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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중에 가장 멀리서 온 학생이 누구예요?"
"저요!" "저요!" "우리집이 제일 멀어요!"

정세진 KBS 아나운서가 질문을 던지자 여기저기서 아이들의 대답이 쏟아져 나왔다. 아이들의 집은 대부분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농촌이나 외딴 섬이다. 작게는 5시간, 많게는 하루 이상을 버스나, 배, 기차에서 보내고서야 서울에 올 수 있는 아이들. 그러니 당연히 각자 자기의 집이 가장 멀다고 느낄 수밖에 없었을 테다.

정세진 KBS 아나운서가 11일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제3회 나홀로입학생에게 친구를' 캠프에 참가한 '나홀로 1학년생' 30여명 앞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정세진 KBS 아나운서가 11일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제3회 나홀로입학생에게 친구를' 캠프에 참가한 '나홀로 1학년생' 30여명 앞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 서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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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나홀로 입학생에게 친구를' 캠프의 마지막날인 11일, 전국의 '나홀로 1학년' 학생 30여명은 서울 마포구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그동안 TV에서만 보던 아나운서를 드디어 만나보았다. 정세진 KBS 아나운서가 이들의 일일교사가 되어준 것. 이 아이들은, 올해 초 또래 친구 없이 혼자 초등학교에 입학해 외로운 학교 생활을 하고 있는 '나홀로 입학생'들이다.

8살 꼬마들인지라, 주로 뉴스 프로그램을 진행해온 정 아나운서의 얼굴을 알아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젊은 아나운서 선생님의 또박또박한 한마디 한마디에는 귀를 쫑긋 세웠다. 정 아나운서의 질문에 처음에는 쭈뼛거리며 말도 하지 않던 아이들이 시간이 지나자 너도 나도 손을 들며 발표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대한민국 대표 아나운서의 강연에는 역시 산만한 어린아이마저도 몰입하게끔 하는 무언가가 있는 것일까.

선입견 없이 장애인 받아들이는 아이들

정 아나운서는 아이들에게 '닉 부이치치(Nicholas James Vujicic)'와 '유태호' 군의 모습을 담은 영상을 보여주며 강연을 시작했다. 각각 지난 4월과 재작년에 MBC <W>와 <MBC스페셜>에 방영된 프로그램의 일부였다.

'닉 부이치치'는 선천전 장애로 양팔과 다리가 없지만 비영리 단체를 조직하고 전 세계를 돌며 강연을 하고 있는 인물이다. 유태호 군 역시 양팔이 없는 등 8가지 장애를 갖고 태어났지만 항상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태도로 생활하는 어린이다.

"여러분, 태호 형은 팔이 없지만 발로 글씨를 쓰고 옷도 스스로 입고 벗어요."

정 아나운서가 아이들에게 태호와 닉의 이야기를 들려준 이유는 무엇일까.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고, 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일을 해내는 도전정신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나홀로 1학년' 학생들이 자신의 건강한 신체에 감사하고, 이를 더 많이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컸단다.

정 아나운서는 양 팔이 없는 태호가 무엇이든 스스로 하는 모습을 가리키며 아이들에게도 "무엇이든 스스로 알아서 할 수 있는 어린이가 되자"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이어서 양팔이 없는 아저씨 '닉'이 힘겹게 몸을 일으키는 장면을 보이며 "몸이 불편한 닉 아저씨는 무슨 일이든 잘 되지 않으면 100번을 넘게 연습한다"며 "여러분들도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노력한다면 무슨 일이든 잘해낼 수 있다"고 용기를 북돋워줬다. 

10일 '제3회 나홀로 입학생에게 친구를' 캠프에 참가한 학생들이 정세진 KBS 아나운서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 손을 들고 있다.
 10일 '제3회 나홀로 입학생에게 친구를' 캠프에 참가한 학생들이 정세진 KBS 아나운서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 손을 들고 있다.
ⓒ 서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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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진도에서 온 '나홀로 입학생' 이광재 군이 정세진 KBS 아나운서의 질문에 답을 하고 있다.
 전남 진도에서 온 '나홀로 입학생' 이광재 군이 정세진 KBS 아나운서의 질문에 답을 하고 있다.
ⓒ 서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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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아이들은 자신들과 다른 모습을 가진 태호와 닉의 영상을 보고도 꺼림칙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몸이 이상하다"라고 하기보다는 그저 "어, 팔이 없네"라는 반응을 보였을 뿐이다. 아이들의 말에는 가치 판단이 전혀 담겨 있지 않았다. 그러니 '팔 없는 태호와 닉이 어떻게 저런 일까지 해낼 수 있었을까'라는 감동 코드도 아이들은 읽어내지 못하는 것 같았다.

