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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승용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 19일 저녁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린 '노무현 대통령이 읽은 책들' 강독회에서 토머스 키다의 <생각의 오류>(열음사)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윤승용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 19일 저녁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린 '노무현 대통령이 읽은 책들' 강독회에서 토머스 키다의 <생각의 오류>(열음사)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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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한 여행이 되길 빈다."

만약 당신이 해외여행을 떠난다고 치자. 친구가 당신을 공항까지 데려다 주었다. 친구는 당신을 공항에 내려주면서 "조심히 다녀와"라는 진심어린 말을 건넨다.

가족이나 친지 중 누군가가 비행기를 타야 할 때 마음 한구석에서 약간의 두려움이 꿈틀거린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그동안 대중매체를 통해 접한 몇 건의 충격적인 비행기 추락 사고를 떠올리며.

하지만 당신이 집에 돌아가는 친구의 안전을 걱정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당신이 비행기를 타고 가다 사고로 죽을 가능성보다 친구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자동차 사고로 죽을 가능성이 세 배는 더 높은데도 말이다.

비행공포증은 많은데, 운전공포증은 드문 이유

이 이야기는 미국 매사추세츠 대학 교수 토마스 키다(Thomas Kida)가 지은 <생각의 오류>에 소개된 내용이다. 이런 사고방식 패턴은 '빈도'를 잘못 판단하는 데서 비롯된다. 즉, 비슷한 일을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정도에 따라 어떤 일의 빈도나 가능성을 추산하게 된다는 것.

일반적으로 충격적이거나 생생한 사건들이 더 쉽게 기억나기 마련이다. 대중매체에 노출되는 빈도 역시 여기에 한몫한다. 종종 상어에게 먹혀 죽을 가능성, 독살이나 결핵으로 죽을 가능성, 아이가 유괴당할 가능성 등이 과대평가되는 이유다.

지은이는 이런 예도 든다. k로 시작되는 단어와 k가 세 번째로 오는 단어 중 어떤 게 더 많을 것 같느냐는 질문에, 대부분 사람들은 k로 시작되는 단어가 더 많다고 대답한다. 하지만 실제로 k가 세 번째로 오는 단어가 두 배나 더 많다. k로 시작되는 단어를 찾기는 쉽지만, k가 세 번째로 오는 단어는 생각해 내기가 더 어려운 탓이다.

오류의 위험성은 인지구조 속에 뿌리박혀 있다

토마스 키다가 쓴 <생각의 오류>
 토마스 키다가 쓴 <생각의 오류>
ⓒ 열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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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키다의 <생각의 오류>는 19일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린 '노무현 대통령이 읽은 책들 강독회'가 선택한 마지막 책이었다. 행동 및 의사결정과정론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는 이 책에서 인간의 사고형성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구조적 결함을 낱낱이 파헤쳤다.

'생각의 오류'라는 제목 앞에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게 만드는'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사람이 생각의 오류를 저지르는 이유는,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는 심리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책에 따르면 우리의 성향은 이렇다. 1)통계수치보다 이야기를 더 좋아하고 2)자신의 믿음을 확인시켜주는 증거들에만 집중하며 3)운과 우연의 일치가 하는 역할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4)세계를 선택적으로 인식하고 5)지나치게 단순화하고 6)사실 그대로를 완전히 기억하지 못한다. 우리의 인지구조 속에 이미 이런 오류의 위험성이 깊이 뿌리박혀 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노 대통령, 언론 때문에 이 책 읽었다"

그렇다면 노무현 대통령은 어떤 이유로 이 책을 읽었던 걸까. 이날 강연을 맡은 윤승용 전 청와대 홍보수석에 따르면, 이 책은 노 대통령이 참모들에게 추천받고 읽은 책이 아니라 대통령 스스로가 일간지 서평을 읽은 후 비서진에게 함께 읽자고 권유한 책이라고 한다.

윤 전 수석은 이 책에 대한 대통령의 관심을 이렇게 풀이했다.

"대통령님은 언론의 왜곡 보도에 대한 회의론적 관심에서 이 책을 선택하셨다. 특히 보수언론의 근거 없는 보도에, 왜 배울 만큼 배우고 사회적 덕망이 높은 분들마저도 쉽게 빠져드는가 궁금해 하셨다. 이 책을 읽으신 후에는 한국 사회의 특수한 현실에 천착한, 이 분야에 대한 언론학적 성과물을 찾아보라 지시하기도 하셨다."

노 전 대통령 재임 시 보수 언론들은 대통령의 말 중에서 가장 자극적이고 부정적인 말만 골라 1면 제목으로 뽑기 일쑤였다. 이에 대한 노 대통령의 항변은 한결같았다. 자극적인 수사를 내세워 자신이 한 말의 전체 맥락과 본질을 흐리지 말아 달라고. 언론의 보도를 한번쯤 뒤집어서 봐 주지 않는 국민들이 야속하기도 했으리라.

