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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지방선거가 실시된 2일 저녁 서울 여의도 한나라당사 개표상황실에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를 비롯한 한나라당 소속 출마자들의 사진과 이름이 적힌 종합상황판이 내걸려 있다.
 6.2 지방선거가 실시된 2일 저녁 서울 여의도 한나라당사 개표상황실에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를 비롯한 한나라당 소속 출마자들의 사진과 이름이 적힌 종합상황판이 내걸려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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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가 끝난 마당에 다시 선거 얘기를 꺼내는 것이 잘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런데 끝난 마당이니까 사람들에게 두고두고 할 말이 생겨난다. 내가 사는 경북 안동에서의 이야기다. 십여 명 모이는 모임에서 누군가 그랬다.

"내가 경북 사람인 것이 부끄럽다."

얘긴즉슨, 이번 지방선거에서 광역단체장만 보더라도 김범일 대구시장은 72.9%, 김관용 경북지사는 75.4%로 무려 70%를 넘는 득표율로 당선됐다. 전국에서 한나라당이 절반도 못 되는 참패를 한 마당에 유독 대구, 경북은 가장 심한 몰표가 나왔다.

호남 지역인 광주는 56.7%(강운태), 전남, 전북이 각각 68.3%(박준영), 68.7%(김완주)의 득표율을 보였다. 득표율 70%가 넘는 지역은 대구, 경북뿐이다. 같은 영남인 울산은 61.3%(박맹우)이지만 부산은 55.4%(허남식), 경남은 53.5%(김두관)밖에 안 된다.

지역주의가 극심하던 시절 90% 넘는 지지율을 보고 전라도 사람들은 '빨갱이'라 욕했던 사람들이 바로 영남 지역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마치 역사를 거꾸로 돌리는 듯한 이런 몰표가 대구, 경북에서 나온 것이다. 우리 모임의 한 사람이, 이전의 영남 사람이 욕한 것과 똑같은 욕을 지금 전라도 사람들이 할 것이라며 탄식한 것이다.

긍정적이어야 할 '텃밭'은 악몽이다

뿌리 깊은 지역주의는 이제 정말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선거 때마다 '텃밭'이라는 말이 언론에서 공공연히 거론된다. 아마 지역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고, 아니면 후보 진영에서 선거 전략으로 강조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지역을 당선의 도구로 삼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텃밭은 늘 가장 효과적인 선거 전략이며 가장 강력한 득표 요인이 된다. 그런데 텃밭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다. 지방 선거의 성격상 그 지방에서 오래 살고 지역적 배경을 가진 기관장이 가장 그 지방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텃밭'만' 강조되는 것은 위험하다.

영호남의 지역주의가 늘 가장 위험한 것은 다 아는 바다. 2006년 제4회 지방선거 때는 야당인 한나라당이 압승을 한 경우였다. 당시 한나라당인 대구시장은 72.2%, 경북지사는 76.8%로 전국 최다 득표율을 기록했다. 당시 전남의 박준영 민주당 후보는 67.7%였지만 광주의 박광태 민주당 후보는 51.6%, 전북의 김완주 열린우리당 후보는 48.1%였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열린우리당 등 여당이 참패했을 때 광주, 전북에 비하면, 한나라당이 참패한 이번 선거에서 경북, 대구만은 여전히 70%를 넘었다. 내가 사는 안동의 경우 민주당은 아예 비례대표 후보도 내지 않았다. 그러니 예의 그 사람이 경북 사람인 것을 부끄러워한 지경에 이른 것이다.

또 하나 짚고 넘어 갈 것은 자유선진당 문제다. 서울시장 후보를 내기는 했지만 대부분 충청권에 후보를 냈고, 이회창 총재는 아예 충청권에서만 맴돌았다. 전국 정당이 아니라 아예 당 전체가 전형적인 지역주의에 기댄 지역 정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거운동 자체를 충청권에서만 맴돈 자유선진당은 고질화된 지역주의의 화신(化身)이다. 이에 대해 비난 받아 마땅한데도 사람들은 이 점에 대해 별말이 없다.

지역주의에 균열이 약간 생겼지만...

왼쪽부터 이번 6.2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안희정 충남지사 후보, 이광재 강원지사 후보, 김두관 경남지사 후보. 지역주의를 깨고 이변을 일으킨 당선자들이다. 하지만 대구경북에서는 이러한 이변을 찾기 어려웠다.
 왼쪽부터 이번 6.2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안희정 충남지사 후보, 이광재 강원지사 후보, 김두관 경남지사 후보. 지역주의를 깨고 이변을 일으킨 당선자들이다. 하지만 대구경북에서는 이러한 이변을 찾기 어려웠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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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선거는 전체적으로만 보면 환상적인 조화를 보여주었다. 전체 16명 광역 단체장에서 한나라당이 6, 민주당이 7, 무소속 2, 선진당 1이지만 전체적으로 여당 열세, 야당 우세로 나타났다. 중앙 권력이 여당에 있기 때문에 지방 권력이 야당에 있는 것, 그것도 약간 우세한 것이 환상적이라는 것이다.

중앙, 지방 권력이 동색인 경우 세종시, 4대강의 경우에서 보듯이 권력은 부패한다. 중앙과 지방이 같은 여당이어서 행정의 효율을 기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부패하지 않도록 견제하는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는 여러 가지 이변이 있었다. 광역단체장에 전통적 여당 지역인 강원도에서 민주당 이광재 후보가 당선된 것을 비롯하여, 경남에서도 야권인 김두관 후보가 승리했다. 세종시 민심 탓이겠지만 보수지역인 충남에서도 민주당의 안희정 후보가 당선됐다. 기초단체장도 경남인 김해시에서 민주당 김맹곤 후보가 당선되어 경남 유일의 민주당 단체장이 나왔다. 경북에서도 한나라당 후보를 제친 무소속 후보가 더러 있긴 했다.

그러나 중앙선관위의 각종 통계 도표를 보면, 위에서 본 광역단체장 선거는 물론이고 기초단체장 선거도 지역주의가 여전함을 본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광주, 전남, 전북에서 한나라당 당선인은 한 명도 없고, 부산, 울산, 대구, 경북에서는 민주당 당선인이 한 명도 없다.(울산 북구에서 민주노동당 윤종오 구청장이 나온 것이 그나마 위안을 준다.) 경남만 위에서 말한 민주당 후보 한 사람이 나왔을 뿐이다.

우선은 직접 선거에 임하여 지역주의를 부추기는 각 정당과 그 후보들의 문제가 가장 심각하다. 그리고 각 지역민의 의식이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이 문제는 늘 되풀이되지만 21세기의 선진화를 추구하는 이즈음에도 이번 선거 결과를 보면서 통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기사에서 언급한 경북 사람만 문제가 아님은 자명하다. 정치인은 물론 언론인, 사회 지도자가 개개인의 당선이나 정당별 승패에 희비하지 말고 지역주의 문제를 다시 한 번 심각히 생각하기 바란다.

모임 얘기에서 시작했으니 모임 얘기로 끝을 맺으려 한다. 또 한 사람이 말했다.

"난 이번에 가장 무식한 선거를 했다. 1번만 빼고 무조건 찍었다."

이런 사람도 있었는데, 도대체 누가 경북에다 70%라는 오명을 씌웠는지 모르겠다.   


태그:#지방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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