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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체인 맥도날드에 설치된 '드라이브 스루' 창구에서 음식을 받기 위해 운전자들이 기다리고 있다.
 식당체인 맥도날드에 설치된 '드라이브 스루' 창구에서 음식을 받기 위해 운전자들이 기다리고 있다.
ⓒ 강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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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들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발명품은 무엇일까? 아마 자동차일 것이다. 수로 보나 인구비율로 보나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자동차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자동차가 미국사회에 끼친 영향은 단순히 숫자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전 세계적으로 자동차의 영향을 받지 않은 곳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만큼 국민들의 삶 구석구석에 이 이동수단이 영향을 끼친 나라도 찾기 어렵다. 미국은 자동차로부터 '영향을 받은' 정도가 아니라, 사회 자체가 자동차를 축으로 형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인들이 차 안에 앉은 채 '드라이브 스루(Drive Thru)' 식당에서 햄버거와 커피를 주문해서 '드라이브 인(Drive In)' 극장으로 향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차창 높이에 맞춘 우편함에 편지를 넣거나 꺼내는 것은 물론, 은행이나 약국에도 운전석에 앉은 채 일을 볼 수 있는 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운동 부족이 걱정될지 모르나, 슈퍼마켓에는 비만으로 거동이 힘든 사람들을 위해 실내용 소형 자동차가 갖추어져 있다. 게다가 미국인들은 차를 열심히 타는 대신, 아침에는 목숨을 걸고 조깅을 한다. 비록 쇼핑센터의 주차장에서는 최대한 적게 걷는 자리를 잡기 위해 주위를 몇 바퀴씩 빙빙 돌긴 하지만 말이다.

외출을 마치고 돌아온 미국인들 가운데 적잖은 이들이 자동차 광고로 도배된 '나스카(NASCAR)' 자동차 경기를 지켜볼 것이다. 이처럼 미국인들의 삶 속에는 자동차의 흔적이 곳곳에 배어 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미국의 사회와 공간구조가 자동차를 중심으로 조직화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미디어학자 마샬 맥루언은 "매체가 곧 메시지"라고 말했다. 여러 의미로 해석되지만, 맥루언이 본래 의도한 바는 '기술은 본래의 목적 이외의 광범위한 결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자동차를 단순한 '운송수단'으로 보는 것은 이것이 사회와 문화에 끼친 엄청난 영향을 놓치는 것이다. 자동차는 '매체 그 자체'로서 미국의 사회와 문화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스타벅스도 '드라이브 스루'를 운영하고 있다. 차 안에 앉아 음식을 사고 은행 업무를 보는 것은 미국인들의 일상 가운데 하나다.
 스타벅스도 '드라이브 스루'를 운영하고 있다. 차 안에 앉아 음식을 사고 은행 업무를 보는 것은 미국인들의 일상 가운데 하나다.
ⓒ 강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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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자의 편의를 배려한 '드라이브 스루' 우체통.
 운전자의 편의를 배려한 '드라이브 스루' 우체통.
ⓒ Wikimedia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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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아우토반,' 미국 고속도로의 산파가 되다

가솔린으로 움직이는 자동차를 처음으로 만든 나라는 독일이었다. 그러나 19세기 후반의 이 발명품을 대량생산해서 싸게 보급한 것은 20세기 초 미국이었다. 자동차는 '포디즘(Fordism)'이라 불리는 이 양산체제를 통해서 비로소 대중에게 영향을 끼치게 된 것이다.

1910년대 중반에 이미 포드 생산라인의 노동자들 넉달치 월급이면 자기가 생산한 차 한 대를 살 수 있었다. 물론 넉달치 월급을 모두 털어 자동차를 구입하는 노동자들은 드물었겠지만,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인해 자동차 소유자들이 급격히 늘었다.

하지만 차가 있으면 뭐하는가? 도로가 없는데. 당시 미국의 자동차는 포장되지 않은 길을 덜컥거리는 '말 없는 마차'였을 뿐이다. 세계대전이 끝난 한참 뒤인 1950년대 중반까지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런 자동차가 제 능력을 발휘하게 된 데에는 아이젠하워의 공이 컸다.

1919년, 군인이었던 아이젠하워는 임무를 위해 동부와 서부를 차로 가로질러야 했다. 이 도로여행에 44일이 걸렸고, 차의 운행속도는 평균 시속 10㎞ 미만이었다고 한다. 이 답답한 여행을 견뎌야 했던 아이젠하워는 세계대전 중 독일의 도로를 보고는 눈이 휘둥그레진다. 독일군의 기동능력이 뛰어난 도로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세계대전이 끝나고 대통령이 된 아이젠하워는 미국 전역을 연결하는 고속도로를 건설하기로 마음먹는다. 도로 건설 계획이 마련되고, 연방정부가 이 작업에 재원을 보조하는 법이 통과되었다. 이로써 미국의 주간(Interstate) 고속도로가 동부에서 서부·북부에서 남부를 잇기 시작했다. 이제 제대로 된 '자동차 여행'이 시작된 것이다. 

