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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경기도 과천 중앙공무원교육원에서 열린 하반기 공공기관 선진화 워크숍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28일 경기도 과천 중앙공무원교육원에서 열린 하반기 공공기관 선진화 워크숍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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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만 명의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못 구하는 상황에서 안정적인 평생직장을 보장받는 공기업 노조가 파업을 하는 것은 국민들이 이해하기 힘들고 이해해서도 안 될 것이다. … 공기업 노조의 파업에 적당히 타협하고 가서는 안 된다."

지난 28일 '공공기관 선진화 워크숍'에 참석한 이명박 대통령의 말이다. 전국철도노조의 무기한 파업을 '일자리 창출'이라는 대의명분에 맞지 않는 노조의 이기주의적 행태라고 비판한 것이다. 그러나 정작 일자리 창출을 막아선 것은 노조가 아니라 철도공사였다.

작년 10월 철도공사는 총 114만여 명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ECO RAIL 비전'을 발표했지만 채 1년도 되지 않아 5115명에 이르는 대규모 정원 감축을 시도하고 있다. 게다가 철도노조 김기태 본부장은 30일 오전 민주노총 1층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신규인력 2100명이 필요하다고 확인까지 해줬던 공사 측이 오히려 이제 한 명도 인력을 충원할 계획이 없다고 한다"며 "사실상 7천여 명의 인원이 감축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철도공사 뿐만 아니다. 한국전력공사 산하 5개 발전사는 1570명, 한국가스공사는 350명에 달하는 대규모 인원 감축 계획을 발표했다. "평생직장을 보장받는다"는 공기업 노동자들은 오히려 거리로 내몰릴 위기에 몰려있다.

동의절차도 없다. 지난 24일 단체협약 해지를 일방 통보한 철도공사 뿐만 아니라, 발전 5개사 사장단과 한국가스공사도 노조 측에 단협 해지를 일방 통보했다.

이 모두가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소위 '공공부문 선진화' 때문이다. 정부는 대규모 구조조정을 통한 공기업 효율성 증대를 강조하고 있는 한편, 내년 공공기관장 평가 때부터 '노사관계 선진화 부분'에 대한 배점을 15점에서 20점으로 높이기로 하는 등 사측의 노조 압박을 자연스레 유도하고 있다.

철도노조가 사측의 단체협상 해지통보에 맞서 총파업에 돌입한 가운데 지난 26일 오후 서울역광장에서 '서울지역 철도노동자 총파업 승리 결의대회'가 열리고 있다.
 철도노조가 사측의 단체협상 해지통보에 맞서 총파업에 돌입한 가운데 지난 26일 오후 서울역광장에서 '서울지역 철도노동자 총파업 승리 결의대회'가 열리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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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방적인 '단협 해지'로 파업 내몰린 노조

'대화'의 길이 막힌 노동자들이 내놓을 수 있는 답안은 '파업' 뿐이다.

지난 11일 단협 해지 통보를 받은 가스공사 노조는 지난 27일까지 지역별로 부분 파업을 한 후 총파업을 위한 논의에 들어갔다. 지난 4일 단협 해지 통보 이후 지역별 순환 파업을 진행하고 있는 발전노조 역시 현재 총파업 돌입 여부를 안건으로 상정해 논의 중이다. 또 이들 공기업 노조의 파업이 복수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등과 관련해 연대 총파업을 검토하고 있는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향후 행보와 연결될 때 오는 12월 노동계 동투(冬鬪)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태도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철도노조 백성곤 정책실장은 "과거에는 앞장 서서 대화를 유도하진 않아도 공사를 압박해 대화 자리를 마련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지난 28일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은 노사가 협의에 나서지 말라는 주문과 같다"고 말했다.

백 정책실장은 일례로 "지난 27일 노조가 공사 측에 교섭을 요구했지만 공사 측의 답변이 없다"며 "원래 단협엔 쟁의기간 중에도 일방이 교섭을 요구할 땐 교섭을 하기로 돼 있는데 이를 거부한 것이다, 이번에도 답변이 없을 경우 부당노동행위로 제소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공기업들이 잇달아 단협을 일방적으로 해지한 까닭이 노조의 파업을 유도하기 위해서였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공기업 노조의 파업을 통해 악화된 여론을 등에 업고 노조를 파괴하려는 전략이라는 것이다. 철도공사의 경우 교섭이 진행 중이던 지난 24일 밤 일방적으로 단협 해지를 노조 측에 통보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사회공공연구소 유병홍 객원연구위원은 30일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공기업으로부터 단협 해지를 통보받은 노조는 파업을 할 수밖에 없다"며 "공기업은 그 파업을 깨는 과정에서 노조를 약화시킬 수 있고, 중장기적으로는 단협을 부정함으로써 노조의 위상을 떨어뜨리는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 위원은 이어, "노조의 활동을 보장하고 조합원들의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기능을 가진 단협이 해지된다면 노조 존립 근거가 해체되는 것"이라며 "공기업이 기존의 노사관계를 부정하고 노동자와 개별적인 근로 관계를 구성하겠다는 저의가 단협해지의 배경"이라고 덧붙였다.

