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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0.06 19:11최종 업데이트 09.10.07 10:42

전 재산 150만 원을 잃어버려도 괜찮다니...

외로움이 사무쳐서 마음마다 꽃이 핀 그녀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창립 10주년을 맞는 어느 단체의 기념행사 만찬장에서 오랜만에 그녀를 만났다. 전에 만났을 때는 연갈색으로 단발보다 좀 길게 웨이브를 한 머리가 이뻤다. 그러나 이번에 만난 그녀는 삭발을 했다. 그리고 옷차림도 너무 단촐했다.

내 마음에 티가 없다면 홀홀해 보일 수 있으련만, 내 눈에 세상 속물의 깍지가 낀 탓인지 그녀의 차림새가 썰렁하고 추워 보였다. 그래서 나는 그녀를 오랫동안 자꾸 껴안았다. 왜 머리를 그렇게 삭발했느냐고 했더니, 요즘 좀 바빠서 머리에 신경을 쓰고 싶지 않아서라고 한다. 그녀는 거동이 불편한 뇌병변장애이기에 이해가 가기도 한다.

그녀는 20대 초반처럼 앳돼 보이지만 실제로는 벌써 40세가 가까워온다. 그녀를 처음 보았을 때가 10년 전이었고 그때도 10대처럼 보였던 그녀다. 그녀는 뇌병변장애지만 엄마가 돌아가시고 동네사람들이 지금은 지적장애인이라고 부르는 정신지체재활원에 데리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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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녀는 10년간 동생뻘 혹은 언니뻘 되는 지적장애인 10-20명과 한 방에 잤다. 그녀를 보호하는 담당사회복지사는 밤에 잘때 따로 떨어진 작은방에 문을 잠그고 오랜 숙면에 잠겼지만, 그녀는 잠을 자는 동안 10-20명 중 어김없이 한 두명 있기 마련인 지적장애인들의 대소변을 수발하거나 구토물을 치우거나 바깥으로 나가려는 것을 붙잡거나 하면서 지냈다.

그런 그녀가 우연한 인연으로 버스타기, 은행가기, 시장보기 등 자립연습을 반복한 뒤에 드디어 세상 밖으로 나왔다. 주어지는 옷과 신발과 밥을 먹고 살다가 스스로 신발가게에서 첫 신발을 고를 때 그녀는 오래 오래 망설이고 눈물을 글썽였다. 그리고 해맑은 영혼으로 세상에서 겪는 경험을 시로 써서 어떤 글짓기 대회에서 대상도 수상했다.

그녀는 영세민임대아파트에 산다. 그리고 혼자 살지 않는다. 그녀의 집 작은 방에는 항상 누가 있다. 재활원에 지내는 정들었던 지적장애인동생들이 자기도 하고, 때로는 갈 곳없는 성폭력피해자인 아가씨들이 지내기도 한다. 자신의 조그만 보금자리를 그렇게 나누어 함께 생활을 나누면서 지내는 것을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다. 오히려 그렇게 나눌 수 있음을 감사하다고 하는 것을 보면 나는 가끔 부끄러울 때가 있다.

얼마 전에 그녀는 예쁘장한 10대 소녀를 재웠다. 그녀는 모르는 아가씨였지만 상담원의 중재로 잠시 머물기로 한 것이다. 소녀는 그녀에게 언니! 언니! 하고 살랑거리면서 그녀의 마음을 즐겁게 때론 웃기게 하였다. 그렇게 그녀는 얼마 간 머물다가 그녀에게 말했다.

"언니! 오늘 저녁은 빵먹자! 카드주면 얼른 사올게!"

그리고 그녀는 다시 오지 않았다. 그녀의 통장에 있는 재산은 시청에서 준 자립지원금에서 쓰고 남은 150만 원이 전재산이었다. 그녀는 소녀를 기다렸지만 오지 않아 많이 걱정했나 보다. 카드를 들고 튀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하고 상담소로 연락을 했다.

"선생님!  빵 사러 간다고 나갔는데 안와서요. 혹시 사고났나 싶어서 걱정돼요."

우리는 그녀에게 사회생활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지만, 믿을 사람, 못 믿을 사람, 위험한 사람, 많은 문제가 수시로 일어나는 현대사회의 갈등 들에 대한 것은 가르쳐주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정작 전재산을 잃은 그녀보다 우리들이 자책감이 더 심했다. 그런 우리에게 그녀는 말했다.

"괜찮아요! 조금씩 조금씩 옛날 일하던 재활원작업장이나 알바해서 모으면 돼요! 원래 돈 없이 재활원에 오래 살아서 통장에 돈 없어도 저는 살 수 있어요!"

나는 그녀가 사람에 대한 신뢰가 무너져서 다시는 작은 방에 낯선 사람을 숙박시키지 않을 줄 알았다. 사람은 자기의 경험에서 나온 주관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더니 내가 그 짝인 것이다. 한때 나는 내게 무언가 빌려가서 주지 않는 사람이나, 여러 번 말하고도 지키지 않는 사람은 멀리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리고 내게 필요한 말인데도 그 말이 송곳처럼 가슴을 아프게 하거나 무안을 주는 말이라면 그런 사람도 한동안 슬슬 피하고 다녔다. 겉으로는 "좋은 말, 도움되는 말해주어서 고마워요!" 했지만.

그러나 그녀는 사람에 대한 상실감이 아닌 희망을 여전히 가지고 옆방에 갈 곳없는 사람을 재운다. 우리나라 성폭력이나 가정폭력 피해자를 보호하는 쉼터는 일정기간의 개월수가 지나면 법적으로 더 이상 보호하지 못한다.

그래서 갈 곳없는 사람들이 다시 폭력이 행해지는 집으로 돌아가는 경우도 많다. 그런 사람들은 상담소장이나 상담원의 집, 또는 지역의 같은 여성단체가 운영하는 집, 교회가 운영하는 기도원 등등으로 임시로 흩어지기도 하지만 단체의 회원들은 그런 피해자를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 왜냐하면 피해자가 거기 있다는 정보가 나가면 가해자에게 해코지를 당할 소지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여전히 갈 곳 없는 발길들을 그녀의 작은 집 문턱을 넘게 하고 따스한 이불과 먹거리를 나누고 있다. 그러면서 한 번은 길게, 한 번은 짧게, 또는 아예 삭발을 하는 등 머리를 자유롭게 하고, 가끔은 삼겹살파티를 해서 상담소선생을 초대하기도 한다.

누군가 그녀에게 돈을 받을 목적으로 별로 맛있지 않는 오징어무침을 사라고 해도 선뜻 몇 천원 내어준다. 그리고  돈을 많이 주는 어딘가의 일터보다 옛날에 그녀가 머물던 재활원의 표준작업장으로 종종 알바를 하러 간다. 단지 그녀를 알아보고 좋아하는 지적장애인동생과 언니 그리고 오래된 사람들의 묵은 정 때문에….

나는 그녀가 해보지 않은 결혼에의 경험과 여러가지 사회활동을 하지만 그런 삶의 일상들에서 나는 또한 많은 것들을 잃거나 잊고 소홀히 하고 있는 것을 느낀다. 하지만 그녀는
내가 소홀히 하는 그런 것들을 너무나 소중히 하면서 살고 있다.

전 재산을 잃어도 괜찮아요 괜찮아요 하며 웃는 그녀를 바라보면서 참으로  외로움이 깊이 사무쳐서 그녀의 마음 구석마다 소박한 향기의 꽃이 늘 피어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한다.


#여성장애인인식개선#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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