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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지 뉴스를 거의 보지 않았다. 관심사가 많이 달라져서이기도 하지만 정치, 사회면의 기사들이 나에게 도움을 주지 않는다고 느껴지기 시작해서다. 정치판의 모습은 어느새 장난 같고 사회면의 사건사고를 보는 건 오히려 내 삶에 방해가 되는 것 같았다. 특히 정치에 대한 불신이 더욱 심해졌다. 어쩌다 보게 되는 방송 뉴스에서 국회의원들의 모습이 나올라치면 울컥 분노가 치밀었고 또 그 분노가 낭비 같아 차라리 신경 끄자며 고개를 돌렸다. 사실 '우습다 우습다' 했어도 한 국가의 국민으로 사는 이상 '정치판'이라는 건 내 일희일비에 큰 영향을 주고 있으니까 더욱 그랬던 것일 게다. 

 

지난 토요일 아침 촬영 때문에 어느 부동산엘 앉아 있었는데, "노무현이 죽었대요." "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죽었다고요." "아무리 그래도 대통령이 자살하는 건 아니지 않아요?" "그럴 만하니까 그랬겠지요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아주머니와 아저씨의 두런두런 논쟁하는 소리는 어느새 희미해지고 멍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아… 무엇이 나에게 이토록 충격을 주는 것일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이토록 마음이 아픈 건 자꾸 그의 삶이 보이기 때문이다. 정치인 노무현으로만 보였는데 자꾸 인간 노무현이 보인다. 나에겐 늘 비판의 대상이었던 그. 정치인이니까 욕먹는 게 당연하다 싶었고 그게 정치인의 운명이라고 믿었으니까. 또 어떤 매개를 통해서만 그를 보았고, 그럴 수밖에 없기 때문에 언론이 작정하고 몰아세우면 그에 대한 부정적인 면밖에 볼 수 없었다. 그걸 떠나서라도 나는 노무현 대통령 정권의 정책을 지지하진 않았다. 그의 임기 중 나는 사회라는 게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자연스레 정치판이라는 곳은 의문이 대상이 되었고 그랬기에 그 한 가운데 서 있었던 노무현 대통령은 쉽게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정부가 하고 있었기에 비난할 수 있는 건 노무현 대통령뿐이었다. 작년 촛불집회 때는 시민들이 삼삼오오 모여선 이명박은 안 돼 노무현 때가 잘했지 그리워 라고 할 때, 그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고 감정적으로 과거를 향수하는 사람들이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어떤 사안의 책임 대상을 찾다가 만난 게 노무현 대통령이었고 나는 늘 그렇게 그와 대면했다.

 

모든 것을 대통령 탓이라고 돌리고 마는 우리네 정서는 문제다. 실제로 그렇지 않고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되는데, 우리는 쉽게 화살을 대통령 탓이라고 돌린다. 마치 대통령이 모든 것을 다 해줄 거라고 믿고 잘못된 건 모두 그가 다 책임져야 할 것처럼 말한다. 투표하지 않은 사람도 마찬가지로 행동한다. 대통령제에 살고 있는 국민들의 한계이기도 하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명박 대통령이 잘못하는 일이 너무 많지만 그의 탓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탓하는 무게만큼 국민의 탓이, 내 가족의 탓이, 나의 탓도 무거워 져야 할 거다. 화살을 여러 개 만들지 못 한다면 또 그 화살을 나 스스로에게도 날리지 못 한다면 앞으로도 변할 건 별로 없을 거다. 쉽게 노무현 탓이라고 해버리고 말았을 때 그의 잘못 이상으로 너무 많은 짐을 지워 버린 것은 아닌지, 그래서 우리가 바꾸어야 할 것을 바꾸지 않으면서, 점점 더 갑갑한 사회의 모습 때문에 점점 더 많은 비난을 그에게 돌려버린 것은 아닌가 싶다. 그냥 모두 다 이명박 탓이라고, 설령 장난처럼 내뱉더라도 그 말 한마디로 다른 것들을 너무 많이 가려버리는 건 아닌가 싶다. 이건 정말 철저히 자기반성, 우리 반성일 수밖에 없다.

 

참 싫다. 자살 공화국이 되어버린 대한민국. 신문에도 실리지 않는 수많은 자살 사건. 잊을 만하면 터지는 연예인 사건. 그래도 대통령은 자살 하면 안 된다고, 그가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럴까 하며 이해하면서도 입 밖으론 "그래선 안 되는 거였다"고 말하는 건, 말할 수밖에 없는 건, 이렇게 돌아가는 나라가 싫기 때문이다. 쉴 새 없이 보도되는 그의 죽음과 관련한 뉴스와 그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는 수많은 글과 동영상 앞에서 최면 걸리듯 나라 전체가 우울증에 빠져 버리는 것도 두렵다. 하지만 그의 죽음이 던지는 문제들에 모두가 다 마주했으면 하는 바람이 든다. 언론 역시 보도를 위한 보도가 아닌, 슬픔을 강요하는 보도가 아닌 그의 죽음이 남긴 문제들을 더 많이 얘기해야 할 것이다.

 

그의 죽음 앞에서 새삼 인간으로 산다는 건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래도 "어떻게든 죽지 말고 살아야지" 라고 말하면서도 산다는 건 매순간 "어떻게 살아야 하나"라는 문제들에 직면하는 것이라고. 그렇게 강해보이던 사람을 꺾이게 한 지독한 고뇌를 떠안은 느낌이다. 그의 죽음에 눈물을 흘리고 그가 자살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그의 양심에 우리가 존경을 표하고 있는 거라면, 그래도 우리는 좀 더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지점에 서 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원래 정치판은 더러운 거라며 어쩔 수 없는 거라고 말해선 안 된다. 시간이 지나 우리가 다시 무관심하거나 모든 건 이 정부의 탓이라고 해버리는 상황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모든 건 다 이명박 탓이라고 말하면서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 사회를 욕하며 자위거리를 찾아 다시 정치를 외면할 순 없다. 도덕이라는 말, 참 고리타분하고 굴레 같지만 지금 우리에게 도덕적 양심 때문에 죽음을 택한 노무현의 죽음이 이토록 절절한 건 그게 너무 무너져버린 사회에 대한 탄식일 것이다. 다들 깊은 절망에 아예 침잠해버리지 않아서 다행이다. 혹여 그런 사람이 있더라도, 이건 '어떻게 살 것인가'를 더 치열하게 고민하며 살아야만 하는 물음으로 이내 바뀌었으면 좋겠다.

 

사회에 만연한 정치 혐오, 정치인들에 대한 불신을 떠올리며 정말 정치인들을 사랑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또 당위로서 섬김을 받는 주권자가 아니라 존경받는 국민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건 꼭 누구에게 보이기 위한 게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서로가 서로에 대한 애정으로 이루어지는 거겠지. 어쨌든 우리가 한 국가 안에 국민으로 살아갈 것이라면, 국가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좋은 국가를 만들고 싶은 거라면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장윤미씨는 현재 국민대 학생입니다. 이 기사는 인권연대 웹진 주간 <사람소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노무현 죽음, #정치 혐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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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연대는 1999년 7월 2일 창립이후 세계인권선언의 정신에 따라 국내외 인권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인권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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