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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공중화장실은 사용자의 프라이버시를 배려하지 않는 듯한 '허술한' 구조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이것은 다른 의미의 프라이버시를 배려하기 위한 미국적 설계구조다. 문 아래와 위, 그리고 벽 사이에 넓은 틈이 보인다.
 미국의 공중화장실은 사용자의 프라이버시를 배려하지 않는 듯한 '허술한' 구조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이것은 다른 의미의 프라이버시를 배려하기 위한 미국적 설계구조다. 문 아래와 위, 그리고 벽 사이에 넓은 틈이 보인다.
ⓒ 강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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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화장실은 기묘한 장소다. 모든 이에게 열린 가장 공적인 장소인 동시에 개인의 가장 사적인 공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집단을 받아들이면서도 개인을 맞아야 하는 모순, 그것이 공중화장실의 운명이다.

어느 곳이든 공중화장실은 '공개된 비밀장소'라는 모순적 정체성을 지닌다. 미국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미국인들에게는 좀 더 유별난 모습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참견 마'와 '날 좀 내버려 둬'를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이니 말이다.

미국인들이 누군가. 이미 19세기 후반에 역사상 처음으로 '사생활권'을 법적 권리로 선언한 사람들 아닌가. '프라이버시'는 흔히 '혼자 있을 권리'로 정의된다. 이 표현은 1890년 미국 연방 대법원의 루이스 브랜다이스가 처음으로 사용한 말이다.

미국인들의 삶에서 '혼자 있을 권리'는 매우 중요하다. 이는 개인 공간의 보호만을 뜻하지 않는다. 이 권리에는 외부인으로부터 신체적 안전, 시선의 배제, 심리적 안정 등 여러 사항이 들어있다. 브랜다이스는 새뮤얼 워렌과 더불어 '사생활권'을 주창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삶의 고통·기쁨·이익에서 물적 대상이 차지하는 비중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생각·감정·느낌까지도 법적 보호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미국의 공중화장실은 어떤 구조로 되어 있을까?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이 첨예하게 충돌하는 지점에 공중화장실이 존재하는 만큼, 사용자의 '생각·감정·느낌까지도' 배려하는 구조로 되어 있을 것 같다. 그런가? 미국의 공중화장실을 한 번 들여다보자. 

견고한 공중화장실의 낮은 문, 넒은 틈

일단 미국 공중화장실은 매우 견고한 구조로 되어 있다. 특히 좌변기를 둘러싼 철제담장은 어떤 외부충격도 견뎌낼 것 같다. 실제로 토네이도나 허리케인 같은 폭풍을 만날 때 가장 바람직한 대피장소로 거론되는 곳 중 하나가 공중화장실 좌변기칸이다.

담장을 벽에 고정시키는 새끼손가락 두께의 나사도 믿음직스럽고, 문을 지탱하는 강철 빗장도 사용자를 안심시킨다. 하지만 어딘가 어설픈 느낌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문 아래의 빈틈이 눈에 거슬린다. 바닥에서 거의 무릎 아래까지 뚫려있지 않은가.

문 아래의 틈으로는 사용자의 다리가 훤히 드러난다. 누우면 문을 열지 않고도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 정도다. 이래서는 아무리 단단한 구조물도 소용이 없지 않은가.

문의 높이도 턱없이 낮다. 키가 큰 사람은 발꿈치를 들지 않고도 안을 들여다 볼 수 있다. 하지만 키가 크지 않아도 안을 들여다보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담과 벽 사이, 그리고 문과 문틀 사이에 손가락 한두 개가 들어갈 만큼 넓은 틈이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아이를 동반하고 화장실에 들른 부모들이 원하지 않는 '까꿍' 놀이를 당하는 경우가 흔하다. 어떤 아이들은 아예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문 아래로 부모의 표정을 지켜보기도 한다. 도대체 왜 '프라이버시 종주국'이라 할 미국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물론 미국 공학기술의 문제는 아니다. '사생활권'에 그토록 집착하는 미국이니, 공중화장실의 사적 권리를 무시할 리도 없다. 미국 화장실의 '낮은 문'과 '넓은 틈'은 미국인들의 독특한 프라이버시 관념을 드러낼 뿐이다.

