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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운동 방법은 무조건 쉽고, 편하고, 재미있어야 한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제 성격 자체가 어렵고, 불편하고, 재미없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사안에 부닥쳤을 때는 반드시 상식과 원칙에 입각해 판단하고 결정해야 합니다."

오한흥 옥천군의원 예비후보자는 평상복에 빨간 모자를 쓰고 노란 어깨띠를 두른 채 선거운동을 한다.
▲ "선거운동이 즐거워요" 오한흥 옥천군의원 예비후보자는 평상복에 빨간 모자를 쓰고 노란 어깨띠를 두른 채 선거운동을 한다.
ⓒ 정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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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옥천군 가선거구 군의원 선거에 출마한 오한흥(51) 예비후보. 현재 옥천군 동이면 석탄1리(안터마을) 이장인 오 후보는 '옥천전투'라는 별칭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진 <조선일보> 절독운동의 주역이다. 그는 <옥천신문> 편집국장과 대표이사로 재직하며 전개한 옥천전투에서 다양한 '싸움의 기술'을 선보인 바 있다. 

입법전문지 <여의도통신> 대표이사를 끝으로 대외활동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온 오 후보는 2008년 12월 '꿈에도 그리던' 안터마을 이장에 선출됐다. 그리고 반딧불이와 빙어낚시를 전면에 내세운 여름문화체험(기간 120일)과 겨울문화체험(기간 40일)을 열었다. 

필자는 지난 14일부터 며칠 동안 오 후보의 군의원 선거운동을 지켜봤다. 다음은 그 과정에서 목격한 선거운동의 특징을 정리한 것이다. 

첫째, 오한흥 후보는 출마선언 당시부터 정당공천을 거부하는 남다른 행보를 보였다.

우선 오 후보는 옥천군수에 출마하는 동시에 영동보은옥천지역위원장을 맡아줄 의향이 있느냐는 민주당 충북도당 측의 제안을 받고도 고사했다고 한다. 제1 야당 후보라는 '든든한 배경'과 공천권을 행사할 수 있는 '괜찮은 조건'을 스스로 거부한 것이다.

"대다수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들은 지방선거에서 정당공천을 시행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줄기차게 비판하고 반대해 왔습니다. 평소의 신념대로 모든 후보가 정당공천을 거부만 한다면 지방자치가 중앙정치에 종속되는 잘못된 관행은 사라지고 말 겁니다. 하지만 선거철만 다가오면 거의 모든 후보가 주요 정당의 중앙당에 찾아가 머리를 조아리고 줄을 서는 코미디를 연출해 왔던 것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오 후보가 "맨땅에 헤딩하려고 하느냐"는 주변의 우려와 조소를 무릎쓰고 민주당의 제안을 거절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고 한다.

"정치권이 보잘 것 없는 사람에게 군수출마를 권유하는 등 과분하게 인정해준 것에는 감사하지만 아직은 더 배워야 한다는 마음으로 군의원 출마를 결심했습니다. 나아가 현재의 기형적 정치구조 속에서 '중앙 정당'의 공천이라는 형식이 아닌 '지역 주민'의 공천이라는 명분을 위해서 기득권을 포기하는 '바보 같은' 후보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실제로 오 후보가 두르고 다니는 어깨띠 중 하나에는 '정당공천 줘두 안해유'라는 문구가 선명하게 박혀 있다.

명함 속 오한흥은 평범한 티셔츠에 밀짚모자 차림

아침부터 시내를 돌던 오한흥 후보가 옥천에서 가장 큰 서점인 명륜당의 이진영 사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2006년 지방선거 당시 풀뿌리 옥천당 활동을 같이 했던 두 사람은 이후에도 지역운동 동반자로 인연을 맺어 왔다.
▲ 풀뿌리 옥천당 동지 아침부터 시내를 돌던 오한흥 후보가 옥천에서 가장 큰 서점인 명륜당의 이진영 사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2006년 지방선거 당시 풀뿌리 옥천당 활동을 같이 했던 두 사람은 이후에도 지역운동 동반자로 인연을 맺어 왔다.
ⓒ 정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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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오한흥 후보는 예비후보 등록을 하면서 기존의 관행과 격식을 거부하고 파괴하고 있다.

"예비후보자 등록신청서에 반명함판 사진을 10매 제출하라고 적시돼 있던데, 하필이면 왜 10장입니까?"
"……"
"그리고 사진은 어디에 사용되는 겁니까?"

지난 3월 21일 예비후보 등록을 받던 옥천선관위 실무자는 한 후보의 당돌한 질문을 받고 말문이 막혔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선관위에 등록을 하면서 이런 질문을 던졌던 후보는 없었기 때문이다. 당황한 실무자가 몇 가지 이유를 주워섬겼다. 

