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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에서 내놓은 '킨들2'
 아마존에서 내놓은 '킨들2'
ⓒ 아마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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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전자책(e-book)'이 디지털시장의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면서 국내 출판계가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미 10여 년 전 국내 출판계에서는 '종이책'이 사라질 거냐, 안 사라질 거냐를 두고 논쟁을 벌인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도 종이책이 여전히 중요한 매체인 것을 보면 지나친 기우였다는 평가도 있습니다만(참고 : 출판생태계 위협하는 디지털도서관), 출판인들의 바람과는 달리 종이책에 대한 논쟁은 지금부터가 시작인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10년 전만 해도 전자책을 볼 수 있는 기계라 해봐야 PC가 전부였습니다만, 2007년 아마존이 북리더기인 '킨들'을 내놓으면서부터 실제 종이책보다 전자책을 사는 행태가 서서히 트렌드로 자리잡아 가기 때문입니다.

여기저기 기사를 찾아보니 아마존이 2007년 11월에 킨들을 팔기 시작해 벌써 300만대나 팔았군요. 올해에만 55만대를 팔 것으로 추산하는군요. 그 덕분인지 아마존은 올해 3분기 매출 54.5억 달러에 순익이 1.99억 달러를 달성했다고 합니다. 이 수치는 지난해와 대비해 매출이 28%, 순익은 69%나 상승한 거라고 하네요. 매출 증가분에 비해 순익이 크게 증가했다는 것은 유통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전자책 판매가 그만큼 많았기 때문입니다.

소니는 킨들보다 1년 앞서 2006년 9월에 '리더'라는 기계를 내놓았고, 현재는 아마존과 함께 2강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합니다. 현재 전자책 리더기 시장은 아마존 킨들이 60%, 소니 리더가 35%를 차지하고 있다네요. 후발주자인 아마존이 소니를 앞지른 건 아마도 서점 플랫폼을 보유하고 있어 콘텐츠 수급에서 훨씬 유리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국내에서도 전자책 바람

아이리버에서 내놓은 '스토리'
 아이리버에서 내놓은 '스토리'
ⓒ 아이리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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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되자 국내에서도 전자책 바람이 불기 시작합니다. 지금 현재로선 아이리버가 지난 9월에 내놓은 '스토리'가 가장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고 합니다. 출시 이틀만에 초기물량 2000대를 비롯해 3500대를 팔아치웠다고 하죠? 삼성전자도 교보문고와 제휴해 지난 7월에 SNE-50K라는 기계를 내놓았습니다.

이통사들도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최근 아이폰으로 크게 주목을 받고 있는 KT가 킨들을 들여오기 위해 아마존과 접촉 중이라는 기사가 눈에 띄구요, SK텔레콤은 아예 자기 기술로 독자적인 기계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LG텔레콤은 인터파크와 손잡고 내년 2월에 기계를 내놓을 생각이라고 하네요. 이통사들이 전자책 시장에 눈독을 들이는 이유는 매우 간단합니다. 전자책 단말기를 통해 다운로드하게 되면, 그때 생기는 데이터요금을 매출로 잡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보면 전자책 시장은 우리나라가 미국에 비해 한참 뒤처진 것처럼 보입니다만, 사실 1999년에 이미 '북토피아'라는 전자책 전문회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결과는 참담합니다. 그 회사는 총 12만권의 책을 디지털화했습니다만, 그 가운데 10%만 팔았고, 90%의 책은 단 한 권도 팔지 못한 채 무너졌다고 하네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독자들에게 전자책은 종이책보다 불편했기 때문입니다. 하드웨어, 즉 전자책을 읽기 편한 기계에 대한 고민이 없었던 거죠.

어쨌든 내년 2010년은 우리나라에서도 본격적인 전자책 시대가 열릴 거라는 데 대해 이의를 다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시장이 저작자와 출판사, 독자 모두에게 이득이 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디지털화를 먼저 겪었던 음악시장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수익 분배 구조를 잘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나라 음악업계는 모바일 음악시장에서 이통사의 힘에 밀려 매출의 40%에 못 미치는 엄청나게 불리한 조건으로 수익을 배분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에서는 구글과 미국출판업계의 합의사항을 참고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구글은 2004년부터 전자책 사업을 펼쳐오다 출판업계가 '허가 없이 책을 스캔했다'며 저작권 문제를 제기해 마찰을 빚었습니다. 이에 구글은 출판 업계와 끈질긴 협상 끝에 2008년에 협상에 성공하게 되는데요, 그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구글은 저작권협회에 1억 2500만원을 제공하고 도서권리등록기관(Book Rights Registry)를 운영한다.
▲미국 작가협회와 출판사협회 소속회원들은 자기가 원치 않을 경우를 제외하고 여기에 자동 등록된다.
▲여기 등록된 저작물은 개별 허락 없이도 검색하거나 온라인판매를 주선할 수 있다.
▲대신 여기서 발생하는 광고와 판매 수익의 60%를 저작권자에게 제공한다.

구글과 달리 저작권자와 사전 협의를 통해 서비스하는 아마존의 경우 수익배분을 어떻게 하는지에 대해서는 제가 아직 알아내지 못했습니다만, 최소한 저작권자에게 충분하게 보상이 돌아가는 방식으로 분배구조가 만들어져야 출판생태계도 건강하게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정부가 좀 더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영세한 출판사들이 단말기를 쥐고 있는 대기업, 서점을 가지고 있는 대기업을 1:1로 상대하기란 매우 어렵기 때문입니다.