미국 공중화장실은 좌변기에 앉은 사람의 다리가 보이도록 되어 있다. 공중화장실의 이런 구조는 미국 영화나 드라마의 흥미로운 소재가 되곤 한다. 사진은 미국의 시트콤 <사인펠드>의 한 장면.
 미국 공중화장실은 좌변기에 앉은 사람의 다리가 보이도록 되어 있다. 공중화장실의 이런 구조는 미국 영화나 드라마의 흥미로운 소재가 되곤 한다. 사진은 미국의 시트콤 <사인펠드>의 한 장면.
ⓒ N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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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과 재산을 지키기 위한 '공격적 프라이버시'

몇년 전 꽤 먼 거리를 자동차로 여행한 적이 있다. 밤늦게 운전을 하다보니 피로가 몰려왔다. 잠시 쉴 생각으로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시내 외곽에 차를 댈 곳을 찾았다. 마침 쇼핑몰의 드넓은 주차장이 눈에 들어왔다. 오래 전 영업을 마친 듯 텅 비어있었고, 멀찍이 세워진 소형 승용차 한 대가 전부였다.

잠시 눈을 붙일 생각에 좌석을 뒤로 젖히려는 순간, 쇼핑몰의 입구가 열리고 누군가 걸어 나온다. 뒷마무리를 하고 퇴근하는 직원인 것 같았다. 한 대 남은 차의 주인이었다. 그는 차를 몰아 출구 쪽으로 나가는가 싶더니, 이내 차를 돌려 내 쪽으로 다가온다.

눈부신 자동차 불빛이 침침한 눈을 한두 차례 어지럽히다가 멈추었다. 차문을 열고 나온 사내가 차창을 내리라는 손짓을 한다. 창문을 열자, 그는 정중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한다.

"이 주차장은 사유재산입니다. 나가 주세요."

쓰지도 않는 텅 빈 주차장인데도? 그렇다. 아무도 이용하지 않는 영업종료 후의 주차장이므로 더욱 주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내가 쇼핑몰의 고객일 가능성은 없으니 말이다. 나는 알겠다고 말하고 차의 시동을 걸었다. 그 곳에 차를 세울 수도 없었지만, 더 이상 머물 필요도 없었다. 잠이 확 달아났으니까.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을 엄격하게 구분하는 것은 미국의 오랜 전통이다. 특히 개척시대에는 남이 '나의 땅'에 발을 들여놓는 행위가 단순히 '재산권 침해'만이 아니라 물리적 위험으로 인식되곤 했다. 민병대와 보안관 역시 정부의 공권력이 미치지 않던 공동체 주민들이 자구책으로 만든 것이었다. 미국인들의 총기에 대한 집착 역시 개척시대의 역사적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경계'와 '배려' 사이로 드러난 다리

미국 공중화장실도 예외가 아니다. 사용자의 다리를 드러내는 투명한 구조에는 미국식 '경계'와 '배려'가 교묘하게 뒤섞여있다. 사용자의 존재가 쉽게 파악되면 밖의 사람은 심리적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 담장 뒤 누군가의 바지춤이 내려가 있다면 '본연의 업무'에 충실할 뿐, 위해를 가할 (적어도 당분간은) 잠재적인 적은 아니기 때문이다.

신체의 일부가 드러나는 구조는 '프라이버시'를 사용자뿐 아니라 외부인에게도 확장하기 위한 것이다. 타인의 시선에 노출되어 있다는 '가시성'(혹은 푸코가 말한 '판옵티시즘 Panopticism')의 압박은 사용자에게 일정한 경각심을 갖게 해 공적 공간을 '지나치게 사적인' 용도나 '반공공적' 목적으로 사용하지 못하게 한다. 적당한 가시성과 접근성은 안에서 일어나는 비상사태(예컨대 다리가 지나치게 오래 보이는 경우)에 대비하는 데에도 도움을 준다.  

게다가 누군가 있다는 것을 알면 밖에서 노크할 필요도 없고, 안의 사람은 방해받지 않고 집중할 수 있다. 이런 관습은 가정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미국인들은 빈 화장실 문을 조금 열어두는 습관이 있다. 다음 사용자로 하여금 문을 두드리거나 기척을 살피는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서다.  

