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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서거하셨다는 소식을 문자로 받고, 한 순간 정신이 멍해졌다. 연세가 있지만,  이번 치료에서도 거뜬히 쾌차하시길 바라는 기대가 컸던 까닭이다. 고인이 남기신 것들이 연일 매스컴을 수놓는다. 빽빽한 메모, 삶과 죽음을 넘나든 굴곡진 인생사, IMF를 극복하고, 남북화해의 장을 만들었으며, 우리나라 최초로 노벨상을 수상하셨던 정치력, 고 차용애 여사, 이희호 여사와의 사랑, 아침에 일어나시면 민족을 위한 기도부터 하셨다는 증언.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와 입장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순간순간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 분의 발자취가 아름다웠다는 사실은 모두가 인정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제목과 작자는 잊어버렸지만, 그 얼개만큼은 여전히 기억하고 있는 소설이 하나 있다. 어느 잡지 뒤에 짤막하게 실린 소설이었는데, 작가의 풍자가 유쾌했던 작품. 한 소설가가 최선을 다해 소설을 집필해서 발표한다. 모든 언론이 대서특필하며 그 성과를 찬양했는데, 어느 순간 한 곳에서 발표된 작품이 표절이라며 의혹을 제기한다. 그 순간 너도 나도 표절의 증거가 될 만한 억지 증거까지 날조하며, 이번에는 누구에게 뒤질 새라 비난에 앞장서기 시작한다. 억울했던 소설가는 아니라고 변명했지만, 도저히 받아들여지지 않자, 새로운 결심을 한다.

 

   다시 소설을 써서 발표하면, 오해하는 여론을 돌릴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칩거에 칩거를 거듭한 끝에 새로운 소설을 발표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번에도 찬사가 뒤따르다가 바로 힐난의 여론이 형성되기 시작한다. 소설가는 소설쓰기를 중단하는 대신, 다시 의지를 불태운다. 기필코 자신의 작가 정신을 펼쳐보이리라는 굳은 결심으로 소설 쓰기에 매진한다.

 

    소설가와 기자들의 반목은 일생을 통해 거듭되는데, 마지막에 소설가는 유작을 남기고 타계한다. 유작의 제목이 발표되자마자, 일제히 찬양했다가, 연이어 비난의 글들이 게재되기 시작하는데, 재미있는 것은, 사실 소설가는 마지막 작품은 작심하고 제목만 발표한 것. 아무런 내용도 없는 소설을 발표해도 앞 뒤 가리지 않고 또 한껏 칭송하다가 비판할 것이란 사실을 예견한 소설가의 기지였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악순환의 고리 속에서도 소설가는 절대로 지지 않고 소설쓰기를 계속해나갔고, 그것이 진짜 소설가로서 사명을 다하는 것이란 믿음이 있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를 보고 문득 이 소설이 떠올랐던 것은 무슨 까닭일까.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일대기를 다룬 프로그램들을 지켜보면서, 내가 저 뫼비우스의 띠에 들어가 있다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을 했다. 근거 없는 흑색 선전으로 매도당하면, 내가 왜 정치를 하겠다고 해서 여기서 왜곡되어야 하나, 정치판이 시끄러우니 나는 당장 그만두겠다고 선언했을 것 같다.

 

   억울하게 음모에 얽혀 사형이 선고되었다면, 찬 감옥에서 이유 없는 옥살이를 해야했다면, 내 옥중서신은 온통 원망과 분노로 점철되었을 것 같다. 인생의 고비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뻔한 결말이 아니라, 역전의 선한 결과로 뒤바꾸셨다.

 

   <인문의 숲에서 경영을 만나다>의 저자는 스토리가 있는 민족과 스토리가 있는 제품은 반드시 성공한다고 단언했다. 감동과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가 넘쳐나면, 그것을 듣는 이들은 같이 흥분하고, 같이 기뻐하며 동화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5천년 역사의 그 숱한 이야기들을 들려주어야 하고, 숨은 이야기를 찾아내고 조합해서 만들어내는 가치를 제품에 담아야 시장을 지배한다는 주장.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를 대하면서, 불굴의 의지로 민주화를 위해 평생을 헌신하신 정치가의 이야기를, 억울한 상황 속에서도 품위를 잃지 않았던 사형수의 이야기를, 사랑하는 여인들과 가족들에 대한 연민의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자랑스럽게 들려줄 수 있고, 내가 그 분과 동시대를 살아 관용과 화합의 인생 스토리를 듣고 볼 수 있어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접하고, 죽어서도 죽지 마시라는 추도사를 준비하셨다는데, 이제는 그 말씀을 내가 김대중 전 대통령께 드리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부천자치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김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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