이고 있습니다. 자기 컵이나 자기 컵과 함께 찍은 사진과 사연을 엄지뉴스(#5505)로 올리면 추첨하여 선물을 드린답니다. 10월 30일까지입니다. 여러분들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
|
덧붙이는 글 | 김선미 기자는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학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