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 목. 길.단어 그 자체에 향수와 낭만이 묻어난다. 좁다란 골목길에서 친구들과 공차기도 하고 고무줄 놀이를 하던 그 시절, 어린이들에게 골목길은 하나의 놀이터이자 꿈을 키우게 해주는 장소였다. 그리고 잠시 골목길에 대한 추억이 사라질 즈음, 최근 골목길에 대한 추억과 낭만을 문화예술 공연으로 다시 복원하는 작업이 이루어지면서 골목길이 문화예술의 대안 공간으로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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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골목길 연극이벤트 11월 21일 막을 내린 옛골목을 살아있다. 연극이벤트 현장모습 |
| ⓒ 이현엽 | 관련사진보기 |
골목길은 공연무대이자 미술 전시장우선 지난 11월 21일 막을 내린 대구문화재단 후원의 '옛 골목을 살아있다' 연극 이벤트는 골목길을 무대로 한 성공적인 연극이었다. 이번 연극 이벤트는 대구에 잘 보존된 옛 골목을 통해 과거 일제시대와 한국전쟁 후의 기억을 떠올리고 이를 연극으로 표현하고자 약 2달간 대구 뽕나무길과 향촌동 진골목 일대에서 펼쳐졌다.
무엇보다도 이번 연극 이벤트의 가장 큰 성과는 골목길을 무대로 관객과 배우가 구분 없이 소통이 이루어졌다는 점이었다.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이상화 고택 앞에서 열린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경우 살아있는 역사교육의 현장으로 인기를 끌었던 가운데 국채보상운동의 주인공인 서상돈이 나타나 "금연해서 나라 빚을 갚자"고 외칠 때 관객들도 배우들과 어울려 독립만세를 외치고, 3․1절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성내동 진골목에서 이루어진 '향촌동 그 시절', '진골목 그때 그 이야기'에서도 관객들은 화가 이중섭과 함께 막걸리를 마시기도 하고, 피난민 무리에 섞여 얼떨결에 골목을 도망치듯 뛰는 관객도 있었다. 공연이 끝날 무렵에는 배우와 관객이 너나없이 '감격시대' 노래에 맞추어 흥겹게 춤을 추었다.
바로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연극 무대가 펼쳐지면서 연인 및 가족 단위가 많이 참여한 가운데 부산의 '어린이독서경제체험학교' 학생 80여명과 경북대 교양학부 학생 20여명 등 단체관람도 줄을 이었다.
이런 시민들의 반응에 대해 이번 골목길 연극의 작가 김재만씨는 "관객들은 다소 이벤트성 축제 같기도 한 행사를 지켜보면서 우선, 옛 향수에 많이들 젖어드는 것 같았다. 특히 1950년대를 직접 체험한 세대들에게는 감회가 남다른 듯 느껴졌다. 덧붙여, 이 시대를 직접 경험하지 못한 젊은 세대들은 신기함과 재미로서 즐기는 것 같았다. 특히 약장수, 광녀, 야바위꾼, 각설이, 악극단 등 모든 인물 군상들이 그들에게 충분히 볼거리를 제공해준 듯하다"고 언급했다.
이같이 최근 대구시가 골목길을 무대로 연극 이벤트를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이미 경남 통영의 동파랑 마을은 골목길의 외벽이 미술 전시품으로 탈바꿈하면서 통영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되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 최근 서울 종로구는 이화동의 달동네길 계단과 벽에 다양한 그림을 그려 놓고 이곳을 문화적 가치를 위해 보존하기로 결정했다.
이밖에 인천에 배다리라는 지역은 낡은 건물과 좁은 골목길로 문화예술 공간으로 주목받고 있는데, 현재 주민들과 문화·예술인들이 이곳을 역사문화마을이자 새로운 문화예술 공간으로 조성하는 움직임을 벌이고 있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은 '우리동네 예술동네로' 생활문화공동체 만들기 시범사업을 추진하면서 지역 공동체 연극을 위해 사회적 공간과 연극적 공간을 통합하는 과정에 골목길을 포함해 벌이고 있다.
골목길 속 문화예술은 새로운 문화를 만들고이런 움직임 속에 골목길 속 문화예술은 실내 문화공간에 펼쳐지는 문화예술보다 시민들과 더 가깝고, 그 형식과 내용에 있어 기존 문화예술과 다른 신선함과 다양함을 주고 있다.
연극 이벤트를 준비한 김재만 작가는 "골목길 공연을 준비하면서 가장 많이 고민한 부분이 공연 양식의 차별화"라고 밝혔다. 그는 "단순히 무대만 골목길로 옮기고 기존의 방식과 똑같은 형태로 공연을 행한다면 '골목길 공연'이란 취지가 무색해지기에 연극적 기법을 탈피해 마치 한 편의 영화를 촬영하듯 거리공연을 행하는 방법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관객들은 영화관에서 완성된 필름을 보는 것이 아니라, 골목길에서 주연배우 역할을 하는 해설자의 뒤를 따라다니며 매 장면을 체험할 수 있었고, 본인의 선택에 따라 일정한 장소에서 조연역할을 하는 캐릭터를 만나서 즐길 수 있었던 것. 즉, 골목길이란 공간에 극이 새롭게 재구성되면서, 공연예술이 한 단계 발전되어 나감을 볼 수 있으며, 결국 골목길 공연 문화가 정착하는 데도 영향을 줄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골목길이 문화예술의 주된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문화 관광 상품과 연관되어 발전되기도 한다.
문화예술 바탕에 관광 상품으로 진화하고 있는 골목길대구의 골목길 연극이벤트는 현재 대구 중구청 골목 투어와 연계해 펼쳐지고 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골목길 투어를 통해 연극이벤트를 보게 된다. 대구 중구청 골목투어 해설자 이영숙씨는 "현장에서 배우들이 직접 당시 상황을 재현하니까 훨씬 실감나고, 사람들이 더 크게 공감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문화예술거리가 많은 서울 종로구에서도 추억의 관광코스에, 60~70년대 자취가 남아 있는 하늘동네를 포함시켰다. 이밖에 통영의 동파랑은 애초 재개발 지역이었으나 지역의 관광명소가 되면서 재개발이 중단되어 화제가 된 가운데 통영시에서는 지역 주민들 대상으로 관광가이드를 모집하기도 했다.
단순한 추억의 장소에 불과했던 골목길이 관광상품으로 발전되고, 오늘날 문화예술의 대안공간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현재 대구mbc 에서 '골목길'에 대해 다큐멘타리를 제작하고 있는 김혁 FD는 "골목길은 지금의 광장문화를 있게 해준 터전이자 우리 민중의 문화 요람지였다. 잊혀져 갔던 골목길이 지금에 와서 다시 환영 받는 일은 매우 반길 만한 일이며, 여기에 아낌없는 투자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리고 대구의 골목길 이야기를 모아 '골목을 걷다'라는 책을 집필한 저자 영남일보 정혜진 기자는 "전국 어느 도시든 재개발과 재건축이 무분별하게 확산되면서 허름한 골목은 그것이 가진 층층의 역사와 문화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도 못한 채 허물어져가고 있는 것을 보면 안타깝다. 하지만, 뒤늦게나마 역사적인 길과 건축물에 대한 복원작업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게 되면 다행이다. 그리고 국내 여러 도시들이 근대사와 문화 등의 문제에 대한 고민을 골목이라는 소재를 통해 공유되길 바란다"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