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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을 치르는 중국을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은 대개 부정적이었다. 지난 3월 있었던 티베트 사태는 '인권 없이 올림픽 없다'라는 구호를 만들어 냈고, 세계 곳곳에서는 성화 봉송을 둘러싼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또한 '테러방지'의 이름으로 진행된 각종 통제들은 '계엄을 방불한다'는 비난을 받았으며, 올림픽 기간 동안 보여준 중국인의 민족주의·애국주의는 '중화민족주의의 부활이 아니냐'는 우려 섞인 시선을 낳기도 했다.

 

이에 대해 중국인들 대부분은 억울하다는 반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올림픽은 중국인들에게 있어서 '100년의 꿈'이었기 때문이다. 한동안 중국인들 사이에서 서구 언론에 대한 부정적 감정이 커지기도 했다.  

 

이탈리아 사람 사우로 안젤리니(Sauro Angelini, 66)는 베이징에서 32년을 살았다. 외국인으로서 개혁개방 30년을 몸소 체험한 것이다. 그는 인터뷰 내내 '중국을 바라보는 서구 언론의 시선'에 대한 불편함을 감추지 않았다. 또한 맑스주의자인 그는 중국경제가 발전하면서 발생하는 여러 모순들이 미국식 자본주의 모델로는 해결될 수 없다고 보았다. 

 

'중국 속 이방인' 사우로가 바라보는 중국은 어떤 모습일까. 인터뷰는 그가 운영하는 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2시간 동안 이루어졌다. 아래는 사우로가 구술한 것을 그의 시점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계획경제 연구하러 중국에 왔는데 개혁개방 시작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나는 문화대혁명 말기인 1976년, 30대 초반의 나이로 중국의 계획경제를 연구하기 위해 중국에 왔다. 현재는 66세,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나는 맑스주의자다.

 

내가 베이징에 올 당시 중국은 매우 폐쇄적인 곳이었다. 외국에서는 중국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도 어려웠고, 외국인들은 중국에 자유롭게 드나들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외국인인 내가 중국에 머무르기 위해 택한 방법은 중국 정부가 발행하는 신문의 이탈리아어 판을 교정하는 일을 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내가 중국에 머무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나는 신문사 일을 하면서 연구 작업을 병행했다.

 

내가 중국에 온 지 2개월 만에 마오쩌둥이 죽었고 4인방이 몰락했으며 그의 후계자 화궈펑이 권좌에서 물러났다.

 

이는 내게 큰 충격이었다. 내가 중국에 처음 왔을 때만 해도 중국의 모든 언론이 4인방을 좋은 사람들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문화대혁명의 잔인성을 알게 되었다.

 

물론 마오는 내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 중 하나다. 그는 지난 백년간 가장 위대한 역사적 인물이다. 분열된 중국을 하나로 통합하고 중국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줬기 때문이다. 문화대혁명은 분명 그가 잘못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78년 개혁개방이 시작되었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의 경제정책이 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로 바뀐 것이다. 나는 이 나라에서 계획경제 모델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음을 알게 되었고, 연구 역시 더 이상 진행할 수 없었다.

 

그 때 나는 이탈리아에 돌아가려 했다. 그러나 사회학·철학·사학을 공부한 내가 유럽에서 직장을 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마침 그 때 한 이탈리아 회사가 내게 이탈리아 기계 설비를 중국에 파는 일을 하지 않겠느냐고 제안해 왔다. 나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5년 후, 나는 내 회사를 갖게 되었고 20년 넘게 사업을 했다. 그리고 작년에 은퇴하고 베이징에 이탈리안레스토랑을 차리게 되었다.

 

"달라이 라마는 '민주주의 영웅' 아니다" 

 

지난 3월 티베트사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솔직히 말해서 나는 민주당 낸시 펠로시(미 하원의장)가 달라이 라마를 만났을 때 매우 놀랐다. 달라이 라마는 결코 민주적 인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서구 언론이 달라이 라마를 마치 '민주주의의 영웅'처럼 내세우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들은 티베트의 역사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다.

 

달라이 라마, 그리고 수많은 라마(라마교의 교승)들은 지난 수백년간 티베트 농민들을 착취하며 살아왔다. 그들은 이전에 그들이 누렸던 권력을 되찾기 위해 독립을 주장하는 것뿐이다. 

