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오전 10시경, '촛불소녀' 한채민(19)양의 핸드폰에 문자메시지가 빗발쳤다. 지난 2008년 '광우병 파동' 때 함께 활동했던 '촛불소년' 등으로부터 온 것이었다. 내용은 이랬다.

"누나, 진짜 그렇게 말했어? 지금 난리가 났어. 장난도 아냐. 나는 이런 상황 예상했는데, 뭣 하러 인터뷰했어?"

단단히 화가 난 '촛불소년'은 "판단 잘 하세요"라는 마지막 문자를 쏘아붙이듯 날렸다. 화들짝 놀란 한양의 뇌리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급히 인터넷에 들어가 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일주일 전 <조선일보>와 인터뷰를 한 기사가 포털사이트 등에서 논란이 되고 있었다. 순간 한양은 뒤통수를 맞은 듯 머릿속이 멍해졌다.

무엇보다 기사의 제목이 준 충격으로 본문이 제대로 읽히지 않아, 채 A4 1쪽도 되지 않는 기사를 읽는데 한참 걸렸다. 기사의 제목은 "'촛불소녀' 한채민양 '무대에서 읽은 편지는 모두 시민단체가 써준 것'"이었다. 한양은 기사를 읽으면서도 주문을 외우듯 "이게 아닌데"라는 말만 반복했다.

"양심의 가책? 그런 말 한 적 없다"

한채민양은 11일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정말 울고 싶었는데, 그 순간 딱 드는 생각이 '내가 운다고 해결되는 건 없을 텐데, 어떻게 해야지' 하는 것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특히 "(<조선일보>가) 제 말의 뉘앙스를 다 바꿔서 써놓았다"며 "자기들 입맛에 맞게, 저를 이용한 것 같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조선일보>는 지난 10일 "'광우병 촛불' 2년… 그때 그 사람들은 지금"이라는 제목의 기획기사를 통해 한양에 대한 인터뷰 내용을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이 기사에서 한양이 "(촛불문화제 무대에) 10여 차례 올라갔어요. 제 스스로 무대에 선 건 한두 번밖에 안 돼요"라고 말한 것으로 보도했다.

이 신문은 또 한양이 "(무대 위 발언내용은) 다 단체('나눔문화')에서 써준 거예요. 읽으라니까 읽고 별생각 없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한양은 "제 명예도 명예지만 나눔문화의 명예도 바닥까지 떨어졌고, 저로 인해서 다른 촛불소녀들까지 무지하고, 정말 뇌도 심장도 없는 것처럼, 자기 주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것처럼 보도가 됐다"며 "전혀 아니다. 저희는 그렇게 무지하지 않다"고 항변했다.

2년 전, 광화문 광장을 가득 메운 수만 명의 대중 앞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의견을 밝혔던 '촛불소녀' 한채민양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유학을 준비 중이던 한양이 <조선일보> 박국희 기자를 만난 것은 지난 3일이었다. '촛불소녀'가 <조선일보> 기자의 인터뷰 요청에 응했다는 사실이 선뜻 납득이 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한양은 "애초에 인터뷰에 응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평소에 너무나 따르고 좋아했던 학교 선생님을 통해서 연락이 와, 어쩔 수 없었다"고 해맑게 웃었다.

<조선일보> 인터뷰 기사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한양이 "(촛불문화제) 무대 위에 올라 읽었던 편지는 나눔문화라는 단체에서 써줬고, 시킨 그대로 했을 뿐"이라고 말했다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한양은 "나눔문화와 사상이 맞고 의견이 맞았기 때문에, 제가 하고 싶은 말이 거기에 다 들어가 있었기 때문에 (편지를) 읽은 것이지, '별생각 없이' 읽은 게 아니다"며 보도 내용을 부인했다.

한양은 특히 <조선일보>가 "'양심에 가책을 많이 느꼈다'고 털어놨다"고 보도한 것에 대해서도 "나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기자가 '양심의 가책을 느꼈냐'고 물어보기에, '손발이 오그라들었다'고 말했다"며 "(편지 내용 중) '눈물비가 내린다' 이런 표현들이 민망하다는 뜻이었다. 저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 발언대에 올라갈 만큼 뻔뻔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한채민양 인터뷰는 11일 낮 12시경 서울 은평구의 한 제과점에서 1시간 30분에 걸쳐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일문일답 요지이다.

'촛불소녀'가 <조선> 인터뷰에 응한 까닭은?

- <조선일보>에서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 인터뷰 취지를 설명하던가?

"'촛불 2년' 기획으로 한다고 했다. 저 혼자만 인터뷰하는 것도 아니고, 기자들이 돌아다니면서 다른 학생들도 취재하고 있다고 했다. 제 인터뷰 내용은 그렇게 크게 나가지 않을 거라고, 몇 줄만 나갈 거라고도 했다."

