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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대생들이 가장 선망하는 직업이라는 아나운서. 매일 밤 9시면 어김없이 TV 화면에 나타나 지적이고 우아한 모습으로 그날 있었던 뉴스를 차분하고 신뢰감 있게 전달하는 모습은 뭇 남성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요, 뭇 여성들에게는 닮고 싶은 이데아다.

아마도 그래서일 것이다. KBS, MBC, SBS 같은 지상파 방송의 아나운서 모집은 1000대 1을 훌쩍 넘는 엄청난 경쟁률을 보인다. 경쟁률 1000대 1이라고 한다면 1000명 중 1명만 선택되고 나머지 999명은 탈락한다는 의미인데, 그렇다면 나머지 999명은 어떻게 사는 것일까? 999명 중의 1명인 <한국노동방송> 정혜림(27) 아나운서를 만났다.

인형처럼 예쁜 아나운서 지망생... 정치는 묻지 않네

정혜림 아나운서
 정혜림 아나운서
ⓒ 양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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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3사, 그러니까 KBS, MBC, SBS 아나운서가 되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아카데미도 다니고 시험도 많이 보러 다녔는데요. 솔직히 되는 사람들은 0.001퍼센트잖아요. KBS, MBC, SBS, 그리고 YTN 정도 외에는 거의 제대로 된 대접을 받기가 힘듭니다. 정규직 일자리 자체도 많지가 않고, 사내 아나운서 같은 경우도 대부분 계약직이거든요. 그리고 대부분 경력직으로 뽑거든요. 그러다 보니 잘 알려지지 않은 방송국의 리포터를 뽑는 데에도 몇백 명씩 지원자가 몰립니다."

2003년 중앙대학교에 입학한 정혜림씨는 고등학교 시절 방송부를 하면서 키워왔던 아나운서의 꿈을 이루기 위해 정치외교학과 국문학을 복수전공했다. 그런데 막상 아나운서 준비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고 나서 접한 현실은 그녀의 생각과 큰 차이가 있었다.

"아나운서를 준비하려고 아카데미에 들어갔더니 정말 얼굴이 인형처럼 예쁜 친구들이 있더라고요. 전공은 무용, 미술, 바이올린, 이런 친구들이 굉장히 많았고요. 그러다 보니 내가 아나운서가 되기 위해 준비했던 것들이 사실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들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나운서 시험 보러 다니면 정치 같은 것을 물어보는 곳은 거의 없고요. 대부분 대본 읽는 것만 시키더라고요. 젊고 예쁜 아가씨들이 잠깐 단기적으로 소모됐다가 사라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정혜림씨는 2008년 가을의 어느날 우연히 아나운서 모집 공고를 보고 소위 운동권(?) 언론사인 '민중의 소리'가 운영하는 <한국노동방송> 아나운서에 지원했다. 학창 시절에 운동권과는 전혀 인연이 없었던 그녀는 단순히 1년 정도 경력을 쌓겠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지원을 했단다.

"입사하고 3개월간 수습이었는데요. 아나운서 교육보다는 오히려 기사쓰기, 카메라 촬영하고 편집하는 방법, 사진 촬영, 오디오 편집 등을 배우고, 하여간 방송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배웠습니다. 아나운서 아카데미에서는 고급스럽게 말하는 방법만 배웠거든요. 호기심이 많은 성격이라서 재미있었습니다."

일반 아나운서가 받을 수 없는 전천후 교육을 받았기 때문일까? 그녀는 다른 아나운서들은 10년이 걸려도 하기 힘든 다양한 경험들을 아나운서 1년 만에 두루 섭렵하게 되었다.

"처음 들어왔을 때 일주일 만에 현장 리포팅을 시키시는 거예요.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서 1시간짜리 시사 라디오를 하라고 하시더라고요. 그것도 생방송으로요. 대본도 제가 직접 쓰고요. 단식 중인 이정희 국회의원과 한 시간짜리 토크쇼를 하기도 하고요. 다짜고짜 그렇게 시키는데 그게 순발력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되더라고요. 진짜 언제 제가 그런 무대에 서 보겠어요? 국회의원과 토크쇼를 하고 말이에요. 일반 방송국에서 리포터나 아나운서를 해도 그런 기회가 절대 없거든요. 이제 1년 좀 넘었는데 아나운서로서의 일 외에도 가끔 기사도 쓰고 필요한 때에는 카메라 기기나 오디오를 다루기도 합니다."

위험기피자, 위험한 언론사의 아나운서가 되다

'도도한 뒷담화'의 캡쳐화면
 '도도한 뒷담화'의 캡쳐화면
ⓒ 정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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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림 아나운서는 <정혜림의 발칙한 뉴스>(월-금 오전 10시 10분~11시 30분)와 <도도한 뒷담화>(수요일 오후 3시 10분)를 진행하고 있다. 한 주간 누리꾼들이 열광했던 이슈들을 되짚어 보는 시사만평 코너인 <도도한 뒷담화>는 실제 정혜림씨가 직접 기획하고 대본까지 작성하는 프로그램인데 40회를 넘어설 정도로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다.

이 외에도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다양한 역할을 하다 보니 평일에도 밤늦게 퇴근하는 경우가 많고 주말에도 일이 있을 경우가 많단다. 이쯤 되면 불만으로 입이 삐쭉 나와야 하는 상황일 텐데, 필자에게 자신의 얘기를 쏟아내는 정혜림씨의 얼굴은 무척이나 행복해 보였다.

