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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기업 폭스콘에서 4달째 13명의 자살자가 나왔습니다.(그 중 12명이 선전 공장에서 자살)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자 애플, HP, 델 등 원청업체 등이 자체적으로 조사에 나섰습니다. 폭스콘은 대만 재벌중 하나인 홍하이 그룹의 전자제품 생산 기업입니다. 중국 산업 특징인 저임금, 값싼 토지, 풍부한 노동력을 바탕으로 전세계 유명기업들의 OEM 기지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자살이 연달아 일어난 선전공장은 중국내 폭스콘 공장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큽니다. 그리고 공장 안에는 수영장과 도서관도 있지요. 며칠 전 뉴스에서는 폭스콘 사장이 언론에게 공장 내의 복지시설들을 직접 보여주는 모습이 나왔습니다. 화면 속 폭스콘 공장은 꽤 좋아보였습니다.

그런데 왜 자살자가 속출하고 있을까요? 그건 실질적 혜택(복지혜택과 경제적 혜택)을 전혀 누리지 못하는 폭스콘의 노동환경때문입니다. 신문과 방송에 따르면 폭스콘 공장의 점심 시간은 30분이라고 합니다. 식당까지 가는 시간이 약 10분이니 실제로 밥 먹는 시간은 20분이지요. 그리고 폭스콘은 노동자들이 다른 직원들과 잡담을 하지 못하도록 감시하는 '노동 감독'이 있다고 합니다. 말 그대로 '기계'처럼 공장에서 일하는 것이지요.

보통 중국 대졸자들의 임금은 약 5천 위안입니다.(환율 180원 기준으로 약 90만원) 선전 공장의 노동자 임금은 약 2천 5백위안이 안 된다고 합니다. 한국을 기준으로 비교를 해볼까요? 4년제 대학을 나온 신입 월급이 200만원이라면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100만원이 되지 않는 돈을 받고 일하는 것과 같습니다.(실제로 2007년 기준 대졸 신입사원 평균 임금은 198만 3천원이며 이 금액에는 상여금이 포함되어 있음. 참고자료 한국경영자총협회) 적은 월급, 오랜 근무 시간, 복지 혜택은 전혀 없고 불안정한 일자리. 이것이 폭스콘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입니다.

그렇다면 중국 노동자들은 본인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고 인식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전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제가 중국에서 경험한 일을 들려주고 싶네요.

중국에서 한국인 사장과 중국인 동료들과 잠깐 일을 했었지요. 출근 첫 날 중국인 동료가 제게 묻더군요. "너 노동계약서 썼니?" 아니라는 제 대답에 그녀는 무척 놀라워했습니다. 학교를 졸업하기 전 아르바이트를 했던 저는 지금까지 어떠한 계약서를 작성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녀는 제게 정직원이든, 인턴이든, 알바든 계약서를 꼭 써야한다고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놀라움은 여기서 끝난 게 아닙니다. 어느 날 저는 퇴근 시간이 지났음에도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중국인 동료들이 제게 와 '왜 안 가니?'라고 묻더군요. 전 '사장님이 안 가셨잖아'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동료들이 '네 근무 시간은 5시까지야. 그러니까 다음부터는 남을 필요가 없어'라더군요. 저는 그녀들의 대답이 참으로 놀라웠고 그들도 저를 신기하게 보았습니다. 특히 중추절 때 사장님이 7일간의 휴가를 5일로 줄이자 중국인 동료들이 거세게 반발했습니다. 결국 돌아가며 7일씩 쉬고 회사문을 계속 여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습니다.(중추절 기간에 쉬지 못한 제 동료는 무척 화를 냈습니다. 당연히 나이가 어린 저와 중국인 동료가 중추절 기간에 일했다는...)

