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전주 경기전 앞에서 공연을 하고 있다.
▲ 남사당패 전주 경기전 앞에서 공연을 하고 있다.
ⓒ 김준희

관련사진보기


2박 3일 일정으로 전주에 내려오면서, 우리들은 전주의 맛있는 음식들을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었다. 전주에 가는 이유는 <2010 아시아태평양 무형문화유산 축제>를 구경하기 위한 것이지만,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먹는 즐거움을 빼놓을 수는 없다. 축제가 열리는 곳이 맛으로 유명한 전주이니 그 기대감은 더욱 커지는 것이 당연하다.

우리들은 전주에서 반드시 먹어야 할 음식들을 골라보았다. 우선 유명한 전주막걸리집에서 막걸리를 마시고, 그 다음으로는 콩나물국밥, 비빔밥, 한정식을 차례로 맛보기로 했다. 전주에 내려왔으니 이 정도는 먹어줘야 구색을 갖춘 여행이 될 것이다.

콩나물국밥은 늦은 아침 겸 점심으로 먹는 것이 적당하다. 그리고 콩나물국밥을 맛있게 먹기 위한 방법 중 하나는 그 전날 떡이 되도록 술을 퍼마시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첫째 날 일정이 모두 끝난 오후 9시경에 차를 타고 전주시내에 있는 한 막걸리집을 찾았다. 막걸리값만 지불하면 수많은 안주들이 함께 나오는 집이다. 전주시내에는 이런 막걸리집이 많이 있다고 한다.

우리가 찾은 곳은 '막걸리일번지'라는 집이었다. 2시경에 갈비탕을 먹고나서 지금껏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그러니 얼마나 배가 고플까. 다소 허름한 실내에 사람들이 탁자를 차지하고 앉아서 막걸리와 맥주를 마시고 있다. 나의 눈에 우선 들어온 것은 탁자 위를 가득 매운 음식들이었다. 저렇게 많은 음식들이 함께 제공된단 말인가. 한쪽 벽에는 가격이 적혀있다. 막걸리 세 병에 1만2000원, 소주 두 병에 1만2000원, 맥주 세 병에 10000원이다.

전주에 가면 먹어야할 음식들

막걸리 세 병을 시키면 이런 음식들이 함께 나온다.
▲ 전주 맛집 막걸리 세 병을 시키면 이런 음식들이 함께 나온다.
ⓒ 김준희

관련사진보기


서울 시내 술집에서 막걸리 한 병에 3000원 정도하는 것이 일반적이니까 술값만 가지고 따진다면 약간 비싼 편이다. 하지만 수많은 음식들이 함께 나온다고 하니까 이건 전혀 비싼 것이 아니다.

"막걸리 세 병 주세요!"

술을 주문하고 우리도 한쪽 탁자에 앉았다.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음식들이 탁자에 놓이기 시작한다. 고등어찜과 두부김치, 삶은 계란, 잡채, 번데기, 다슬기, 게장, 정체를 알 수 없는 생선요리 등이 탁자 위를 빈틈없이 채웠다. 이 많은 접시들을 제대로 배열하기 위해서도 나름대로의 요령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탁주 세 병이 담긴 주전자가 나왔다. 이렇게 팔아서 과연 얼마나 남을까.

"이렇게 장사해서 남을까요?"
"남으니까 장사하겠죠?"

물론 상식적으로 생각하자면 그렇다. 하지만 세상이 어디 우리 상식대로 돌아가던가? 막걸리집 걱정은 둘째치고 우선 허기진 내 위장 걱정부터 하기로 했다. 잔뜩 굶은 장정 여러 명에게 이 정도 음식은 결코 많은 것이 아니다. 우리는 시원한 막걸리를 꿀꺽 꿀꺽 마셔가며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막걸리 한 주전자는 금방 동이 나고 말았다. 한 주전자를 더 시키자 이번에는 매운탕과 파전이 덤으로 나왔다. 그것도 다 마시고 한 주전자를 더 주문하니까 간장게장과 주먹밥이 한 접시 나왔다. 마지막으로 한 주전자를 더 시키니까 뭐가 나왔더라? 여기까지가 내 기억력의 한계인가 보다. 막걸리 네 주전자 그러니까 12병이 이곳에서 우리들의 한계이기도 했다. 우리가 먹은 술값은 4만8000원. 서울에서 이 정도 음식과 막걸리를 먹으려면 4만8000원 가지고는 어림도 없다. 우리는 전주에 들어온 첫날밤을 계획대로 만족스럽게 보낸 것이다.

푸짐한 안주와 함께 막걸리를 마신 첫날

막걸리 세 병을 더 시키면 나오는 매운탕
▲ 전주 맛집 막걸리 세 병을 더 시키면 나오는 매운탕
ⓒ 김준희

관련사진보기


전날의 음주에도 불구하고 다음날 오전에 일어났더니 전혀 숙취가 없었다. 우리가 마신 막걸리는 '사선막걸리'. 세 번의 여과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머리가 아프지 않고 트림도 없는 막걸리란다.

숙취가 있건 없건 술 마신 다음날이니 해장을 제대로 해줘야 한다. 그래야 저녁에 또 마셔줄 수 있다. 숙소 근처에 있는 남부시장으로 들어가니 콩나물국밥을 하는 집들이 많다. 우리가 택한 곳은 콩나물국밥, 시래기국밥을 전문으로 하는 '근대옥'이었다. 콩나물국밥이 사천원이고 모주 한 잔에 이천원이다. 콩나물국밥과 모주를 함께 주문했다. 이주제주(以酒制酒), 술로 술을 다스리는 셈이다.

