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너무 큰 기대를 하고 있었기에 아쉬움이 많았던 것 같다. 사상 최대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었던 베이징 올림픽의 개막식이 8월 8일 끝났다.

전체를 아우르는 큰 테마도 없었고, 공연 자체가 주는 테크닉의 경이감도 없었다. 또 아마추어들이 찍은 듯한 송출 영상은 시청자의 몰입을 방해했으며, 사회주의적인 색채가 강한 음악도 그들만의 행사인양 단조로웠다. 1천억원을 들여서 준비한 거대한 행사의 서막 치고는 전체적으로 너무 허술했다.

자문화 우수성만 강조하려면 '중국 전국체전'에서...

베이징올림픽 2008군인 환영멘트 2008 베이징올림픽 개막식이 열린 8일 저녁 주경기장인 궈자티위창에서 2008명의 군인들이 타북과 함께 환영멘트를 외치고 있다.

▲ 베이징올림픽 2008군인 환영멘트 2008 베이징올림픽 개막식이 열린 8일 저녁 주경기장인 궈자티위창에서 2008명의 군인들이 타북과 함께 환영멘트를 외치고 있다. ⓒ 연합뉴스 김주성


개막식의 테마는 세계 4대 문명 중 하나인 황허 문명을 만든 중국인들의 힘이었다. 거기에 인류 4대 발명품인 화약, 나침반, 항해술, 인쇄술 등의 개발자로서의 콘셉트가 더해졌다. 널리 알려졌듯이 중국은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도구인 화약을 만들어서 정복전쟁을 벌이기보다는 연초에 액을 쫓는 행사(비엔파오)의 도구로 썼다.

항해술을 개발했지만 정복의 길이 아닌 황제들의 자비를 선전하는 수단으로 사용했다. 개막식 자체의 주요한 콘셉트는 중국 문화의 우수한 역사를 알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내용은 일반인의 상식에 들어 있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서양인들 중에 그런 상식이 없는 이들도 많겠지만 이 개막식 공연을 통해 그 내용을 이해한 사람도 많지는 않을 듯하다. 

이번 콘셉트는 중국 전국체전에 맞는 주제이지 세계의 제전에는 맞지 않았다. 당대가 안고 있는 가장 큰 지구적인 문제가 산재해 있는데 자문화의 역사를 알리는 일은 그다지 반갑지 않았다. 중국의 힘은 현장에 초대된 국가 원수의 수나 참가국으로도 충분히 알릴 수 있었다. 정작 필요한 것은 세계를 향한 소프트파워를 보여주는 것이었는데 이 점은 거의 드러내지 못했다.

굴렁쇠 소년이 보여준 여백의 미... 냐오차오엔 없었다

개막식 공연의 전체적인 조형미도 기대 밖이었다. 장이머우는 이미 수차례의 대형 버라이어티쇼를 연출했고, 기자도 그 중 몇 개를 감상했다. 항저우의 '인상시후(印象西湖)'나 구이린(桂林) 양수오의 '류산지에(劉三姐)', 윈난 리지앙(麗江)의 '인상리지앙(印象麗江)' 등이 그런 공연들이다.

이 공연들은 현지 지형과 소수민족 음악, 복식 등을 잘 살린 최고 수준의 공연들이다. 모두 '사랑'이라는 테마를 바탕으로 황홀한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그런 경험 때문인지 이번에도 그 공연의 결정판을 기대했다. 하지만 그가 다루기에 냐오차오(주경기장)가 너무 컸던지 그가 쓴 공간은 바닥과 약간은 조악했던 두루마리였다.

거대한 공간을 활용한 공연에서 가장 빛나는 것은 여백을 활용한 아름다움이다. 서울올림픽에서 보여준 굴렁쇠 굴리기 등이 그런 공연미의 대표적인 예다. 하지만 이번 공연은 그런 여백의 미는 없이 채워서 보여주겠다는 의지만이 넘쳤다. 그 빽빽함은 스타디움에 지나지 않고 하늘의 화약으로까지 이어져 보는 이들을 답답하게 했다. 1부 행사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지구를 닮은 대형 구조물조차 조악한 장난감처럼 느껴져 아무런 감흥을 느낄 수 없었다.

