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부 임기가 며칠 안 남았다. 이명박 정부에 대한 관심은 고조되어도 노무현 정부에 대한 평가는 싸늘하다. 노무현 정부는 국민에게 잊혀가는 존재이면서 '잊혀야 할 존재'로 각인되고 있다.
정부의 성공은 곧 국민의 성공이다. 그런 점에서 지난 대선 때 노무현 정부가 심판을 받은 것은 국민이 성공하지 못했다는 얘기이고 , 따라서 노무현 정부도 실패했다는 증좌다. 때마침 국민의 절반이 노무현 정부를 잘못 뽑았다고 한 여론조사가 발표된 때이기도 하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실패론을 말해 온 나로선 그 총체적 실패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노무현 정부가 취하고자 했던 여러가지 정책들 중 부동산과 관련된 대통령의 안이한 인식이 지금 한국사회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되고 있는 사회 양극화 해소 실패의 원인인긴 하지만 부동산 가격 폭등이후 정부가 내놓은 처방들은 대체적으로 올바른 방향이었다.
실제로 최근 부동산가격이 다시 앙등조짐을 보이는 것은 노무현 정부의 규제정책 때문이 아니라 이명박 정부의 규제해제분위기로 인한 시장반응이고 이 점을 관련 전문가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사상 최대의 미분양사태를 겪으면서도 가격을 내리지 않는 건설회사들의 반시장주의적 가격정책도 물론 이명박 정부의 규제해제분위기와 맞닿아 있다.
그러면 부동산 정책을 제외한 나머지 정책은 어떨까. 크게 이슈가 된 한미FTA의 경우, 그 적절성 여부에 대한 판단과 평가가 각기 다르지만 대체적으로 국민여론은 약간 찬성 쪽으로 기울어 있다. 수출입국인 우리 처지에서 개방은 불가피하다는 점을 국민이 동의하는 것이다.
물론 개방의 정도를 가지고 불가하다고 하지만 이것은 미국을 전략적으로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다. 이에 대해 노무현 정부는 나름대로 현실적 관점을 가졌다. 나는 그 관점이 무시해도 좋을 내용은 아니라고 본다.
정작 중요한 것은 노무현 정부의 사회경제적 방향성이다. 개별적인 사안에 단면이 드러나기도 하지만 결국 정부에 대한 평가는 정부정책이 수치로 나타나는 국가예산편성을 가지고 평가하는 것이 옳다.
그런 점에서 노무현 정부가 비록 사회 양극화 해소에는 실패했다고 하더라도 사회안전망을 구축하고 선진화시키려고 했다는 점만은 인정할 필요가 있다. 역대 정부예산 중에서 경제성장에 지출하는 예산보다 사회복지분야에 들어간 예산이 처음으로 더 많아진 정부가 노무현 정부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단순히 예산수치의 문제가 아니다. 노무현 정부가 어디를 지향하려고 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이며 대표적인 수치다. 물론 이 수치도 집권 3년만에 새로운 정책패러다임을 다잡은 시점과 맞물려 있어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어쨌든 지향성은 제대로 잡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노무현 정부의 적자임을 자임하는 유시민 장관의 사회투자국가론도 여기에 맞물려 있다.
아직은 노무현 정부가 끝나지 않았고 인기가 없어 노무현 정부를 총체적 실패로 말하고 있지만 이 점은 아마도 이명박 정부가 어떤 시장주의 정책을 취하느냐에 따라 국민평가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 숨을 쉬고 있는 동안 공기의 소중함을 모르지만 공기가 사라진 뒤에는 그 소중함을 알 수 있듯이.
물론 나는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들과 관련된 도덕성 문제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본다. 일설에는 임기가 끝나면 측근들의 비리가 쏟아져 나올 것이라 하는 말도 있는듯 한데 그런 것이 있다면 당연히 밝혀져야 할 일이다. 다만 이전 정부에 비해 친인척비리나 측근비리가 그리 많지 않다는 점도 비교할 만한 일이다.