"여기 회사가 저를 키워주지 못해 안달이 난 느낌이 들어요. 솔직히 저 같은 신입이 어느 회사에 가서 이런 대접을 받겠어요? 처음에 <도도한 뒷담화>도 제가 기획을 해서 직접 촬영하고 편집을 했거든요. 그런데 회사에서 기획이 괜찮다고 하면서 카메라 기자분이 붙고, PD분이 편집을 해주시게 된 거죠. 그래서 지금은 제가 대본만 쓰고 촬영만 합니다.

생각해보면 제가 고등학교 때부터 하고 싶어 했던 아나운서를 하게 된 것이 정말 좋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일하는 회사에서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대학교 때 별명이 '위험기피자'였거든요. 절대 위험한 곳에는 가지 않는다, 이런 것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친구들이 '너 같은 위험기피자가 어떻게 가장 위험하다고 할 수 있는 <민중의소리>에서 일할 수 있냐'라고 얘기해요. 저도 물론 그렇게 될 줄 몰랐죠. 하하하."

정혜림씨는 자신이 <민중의소리>에서 잘 적응할 수 있었던 것은 '욱' 하는 성질이 있어서 그런 것 같다고 얘기한다. 잘못된 것을 봤을 때나 잘못된 대우를 받았을 때나 '욱' 하는 것이 있다는 말이다.

"2009년 1월 1일날 보신각에 현장 리포팅을 하러 나갔어요. 그때는 입사한 지 3개월밖에 안 됐었거든요. 그때 해고당한 전교조 선생님들이 현장에서 풍선을 나눠주시면서 선전전을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선생님들이 풍선을 부풀리는 장소에 전경들이 와서 풍선을 다 터트려 버리고 했거든요. 제가 연락을 받고 카메라 기자 선배와 같이 달려갔어요. 그런데 워낙에 사람이 많으니까 좁은 공간에 많은 사람들이 밀집된 거예요. 그때 전경들이 밀어붙이는데 제가 벽과 전경 사이에 끼었거든요. 그런 상황에 닥쳐본 적이 없어서 너무 무섭고 눈물이 울컥 날 것 같은 거예요.

그때 순간적으로 제가 '욱'했어요. 눈물이 나려고 하다가, '내가 왜 울어! 울면 지는 거야!' 그러면서 막 전경한테 밀지 말라고 소리를 질렀어요. 그랬더니 제 옆에 있던 전경이 저한테 욕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욕을 해줬죠. 정말 울분이 터지더라고요. 풍선을 불법시위용품이라고 하면서 막 터트리는 거예요. 정말 화가 나더라고요."

라디오 방송을 진행할 때면 청취자들이 주로 민중가요를 많이 신청한단다. 그런데 민중가요를 잘 몰라서 신청한 것이 노래 제목인지 가수 이름인지 헷갈리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고 웃으며 얘기하는 정혜림씨. 아직도 '동지'나 '총화' 같은 운동권 단어들이 낯설게 느껴진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는 이전에는 자기와 상관없다고 생각했던 그 곳에서 새로운 인생의 전망을 찾아나가고 있었다.

"저 운동권 출신 아니에요"

'정혜림의 발칙한 뉴스'를 진행중인 모습
 '정혜림의 발칙한 뉴스'를 진행중인 모습
ⓒ 정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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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아나운서가 되면 제 꿈이 끝나는 줄 알았습니다. 방송3사 아나운서 들어가는 것, 이것 외에는 없었던 거예요. 솔직히 인생이 몇 년인데, 20대에 이룰 수 있는 아나운서 되는 것이 끝이었던 거예요. 생각해보면, 내가 만약에 정말로 운이 좋아서 방송3사 아나운서에 들어가게 됐다면 그때는 얼마나 허탈했을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저는 지금 <민중의소리>에서 키워주는 메인 아나운서로 꿈을 이뤘어요. 이제는 아나운서라는 꿈만으로 한정짓고 싶지는 않아요. 나중에 뭐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최대한 나 자신을 어디 내놔도 역할을 할 수 있는 만능인으로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정혜림씨는 언론으로서 <민중의소리>가 운동권이나 진보 쪽에만 통용되고 읽히는 것이 처음에 시작할 때는 긍정적일 수 있지만 어떻게 보면 한계가 될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고 말한다. 그런 측면에서 자신이 '다리'의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라고 조심스럽게 얘기한다. 정혜림씨 자신이 운동권 출신이 아니기 때문에 그러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민중의소리>가 그녀 자신을 변화시켰듯이, 그녀는 세상과 <민중의소리> 사이의 다리가 되어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은 것이다.

"제가 바른 곳에 서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자부심이 있습니다. 같이 일하는 회사 사람들이 존경스럽습니다. 너무 멋진 사람들이에요. 동료의 일을 자기 일처럼 생각하고 함께 도와주는 모습이 정말 좋아요."

그녀는 분명 지상파 3사의 아나운서 1000대 1의 경쟁률을 뚫는 데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하지만 대한민국 아나운서 1000명을 모아놓고 행복률을 비교한다면 아마도 그녀는 당당히 1위를 하지 않을까? 자신이 하는 일에서 보람과 자부심을 느끼며 함께 일하는 동료들을 존경할 수 있는 사람보다 더 행복한 이를 찾는다는 것은, 적어도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정말로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주변 분들중에 단순히 취업준비와 스펙쌓기를 넘어서 도전적인 삶으로 희망을 일구어나가는 20대 30대의 청년이 있다면 이메일 reltih@nate.com 로 추천해주세요. 많은 분들의 관심 부탁드립니다.



태그:#정혜림, #아나운서, #민중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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