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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7.21 17:03최종 업데이트 08.07.21 17:03

"외국인은 역시 투자 고수"에 갇힌 함정

금융 위주 성장전략, 이제는 원점에서 재검토할 때

지난 7월 18일 <오마이뉴스>에 실린 기사 <퍼도퍼도 이득보는 한국 주식? - 외국인 투자자에겐 국내증시가 '화수분'>에 대해 몇 분의 독자들이 댓글을 통해 문제를 제기해왔다. 이에 독자들의 댓글과 함께 필자의 답변을 소개하기로 한다. <기자 주>

 

우선 오마이뉴스 독자들의 댓글을 살펴보자.

 

"정희용님께서는 경제 현실을 보다 정확히 보셔야 할 것입니다. 이 기사를 읽으면서 문득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각 스토리가 떠올랐습니다. 인수과정에서 무리수가 따르긴 했지만, 결국 스토리의 핵심은 이른바 '먹튀' 논란입니다. 너무 싸게 인수한 덕에 그들이 너무 많이 챙겨간다는 것이죠. (중략)

 

그러나 님의 말씀대로 외국인들이 지난 10년간 2.8조원을 순매도하고도 여전히 32.3%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면, 그건 그들이 정말 주식을 싸게 샀다는 반증일 뿐 개인과 기관투자자들을 발판삼아 부당한 이득을 끊임없이 얻고 있다고 말하는 건 적절치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2001년 이후 하락장에서 개인과 기관들이 매물을 쏟아낼 때 외국인들은 이를 받아냄으로써 시장을 안정시키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들은 저평가된 한국 증시를 눈여겨보고 과감히 투자했으며, 지금은 그 과실을 거둬가는 것 뿐입니다."(후략) - 아이디 번스타인

 

"좀 이해가 안되는 글이네요. 외국인이 한국에 주식투자해 주가를 올릴 때에는 찍소리 안하다가 이제 금융위기 때문에 외국인이 주식을 매도하니 이런 생떼같은 기사를 쓰나 싶어 클릭해 봤습니다. 기사도입부에, '외국인은 원래 한국 증시에 대규모로 투자했으므로 실컷 빼가고도 많이 남는 게 당연하지 않느냐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이런 내용이 분명히 있길레 내 생각이 잘못된 거였나라는 흥미진진함이 생겨 기사를 열심히 읽어 봤지만 결국, 저 내용에 대한 답은 없더군요.

 

한국 제도에 문제가 있어 외국인은 100원어치 샀는데 500원어치 팔 자격이 주어졌다 이런 게 아니라면 (저는 이런 모르는 진실이 나올까 무척 기대했음.^^) 외국인의 주식매도를 비난할 이유는 없다고 보는데요. 내가 주식투자하고 있으니 너희 외국인은 주식매도를 하면 안되고 반드시 주식매수를 해야해! 이런 되도 않은 거러지 근성이 아니라면요.- 아이디 2nirvana

 

대표적으로 인용했지만 아마 이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분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아쉽지만, 저점에 외국인이 투자를 제대로 해서 많은 수익을 챙겨가는 걸 어떻게 하겠느냐. 속상하면 우리도 투자를 잘하는 수밖에' 뭐 대체로 이런 시각이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지금과 같은 증시와 금융 시스템은 전혀 손댈 수 없는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관점도 깔려 있을 것이다. 사실 이 칼럼은 이런 고정관념에 문제를 제기해 보려 했던 것인데, 설득력이 부족했던 모양이다.

 

외국투자자 성토 아닌 정부 금융시스템 추종 비판

 

 국내 증시가 외국인의 그칠 줄 모르는 매도 행진에 미국발 신용경색 우려까지 겹치면서 급락세를 보인 지난 8일 오후 여의도 증권선물거래소에서 관계자들이 시세판을 바라보고 있다.
국내 증시가 외국인의 그칠 줄 모르는 매도 행진에 미국발 신용경색 우려까지 겹치면서 급락세를 보인 지난 8일 오후 여의도 증권선물거래소에서 관계자들이 시세판을 바라보고 있다. ⓒ 연합뉴스 서명곤

 

증시 100% 개방으로 달러가 유입되고 한국 증시가 발전할 것이라던 전망과 달리, 결과적으로 완전 개방된 증시는 달러 유출 통로가 되고 있다. 또 외국인의 막강한 영향력을 국내에서 제어하기 어렵게 되었다.