그리고 노무현 정부에 대한 총체적 평가는 도덕성 문제가 아닌 정책방향성을 두고 평가하는 게 옳다. 그런 의미에서 노무현 정부가 '큰 정부'라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국가예산으로 서민복지를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한 흔적과 방향성은 긍정적이다. 복지를 강화하기 위해 필요한 인력을 쓰는 것을 큰 정부라고만 매도하는 것은 복지혜택의 당사자인 서민이 아니라 가진 자들만의 불만타령일 수도 있다.
노무현 정부는 김대중 정부와 더불어 20세기 냉전체제를 한반도에서 녹여내기 위해 노력했고, 가진 자들의 성장뿐 아니라 서민들의 복지문제에도 남달리 노력을 기울인 정부다. 다만 정책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국민과 소통을 하지 못했고, 여기엔 거대 언론사들의 정략적 편집방향도 단단히 한 몫했다.
그리고 애초 노 대통령이 소망했던 것처럼 국민으로부터 박수를 받으며 청와대를 떠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역대 대통령들 중엔 비교적 무난하게 임기를 마친 대통령으로 기록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김대중 정부에 이어 등장한 노무현 정부가 북유럽 복지국가모델을 처음으로 구현하려 노력했다는 점이다. 자유로운 경제활동과 평등한 사회관계를 달성함으로써 선진국이 된 북유럽 국가모델은 개발독재를 통해 성공한 박정희 모델의 후속모델로서 우리가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 필연적으로 참조해야 할 모델이다.
이를 지난 대선에서 창조한국당의 문국현 후보가 '사람중심 진짜경제'론으로 구체화했지만 정치력과 구도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해 미완의 과제로 남겨놓고 있는 마당이다.
이제 (신)자유주의를 신봉하는 이명박 정부가 들어 선다. 그에 따라 노무현 정부의 정부이념은 단절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복지보다는 성장에 무게를 두는 정책이 예상된다. 기업인 출신 특유의 치고 빠지기로 최근엔 '서민에게 도움이 되는 경제성장'을 말하는 이명박 당선인이지만 서민을 위한 친기업행보가 아니라 가진 자를 위한 친기업행보가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사람이나 집단, 그리고 정권의 실체는 그 자체로 평가받는 것이 아니다. 개인의 주관적 잣대로 평가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어떤 시대흐름 속에서 어떤 기능과 의의를 갖는지를 중심으로 평가하는 것이 냉정한 평가의 자세라 본다.
그런 점에서 노무현 정부가 부족한 것이 많지만 지향하고자 했던 사회경제시스템이나 통일외교안보 업적은 역사적 획을 그을 만하다고 본다. 국민과 소통하는 방식에서 불철저함이 있었고, 때로는 국민을 분노하게 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정부의 방향성이 기득권자들의 기득권을 챙겨주기 위한 방향이 아니라 서민복지를 지향하려는 정책방향에 방점이 찍혀있는 진정성을 외면할 필요는 없다.
생각을 정리하자. 그의 시대가 끝나는 시점을 맞은 값싼 동정이 아니라 우리들 스스로 맑은 정신건강을 위해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잘한 것은 잘한 것이고 못한 것은 못한 것이며 역사적 의의와 향후 과제는 그것대로 정리해 평가하는 것이 이 땅의 주인된 우리의 자세여야 한다고 믿는다.
노무현 정부, 성공과 실패가 어우러진 정부지만 그 방향성을 볼 때 최소한 그를 지지한 서민들을 배신한 정부는 아니라는 점에 동의하면서 그를 봉화마을로 떠나보냈으면 한다. 아울러 '그간 고생 많으셨다'는 인사도 그를 쓰고 내보낸 국민 입장에선 반드시 필요한 최소한의 덕목이라고 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김석수의 자유자재'(http://blog.daum.net)에도 동시에 올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