- '광우병 파동'을 거치면서 <조선일보> 등에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을 텐데, 인터뷰에 응한 이유는 무엇인가?

"애초에 인터뷰에 응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평소 너무나 따르고 너무나 좋아했던 학교 선생님을 통해서 연락이 와, 어쩔 수 없었다."

- <조선일보> 기자와 인터뷰한 내용은 무엇인가?

"나눔문화에 대해서는 그렇게 많은 얘기를 하지 않았고, 주로 그 당시 제 입장이나 느낌, 감정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솔직히 그때(광우병 파동 당시) 제 상황이 좋은 편이 아니었다. 그때 (집안 문제로) 멍한 상태로 똑 부러지게 생각을 못했던 것 같지만, 그래도 (무대에서)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했다고 얘기했다. 그런데 제가 주관이 없는 애로 기사를 써놓았고, 나눔문화에 대해서도 (무대에서 한 발언이나 편지 낭독은) 서로 합의하에 했던 거라고 제가 분명히 말했다. 의견이 맞으니까, 시켜서 올라간 것이다. 그런데 막 그런 식으로 써놓고……."

- 기사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촛불문화제 무대에) 10여 차례 올라갔어요. 제 스스로 무대에 선 건 한두 번밖에 안 돼요. (무대 위 발언내용은) 다 단체('나눔문화')에서 써준 거예요. 읽으라니까 읽고 별생각 없이…." 이렇게 말한 것은 사실인가?

"나눔문화와 인연이 닿기 전에 제 스스로 자유발언대에 한두 번 정도 올라가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이후 나눔문화에서 저에게 '이런 내용을 이렇게 말해줬으면 좋겠다' 제안했고, 대본도 다 보여줬다. 저는 그 사람들과 사상이 맞고 의견이 맞았기 때문에, 제가 하고 싶은 말이 거기에(편지 등에) 다 들어가 있었기 때문에 무대에서 읽은 것이다. '별생각 없이' 읽은 게 아니다. 나눔문화에서는 깨알만큼도 절대 강요한 것은 없었다."

- 인터뷰에서 "양심에 가책을 많이 느꼈다"는 말도 했나?

"박국희 기자가 저에게 '양심의 가책을 느꼈냐'고 물어봤다. 그래서 제가 '가책이라기보다는 손발이 오그라들었다'고 말했다."

- <조선일보> 기자가 왜 그런 질문을 했다고 생각하나?

"단체에서 써준대로 읽었다는 말 때문인 것 같다. 제가 분명히 '서로 합의하에 했던 것'이라고 말했는데도, 그렇게 물어보더라." 

- '손발이 오그라들었다'는 말은 무슨 의미인가?

"(무대에서 낭독한 편지 내용 중) '눈물비가 내린다' 이런 표현들이 민망하다는 뜻이었다. 저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까지 발언대에 올라갈 만큼 뻔뻔하지 않다. 저는 나눔문화의 꼭두각시가 아니다."

- 본인이 생각하기에 나눔문화는 어떤 단체인가?

"이 기사가 나가고 난 뒤, 나눔문화에서 저를 굉장히 원망스러워할 수도 있지 않나. 나눔문화의 이미지가 많이 실추됐다. 어제(10일) 나눔문화에서 성명을 발표했다. 그런데 저를 엄청나게 감싸주셨다. 성명서를 보고 연락을 했더니, 몇 시간 동안 길게 회의를 했다고 하더라.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되면 제가 다칠 것 같고, 그쪽에서는 어떻게든 저를 지켜주고 싶었다고 말을 했다. 그런 단체가 이런 식으로... (얼굴을 감싸며) 전혀 이렇게 공격당할 이유가 없는 단체다."

-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일이 너무 커졌어요. 그 순간에는 멍해서 아무것도 못 느꼈는데…."라는 말도 한 것으로 보도됐다. 무슨 의미인가?

"(<조선일보> 기자가) '그때 기분이 어땠냐'고 물어봐서 한 대답이었다. 당시 제가 유명해졌지 않나. 유명해진 뒤에 사람들이 저를 알아보고, 저에 대한 기사가 뜨고, 사람들이 호응을 하고, '기분이 어땠냐'고 기자가 물어봐서, 그 순간에는 멍해서 잘 못 느꼈는데, '제가 큰일을 하고 있구나'라고 어렴풋이 느꼈다고 말한 것이다."

- '큰일을 하고 있다'는 말은 보람을 느꼈다는 것인가?

"보람이라고 하면 보람인데, 뭔가 뿌듯했다. 저는 정말 아무것도 못할 줄 알았는데, '큰일을 하고 있구나'라는 느낌을 스스로 받으니까. 그래서 굉장히 뿌듯했는데, 이런 식으로 저를 생각 없는 애로 만든 것이다."