집·직장·여가생활... 모든 것을 뒤바꾸다

세계대전이 끝난 후 미국에는 호경기가 찾아왔다. 고용과 소득이 늘면서 소비가 늘고, 기업은 부지런히 물건을 찍어냈다. 미국인들은 여분의 소득을 여가생활에 쏟아 부었다. 이미 전국적인 고속도로의 확대로 인해 여행은 더없이 쉬워진 터였고, 휘발유 값은 거저나 다름없었다.

자동차 여행이 늘면서 고속도로를 따라 '하워드 존슨'이나 '홀리데이 인'과 같은 모텔체인이 생겨났다. 몇 사람 살지 않는 마을에도 여행자를 상대로 한 식당체인이 생겨났다. 맥도날드나 데니스도 모두 여기에 속한다.

미국의 대표적인 모텔과 식당 체인이 생겨나거나 급성장한 것이 1950년대 이후라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이들은 지역의 유서 깊은 호텔과 식당을 몰아내면서 낯선 여행자에게 '예상 가능한' 분위기와 맛을 팔았다.

업소들은 도로에서 쉽게 보이도록 대형의 원색 로고를 내걸었다. 이들이 이질적인 미국의 지역 문화를 획일화하는 데 일조했음은 물론이다. 여행에서 익숙해진 표준화 업소들의 방식은 일상적인 삶에도 영향을 끼쳤다.

미국에 처음 온 사람들은 어느 곳을 가나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도로 주위에 자리 잡은 프랜차이즈 주유소·식당·모텔이 '표준화'에 한몫 했지만, 도로는 사회적 공간 구성도 엇비슷하게 바꾸어 놓았다.  

미국의 주간 고속도로에서 도시로 진입하면 거주지는 잘 보이지 않는다. 고속도로 진입로 근처에는 대개 대형 주차장을 갖춘 쇼핑몰과 식당 체인이 있고, 도시 중심부를 지나 작은 길을 한참 따라가야 주거지가 하나둘 모습을 드러낸다.

시카고를 관통하는 주간고속도로의 모습. 시내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퇴근 후 외곽으로 빠져 나가고 있다.
 시카고를 관통하는 주간고속도로의 모습. 시내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퇴근 후 외곽으로 빠져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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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디슨 외곽의 거주 지역 내 쇼핑몰 앞에 자동차가 서 있다. 미국의 쇼핑몰은 일터와 거주지가 공간적으로 분할되면서 탄생했다.
 매디슨 외곽의 거주 지역 내 쇼핑몰 앞에 자동차가 서 있다. 미국의 쇼핑몰은 일터와 거주지가 공간적으로 분할되면서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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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전형적인 중산층 가족들의 주거지에는 가로수가 늘어서 있고, 좁은 길 양쪽으로 잔디밭을 갖춘 이층집들이 있다. 이처럼 도시 외곽에 자리 잡은 주거지를 '서버비아(suburbia)'라고 부르는데, 이 또한 자동차가 미국사회에 가져다준 변화 가운데 하나다.

미국의 도시들이 대형화하면서 여러 문제들이 발생했다. 범죄는 증가하고 환경은 오염되었다. 여전히 인종차별적이었던 미국사회는 이민자들의 도시 유입 역시 탐탁지 않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 때 자동차와 잘 닦인 도로는 돈 많은 이들을 도시 외곽으로 끌어들였다.

직장은 시내 중심에 있더라도, 아침저녁 몇 시간만 투자하면 '아름답고 평화로운 곳'에 살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었다. 이로써 일터와 가정을 기능뿐 아니라 지역으로도 구분하는 전통이 생겨났다. 직장은 '위험하고 더러운' 도시에 있지만, 가정은 '안전하고 깨끗한' 외곽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차를 살 돈이 없거나 아침저녁으로 출퇴근할 여유가 없는 이들은 도시에 남겨졌다. 경제력이 있는 가정들이 도시를 떠나자 시내의 상점가들은 주말에 아예 문을 닫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삶이 어려운 도시빈민들의 삶은 더 척박해졌다.