"취재협조를 요청하는 차원에서 언론사에도 한 장씩 보내줘야 하고…."
"그럼 언론사가 10개가 넘으면 어떻게 할 겁니까?"
"……"
"그리고 요즘 같은 디지털 시대에 누가 사진을 그런 식으로 보냅니까? 사진 한 장만 스캔해 놓으면, 무한대로 보낼 수 있는 것 아닌가요?"
"……"

고심하던 옥천선관위도 결국에는 사진 매수를 5매로 줄였다.

선관위 실무자를 당황하게 만든 것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오 후보의 명함에 실린 사진이 다른 후보와 전혀 달랐다. 다른 후보들의 복장은 약속이라도 한듯이 넥타이에 양복으로 똑같았다. 하지만 오 후보의 복장은 평범한 티셔츠에 밀짚모자 차림이었다.

"선관위 실무자가 낯설은 명함에 처음에는 의아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하지만 '후보는 반드시 양복을 입어야 한다는 규정이라도 있느냐? 농촌 지역에서 출마하는 후보가 평상복에 밀짚모자를 쓰는 것이 도리어 당연한 것 아니냐?'는 취지로 말하니까 뭐라하지  못하더군요."

몽골식 천막 2개 동을 연결해 만든 선거사무소

오한흥 후보는 동생이 경영하는 쌍룡자동차 옥천영업소 주차장에 천막으로 선거캠프를 설치했다. 그는 넥타이에 양복을 거부하고 평상복에 밀짚모자를 쓴 모습으로 사진을 찍었다.
▲ 읍내 외곽의 천막 선거캠프 오한흥 후보는 동생이 경영하는 쌍룡자동차 옥천영업소 주차장에 천막으로 선거캠프를 설치했다. 그는 넥타이에 양복을 거부하고 평상복에 밀짚모자를 쓴 모습으로 사진을 찍었다.
ⓒ 정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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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오한흥 후보는 선거운동사무소(선거캠프)를 읍내 외곽에 위치한, 동생이 운영하는 쌍룡자동차 옥천영업소 주차장에, 그것도 몽골식 천막 2개 동을 연결해 마련했다. 

물론 다른 대다수 지역과 마찬가지로 옥천지역 후보들의 선거캠프도 예외없이 시내 중심가에 집중적으로 몰려 있다. 선거캠프 하나를 설치하면서도 기존의 관행에서 벗어나 새로운 도전을 감행한 이유를 오 후보는 이렇게 설명했다.

"무엇보다 선거 비용을 줄일 수 있으므로 '돈 안 드는 선거 풍토 정착'에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부차적 이점이긴 하지만 시내 중심가의 교통정체도 해소할 수 있고, 방문객의 주차난도 해결할 수 있겠다고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사실 오 후보에게는 더 큰 목표가 있었다. '유권자가 마음 편하게 찾아오는 선거캠프'를 만드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실내장식을 할 때도 전시회 콘셉트를 도입했다. 그는 지금까지 자신과 관련해 언론에 보도된 다양한 기사를 확대 인쇄해 실내에 붙여놓았다.

거기에는 오 후보가 지난 20여년 동안 걸어온 공적 인생의 흔적과 공과가 생생하게 담겨 있는데, 방문객과 대화할 때 자연스럽게 화젯거리를 제공해 주기도 한다. 오 후보의 선거캠프 입구에는 이런 문구가 커다란 글씨로 적혀 있다.      

"부족하오나 이 공간을 여러분과 함께 축제의 자리, 대화의 자리로 가꾸고 싶습니다. 누구든, 언제든 환영합니다."       

오한흥 후보의 활동을 보도한 기사로 장식한 선거캠프는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는 주민들이 방문해 담소를 나누는 사랑방이 되었다. 오 후보는 공식적인 선거운동 기간이 시작되면 선거캠프 앞마당에서 주민들과 지역현안을 토론하는 촛불집회도 개최할 계획이다.
▲ 주민 사랑방이 된 선거캠프 오한흥 후보의 활동을 보도한 기사로 장식한 선거캠프는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는 주민들이 방문해 담소를 나누는 사랑방이 되었다. 오 후보는 공식적인 선거운동 기간이 시작되면 선거캠프 앞마당에서 주민들과 지역현안을 토론하는 촛불집회도 개최할 계획이다.
ⓒ 정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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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오한흥 후보는 명함과 어깨띠 등 홍보물을 주민과의 소통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특히 어깨띠는 예비후보에게 합법적으로 허용되고 있는 선거운동 도구다. 하지만 유권자의 냉소적 반응이 팽배한 분위기에서 어깨띠를 두른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실제로 옥천에서 어깨띠를 사용하는 예비후보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다. 오 후보만이 예외였는데, 실제로 그의 선거캠프에는 여러 개의 어깨띠가 구비돼 있었다.    