 

티베트인들 스스로가 보다 많은 자치권을 요구하는 것은 정당하다. 그러나 달라이 라마와 수많은 라마들이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독립을 요구한다면 이는 찬성할 수 없다.

 

신장 위구르 자치구 문제 역시 보다 많은 자치권을 줘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신장에는 위구르인들만 있는 게 아니다. 여러 민족이 섞여있고 그 중 대다수가 한족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독립은 말이 되지 않는다. 만약 독립을 한다 하더라도 선거를 하면 숫적으로 많은 한족이 이기게 될 것이다.

 

따라서 소수민족 고유의 언어와 문화를 존중해주되 자치권을 인정해줘야 한다. 물론 중국이 발전함에 따라 티베트도 신장 위구르도 그 혜택을 함께 누려야 할 것이다.

 

"중국에 그만 발전하라고 할 수는 없다"

 

중국인들은 올림픽을 통해 개혁개방 30년간 이룬 성과를 전 세계에 알리고 싶어 한다.

 

서구 언론은 테러를 막기 위한 각종 통제에 대해 비판한다. 올림픽을 앞두고 우리 집에도 경찰이 두 번이나 찾아왔다. 비자는 제대로 되어 있는지, 별다른 문제는 없는지. 지난 32년간 단 한번도 없던 일이다.

 

하지만 만약 보안을 철저히 하지 않아서 테러가 일어난다면 수많은 사람들이 죽을 것이다. 그 때 서구 언론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왜 미리 통제하지 않았느냐?'고. 이는 쉽게 비판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중국경제가 성장하면서 다양한 영역에서 다양한 모순들이 나타나고 있다. 예전에는 베이징에 사는 사람들의 물 소비량이 매우 적었다. 집 안에서 물을 쓸 수 없으며 화장실도 밖에 있었다. 이제는 더 이상 그렇지 않다. 집 안에서 물을 사용할 수 있으며 설거지도 샤워도 더 자주한다. 산업용수도 많이 쓰인다.

 

중국인들은 더 이상 예전처럼 먹지 않는다. 인도인도 마찬가지다. 이들이 한국인들처럼 고기·계란·우유를 먹는다고 생각해봐라. 서구인들처럼 한국인들처럼 소비한다고 생각해봐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중국에게 '그만 발전하라'고 할 수는 없다. '우리보다 적은 양의 에너지를 소비하라'고 말할 수도 없다. 왜 세계인구의 5%밖에 안 되는 미국이 전 세계 석유의 25%를 소비해야 하나. 그게 아니라 우리 모두 같은 에너지·음식을 소비해야 한다.

 

전 세계 10억 명의 사람들이 마실 물이 없고, 먹을 음식이 없다. 미국에서 비행기 한 대 만들 돈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마실 물과 먹을 음식을 구할 수 있는 데 말이다. 이라크에서 전쟁할 돈으로 한 국가의 사람들에게 의약품을 지원해줄 수 있다.

 

두 개의 중국... 그러나 베이징은 이미 내 조국

 

중국 내부의 모순도 존재한다. 중국에는 두 개의 세계가 있다. 베이징·상하이와 같은 발전한 도시와 농촌과 같은 발전하지 못한 세계. 단기간 내에 이러한 빈부격차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매우 어려운 문제다.

 

소비를 중심으로 하는 자본주의 모델은 이러한 문제를 결코 해결할 수 없다. 한 때 나는 사회주의 모델이 작동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중국에서도 러시아에서도 북한에서도 사회주의 모델은 작동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자본주의 모델이 최고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미국의 모델은 가난한 사람들을 보호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돈이 있든 없든 모두 똑같이 학교에 다닐 수 있고, 의료혜택을 받을 수 있는 모델을 모두 함께 찾아야 한다. 

 

나는 계획경제를 연구하기 위해 중국에 와서 32년간 살고 있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공생하는 중국에서 말이다.

 

사실 처음에는 이탈리아에 돌아가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2년만 더 있다 돌아가야지, 5년만 더 있다 돌아가야지….

 

그러나 인생은 계획한대로 되지 않는다. 앞으로도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이탈리아로 돌아갈 수도 있고, 베이징에 살 수도 있고…. 이미 베이징은 나의 또 다른 조국이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SK텔레콤 T로밍이 공동 후원하는 '2008 베이징올림픽 특별취재팀' 기사입니다.


태그:#베이징 올림픽, #중국, #베이징, #사회주의 모델, #자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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