'서버비아'가 모든 차를 공평하게 받아들인 것도 아니다. 이 거주지의 특성은 철도나 도로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대중교통수단이 접근하기 어려운 지역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도 장은 봐야 했으므로, 주거지 외곽에 대형 주차장을 갖춘 쇼핑몰들이 생겨났다. 이렇게 해서 주거지의 쇼핑몰은 쇼핑과 오락을 갖춘 종합적 기능을 갖춘 가족의 공간이 되었다.   

미국의 영화와 소설에서 '서버비아'는 '안전'과 '보호'의 상징이다. <디스터비아>라는 영화 제목이 잘 말해주듯, 이 주거공간은 안전한 가정을 위협하는 공포영화의 효과적 무대가 되었다.

'아메리칸 드림', 계속 달릴 수 있을까

미국인들이 잘 쓰는 표현 가운데 '5년에 한 번씩 차를 바꾼다(a new car every five years)'는 말이 있다. 여기에는 큰 부자는 아니더라도 궁핍하게는 살지는 않는다는 뜻이 담겨 있다. 보통 5년이 되면 새 차의 할부금이 정리되고, 헌 차는 고등학생 상급생이나 대학생이 된 아들딸의 몫이 된다.

어린 새 주인들은 열심히 세차를 해서 '새 차 냄새(new car smell)'가 나는 방향제를 뿌린 후 애인을 태우러 갈 것이다. 이렇게 해서 부모들의 고충은 하나 더 늘게 된다. '애들이 밖에서 뭐 할까'를 걱정하던 부모들이 '차 안에서 뭐 할까'도 근심해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 고속도로에서 빨간색 스포츠카를 몰고 다니는 사람이 있다면 유심히 살펴보자. 태반이 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들일 것이다. 특히 빨간색 모자를 쓴 운전자는 거의 예외없이 할아버지일 것이다.

빨간색 스포츠카.
 빨간색 스포츠카.
ⓒ 강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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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는 노인까지 스포츠카를 몬다고? 천만의 말씀이다. 슬하에 자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어쩔 수 없이 여러 사람을 태울 수 있는 '밴'이나 큰 승용차를 살 수밖에 없다. 좌석이 두 개 달린 스포츠카를 사려면 자식들이 모두 독립해야 하고, 집과 승용차의 할부금을 모두 갚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자동차 문화'라는 말이 미국처럼 어울리는 곳도 없지만, 이 발명품이 실어온 '아메리칸 드림'은 서서히 흔들리고 있다. 미국은 이미 일본에게 자동차 최대생산국의 자리를 내주었다. 품질 면에서는 이미 유럽에게 뒤진 지 오래다. 자동차 산업의 수도로 존경받던 디트로이트는 미국 최악의 실업률이 지배하는 유령도시가 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큰 문제는 미국의 자동차 문화를 가능케 했던 저유가 시대가 지났다는 것이다. 3~4년 전만 해도 리터당 400원에 머물던 휘발유 값은 이라크 전쟁을 지나며 두 배 이상 올랐다. 미국인들은 오랫동안 큰 차를 타는 데 익숙해 있었으나, 이제 머리를 긁으며 작은 차로 눈을 돌리고 있다. '아메리칸 드림'을 실어온 미국의 자동차. 이 꿈의 차가 당장 멈추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크기가 줄어들 것은 분명해 보인다.

미국의 전형적인 쇼핑몰 내부의 모습. 다양한 종류의 상점이 몰려 있으며, 영화관이나 오락실 등 여가 활동의 기능도 담당한다. 내부에는 다양한 음식을 파는 식당가(food court)가 있다. 홍보용 자동차가 전시되어 있는 모습이 보인다.
 미국의 전형적인 쇼핑몰 내부의 모습. 다양한 종류의 상점이 몰려 있으며, 영화관이나 오락실 등 여가 활동의 기능도 담당한다. 내부에는 다양한 음식을 파는 식당가(food court)가 있다. 홍보용 자동차가 전시되어 있는 모습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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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자동차의 중심지인 디트로이트에 자리 잡은 포드 본사. 자동차 산업의 몰락을 상징하듯 그 앞을 수입 자동차가 지나고 있다. 현재 디트로이트는 미국에서 가장 심각한 실업과 범죄 문제를 지닌 도시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미국 자동차의 중심지인 디트로이트에 자리 잡은 포드 본사. 자동차 산업의 몰락을 상징하듯 그 앞을 수입 자동차가 지나고 있다. 현재 디트로이트는 미국에서 가장 심각한 실업과 범죄 문제를 지닌 도시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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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자동차문화, #아메리칸드림, #포디즘, #서버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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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학 교수로,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 기술과 문화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미디어기호학>과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를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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