프라이버시의 법적 권리를 처음 주장한 것은 미국인이었지만, 프라이버시 개념 자체가 미국의 발명품은 아니다. 이미 17~18세기의 영국 주택에서 사생활의 노출을 막으려는 건축학적 시도가 있었다. 상류층이 하인들의 시선에서 벗어나기 위해 별도의 계단을 만들거나 접근이 어려운 거실공간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흔히 '프라이버시'를 근대적 개념으로 파악하지만, 정확한 기원을 추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신과의 만남'을 위해서나 '진정한 자기'를 찾기 위해 남들로부터 거리를 두는 종교적·철학적 시도는 훨씬 오래 전에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특정 계층이나 관념적 차원을 벗어나 대중의 삶 속으로 사생활권이 널리 확대된 것은 미국에서였다.

미국의 영토 확장과 개척은 토지 사유화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특히 1862년에 마련된 '홈스테드 법'은 경작할 의사가 있는 모든 이에게 광활한 토지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계기가 되었다. 넓은 사유지는 독립적이고 개별적인 삶의 토대가 되었으며, 이는 미국인들의 프라이버시 관념에 큰 영향을 끼쳤다. 사진은 홈스테드 법으로 땅을 얻은 미국의 자영농민 가족.
 미국의 영토 확장과 개척은 토지 사유화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특히 1862년에 마련된 '홈스테드 법'은 경작할 의사가 있는 모든 이에게 광활한 토지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계기가 되었다. 넓은 사유지는 독립적이고 개별적인 삶의 토대가 되었으며, 이는 미국인들의 프라이버시 관념에 큰 영향을 끼쳤다. 사진은 홈스테드 법으로 땅을 얻은 미국의 자영농민 가족.
ⓒ National Archi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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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으로 간 '공중화장실 프라이버시'

1987년 6월 16일, 덴버의 스테이플튼 국제공항에서 있던 일이다. 마약반 소속의 경찰관 두 명이 마이애미로부터 도착한 승객들을 살피고 있었다. 한 사내가 경찰을 흘깃 보더니 방향을 돌려 화장실로 들어갔다. 경찰 한 명이 그를 따라 들어갔다. 그 남자가 수상하기도 했지만, 마침 화장실에 가고 싶은 참이었다.

조금 전 들어간 사내는 좌변기에 앉아 있었다. 닫힌 문 아래로 그 남자의 다리가 보였다. 그는 자연스럽게 물을 내리고 바지를 치켜 올렸다. 바짓단이 따라 올라가면서 양말을 신은 왼쪽 발목 근처에 흰 색 비닐 같은 것이 잠깐 드러났다.

경찰은 그를 따라가 수색 협조를 요청했고, 발목에 테이프로 숨겨놓은 마약 4봉지를 찾아냈다. 그는 도망쳤지만, 결국 체포되어 재판을 받게 된다. 하지만 피고는 당당했다. 경찰의 수사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화장실에서 자신의 다리를 훔쳐 본 것은 명백한 '사생활권 침해'며, 이렇게 불법적으로 얻은 단서로 체포했으니 무효라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결국 법원은 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누구라도 문 아래로 드러난 그의 다리를 볼 수 있었기에, 경찰이 특별히 사생활권을 침해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경찰이 문 아래로 머리를 들이민 것도 아니고 '일상적 관찰 위치'에서 보았을 뿐이기 때문이다. 공공화장실에서, 더구나 문 아래가 뚫린 좌변기칸에서 다리의 '프라이버시'는 인정될 수 없다는 결론이었다.  

프라이버시와 개인주의

미국인들의 사유재산은 공권력이 확립되기 이전부터 급속도로 팽창하기 시작했다. 국가의 보호에 익숙하지 않던 미국인들은 목숨과 재산을 지킬 이는 자기 자신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는 미국 사회 특유의 독립성과 개인주의로 이어졌다. 19세기 중반 탄생한 홈스테드 법은 미국인들의 '공격적 프라이버시'를 북돋우는 역할을 했다.

이 법은 농사를 지을 힘과 뜻이 있는 사람은 누구에게나 땅을 무료로 나누어 준다는 규정이었다. 영국에서 독립한 동부해안의 13개 식민지 이외의 지역에 나가 땅을 개척하면 최고 160에이커(약 20만 평)를 거저 얻을 수 있었다. 이는 1862년에 서부의 황야를 신속히 개척해 산업화하려는 의도로 시작된 것이다. 이 법은 미국 개척의 역사를 사유지의 역사로 만들었다.