'정단공천은 거저줘도 안하네요'
'군수 앞에서 빌빌대는 그런 못난 군의원은 되지 않겠습니다'

오 후보가 가장 많이 두르고 다니는 어깨띠 문구이다. 특히 한 군수의 차명계좌 적발을 계기로 지역사회가 발칵 뒤집히면서 두 번째 문구가 뒤늦게 각별한 주목을 받고 있다. 필자가 옥천을 방문했을 때도 그는 이 문구가 적힌 어깨띠를 두르고 시내와 군청을 활보했다.

'동문회장이나 친목계 유사를 뽑는 게 아닙니다. 문중 대표를 뽑는 건 더더욱 아니구요. 능력도 중요하지만 군수를 견제하고 긴장시킬 수 있는 그런 군의원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하질 않습니까? 확실히 보여드리겠습니다. 6월 2일, 눈밝은 유권자들의 선택, 오한흥'

오 후보는 이런 내용을 아주 작은 활자로 인쇄한 어깨띠도 두르고 다닌다. 사람들이 이것을 읽으려면 당연히 후보자에게 가까이 다가와야 하고, 그때 오 후보는 대화를 시도한다. 오 후보는 "어깨띠에는 기호와 이름만 적어야 한다는 규정이 없건만 사람들은 기존의 관행을 습관적으로 따르는 경향이 있다"면서 "조금만 발상을 바꾸고 새로운 시도를 하면 유권자와 소통할 수 있는 방식이 너무나 많다"고 역설했다.       

"선거판 사기극, 이제 유권자가 끝내야 합니다"

다섯째, 오한흥 후보는 사람이 모여 있는 곳이면 무조건 방문해 명함을 살포하는 유권자 접촉 방식을 철저하게 거부하고 있다.

가령 오 후보는 연고주의가 강조될 수밖에 없는 초상집, 동문회, 친목회 등에도 발걸음을 끊었다고 한다.      

"초대받지 않은 행사장이나 초상집을 방문한 예비후보들이 벌떼처럼 나타나서 불쑥 악수를 청하고 명함을 무차별 살포하는 것이 현재 전국에서 진행되는 선거운동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권자를 짜증나게 만들고 후보자의 의욕만 꺾어놓는 이런 사이비 선거운동이 수십 년째 개선되지 않고 반복되는 것은 참으로 국가적 낭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최근 미화원들을 만나 보니 청소하기 가장 어려운 것이 후보자 명함이라고 하더군요."

물론 오 후보가 유권자 접촉을 무조건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직능단체나 이익단체가 후보들을 불러서 토론을 벌이며 자질을 검증하는 경우에는 흔쾌히 참석한다. 하지만 아직은 그런 성격의 모임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은 것이 현실이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유권자의 자세 변화도 중요하다는 것이 오 후보의 생각이다.   

"유권자가 타락했고 무지하기 때문에 관권선거나 금권선거가 효과적이라는 일부 선거꾼들의 주장은 지독한 편견일 뿐입니다. '노사모'로 상징되는 선진적인 유권자의 생활정치를 통해서 이러한 편견과 선입견은 이미 깨졌습니다. 배신을 주제로 한 속고 속이는 선거판의 사기극을 눈밝은 유권자가 끝장내야 합니다."

오한흥 후보는 유권자가 위대하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기에 자신의 무모해 보이는 모험도 시작될 수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이 확신이 맞다면 유권자가 나의 진심을 알아줄 것이고, 이 확신이 틀리다면 나는 당연히 떨어질 것"이라면서 "그런 마음으로 선거운동에 임하고 있기에 아무런 걱정도 없고 도리어 신명이 난다"고 말했다. 

5월 13~14일 후보등록과 더불어 보름간의 공식적인 선거운동이 시작되면 오 후보는 주민들과 소통할 수 있는 더욱 참신하고 재미있는 방법들을 선보일 계획이다. 그는 언론이 주목하고 다룰 수밖에 없는 다양한 흥행 카드 준비를 이미 끝내놓았다는 말도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밝혀둘 것이 하나 있다. 애초에 필자는 이 기사의 제목을 '오한흥의 군의원 선거운동 분투기'로 정했었다. 그런데 막상 취재를 끝내고 기사를 작성하면서 '즐거운 선거운동기'로 바꿀 수밖에 없었다.


태그:#오한흥, #옥천전투, #지방선거, #옥천신문, #선거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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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환 기자는 월간 말 취재차장으로 일하고 있으며 언론, 지역, 에너지, 식량 문제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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