 

그럼에도 이러한 경험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고 현 정부나 금융기관, 언론은 여전히 선진국의 금융 시스템을 따라하기만 하면 우리도 금융강국이 될 거라는 설익은 정책에 매달리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 것이다. 그래서 글 후반부는 현재의 금융 정책기조에 문제를 제기하고 펀드나 해외투자를 장려하는 여론의 일방적 분위기를 경계하는 내용을 쓴 것이다.

 

'외국인이 많이 팔고 이익을 남긴다 → 그러므로 외국인 투자자들이 나쁘다'라는 논리 전개가 아니라는 말이다. 글 어디에도 외국인 투자자들이 주식을 매각하는 점에 대해 도덕 가치 판단을 내리고 있지 않다.

 

저점에서 대량매수해 큰 이익 보고 지분율 높아진 게 문제없다?

 

다음으로, '외국인이 저점에서 주식을 싸게 대량 매수하여 많은 이익을 보고 또 지분율이 높아진 것 자체야 나무랄 수 있겠는가' 하는 의견이 있다. 위에 소개한 댓글의 필자들도 공히 이를 지적하고 있다. 물론 댓글에서도 이러한 현실을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읽히고 그 점에서는 필자의 생각도 동일하다. 그러나 필자는 이것이 현실이므로 어쩔 수 없이 수긍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국제 머니게임에서 국내 자본(국부펀드든 기관이든)은 수백 년의 경험을 쌓은 초국적 자본의 게임 상대가 되지 못한다. 자본 규모부터 다르다. 2006년 말 전 세계 금융자산은 약 140조 달러로 추정되며 이중 미국과 유로 통용 지역의 비중이 절반 이상인 74조 달러를 차지한다.

 

이에 비해 아시아 신흥시장 전체의 금융자산은 9조 달러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2007년 말 증시 시가총액은 글에서도 썼듯이 951조 원, 즉 1조 달러가 채 안 되는 규모다. 규모 면에서 초국적 자본과 상대가 안 된다. 돈 놓고 돈 먹기 게임에서 판돈이 큰 쪽이 유리한 것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

 

자본 규모만이 아니라 정보력과 투자 기법 등도 모두 열세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세계적 경기 변동을 좌우하는 결정력이 이들 초국적 자본과 미국 등 소수 플레이어 손에 달려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전 세계 증시가 2003년부터 2007년까지 대세 상승을 했는데 그 발단이 된 주요한 계기 중 하나가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었다. 초국적 자본은 이러한 사태를 파악, 대처하는 기법이 발전했을 뿐만 아니라 여러 경로를 통해 이런 정책을 부시 정부에 주문하거나 뒷받침하는 공생관계에 있다.

 

2007년 후반 이후 전 세계 증시의 급락 배경은 무엇인가. 결정적 단초는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다. 국내 기관 투자자조차도 미국 서브 프라임 부실의 총체적 규모나 그 여파, 미국 금융기관들의 부실 상황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한다. 사태가 어떻게 가는지 제대로 인지하기도 전에 이미 거대 초국적 자본은 이를 감지하고 해외 증시에서 자금을 환수해 가고 있었던 것이다.