정 아나운서는 강연 후에 "나는 의미를 담아 준비한 이야기들인데, 아이들은 오히려 선입견 없이 받아들이더라"며 웃었다. 적어도 '나홀로 1학년' 아이들은 어른들과는 달랐다.

정 아나운서는 또 "지금 당장은 (이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이 아이들이 조금 더 자란다면 이 이야기들을 떠올리게 되지 않을까"라며 태호의 닉의 강인한 정신이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었으면 하는 기대를 내비쳤다.  

"학교를 위해 무언가 할 수 있는 어른이 되길"

이날 강연에서 정 아나운서는 또래 친구가 없어 외로워하는 '나홀로 입학생'들을 격려해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여러분, 혼자 입학하니까 외로웠나요? 심심하다고 느낀 학생도, 외롭다고 느낀 학생도 있었겠지만 사실 그거, 별거 아니에요. 지금은 다른 학년 언니 오빠들을 만날 수 있고, 중학교에 가면 또래 친구들을 사귈 수 있어요. 다만 안타까운 것은, 여러분이 다니던 초등학교가 없어질 수도 있다는 건데요.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여러분이 크면 학교를 위해서 뭔가를 해야 돼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네!"하는 아이들의 씩씩한 대답이 이어졌다.

강연이 끝난 후 '나홀로 입학생'들을 만나본 정 아나운서의 소감을 물어보았다.

정 아나운서는 "혼자 있는 적이 많은 아이들이라 부끄러움이 많을 줄 알았다는데 참 씩씩하고, 발랄한 것 같더라"며 미소를 지었다.

나홀로 입학생들, 또래 친구들과 헤어지다

'나홀로 입학생에게 친구를' 캠프 마지막날, 정세진 KBS 아나운서의 강연을 들은 아이들이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기 전 또래 친구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정세진 KBS 아나운서와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도 '나홀로 입학생'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
 '나홀로 입학생에게 친구를' 캠프 마지막날, 정세진 KBS 아나운서의 강연을 들은 아이들이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기 전 또래 친구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정세진 KBS 아나운서와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도 '나홀로 입학생'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
ⓒ 서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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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아나운서의 강연은, 전날 '더불어함께 입학식'을 치른 아이들에게 처음이자 마지막 수업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새로 사귄 또래 친구들과 헤어지는 것을 별로 서운해하지 않는 눈치였다. 친구와 떨어지기 싫다고 떼를 쓰고 난리를 피울지도 모른다고 여겼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제 집에 가야 하니까 친구하고 인사해"라는 기자의 말에 "안녕"하고 쿨하게 돌아서는 아이들이 많았다. 이 친구들을 다시 만나게 될 날을 기약할 수 없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하지만 분명 지난 이틀간의 분위기와는 어딘가 달랐다. 2박3일의 캠프가 시작된 이후부터 계속 친구의 손을 놓지 않던 설렘과 기쁨은 사라지고, 엄마 아빠 옆에 꼭 붙어 말도 잘 하지 않는 아이들이 많았던 것. 겉으로 드러내지만 않았을 뿐 아쉬움이 없지는 않았을 테다.

지난 이틀 동안, 처음으로 아이들이 또래 친구들과 노는 모습을 볼 수 있었던 부모님들은 이 헤어짐을 앞두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처음 만났을 때는 인솔교사가 인사를 해도, 이름을 물어도 무표정에 묵묵부답이었던 광재(전남 진도 진도서초등학교 가사도분교). 그랬던 광재는 2박3일 동안 또래 친구들과 함께하며 웃기도 참 많이 웃고, 뛰어놀기도 참 많이 뛰어놀았다.

광재 엄마 이명주씨는 그런 광재의 모습을 보고 적잖이 놀란 듯했다. 이씨는 "항상 말이 없고, 땅만 바라봐서 참 걱정했었는데, 여기에서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보고 희망을 얻었다"며 "이 얘기를 하면 누구보다 광재의 담임 선생님이 기뻐할 것"이라며 흐뭇해 했다.

서정이(전북 익산 성남초등학교) 엄마 윤혜일씨는 "아이가 또래 친구들하고 재미있게 어울리는 모습을 보니 정말 좋았다, 하지만 이 순간이 이어질 수는 없는 거다, 우리 서정이가 이곳에서 8살의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렇게, 또래 친구들과의 추억을 안고 아쉬움은 뒤로 한 채 '나홀로 1학년'들은 각자의 집으 돌아갔다.

헤어진 지 5시간쯤 지났을까. 수아(경북 경주 강동초등학교 단구분교) 엄마 정윤희씨에게서 연락이 왔다.

"집에 잘 도착했습니다. 수고 많으셨어요. 수아가 이틀간 얼마나 열심히 놀았는지 피곤하다고 하네요. 지금은 개랑 둘이서 놀고 있어요. 이제는 일상으로 돌아온 거죠."


태그:#더불어 함께 입학삭, #나홀로 입학생, #정세진 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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