민주노총 "MB, 노사 갈등 조장하지 말고 공개토론하자"

한편, 민주노총은 30일 오전 "(이 대통령이) 노사 갈등을 조장하는 발언을 중단할 생각이 없다면 비겁하게 뒤에서 흰소리 하지 말고 공개적인 대화와 교섭에 나서야 할 것"이라며 공공기관 선진화 문제와 공공기관의 노사관계와 관련한 공개토론을 요구했다.

또 민주노총은 "운수노조 철도본부에 대한 탄압이 지속된다면 지난 11월 6일 1차 시기 집중 파업을 전개한 '이명박 정권의 공공기관 선진화 분쇄와 사회공공성 강화를 위한 공동투쟁본부'는 12월 초순에 2차 시기집중 파업에 돌입할 것"이며 "복수노조와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와 연동해 총파업 투쟁을 앞당기는 방안도 논의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현재 민주노총은 공공부문 선진화·복수노조·전임자 임금지급 등과 관련해 오는 12월 8~9일 양대노총 공동투쟁, 12일 공공부분 양대노총 공동집회, 19일 3차 민중대회 공동개최 등의 일정을 확정지은 상태다.

파업 5일차 철도노조 "노조가 대화 요청해도 공사가 귀 막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28일 '공공기관 선진화 워크숍'에 참석해 "파업하는 공기업 노조와 타협하지 말라"고 발언한 가운데 30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민주노총 회의실에서 열린 '철도노조의 합법파업을 불법으로 몰아가는 이명박 대통령 규탄' 기자회견에서 김기태 철도노조 위원장이 파업의 정당성을 설명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28일 '공공기관 선진화 워크숍'에 참석해 "파업하는 공기업 노조와 타협하지 말라"고 발언한 가운데 30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민주노총 회의실에서 열린 '철도노조의 합법파업을 불법으로 몰아가는 이명박 대통령 규탄' 기자회견에서 김기태 철도노조 위원장이 파업의 정당성을 설명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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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 닷새째를 맞는 전국철도노동조합은 정부와 언론의 여론몰이에 힘겨워하고 있었다.

민주노총과 운수노조 철도본부는 30일 오전 민주노총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28일 이명박 대통령의 강경 대응 방침을 성토하는 한편, 철도공사의 대체복무규정 위반 등 불법 행위에 대해 적극 규탄하고 나섰다.

김기태 철도노조 본부장은 "철도공사 허준영 사장은 단체교섭 중에 단체협약을 일방 해지하더니 노조의 버릇을 고치겠다고 공공연히 밝히는 등 전근대적인 노사 의식을 보이고 있다"며 "노조는 갈등과 문제를 풀기위해 대화를 요청했지만 공사가 귀를 막고 있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 본부장은 특히 "철도노조의 파업은 필수업무유지제도를 준수하는 합법 투쟁"이라며 "쟁의 목적도 2년째 협상 중인 단협 갱신과 공사 측의 강제희망퇴직제 등의 임금 및 직군 변경 등 100가지가 넘는 단협 개악안을 막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정부가 공기업 선진화 정책 반대·해고자 복직 등의 요구를 '정치적 목적의 쟁의행위'로 설명하는 것에 대해 "공기업 선진화 정책 자체가 임금·일자리 등의 문제이고 해고자 복직의 문제는 전에 공개했듯 노사 합의서까지 존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본부장은 이어, "허 사장 취임 이후 파업 전까지 800명이 직위해제 당했고, 550명이 고소 고발당했다, 파업 이후 고소·고발된 조합원은 182명"이라며 "오히려 구로역 전철 사고에서 보듯 철도공사가 외부대체인력을 투입하는 등 부당노동행위를 저지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아울러, "경찰은 철도공사의 고소·고발이 있자 말자 당일 소환장을 보내는 등 전 경찰청장이었던 허준영 사장을 돕는 행동을 보이고 있다"며 "저 역시 이날 소환 대상자 중 하나"라고 한탄했다. 경찰은 소환통보 최종기한인 이날 저녁까지 상황을 지켜본 뒤 김 본부장 등 소환을 통보한 조합원 44명에 대한 체포영장을 신청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태그:#공기업 민영화, #철도노조, #파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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