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나성리를 알리는 안내판
 나성리를 알리는 안내판
ⓒ 곽진성

관련사진보기


정부와 한나라당의 세종시(행정중심복합도시) 수정 논란으로 우리 사회가 뜨겁다. 이에 반발해 이완구 충남 도지사가 전격 사퇴하고, 한나라당, 선진당 충남도의원도 집단 사퇴를 결정, 충청남도의 국정 운영은 비상 상황을 맞고 있다. 

지역 민심도 싸늘하다. 매일밤, 조치원 역에서는 세종시 수정에 반대하는 촛불 시위가 열리는 등 정부의 수정 움직임에 강한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특히 안타까운 마음으로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이들이 있다. 바로 행정도시 예정지, 충남 연기군 남면의 '나성리' 사람들이다.

나성리 주민들은 행정도시가 온다는 자긍심으로 집, 땅, 조상 묘까지 모두 있는 고향을 버리고 이주를 결정했다. 하지만 공약을 지키지 않은 정부에게 제대로 뒤통수 맞을 위기에 처했다. 지난 5일, 연기군 남면 나성리 마을을 찾았다.

행정도시 첫마을? 뒤통수 치려는 정부에 주민들은 부글부글

행정도시 첫마을 예정지를 알리는 안내판
 행정도시 첫마을 예정지를 알리는 안내판
ⓒ 곽진성

관련사진보기

조치원 역에서 대평리행 마을 버스를 타고 30분여를 이동하면 도착할 수 있는 나성리. 버스는 한참을 달린 끝에 금강이 유유히 흐르는 곳에서 정차했다. 나성리를 알리는 큼지막한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2007년 7월 착공된 중심행정타운과 행정도시 첫 마을 조성사업 등으로 연기군 일대에 많은 마을이 헐렸지만, 나성리는 양화리와 함께 아직 헐리지 않고 있었다. 그렇기에 마을에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하지만 여파가 있었다. 120가구에 달했던 마을은 70가구 만이 남았다. 마을 앞에 큼지막했던 교회는 사용하지 않는 폐허가 되어 버렸다. 본격적인 세종시 건설을 앞두고 사람들은 떠났고, 또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현재 나성리 마을은 '첫마을 사업 예정지'라는 또다른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다. 주변에는 세종시를 건설을 위한 공사가 한창이었다. 하지만 수정 논란에 휩싸인 세종시의 앞날은 밝아 보이지 않았다.

나성리에서 만난 이장님
 나성리에서 만난 이장님
ⓒ 곽진성

관련사진보기

나성리 사람들은 정부의 세종시 수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마을 안으로 들어가자 추위 속에서도 밖에 나와 담배를 피는 이가 눈에 띄었다. 한 손에 담배를 쥔 임재금(73)씨는 나성리 마을의 이장이다. 그는 정부의 세종시 수정 움직임에 대해 울분을 토했다.

"나성리 주민들은 행정 부처가 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태어나서부터 지켜온 고향과, 토지, 그리고 조상님들 묘까지 모두 내줬어. 몇 푼 안되는 보상 바라고 그런게 아니야. 우리 지역, 우리 마을에 행정 부처가 온다는 자긍심 때문에 그랬어. 우리보다 우리 후손들은 잘 살라고 말이야. 그런데 지금 이게 뭐야, 뒤통수 맞은거지. 다른 것 필요 없고 원안대로 했으면 좋겠어 "

정부에 뒤통수를 맞았다는 그의 울분은 이유가 있었다. 나성리 마을 사람들은 지역 사회가 행정도시가 된다는 긍지를 갖고 한 평생을 함께한 터전을 떠나는 어려운 결정을 했었다. 그런데 그 행정도시 건설이 전면 수정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마을 안으로 좀 더 들어가니, 자그만한 슈퍼에 마을 주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임형수(76), 임헌묵(72), 김진섭(74), 박영자(65)씨였다.

"씁쓸한 기분으로 마을 떠나야 할 것 같다. 다시 돌릴 수 있었으면" 

나성리에서 만난 주민들
 나성리에서 만난 주민들
ⓒ 곽진성

관련사진보기


그들에게 행정도시 수정 논란에 대한 심경을 들어봤다. 김진섭(74)씨가 입을 열었다.

"나성리는 금강도 흐르고, 참 좋은 마을이야. 독락정(충북문화재자료 제23호)도 있고 말이지. 그런데 한 평생을 살았던 이곳이 이제 독락정만 남겨 둔 채 모두 사라지게 됐어. 행정 도시가 온다고 해서 고향도, 땅도 모두 내줬는데...... 수정을 한다고? 씁쓸한 기분으로 마을을 떠나게 됐어. 다시 돌릴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임형수(76), 임헌묵(72)씨도 맞장구를 쳤다. 김씨의 말은 나성리 마을 주민들의 심경을 대변하고 있었다. 그들은 고향도, 고향을 내주고 얻고자 했던 긍지도 모두 잃은 셈이었다.

마을 주민들은 약속을 어기는 정부는 큰 충격을 받은 듯했다. 그렇기에 얼마 전 대통령의 사과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허울뿐인 '빈말'로 들렸을지도 모르겠다. 친구들이 모두 흩어지게 됐다며 걱정하는 그들은 술을 길게 들이켰다.

나성리는 고물상들이 축사등을 파괴해 골칫거리다. 이에 대한 경고문이 놓여져 있다.
 나성리는 고물상들이 축사등을 파괴해 골칫거리다. 이에 대한 경고문이 놓여져 있다.
ⓒ 곽진성

관련사진보기


폐허가 된 나성리 건물
 폐허가 된 나성리 건물
ⓒ 곽진성

관련사진보기


건물 안에서 나와 마을 구석으로 좀 더 들어가 봤다. 눈에 띈 것은 경고장이었다. 철거를 앞둔 나성리는 고물상들의 훼손 행위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철재를 얻으려는 고물상들이 가옥 및 축사들을 부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마을 곳곳에는 경고문이 놓여져 있었다.

부서진 가옥과 경고문, 그리고 마을 부지의 알 수 없는 미래, 그렇기에 나성리 마을은 을씨년스러웠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나성리 마을 밖으로 나왔다. 세종시 건설이 원안 추진이냐, 수정이냐 미래를 기약할 수 없는 상황에 빠진 데 비해 주변의 금강에서는 논란의 '4대강 살리기 공사'가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4대강 선도사업인 금남보 건설로 많은 트럭들과 굴착기가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 저 논란의 4대강 사업도 세종시 수정 논란처럼 일대 혼란을 겪을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정부 정책의 연속성이 깨진 씁쓸한 광경을 나성리에서 볼 수 있었다. 찹착한 마음을 가지며 취재를 끝내고 돌아가는 길, 학교 수업을 마치고 나성리로 돌아오는 한 남매를 만났다.

"이번에 행정도시가 오는 바람에 학교가 폐교되고, 마을을 떠나야 해서 속상해요. 하지만 우리 마을에 행정도시가 온다니까 좋은 것 아닌가요?"

이영미(15·가명), 이진환(14·가명) 남매는 현재 정부에 의해 추진되고 있는 세종시 수정 논란에 대해선 잘 모르고 있었다. 마을이 철거되어 떠나는 것이 아쉽다는 남매는 그래도 자기 사는 마을이 행정도시가 되니까 좋은 것 아니냐고 밝게 웃었다. 그런 진솔이와 지환이에게 세종시 수정 움직임에 대해 말하지 못했다.


태그:#나성리, #행정 수도 수정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잊지말아요. 내일은 어제보다 나을 거라는 믿음. 그래서 저널리스트는 오늘과 함께 뜁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