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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4일, 책 <세계의 수도 베이징>(조관희 지음, 창비 펴냄)을 선물 받았다. 서울에서 오며 가며 읽다가 베이징행 비행기를 타면 봐야지 하는 생각에 배낭에 넣었다. 취재 일정을 낙서하다가 문득 책을 꺼냈다. 그동안 그저 눈치만 보던 후퉁에 대해 좀 깊이 들어갈 볼 생각이었는데 때맞춰, 해박한 지식과 관점을 지닌 이 책을 만난 것은 행운이기도 했다.

후퉁은 우리말로 바꾸면 '골목' 딱 두 자. 가장 긴 후퉁, 가장 짧은 후퉁, 가장 좁은 후퉁. 책 내용을 정보 삼아 '가장 후퉁'을 찾아가 보자. 위치를 찾고 보니 버스나 지하철 타기가 애매하다. 물론 택시도 그렇고. 오로지 발품.

톈안먼(天安门)광장 남쪽에는 마오주석기념당(毛主席纪念堂)이 있다. 이곳 좌우에 동서방향으로 길게 뻗은 후퉁이 있으니 쟈오민샹(交民巷)이다. 신중국 후 광장 한가운데 기념당이 들어섰지만 원래는 하나로 연결된 상태로 총 길이가 3킬로미터가 넘는 긴 후퉁이다. 원나라 때부터 조운(漕运) 지역으로 쟝미샹(江米巷)이라 불렸다.

둥(东)쟈오민샹은 청나라 시대 외국 귀빈을 위한 영빈관이 있었고 서양 열강이 베이징에 진출한 후에는 서방국가의 대사관저와 은행들이 들어섰던 곳이다. 지금도 프랑스가 세운 고딕양식의 멋진 성미엘(圣弥厄尔)성당이 있다. 이 후퉁의 백 년을 기록한 사진이 한 건물 벽에 전시돼 있기도 하다.

장장 3킬로미터에 이르는 쟈오민샹의 동쪽 끝에 있는 후퉁의 역사를 한눈에 보여주는 옛 사진 전시
 장장 3킬로미터에 이르는 쟈오민샹의 동쪽 끝에 있는 후퉁의 역사를 한눈에 보여주는 옛 사진 전시
ⓒ 최종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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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미터 간격으로 경찰차가 주차해 있고 붉은 글씨로 WJ으로 시작되는 차 번호판이 무시무시한 무장경찰 차량도 대여섯 대가 한적한 골목길을 지키고 있어 역시 올림픽임을 실감한다. 이곳에는 중국 최고인민법원(最高人民法院)과 베이징경찰박물관(北京警察博物馆)이 있고 곳곳에 오래되고 웅장한 건축물들이 많다. 거리에는 몸통이 검고 줄기는 푸른 가로수 나무들이 이어져 있고 지나는 사람들도 많지 않아 한적하고 깨끗한 분위기이다.

둥쟈오민샹이 끝나는 곳에서 계단을 내려서면 타임머신을 타고 날아온 듯 갑자기 복잡하고 시끄럽다. 바로 '세계 최대'라는 광장으로 바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지하도로 내려가니 톈안먼광장으로 가는 모든 사람들의 짐을 검색하고 있고 있다. 광장으로 나서서 마오주석기념당을 가로질러 다시 지하도를 지나 서쪽으로 가면 시(西)쟈오민샹이다.

톈안먼광장 남쪽에 있는 마오주석기념당 좌우로 3킬로미터에 이르는 긴 후퉁이 있다
 톈안먼광장 남쪽에 있는 마오주석기념당 좌우로 3킬로미터에 이르는 긴 후퉁이 있다
ⓒ 최종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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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쟈오민샹은 둥쟈오민샹보다는 짧지만 그래도 1킬로미터가 넘는다. 두 후퉁은 그 분위기가 사뭇 달라 청나라 때에는 행정부서가 있었고 민국 초기에는 중국의 은행들이 있던 곳이었기에 입구에 중국화폐(钱币)박물관이 있다. 지금은 비교적 서민적인 주거지역으로 변했으며 골목 사이사이로 더 조그만 골목들마다 별의별 이름의 후퉁 간판이 많다. 정말 수천 개나 된다는 베이징 후퉁을 다 둘러보는 것은 불가능할 듯싶다.

서쪽 끝에 이르니 입구에 발을 드리우고 더위를 식히는 듯한 식품가게 하나가 있다. 빙전(冰镇), 즉 얼음에 채운 각종 음료수와 빙군(冰棍)을 판다고 적혀 있다. 빙군은 우리말로 아이스케이크라 하면 적절할 듯하다. 아이스크림을 빙치린(冰淇林)이라 하는데 빙군이라 적혀 있어 가보니 문이 닫혀 있다. 하기야 이 더위에 적막한 이곳에 사람들이 오갈 리가 없다.