그러나 '미 개척지'는 주인 없는 땅이 아니라, 미국 원주민들이 대를 이어 살아오던 삶의 터전이었다. 개척은 결국 약탈일 수밖에 없었고, 영토 확장은 당연히 물리적 충돌을 불러왔다. 이렇게 해서 '사유재산'은 '사적 무장'과 결합했고, 프라이버시는 '남으로부터 떨어질 권리'라는 소극적 관점에서 남을 몰아내는 적극적 권리가 되었다. 

개척시대가 끝나고 산업화와 도시화가 본격화된 이후에도 외부인에 대한 경계의 눈초리는 사라지지 않았다. '서버비아'라는 현대적 주거공간이 그렇다. 대도시의 통제되지 않은 불안함으로부터 벗어나 '평화로운' 외곽에 거처를 마련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태도는 도시와 분리된 주거공간뿐 아니라, 낯선 이들과 먼 거리를 유지하려는 성향에서도 나타난다.

ⓒ Wiki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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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척시대'에 형성된 외부인에 대한 경계의식은 현대사회에도 이어지고 있다. 과밀화된 도시를 떠나 외곽에 거주지를 마련하는 전통이 대표적인 예다. '서버비아'로 불리는 주거공간은 도시와 분리될 뿐 아니라, 이웃집과도 뚜렷하게 공간적으로 분할된다. 위쪽 사진은 산 호세의 주거지역이고, 아래쪽 사진은 밀워키 외곽에 자리 잡은 전형적인 서버비아의 위성사진이다.
 '개척시대'에 형성된 외부인에 대한 경계의식은 현대사회에도 이어지고 있다. 과밀화된 도시를 떠나 외곽에 거주지를 마련하는 전통이 대표적인 예다. '서버비아'로 불리는 주거공간은 도시와 분리될 뿐 아니라, 이웃집과도 뚜렷하게 공간적으로 분할된다. 위쪽 사진은 산 호세의 주거지역이고, 아래쪽 사진은 밀워키 외곽에 자리 잡은 전형적인 서버비아의 위성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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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의 성취

미국에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의 일이다. 밤늦게 영화를 보고 극장을 나서는데 소나기가 쏟아진다. 다행히 가방 안에 우산이 있었다. 우산을 받쳐 들고 극장 앞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데, 옆에는 청년 하나가 젖은 새의 몰골로 물을 뚝뚝 흘리며 서 있다.

나는 한국에서 하던 대로 "우산을 같이 쓰겠느냐"고 물었다. 이 친구는 거의 공포에 질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괜찮다"고 말하며 빨간 신호등이 바뀌지도 않았는데도 길을 건너 도망을 친다.

나는 이후 그가 보였던 반응에 여러 가지 요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컨대 성적 코드와 '남성성'의 정체성 같은 것 말이다. (미국 젊은이들, 특히 남자들은 거의 우산을 쓰지 않는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사회적 거리'에 대한 사회적 관습이다. 미국인들은 낯선 사람이 가까이 다가서는 것을 끔찍이 싫어한다.

미국인들은 오랫동안 '간섭으로부터 자유'를 갈구해 왔다. 그러나 그 꿈에 다가갈수록 미국인들은 더욱 더 외로워졌다. 프라이버시가 '혼자 있을 권리'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많은 이들이 외로움을 현대사회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적어도 미국인들의 외로움은 오랫동안 꿈꾸어오던 성취의 결과다. 물론 모든 미국인들이 이 성취에 행복해하지는 않지만.

프라이버시는 공간뿐 아니라 심리적이고 감정적인 부분까지 포함한다. 북미사람들은 다른 문화권 사람들에 비해 더 넓은 대인거리를 확보하며, 교류 대상이 아닌 낯선 사람들과는 시선 교환조차 꺼리는 경향을 보인다. 사진은 시카고 도심의 행인들.
 프라이버시는 공간뿐 아니라 심리적이고 감정적인 부분까지 포함한다. 북미사람들은 다른 문화권 사람들에 비해 더 넓은 대인거리를 확보하며, 교류 대상이 아닌 낯선 사람들과는 시선 교환조차 꺼리는 경향을 보인다. 사진은 시카고 도심의 행인들.
ⓒ 강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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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공중화장실, #프라이버시, #사유재산권, #홈스테드법, #서버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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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학 교수로,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 기술과 문화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미디어기호학>과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를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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