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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다니는 섬 우로스에서)
▲ 티티카카 호수의 아이 (떠다니는 섬 우로스에서)
ⓒ 양학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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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킬레 섬에서)
▲ 티티카카 호수의 아이2 (타킬레 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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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푸노(Puno). 페루와 볼리비아의 국경도시, 해발 3820m 티티카카(Titicaca) 호수변의 도시, 싱싱한 송어를 단돈 1달러로 맘껏 먹을 수 있는 도시. 아내와 내가 알고 있는 푸노에 대한 것들이다. 하지만 푸노는 뜻밖의 상황으로 나그네 부부를 기다리고 있었다.

쿠스코(Cuzco)로부터 도착한 다음날이었다. 아침 일찍부터 볼리비아 입국비자를 받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 아내가 내내 뭔가 수상쩍다는 표정이다.

"이 도시에는 뭔가 수상한 점이 있어."

나 역시 무언가 낯설긴 한데 그 정체를 알 수 없다. 거리는 여느 도시와 다름없었다. 길모퉁이에서는 한 아이가 꼬질꼬질 때 묻은 손으로 크고 둥근 빵을 팔고, 중절모를 쓴 할아버지가 광장 벤치에 앉아 아침햇살을 쪼이고, 알록달록한 원색 통치마를 입은 여인들이 느릿느릿 그 앞을 지나다녔다.

우린 대사관에서 비자를 처리하고 시장판에 앉아 1달러하는 송어구이를 두 마리나 먹어치울 동안에도 수상함의 이유를 알아채지 못했다. 다시 티티카카 호수투어를 알아보느라 여행사를 찾아가던 길이었다. 네거리 한가운데에 이르자, 한 무리의 남자들이 드럼통에 불을 지피고 있었다. 주변에는 크고 작은 돌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아!"

순간 아내와 나는 무릎을 쳤다. 그랬다. 아침부터 이상했던 점은 바로 차였다. 지금껏 우린 굴러다니는 차라곤 전혀 보지 못한 것이다. 바로 운수노동자들의 파업이었다.

평범한 도시, 그런데 뭔가 수상하네?

신이 나서 '물 만난 송어'처럼 눈빛을 반짝이며 파업행렬을 따라나섰다. 쫄망쫄망한 아이들부터 갓난아이를 들쳐 업은 여인까지 그 행색이 실로 다양했다. 그들 구호를 흉내내는 우릴 보며 사람들은 함박웃음을 터트렸다.

마침내 파업행렬은 시청 앞 광장에 이르러 자리를 잡았고, 한 남자가 나와서 얘기했다. 협상에 대한 결과보고 같은데 알아들을 순 없지만 청중들의 표정으로 보아 잘 안된 모양이다.

(페루 푸노에서)
▲ 파업일까? 축제일까? (페루 푸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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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노 시청 앞 광장)
▲ 아무도 이 도시를 빠져나갈 수 없다 (푸노 시청 앞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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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이 길어질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금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볼리비아에 사는 선배가 미국으로 휴가가기 전에 도착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 길로 곧장 터미널로 갔다. 역시나 버스만 줄지어 서있을 뿐 운전사들은 한 명도 볼 수 없다. 짐 보따리를 잔뜩 부려놓은 승객들만이 바닥에 주저앉아 언제 운행할지 모르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그 유명한 남미의 파업이다. 여행자의 일정을 엉망으로 만들고 귀국비행기도 놓치게 하는, 말로만 듣던 그 파업이었다. 다시 관광안내소를 찾아갔다.

"걱정 마세요. 하루면 끝날 테니까. 매년 이맘 때면 하는 파업이에요."

하지만 여직원 프란체스카의 설명과는 달리 파업은 다음날도 계속되었다. 놀랍게도 파업이 시작되자 도시는 완벽하게 멈춰버렸다. 바퀴를 달고 굴러다니는 거라곤 경찰차와 자전거에 매단 인력거뿐이었다. 이튿날 다시 관광안내소를 찾았다.

"파업이 언제 끝날 것 같아요?"
"이런 적이 없었는데…. 하지만 너무 염려마세요. 곧 끝날 겁니다."


시정부에 대한 노동자들의 요구는 세금삭감, 도로정비, 안전요원 확충이라 했다. 다른 것은 몰라도 도로 문제만큼은 옳은 주장이다 싶었다. 그간 우리가 겪은 페루 도로는 통행료에 비해 그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정말 이 도시를 빠져나갈 방법이 없나요?"
"죄송하게도 그렇습니다. 외곽으로 통하는 도로마다 바리게이트를 쳐놓아서 지금은 어떤 차도 이 도시를 빠져나갈 수가 없는 상황이에요."