시쟈오민샹에 있는 서민적인 식품가게, 얼음에 담긴 음료수와 아이스케이크를 판다
 시쟈오민샹에 있는 서민적인 식품가게, 얼음에 담긴 음료수와 아이스케이크를 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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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백색의 후퉁에 붉은 깃발이 들어차 야릇한 분위기가 온 베이징을 감싸고 있다
 회백색의 후퉁에 붉은 깃발이 들어차 야릇한 분위기가 온 베이징을 감싸고 있다
ⓒ 최종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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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충원먼(崇文门)역에서 쳰먼(前门)역을 지나 허핑먼(和平门)역까지 장장 두 정거장이나 되는 먼 길이었다. 돌아가는 길에 남쪽으로 10여 미터 떨어진 둥중후퉁(东中胡同)을 지났다. 골목에는 자전거, 오토바이, 삼륜차와 자동차가 나란히 세워져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게다가 집집마다 오성홍기가 나부끼니 사람은 없지만 복잡해 보이는 골목이다.

다시 한 정거장을 걸어 쳰먼을 마주 보고 옛 상가거리인 다스랄(大栅栏)을 지나 양메이주세제(杨梅竹斜街) 간판을 찾았다. 이곳에는 가장 짧은 거리의 후퉁인 이츠다제(一尺大街)가 있다. 너무 짧아 결국 양메이주세제에 편입됐다는데 찾을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이츠다제는 골동품 문화거리인 류리창(琉璃厂) 동쪽 끝과 연결돼 있다. 류리창 팻말이 보이는 곳까지 왔지만 그 어디에도 이츠다제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세 갈래 길 앞에서 아무리 둘러본들 찾기 어려울 듯하다. 골동품 가게 화루이자이(华瑞斋) 앞에 서 있는 할아버지에게 "혹시 이츠다제가 어딘지 아세요?"하고 물었다. 속으로 이 정도 머리카락이 희끗하다면 아마 기억할 듯했는데, 딱 맞았다.

이츠다제가 있던 자리를 알려준 할아버지. 화루이자이 골동품가게 왼편에 서 있는 분. 이곳부터 왼편으로 '13보'로 짧은 후퉁이 있었다. 사진 찍은 위치는 류리창 동쪽 끝.
 이츠다제가 있던 자리를 알려준 할아버지. 화루이자이 골동품가게 왼편에 서 있는 분. 이곳부터 왼편으로 '13보'로 짧은 후퉁이 있었다. 사진 찍은 위치는 류리창 동쪽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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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양메이주세제로 편입된 이츠다제 모습
 지금은 양메이주세제로 편입된 이츠다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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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어, 예전에 유명한 후퉁이었는데 지금은 바뀐 지 오래지"라며 이렇게 찾아온 게 뜻밖이라는 반응이다. "언제 양메이주세제로 들어갔는지요?"라고 물으니 정확하게는 기억나지 않는지 지나가던 아주머니에게 물어도 잘 모른다.

'스싼부쥬다오러(十三步就到了)' 어른 걸음걸이로 13보, 화루이자이에서 전봇대까지가 바로 가장 거리가 짧은 후통, 이츠다제인 것이다. '단 한 자 정도로 짧은' 데도 왜 '다제'라는 이름을 붙였을까. 삼거리의 한쪽 방향인 이츠다제는 13보를 지나면 바로 류리창으로 이어진다. 그러니 단 13보만의 공간이 절묘하게 남겨진 것인데 사람들은 이를 기발한 이름의 후퉁으로 기록하고 즐거워했을 것이다.

류리창에서 뜨개질을 하며 앉아있는 올림픽지원자 아주머니
 류리창에서 뜨개질을 하며 앉아있는 올림픽지원자 아주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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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십여 명이 자전거를 타고 일렬로 지나가고 있다. 반갑게 인사를 하며 지나가는 그들은 이츠다제가 무엇인지, 자기네들이 지나가는 골목이 이제는 그 이름조차 사라진 베이징 최단 길이의 후퉁인 것을 도저히 알기 힘들 것이다.

이츠다제에는 양쪽으로 3곳의 가게가 있는데 도장 새기는 집과 이발소, 식당 등이 자리잡고 있다. 할아버지는 천천히 걸어서 '여기까지'라고 말해주고는 유유히 사라졌다.

류리창도 올림픽을 맞아 굉장히 깨끗해진 듯한데 특별히 달라진 것 같지는 않다. 올림픽 지원자가 군데군데 보이고 온통 오성홍기가 난무한다.

