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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누비며 봉사활동을 하고 베스트셀러 저자로도 유명한 한비야씨 때문인가? 확실히 국제기구가 인기는 인기다. 인터넷에서 '국제기구'라는 단어로 검색을 해보니 청년학생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그 무슨 설명회, 세미나, 강좌 같은 것이 줄줄이 검색되어 나온다.

 

<조선일보>에서 애드벌룬을 띄우고 있는 'G세대'라는 단어도 'Global'에서 G를 따왔다고 하지 않나. 필자도 길거리에서 앰네스티(국제사면위원회) 회원을 모집하는 캠페인을 여러 번 목격했다. 그런데 이런 분위기, 뭔지 모르게 불편하다. 그래서 수많은 젊은이들의 선망의 대상인 국제기구에 대해 다른 목소리를 들어보고 싶었다.

 

"전쟁이 어디서 나는지 알려면 국제기구가 내건 이슈를 보라" 

 

 

"제 친구가 캐나다에서 1년 정도 머물면서 그 곳의 반전운동단체에서 활동을 했는데요. 그때가 2007년이었거든요. 당시에 한창 '휴먼 라이츠 워치(HUMAN RIGHTS WATCH)'나 '앰네스티(AMNESTY)' 등의 국제기구들에서 이란의 인권 문제를 엄청 이슈화시키고 있었어요. 이란에서 레즈비언 여성이 탄압을 받고 있다, 이런 식으로 말이죠. 그때 캐나다의 반전운동단체 친구들이 이렇게 얘기했다고 하더라고요. '다음에 전쟁이 어디서 나는지 알려면 휴먼 라이츠 워치나 앰네스티가 내세우는 이슈들을 보면 안다. 다음은 분명 이란이다'라고 말이죠."

 

미국이 이란의 핵시설에 의혹을 보내며 이란을 침공하느니 마느니 하는 그 시점에 소위 국제기구들은 우연인지 필연인지 이란의 인권문제를 들먹이고 있었던 것이다. 국제연대운동단체 '경계를넘어'의 활동가 한수진씨의 얘기는 계속된다.

 

"보스니아 내전에서도, '국경없는 의사회'에서 사람들이 죽어간다는 보고서를 계속 발표했는데요. 그 보고서를 근거로 미국이 보스니아 내전에 무력으로 개입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상황이었거든요. 오히려 미국의 무력개입으로 엄청난 인명피해가 났지요. 미국이나 프랑스, 영국 같은 나라들이 아프리카에 소위 평화유지군을 보낸다든지 동유럽 같은 국가들에 개입을 한다든지, 그럴 때 근거로 삼는 것이 국제기구들의 보고서거든요. 실제 그런 보고서들은 전혀 객관적이지 않아요."

 

2000년에 숙명여대 의류학과를 입학한 한수진씨는 가톨릭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학생운동을 접했다. 대학교 때 처음 나간 집회가 국가보안법 반대 집회였는데 당시는 국가보안법이 뭔지도 몰랐다고 웃으며 얘기한다. 이후 가톨릭대학생연합회 부의장이 된 그녀는 3년마다 열리는 세계 가톨릭학생회 총회에 참여해 아프리카, 스리랑카, 인도, 유럽 등에서 온 학생들을 만나면서 국경을 넘어선 차별이나 빈곤 등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2004년 인도 뭄바이에서 열린 세계사회포럼에도 참여한 한수진씨는, 전 세계적인 차별이나 빈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경을 넘어서서 연대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 문제의식 속에서 2006년 6월부터 국제연대운동단체 '경계를넘어'에서 상근을 시작해서 지금까지 국제연대활동가로 살고 있다.

 

"아이티 흑인들은 폭도, 유엔평화유지군은 착한 경찰이란 도식 자리 잡아"

 

 

"휴먼 라이츠 워치같은 서방인권단체들이 생각하는 인권의 개념과, 우리가 보는 인권의 개념이 다른 것 같습니다. 서방인권단체들을 보면, 누군가를 인권침해의 상황에서 구해줘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이 서로 평등한 관계에서 도움을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시혜의 관점에서 이루어집니다. 자신들은 사람들을 구조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자신들이 정치적으로 가지고 있는 생각들이 모두 다 올바르다는 식이죠. 서방인권단체들이 이슬람 여성들이 입는 부르카 문제를 많이 지적하는데요, 이슬람의 역사와 전통을 무시한 채 그 무슨 여성 억압이라면서 부르카를 벗겨야 아랍 여성들이 자유로워진다고 얘기합니다. 굉장히 거만하죠."

 

하긴 우리가 개고기를 먹는다고 눈에 쌍심지를 켠 프랑스의 여배우를 떠올려보면 이슬람의 부르카에 치를 떠는 서방인권단체의 심리가 대충은 이해가 된다. 한수진씨는 서방인권단체들의 그런 행태에서 인종주의의 냄새가 난다고 말한다.

 

"그 사람들은 미국이나 유럽 백인들의 나라에 있는 인권문제는 크게 다루지 않습니다. 자신들은 인권침해가 없는 민주적인 사회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아시아나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 등은 덜 민주화되고 인권침해 소지가 매우 많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 자체가 기본적으로 인종주의가 깔려 있는 것입니다."