둘째, 웬만한 책은 다 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단말기를 구입한 소비자가 정작 자기가 읽고 싶은 책을 구할 수 없다면 비싼 돈 주고 기계를 살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키는 출판사들이 쥐고 있습니다. 그들이 과감하게 권리를 제공하지 않으면, 전자책 시장은 결코 성장할 수 없습니다.

아마존 킨들은 27만권의 권리를 확보했습니다. 그리고 그 권수보다 중요한 건 바로 베스트셀러, 최신작, 잡지 등도 구독할 수 있게끔 권리를 풀었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개중에는 전자책 출판에 혐오를 느끼고 끝까지 거부하는 출판사도 있겠지만, 최소한 킨들을 이용하는 독자 대부분은 별 불편함 없이 자기가 원하는 책을 대부분 사서 볼 수 있었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는 베스트셀러 100권 중 10권 정도밖에는 디지털화되어 있지 못합니다. 실컷 돈 주고 샀는데 막상 볼 수 있는 콘텐츠가 없는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는 시장이 성장할 수 없습니다. 물론 출판사들이 권리를 푸는 데 주저하는 이유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디지털이란 게 워낙 복제가 수월하기 때문에 잘못 하다가는 불법유통에 사용될 수도 있다는 것이죠. 그러나 이런 추측은 사실과는 좀 다른 것 같습니다. 킨들로 인해 전자책 시장이 성장하는 미국에서 책콘텐츠의 불법복제 문제가 이슈가 된 적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앞서 밝힌 데이터에서 보시듯, 오히려 유료 구매가 크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셋째, 어떤 기계든 내가 산 전자책을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DRM(digital rights management, 디지털 콘텐츠 관리) 문제가 될 수 있는데요, 우리나라 음악시장은 DRM을 지나치게 폐쇄적으로 운영하는 바람에 시장 성장의 기회를 상당히 놓친 게 사실입니다. 소비자가 너무 불편하다 보니 상당수가 아예 사용하지 않는 쪽으로 결정을 해버린 거죠.

전자책도 마찬가지입니다. 내년에만 해도 전자책 단말기가 서너 종류가 더 나올 것 같은데, 그 기계마다 지원하는 파일이 다르다면, 사람들은 금세 그 시장을 외면해버릴 것입니다. 분명히 내 돈 주고 산 책인데, 이 기계는 되고, 저 기계는 안 된다면 누가 전자책을 돈 주고 다운로드 받겠습니까. 최소한의 저작권보호 장치를 제외하면 최대한 소비자의 편의를 제공하려고 하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최근 아마존에서 통계치를 하나 발표했는데요, '킨들을 보유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책을 3.1배나 더 많이 구매했다'는 겁니다. 전자책 단말기가 편리한 플랫폼을 제공함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더 많이 책을 읽게 하고, 실제로 유료 구매로 이어질 수 있다는 매우 중요한 단서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통계는 전자책이 불법복제에 이용되기보다는 합법적인 유료시장을 만드는 데 기여한다는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덤으로 전자책 시장은 오프라인 서점에선 구현하기 어려운 '롱테일 시장'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디지털 책에는 '절판'이라는 개념이 없기 때문에, 가치는 있으나 시장성이 맞지 않아 출판시장에서 퇴출된 수많은 책들이 전자책으로 다시금 부활할 수 있을 것입니다.(* 롱테일 시장 : 비주류, 비인기 상품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 상위 20%를 공룡 몸통에, 비주류 80%를 '길게 늘어진 꼬리(long tail)'에 비유해 만들어짐.)

영세 출판사에 전자책 시장은 기회가 될 수 있어

저는 우리나라 출판계가 전자책 시장에 대해 보이는 부정적인 태도에 대해 솔직히 안타까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혹시라도 불법복제가 되는 날에는 아무 것도 못 건진다는 위기의식은 이해합니다만, 그보다는 전자책 시장에서 오히려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자본력과 마케팅력이 취약한 국내 영세 출판사들은 전자책 시장을 새로운 기회로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저도 전 직장에서 출판을 아주 짧게 경험한 적이 있는데요, 유명작가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실 마케팅의 힘이 매우 크게 작용하는 게 사실입니다. 여기서 마케팅이란, 영업직원을 두고 서점을 관리하는 걸 가리키는데요, 서점 매대를 돌아다니며 우리 책이 위에 올라와 있는지를 항상 살펴야 하고, 그런저런 이유로 서점에 갖다 바치는 마케팅 비용도 장난이 아니더군요. 게다가 기획이 아무리 좋아도 실적이 없으면 메이저 서점을 뚫고 들어가기가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어려웠답니다.

이런 점에서 전자책 시장은 영세 출판사들에게 기회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프라인 마케팅에 소요되는 비용을 아껴서 직접 소통이 가능한 인터넷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으니까요.

미래학자인 제임스 데이터 하와이대 교수는 지난 달 20일 파주출판도시에서 열린 '제4회 파주북시티 국제출판포럼' 폐막연설에서 "출판업계에도 쓰나미 같은 디지털혁명이 닥쳐오는데 이를 간과하면 휩쓸려간다"고 경고하며 "유일한 대안은 파도의 힘을 인정하고 서핑을 익혀 파도를 타야하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참고 : 앞장선 영국, 뒤처진 한국. 디지털시대의 출판, 두 풍경). 아무쪼록 국내 출판업계가 지혜롭게 대처해서 훌륭한 출판생태계를 만드시기를 기원하는 바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필자의 블로그(timshel.kr)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전자책, #킨들, #출판생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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