올림픽 지원자인 듯한데 뜨개질을 하는 아주머니도 여유롭다. 류리창에도 사이사이 크고 작은 후퉁이 보인다. 골목 안으로 살짝 들어서니 담장에 기댄 멋진 모습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류리창을 지나 신화제(新华街)와 후팡루(虎坊路)를 지나 사거리에서 왼쪽으로 들어서면 융안루(永安路)인데 이곳에 정말 좁은 샤오라바(小喇叭) 후퉁이 있다. 융안루와 연결돼 있으며 첸먼다제(前门大街) 가기 전에 있다는 정보만 알고 있다. 한참을 걸었는데도 아직 멀었나 보다.

융안루에 이어져 있는 다라바후퉁 입구
 융안루에 이어져 있는 다라바후퉁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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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에게 물어봐야 할 찰나에 빨간 바탕에 흰색 글씨로 다라바(大喇叭) 후퉁 간판이 보였다. 라바는 '나팔'이라 뜻으로 이 후퉁이 나팔처럼 남쪽은 넓고 북쪽으로 갈수록 점점 좁아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큰나팔이 있으니 작은나팔도 바로 옆일 터. 다라바후퉁으로 들어가니 역시 점점 좁아지고 구불구불하다. 그런데 골목을 다 벗어났는데도 샤오라바라는 표시는 어디에도 없다.

한사람이 겨우 걸어갈 수 있는 샤오라바후퉁
 한사람이 겨우 걸어갈 수 있는 샤오라바후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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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골목을 돌아 들어서니 왼편으로 조그만 골목이 아무래도 수상하다. 안으로 들어가니 한 아주머니가 빨래를 하고 있고 "샤오라바가 어디냐?"고 물으니 "바로 여기, 한 발자국만 더 가라"고 한다. 과장도 심하지. 하여간 몇 발자국 더 들어서니 전봇대 하나가 우뚝 서 있는 곳 바로 오른쪽으로 뭔가 통하는 길이 있어 보였다.

전봇대 굵기의 두 배 정도나 될까. 약 60센티미터로 한 사람 겨우 갈 정도로 좁다. 그러고 보니 이 전봇대가 바로 나팔 부는 작은 구멍쯤 된다. 입김 따라 나팔 속으로 빠져나가듯 움직여가니 반대편에서 사람이라도 들어오면 누군가 한 명은 반드시 되돌아가야 한다.

이 좁은 공간에 샤오라바후퉁 10호의 집 한 채가 있다. 사회적 신분을 나타내는 '먼당후두이(门当户对)' 표시가 있고 '복과 이익이 백 년(福益百年)' 지속되라는 부적 같은 것이 붙어있다. 큰길이 보이자 길은 이미 보통 골목들과 다름 없이 넓어졌다. 돌아보니 오성홍기가 좁은 골목을 아예 다 가리고 펄럭인다.

서민들이 살았고 지금도 살아가고 있는 골목, 올림픽을 맞아 집집마다 국기를 내건 것이야 이해가 가지만 올림픽으로 수많은 베이징 골목길을 재개발했으니 펄럭이는 모양이 마냥 자랑스러운 것인지 되새겨야 할 것이다. 그나마 샤오라바후퉁이 살아남아 자신의 기록을 유지하고 있어 다행이다.

'후퉁'이란 말은 몽골어에서 나왔으며 원나라가 도읍을 베이징에 정한 후 도시 계획을 하면서 조성됐다. 명나라, 청나라를 거쳐 지금에 이르기까지 사합원과 함께 베이징 전통이 가득한 공간이라 하겠다. 비록 후퉁 몇 군데를 둘러봤지만 후퉁 속에 담긴 진한 향기, 서민들의 삶은 코로 맡는 것이 아닌 가슴과 머리로 맛보는 것이 아닐는지.

큰길에서 본 샤오라바후퉁. 자세히 찾아야 겨우 발견하는 정말 좁은, '나팔'을 닮은 골목이다
 큰길에서 본 샤오라바후퉁. 자세히 찾아야 겨우 발견하는 정말 좁은, '나팔'을 닮은 골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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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www.youyue.co.kr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베이징올림픽, #후퉁, #쟈민샹, #이츠다제, #샤오라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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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발품취재를 통해 중국전문기자및 작가로 활동하며 중국 역사문화, 한류 및 중국대중문화 등 취재. 블로그 <13억과의 대화> 운영, 중국문화 입문서 『13억 인과의 대화』 (2014.7), 중국민중의 항쟁기록 『민,란』 (2015.11)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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