일행 중에서 나하고 다른 한 명은 내일 아침 일찍 다음 일정을 위해서 광주로 떠나야 한다. 그럼 오늘의 음식 일정을 어떻게 정하는 것이 좋을까. 4-5시경에 전주비빔밥을 먹고 9시경에 오늘 행사가 끝나면 한정식을 먹으면서 한 잔 하기로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것이 가능하리라고 우리는 믿고 있었다.

콩나물국밥의 기본 반찬
▲ 전주 맛집 콩나물국밥의 기본 반찬
ⓒ 김준희

관련사진보기


해장에 좋은 시원한 콩나물국밥
▲ 전주 맛집 해장에 좋은 시원한 콩나물국밥
ⓒ 김준희

관련사진보기


"장이 열렸다, 때려라!"

경기전(慶基殿) 앞을 가득 메운 관객들 앞에서 남사당패가 공연을 벌이고 있다. 판소리, 고성오광대(固城五廣大) 모두 좋았지만 역시 이번 축제의 백미는 남사당이 장식했다. 남사당 여섯 마당 중에서 풍물과 살판, 버나 이렇게 세 마당만 펼쳐졌지만, 관객들을 사로잡기에는 충분했다. 힘차게 돌던 버나 접시가 공중으로 솟구쳐 오르고, 바닥에 깔린 멍석 위에서 제비돌기를 한다. 공연이 끝나자 관객들은 힘찬 박수로 화답했다.

귓가에 멍하게 떠도는 꽹과리 소리와 함께 우리도 경기전 옆에 있는 '종로회관'으로 향했다. 여기는 전주인데 웬 종로? 거리에서 현지 사람에게 "비빔밥 잘 하는 집이 어디냐?"라고 물었더니 추천해준 곳이다. 35년의 전통을 가진 집인데 비빔밥 한 그릇에 만원이다.

비빔밥과 모주를 주문하자 여러가지 반찬들이 먼저 나온다. 막걸리에 계피와 생강을 넣고 끓여서 만든 모주는 달착지근한 맛이다. 이 모주에 푸짐한 반찬들만 먹어도 배가 부를 것만 같다. 잠시 후에 비빔밥도 나왔다.

원래 비빔밥은 젓가락으로 비벼야 제맛이라고 한다. 그래야 재료에 손상이 덜 가고 밥이 으깨지지도 않는다나. 나도 시도해 보았으나 영 힘들다. 어렸을 때부터 남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젓가락질을 했던 나에게 '젓가락으로 비빔밥 비비기'는 정말 어려운 일이다. 잠시 젓가락을 놀려보다가 급한 마음에 그냥 수저를 들고 쓱싹 비벼 버렸다. 재료가 손상이 되건 말건, 밥알이 으깨지건 말건 어차피 뱃속에 들어가면 다 마찬가지 아닐까.

계획대로 되지않아 더욱 기억에 남는 여행

비빔밥을 시키면 나오는 반찬
▲ 전주 맛집 비빔밥을 시키면 나오는 반찬
ⓒ 김준희

관련사진보기


비빔밥이 나왔다
▲ 전주 맛집 비빔밥이 나왔다
ⓒ 김준희

관련사진보기


"다이어트 하려는 사람은 전주에 오면 안 되겠네."

일행 중에서 한 명이 이런 말을 한다. 사실 다이어트는 내가 해야 하는데.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음식들 앞에서 다이어트는 초현실적인 단어처럼 들린다. 지방에 내려온 김에 푸짐하게 먹고, 서울에 가서 다시 열심히 운동하면 된다. 이렇게 핑계거리를 찾고 나는 맛있는 비빔밥을 부지런히 입으로 넣었다.

비빔밥까지 배불리 먹었으니 이제 남은 것은 한정식뿐이다. 한정식을 먹고나면 내일 아침에 가벼운 마음으로 광주로 떠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계획은 여기서 틀어지고 말았다. 2일 째의 행사가 끝난 시간은 오후 9시,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문을 연 한정식 집이 행사장 근처에 없는 것이다.

택시를 타고 시내로 나가려고도 했지만 택시기사의 말도 마찬가지다. 이 시간에 들어가서 편하게 술 마실 만한 한정식집이 없단다. 이걸 어쩐다. 언제 다시 전주에 올지 모르는데 한정식은 결국 못 먹게 되는 건가. 포기가 빠른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한정식은 다음으로 미루기로 했다. 그 다음이 과연 언제가 될지 알 수 없지만. 여행이란 100% 완벽하게 계획대로 되는 법이 없다. 항상 뭔가가 어긋나서 색다른 즐거움이나 아쉬움을 던져주는 것이다.

꿩 대신 닭이라고, 우리는 한정식 대신에 '조개까는 세상'이라는 조개구이집으로 들어갔다. 간판에 특정한 글자를 크게 써두었기 때문에 멀리서 보면 '조까세'라고 읽힌다. 한정식도 좋지만 조개구이도 좋다. 하긴 술과 편안한 동료들이 옆에 있다면 무슨 음식인들 안 좋을까. 매콤하게 양념을 한 조개구이과 함께 전북 소주 '하이트'를 마신다. 하이트를 마시는 것도 이 밤이 마지막이다. 조금은 아쉬운, 그래서 더욱 기억에 남을 전주에서의 이틀이다.

한정식 대신에 먹은 조개구이
▲ 전주 맛집 한정식 대신에 먹은 조개구이
ⓒ 김준희

관련사진보기



태그:#전주 맛집, #전주비빔밥, #전주막걸리, #콩나물국밥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