 

역설적이게도 우리가 국외의 소식을 얻는 경로는 대부분 서방의 외신을 통해서이다. 우리나라의 국제뉴스는 대부분 서방의 외신을 그대로 번역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알게 모르게 우리는 서방의 시각을 통해서 세계를 보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는 특파원을 보내서 얻는 정보도 서방의 외신을 번역하는 것과 별 다를 것이 없다. 이번 아이티 대지진을 보도하는 언론의 모습이 그런 한계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대부분의 언론사들이 아이티에 특파원을 보냈는데요, 나오는 기사들을 보니 정말 이 사람들이 가서 누구를 만나고 어떻게 취재를 했는지가 빤히 보이더라고요. 아이티는 프랑스의 식민지였지만 불어와는 또 다른 크리올어라는 식민지 언어를 주로 사용하는데, 그 언어를 할 수 있는 한국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특파원들은 현지에서도 주로 외신이나 영어사용자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죠. 그래서 거기서도 외신을 받아씁니다. 보수언론이나 소위 진보언론이나 거의 차이가 없더군요. 해외에서는 미국이나 서방이 군대를 파견해서 아이티를 사실상 점령하는 데에 우려와 반대의 목소리가 많은데, 국내에서는 그런 내용을 다루는 언론도 없고 우리도 당연히 아이티에 파병을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죠. 아이티의 흑인들은 폭도이고 유엔평화유지군은 치안을 담당하는 착한 경찰이라는 식의 편견이 자리 잡고 있더라고요."

 

이런 외신 보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경계를넘어'에서는 2005년부터 5년째 인터넷 라디오를 운영하고 있다. 민주노총의 노동방송국과 마포FM에서 매주 1회 방송되는 '경계를넘어' 인터넷 라디오는, 1시간동안 진행되는데 전반부 30분은 세계 각지의 이슈들을 짧게 브리핑하고 후반부 30분은 한 가지 주제를 깊이 있게 다룬다. 그동안 방송된 내용을 '경계를넘어' 홈페이지(http://www.ifis.or.kr)에서 파일로 다운 받아서 들을 수 있다.

 

"아프가니스탄에 들어가는 구호사업비의 70%가 구호단체의 인건비로 책정되어 있습니다. 뭔가 크게 잘못 되었지요. 구호사업이란 것이 그 나라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는데 말이죠. 우리나라 국제구호사업의 경우는 월드비전 같은 경우처럼 종교가 기반이 된 경우가 많은데요. 종교색깔이 많이 묻어나는 것도 문제이지만, 기본적으로 그 사람들은 자신들이 구호활동을 하는 지역의 사람들을 신뢰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지역의 사람들이 늘 자신들의 도움을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만 하고, 정작 그 지역의 사람들이 뭘 원하고 어떤 것이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제가 아는 친구가 아프리카에 갔을 때, 사람들이 길에서 분유를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파는 것을 봤는데요. 한국 월드비전에서 보내 준 분유인데 아무도 안 가져가서 길에서 팔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단순히 시혜의 측면에서 일방적인 자선활동만 하는 것은 문제입니다. 그 지역의 사람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언제나 아프리카나 아시아 지역 어린이들은 굶주리고 늘 외부의 도움을 기다리는 존재로만 인식되는 것도 문제이죠. 이것도 일종의 인종주의적 편견입니다."

 

그러면 국제활동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젊은이들은 어떤 시각에서 접근을 해야 할까? 한수진씨는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굶주리거나 병에 걸렸거나 교육을 받지 못하거나 옷을 지저분하게 입은 사람일지라도 똑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에서 출발했으면 좋겠어요. 우리도 누구한테 도움을 요청할 때 자존심이 상하잖아요. 그 사람들도 똑같아요. 그 사람들도 자기가 스스로 뭔가 해 나갈 수 없고 외부의 도움에 의존할 수밖에 없을 때 무력감을 느낄 수밖에 없고 자존심이 상할 수밖에 없어요. 우리나라가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좀 더 나은 사회를 만든 것처럼 다른 아프리카나 아시아의 사람들도 충분히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단지 외세의 개입이나 경제적인 조건 때문에 어려움이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람도 나와 똑같은 사람이라고 신뢰한다면, 어떤 지역에 가서 다른 나라 사람과 어떤 상황에서 만나더라도 그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한수진씨와 얘기를 하면서 필자의 머릿속에는 예전에 읽었던 한 권의 책이 떠올랐다. <경제저격수의 고백>이라는 책이다. 미국 기업과 정부의 이익을 위해 세계 각국의 경제를 파탄으로 이끈 존 퍼킨스라는 미국인이 고해성사를 하듯 자신의 경제저격수로의 경험담을 쓴 책이다. 그가 이렇게 경제저격수의 활동을 할 수 있는 기반은 젊은 시절 제3세계를 다니며 했던 국제봉사활동에 있다. 그는 이 책에서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 경제저격수로 훈련되고 포섭되었는지를 적나라하게 써놓았다.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책이다.

 

인터뷰 기사를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왠지 낯익은, 그리고 불쾌한 인권타령의 소리가 들려온다. 최근 한나라당과 수구세력들이 그 무슨 '북한인권법'을 통과시키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고 한다. 그 모습에서 인종주의에 물든 서방인권단체의 그림자가 보인다면 너무 과한 것일까? 이런 말을 해 주고 싶다.

 

'인권? 너나 잘하세요!'

덧붙이는 글 | 주변 분들중에 단순히 취업준비와 스펙쌓기를 넘어서 도전적인 삶으로 희망을 일구어나가는 20대 30대의 청년이 있다면 이메일 reltih@nate.com 로 추천해주세요. 많은 분들의 관심 부탁드립니다.


태그:#경계를넘어, #한수진, #국제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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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와인에 몹시 진심입니다만,> <피아노에 몹시 진심입니다만,> <사회주의자로 산다는 것> <나는 행복한 불량품입니다> <삶은 어떻게 책이 되는가> <원숭이도 이해하는 공산당 선언> <원숭이도 이해하는 마르크스 철학> 등 여러 권의 책을 쓴 작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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