윤 전 수석은 "오디오, 비디오는 상대적으로 왜곡이 덜해 대통령님은 방송 출연을 선호하셨다"며 "자주 춘추관에 가셨던 이유도 자신의 연설이 생중계가 되면 국민들이 진심을 알아줄 거라는 기대를 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방송이라고 해서 안심할 수 있는 것만은 아니었다. 윤 전 수석은 "사실 방송도 편집은 한다"며 "과거에 노 대통령이 말씀하신 '대통령 짓 해먹기 어렵다'는 말은 그 부분만 떼놓고 보면 생뚱맞아 보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편집 당하지 않으려고 대통령님께 '첫째, 둘째, 셋째..' 등 넘버링을 하라는 등 연설 요령을 가르쳐드린 적도 있다"는 에피소드를 전했다.     

<생각의 오류>는 '노무현이 읽은 책들' 강독회에서 다룬 다른 책들 - <미래를 말하다><빈곤의 종말><유러피언 드림> 등 - 과 달리 사회 현안과 직접 관련이 거의 없다. 그래서 책 리스트가 다소 생뚱맞아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노 대통령과 보수 언론과의 격렬한 갈등관계를 생각해 볼 때, 그 의미가 결코 작지는 않다.

"근거 없는 언론 보도가 아파트값 상승을 이끈다"

윤승용 전 청와대 홍보수석.
 윤승용 전 청와대 홍보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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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년 동안 기자생활을 했던 윤 전 수석은 특히 언론의 왜곡 보도에 관한 언급을 많이 했다. 그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보고 듣고 하는 미디어가 모두 다 진실인 것은 아니"라며 "생각의 오류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미디어를 바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관해 부동산 관련 보도를 예로 들었다.

"만약 신문 경제면에서 ○○동 ○○아파트 단지의 가격이 급상승하고 있다고 보도하면, 실제로 그렇지 않아도 일주일 안에 천정부지로 아파트 가격이 뛴다. 실제로 가격이 오를 징후와 그럴 만한 타당한 근거가 있어서 그런 보도를 하는 경우도 물론 있다. 하지만 아파트 가격이 오르기를 바라는 거주민과 아파트 가격 상승으로 인해 이익을 보게 되는 거대 언론사와의 담합 구조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토머스 키다 역시 이 책에서 대중매체가 우리의 판단에 끼치는 해악을 여러 번 지적했다.텔레비전 프로그램 제작자들이나 신문·잡지의 편집자들은 선정적인 이야기들로 대중의 이목을 잡아끌려고 한다는 것.

또한 대중매체는 과학적인 자료나 통계수치보다 개인의 설명에 더 초점을 맞추어서 사실을 왜곡하기도 한다. 대중들은 일화적인 증거에 의지하는 성향이 있기 때문에 대중 매체의 이런 보도 태도에 휘둘리는 경우가 많다. 1990년대 미국의 범죄율이 전반적으로 떨어졌는데도 미국인 2/3가 범죄율이 증가했다고 생각한 것이 단적인 예다. 

윤 전 수석은 이에 대해 기자 시절의 경험을 예로 들기도 했다.

"기자들 사이에서는 케이스 두 개만 있으면 기획기사를 쓸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요즘 강남에 새로운 유행이 일고 있다'와 같은... 견강부회에 가까운 얘기임에도 불구하고 기사를 '메이킹'하는 거다. 트렌드를 특종으로 잡아내고 싶은 기자의 성취욕에서 빚어지는 일이다. 이처럼 박약한 케이스를 가지고 무모하게 쓴 기획기사도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뒤집어 보는 연습을 많이 해야 한다."

"참여정부에도 오류가 있었다"

노 전 대통령과 참모들은 참여정부에 대한 보수언론의 비판과 그에 동조하는 여론을 이해하기 위해서 이 책을 읽었다. 그렇다면 참여 정부 안에서 자체적으로 반성할 만한 '정책의 오류'는 없었을까?

윤 전 수석은 "참여 정부 말기에 들어갔는데 진보적 가치는 무조건 옳은 것이라는 강박관념이 있는 것 같아서 놀랐다. 이른바 대통령님 뜻을 헤아린다는 정무적 부서 참모들과 관료들 간에 스펙트럼의 편차가 있었던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건전한 토론을 하기보다는 공무원들의 속성이 보수적이라며 한수 접고 대하려는 문화가 있었다. 옳다고 생각했던 여러 가지 정책들에도 양면성이 있는데 좀 더 심도 깊게 헤아렸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며 아쉬움을 표현했다.



태그:#노무현, #강독회, #생각의 오류, #토머스 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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