중국의 신세대 노동자들은 적지 않은 수가 고등학교 이상의 교육을 받았습니다. '값싼 노동자'로 불리는 중국인들이지만 자신들의 권리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고 분명하게 주장합니다. 물론 모든 중국인이 위와 같지는 않습니다. 저의 경우, 업무가 단순 노동이 아니었고 한국 이외에 외국계 회사들이 많은 지역이었습니다. 적어도 제가 알고 있는 중국인 친구들은 '노동계약서'를 작성하지 않는 것, 수당 없이 30분, 1시간 '야근'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폭스콘 사건을 보며 남일같지 않다고 느꼈는지도 모릅니다. 금융위기 이후 한국 신입 사원들의 임금이 삭감되고 있습니다. 반면 기업이 요구하는 자격은 높아지고 있지요. 토익이 필수였지만 이젠 토익과 영어회화가 서류 제출시 필수 조건이 되었습니다. 그럼 근무환경은 나아졌을까요? 대기업을 비롯한 몇몇 회사는 직원들의 복지에 신경씁니다. 그러나 대다수 중소기업과 일반 기업들은 복지 대신 '야근', '특근'을 요구합니다.

그래도 중소기업이나 회사는 나은 편입니다. 아르바이트의 경우는 추가근무가 당연시 되는 곳이 상당히 많습니다. 분명 시간제 일이지만 정시 퇴근이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온 제 친구는 한국에서 일을 하며 힘든 것이 바로 '시간'이라고 말했습니다. 사실 우리네 정서상 10~20분 추가로 일하는 것은 별 것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곰곰히 생각해보면 노동력이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고 헐값에 팔리는 셈입니다. 이건 분명 옳지 못합니다.

최근에는 인턴마저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는 경우를 보았습니다. 제가 자주 찾는 인터넷 카페에 사람을 구한다는 공고가 올라왔습니다. 돈보다는 '경험' 만드는 것이 더 크다는 코멘트가 달렸더군요. 유명한 외국계 언론사에서 인턴을 구하는 공지였습니다. 댓글을 살펴보니 대부분 정식 수당이 없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밝힌 사측에 실망한 내용이었습니다.

폭스콘 사건을 보며 씁쓸한 것은 그 모습이 우리와 너무 닮아있기 때문입니다. 경제 관계에서 '을'인 노동자(회사원, 인턴, 알바생 등)들은 절대적 약자입니다. 경제적 위기가 오면 일시에 해고되거나 임금이 삭감되지요. 반면 일이 많아지면 월급이 오르는 대신 근무 시간이 늘어납니다. 월급 인상을 요구하면 '이기적인' 노동자가 되고맙니다.

분명한 것은 노동환경을 바꾸는 것은 전적으로 '노동자(회사원, 인턴, 알바생 등)의 몫'입니다. 자본은(회사, 기업 등) 절대 노동자의 이익을 우선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비난이 아닙니다. 기업이 존재하는 '목적'은 '기업의 이익'이므로 당연한 이치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노동이 정당한 대가를 받기 원한다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야합니다.

저는 지금 짱돌을 들고 바리케이트를 들라고 선동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에게 특별한 일이 없으면 정시에 퇴근하세요. 당신의 정당한 권리를 행동으로 옮겨 '당연한 것'이 되도록 만드세요. 일을 할 때 급여보다 '경험'을 강조하는 곳이 있다면 일 시작 전 먼저 급여를 협상하세요. 목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당신이 부당한 대가를 받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을 어필하는게 중요해요. 그러면 상대도 노동 대가를 무시하는 일이 줄어들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제가 노동자에 굳이 '회사원'을 적은 것은 보통 '노동자'를 공장 근무자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 구조에서는 돈을 받는 대가로 노동력을 제공하는 모든 직업이 '노동자'에 속합니다. 대기업 회사원들은 노동자가 아니라 '화이트 칼라'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급여의 차이가 있을 뿐 대기업 직원들도, 임원들도 '노동자'라는 신분에 속합니다. 따라서 이런 문제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궁극적으로 모든 월급자들의 권리와 복지에 연계될 수 있으니까요.



태그:#폭스콘, #88만원 세대, #노동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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