 

또 이미 심각한 부실이 진행 중인 미국 모기지 기관들에 무디스를 비롯한 신용평가회사들은 우량 등급을 부여했으며, 한국은행은 이를 믿고 엄청난 외환보유고를 모기지 채권 인수에 썼던 것이다. 이 모든 과정에서 국내 자본은 들러리 노릇밖에 하지 못 한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머니게임, 금융을 통한 부의 창출이란, 적어도 국내 자본에는 신기루에 불과하다. 게임 규칙을 저들이 결정할 뿐 아니라 체급도 다르다. 이 상황에서는 우리가 선진국 금융 시스템을 그대로 복사한다고 해서 또는 은행 몇 개를 합해 규모를 키운다고 해서 금융강국이 되거나 자본 소득을 창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즉 현재의 우리나라 금융 시스템, 자본시장 제도는 장기적으로 초국적 자본의 먹잇감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이므로, '외국인이 저점 매수해서 차익 남긴 걸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체념할 것이 아니라, 이 시스템과 제도 자체에 손질을 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죽을 각오로 싸워서 이기는 게 명장이 아니라 이길 수밖에 없는 조건을 만들고 전투를 벌이는 것이 명장이다. 수적 열세를 극복하고 해전마다 승리를 이끈 이순신 장군은 그 좋은 보기였다. 백전백패인 조건을 그대로 방치해두면 우리는 10년 후에 또다시 똑같은 후회를 하고 있을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어떻게 우리만 흐름을 거스르며 제도와 시스템을 바꿀 수 있나?

 

'그럼 제도와 시스템을 어떻게 바꾸자는 것인가? 전 세계가 다 이런 식으로 가는데 우리라고 뾰족한 수가 있겠는가?' 현실이 못마땅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의 인식 밑바탕에는 이런 생각이 깔려 있다. 현재의 시스템이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물론 우리는 금융과 자본시장 문을 닫아 걸 수는 없다. 그러나 개방을 하면서도 필요 최소 한도의 안전장치를 얼마든지 강구할 수 있다. 외화가변유치제라든가 토빈세 등등이 유럽 국가들에서도 신중하게 논의되고 있고 외국인 전체 투자한도나 종목별 투자한도에 제약을 가하고 있는 선진국도 많다.

 

더 중요한 것은 금융 일변도의 발전 전략을 수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이명박 정부는 대운하 등 개발시대의 토건 부흥 방식과 공기업 민영화와 같은 신자유주의가 요구하는 공공 부문의 사유화 정도 외에는 아무런 국내 산업과 내수 발전 계획을 내지 못하고 있다. 이에 반해 산업은행 매각, 자통법 실시, 은행 및 증권사 합병 등 금융 시스템의 선진국 추종 정책은 매우 조급하게 추진하는 상황이다. 정반대로 가야 한다.

 

최근 미국의 경제 위기나 전 세계 금융 불안 상황에도 브릭스 국가들은 경제 호조를 보이고 있는데, 그 원인은 여러 가지이나 적어도 이들 국가들은 금융 플레이어로 나라를 성장시키려는 정책을 쓰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아시아에서 가장 큰 자본력을 지닌 일본도 자국 내 제조업 기반 발전을 통한 경제 발전을 꾀하고 있다. 한국 역시 실물경제와 내수 경제를 발전시키는 것을 최우선 전략으로 삼아야 한다.

 

증시 개방 10년의 경험에서, 한국은 펀드 조성이나 해외 투자 등 선진국 금융 추종 정책보다는 청년실업 해소, 중소기업과 자영업 등의 내수 경기 활성화, 식량 위기를 돌파할 농업 기반 조성 등 견실한 실물 경제 위주로 경제 발전 계획을 짜야 마땅하다는 것이 이 글의 결론이다. 또 실물 경제 활동을 원활히 지원하는 금융 시스템이 투기적 고수익을 추구하는 소위 금융 선진화보다 훨씬 안정적이고 긴요하다는 주장인 것이다.

 

현실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것을 바꿔내는 것이 진보적 자세다. 금융도 증시도 결국 국민경제에 도움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거꾸로 이들 시스템이 국민경제가 일군 부를 빼내가는 수단으로 작용하고 있다면, '이게 글로벌 스탠더드이고 외국인은 역시 투자에 뛰어나' 하고 체념할 게 아니라 이 시스템을 바꾸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새사연(http://saesayon.org)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정희용 기자는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이사입니다.


#증시#금융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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