대학 영상제를 보는 듯한 어설픈 중계 영상

베이징올림픽 꿈(Dream) 공연 2008 베이징올림픽 개막식이 열린 8일 저녁 주경기장인 궈자티위창에서 지구의가 무대중앙으로 하강하며 폭죽이 터지고 있다.

▲ 베이징올림픽 꿈(Dream) 공연 2008 베이징올림픽 개막식이 열린 8일 저녁 주경기장인 궈자티위창에서 지구의가 무대중앙으로 하강하며 폭죽이 터지고 있다. ⓒ 연합뉴스 김주성


복장이나 음악도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았다. 경극의 경우 다른 나라 사람들이 중국을 이해하는 주요한 소재다. 그런데 공연 중에 만난 경극은 경극이 아니라 꼭두각시로 움직이는 피극(皮劇)으로 느껴졌다. 경극 예인들이 복장을 하고 나와도 될 것을 왜 굳이 꼭두각시 형태로 했는지를 이해하기 힘들었다.

개막식을 관람하며 가장 아쉬운 것은 수준 낮은 중계 영상이었다. 대형 개막행사에 맞지 않게 카메라는 어디를 비출지 헤매었고, 비춰지는 곳은 엉뚱하거나 보여주지 않아야 할 곳이 많았다. 초보 수준의 대학 영상제를 보는 듯한 위태로움의 연속이었다. 현장에 있는 참가자들이야 공연 자체를 즐길 수 있지만 전 세계 대부분의 사람들은 텔레비전을 통해 개막식을 관람한다.

당연히 메인 방송사가 송출하는 방송을 보는데 이번 개막식 중계는 40점을 주기도 힘든 중계였다. 우선 경기장과 외관을 총괄하는 화면도 지나치게 단순했다. 29번의 예포를 쏘는 시내를 일주하는 버드아이 샷은 나름대로 훌륭했지만 개막식 중간 중간에 보여주는 스타디움 외경 샷은 지나치게 단순하고 입체감도 없었다. 물론 약간 연무 낀 날씨가 도와주지 않은 측면도 있지만 어떻든 기존 중계방송에도 미치지 못한 느낌이었다.

내부 중계에 있어서도 스타디움의 전체를 잡는 풀 샷이나 공연자를 비춰주는 클로즈업 샷 역시 조악하기 그지없었다. 대형 군무의 경우 카메라의 위치나 각도에 의해 비춰지는 모습이 천양지차다. 하지만 공연 전체를 보여주는 적합한 풀 샷은 없고, 전체의 귀퉁이를 보여주는 엉뚱한 장면이 중심을 이루었다. 클로즈업 샷도 보여주지 않아야 할 공연의 뒷모습이 번번이 노출되는 등 수준 이하였다.

중국의 오만 느껴졌던 개막식

기대가 커서인지 실망도 많은 행사였다. 다행스러운 것은 테러 등이 일어나지 않고 순조롭게 행사가 끝난 것이다. 옆집 큰 행사에 '감 놔라 대추 놔라'하는 것이 미안하지만 실망스러움을 감추기는 쉽지 않다.

이번 행사에서 중국은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잊어버린 듯하다. 그들 스스로가 평화를 지킨 위대한 민족이지만 자국 문화를 바탕으로 바깥의 문화를 잘 흡수해 지금까지 중국을 만들어온 것이다. 불교를 받아들여 선종이라는 중국식 불교를 만들었고, 당(唐)나라의 문화도 실크로드를 통해 받아들인 서구 문물과 옆에 있는 신라의 도움도 적지 않았다.

중국 역사상 가장 거대한 전성기인 청(淸)나라도 자국의 문화에 만주족의 훌륭한 리더십이 결합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다시 맞은 자국의 성장도 외자기업의 공이 8할이라고 보면 된다. 그런데 이번 공연은 마치 우리가 위대해서 이렇게 발전했다는 오만이 느껴졌다.

베이징올림픽 올림픽 개막식 중국 장이머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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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케이아이테크놀로지 상무. 저서 <삶이 고달프면 헤세를 만나라>, <신중년이 온다>, <노마드 라이프>, <달콤한 중국> 등 17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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