- '촛불소녀'에 대해 "자발적으로 나온 학생도 있었지만, 나눔문화에서 다듬어주고, 다른 단체와 연계하는 여고생들도 많았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됐다. 무슨 의미인가?

"당시 자발적으로, 순수한 의지로 촛불집회에 나왔다가 다른 단체와 연이 맺어지거나, 즉석에서 단체가 결성되지 않았나. 그 이야기를 했는데, 이렇게 보도가 됐다. 저는 '촛불소녀'가 어떤 단체에 등 떠밀려서 나왔다는 뉘앙스로 얘기하지 않았다."

- <조선일보> 기자의 질문이 정확히 뭐였나?

"정확히 기억이 안 나는데, '여고생들이 분위기에 휩쓸려서 나오지 않았나', 뭐 그런 거였다. 그래서 '자발적으로 나와서 자기가 느끼는 게 있으니까 계속 나왔을 것이고, 단체와 연계가 됐건 어쨌건 간에 일단 자발적으로 나왔던 맨 처음의 순수한 의지는 변하지 않고, 집회 현장에서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모이기도 했다'는 식으로 이야기했다."

- <조선일보>는 한양에 대해 "'광우병의 진실'에 대해선 여전히 무지(無知)한 상태였다"고 썼다. 무슨 말인가?

"이 부분은……. 3일 <조선>기자와 인터뷰가 끝나고 난 뒤, 이틀 후에 다시 전화가 왔다. 그런데 제가 그날 많이 아팠다. 기자가 '분유, 생리대 그런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묻기에, '잘 모르겠어요'하고 끊었다. 뭔가 통화는 길게 했는데, 너무 아파서 횡설수설하다가 끊은 것 같다."

"자기들 입맛에 맞게, 저를 이용한 것 같다"

- 본인에 대한 <조선일보>의 인터뷰 기사를 전반적으로 평가한다면?

"(<조선일보>가) 제 말의 뉘앙스를 다 바꿔서 써놓았다. 자기들 입맛에 맞게, 저를 이용한 것 같다."

- <조선일보>가 한양을 이용했다면 그 이유는?

"그건 잘 모르겠다. 제가 웬만하면 잘 참는데, 이번만큼은 못 참겠다. 일단 제 명예도 명예지만, 나눔문화의 명예도 바닥까지 떨어졌고, 저로 인해서 다른 촛불소녀들까지 무지하게 정말 뇌도 심장도 없는 것처럼 자기 주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이 보도가 됐다. 전혀 아니다. 저희는 그렇게 무지하지 않다. 다들 심장이 있는 사람들이고, 다들 자기 뜻을 피력하려고 (촛불집회에) 나간 것이다.

이런 식의 기사가 '정치적으로 이용된다'는 말도 있고, '선거 다가오니까, (<조선일보>가) 애쓴다' 이런 반응도 많더라. 어떻게 이용되든 상관없다. 그런 것은 일단 내 머릿속에서 논외고, 우리 자존심을 짓밟았다는 게 너무 화가 난다. 저희는 주체 없는, 머리 없는 사람이 아니다. <조선일보> 기사로 인해 받은 충격에서 헤어나오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지난밤에 잠을 한 숨도 못 잤다."

- <조선일보>측에 정정보도나 사과를 요구할 생각인가?

"생각 중이다. 저를 인터뷰했던 박국희 기자를 한 번 더 만나고 싶다. 만나면 멱살이라도 잡고 싶다. 저와 나눔문화, 다른 촛불소녀들의 명예를 회복시켜달라. 나눔문화나 다른 촛불소녀들에게 찾아가서 빌고 싶은 심정이다."

- 이번 인터뷰는 '촛불 2주년' 기획기사의 일환이었다. 당시 '광우병 파동'과 촛불집회는 한채민양 개인에게 어떤 의미였나?

"어릴 때니까, 구체적으로 딱 정리를 할 수는 없다. 특히 그때 당시 가정 문제로 힘든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저는 굉장히 뿌듯했다. 가정문제가 있었고, 냉정하게 판단을 제대로 못하는 시기였고, 감수성이 예민할 때였기 때문에, 누군가 '툭' 건드리면 울 정도였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매일 울지 않고 지낼 수 있었던 게 바로 촛불 덕분이었다. '내가 뭔가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 덕분에 그 시간을 견딜 수 있지 않았을까. 처음 생각보다 일이 커지기는 했다. 인터뷰도 많이 하고, 제가 그렇게 유명해질 줄 몰랐다. 그래서 더 뿌듯했을지도 모른다. 눈에 보이는 게 있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