아무리 바빠도 얌체 버스는 못 타지

어떻게 이토록 완벽하게 파업을 진행할 수 있을까. 이제 코파카바나(Copacabana)를 포기하고 곧장 코차밤바(Cochabamba)로 간다 해도 시간이 넉넉지가 않다. 휴~. 미안해 하는 프란체스카를 뒤로 하고 관광안내소를 나선다. 그때 삐끼 한 명이 따라붙었다.

"너희들 볼리비아로 가고 싶지?"
"……"
"버스가 있어!"
"뭐! 정말?"


그는 어느 여행사로 아내와 나를 데려갔다. 정말이었다. 새벽에 파업노동자들의 눈길을 피해 안데스 산을 넘고 넘어 버스를 운행한다는 것이다. 물론 평소보다 10배나 비싼 요금으로. 돈도 돈이지만 그런 버스를 탈 수는 없었다. 아무리 바빠도 얌체 같은 여행사의 행태에 동조할 수는 없는 일.

다만 한 가지 방법이 있긴 했다. 모터보트를 타고 티티카카 호수를 건너는 것. 살짝 구미가 당겼다. 이런 상황이 아니라면 해볼 수 없는 경험이 될 것이다.

당연히 여행사는 엄청난 폭리를 취하며 일정 급한 여행자를 유혹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파업은 돈벌 또 하나의 기회일 뿐. 아내와 난 일단 티티카카 호수투어를 다녀와서 결정하기로 했다.

(갈대 같이 생긴 '토토라'로 엮어만든 섬)
▲ 티티카카호수에 떠다니는 섬 '우로스' (갈대 같이 생긴 '토토라'로 엮어만든 섬)
ⓒ 양학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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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로스 에서 '토토라'의 용도는 절대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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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선착장을 떠난 배는 1시간 만에 우로스(Uros) 섬에 도착했다. 들어본 적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우로스는 지도에는 없는 섬이다. 호수 위에 이리저리 떠다니는 섬이니 지도에 있을 리가 없다.

섬에 발을 내딛자 '물컹', 발이 빠져들 것만 같다. 갈대처럼 길쭉하게 생긴 '토토라(totora)' 뿌리를 엮어 땅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 두께가 2m 정도인데 3주마다 교환해줘야 한단다. 그 위에 다시 줄기를 깔았다.

실제 우로스에서 토토라의 쓰임새는 절대적이다. 땅을 만들고, 집을 짓고, 배를 만들고, 장작으로 쓰고, 각종 공예품을 만들어 내다판다. 심지어 하얀 밑 부분은 먹기까지 하는데, 내겐 밍밍한 것이 아무 맛도 없었다. 다시 가이드의 설명이 이어진다.

"이곳 섬들엔 500여명이 살고 있어요. 25개 섬으로 쪼개져 있지만 예전엔 7개뿐이었죠. 마을 안에 중요한 이견이 생겨서 큰 싸움이 있고 나면 섬을 잘라내요. 칼로, 쓱싹쓱싹. 간단하죠. 그렇게 서로 갈라지고 섬 숫자가 늘어나는 거죠. 첫 이견은 아마 관광객을 받는 문제였다고 하죠. 어때요? 재미있죠?"

신부에겐 '신랑 선택할 권리'가, 신랑에겐 '바람피울 권리'가

이들 조상은 잉카문명 이전부터 티티카카에서 살아왔다고 한다. 그 오랜 세월 동안 그들 생활수단은 송어와 물새였다. 실제 섬에는 동그랗게 구멍을 뚫어 연못처럼 '작은 호수'를 만들었는데, 그곳에 송어를 풀어놓았다. 또 산 채로 잡은 물새를 기르기도 한다.

하지만 관광객이 들어오면서부터 사정은 달라졌다. 섬사람들은 이제 낚시와 사냥보다는 주로 관광객에게 공예품을 파는 것으로 생계를 꾸려간다. 그것이 못마땅한 사람들은 섬을 칼로 잘라내고 서로 나뉘어졌을 것이다. 그런데 재밌다니! 나 역시 관광객, 황망한 마음이 일어선다. 도시인은 가끔 오지를 꿈꾸지만, 그들의 발길이 닫는 순간 오지는 사라지는 것이다.

(신부가 사각모를 쓰고 앉아있고, 마을 너머로 티티카카 호수가 보인다.)
▲ 타킬레 섬의 결혼식 (신부가 사각모를 쓰고 앉아있고, 마을 너머로 티티카카 호수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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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2시간을 달려 두 번째 섬 타킬레(Taquile)에 도착했다. 2000여명이 산다는 섬에는 때마침 결혼식이 열리고 있었다. 마을 입구 아취 형 돌문에 들꽃이 걸리고, 청년들이 그 아래에서 남미기타와 아코디언으로 흥을 돋운다. 안쪽에서는 아낙들이 커다란 무쇠 솥을 내걸고 잔치음식을 만드느라 모락모락 허연 김을 피워 올리고 있다.

그 가운데 신랑 신부가 마주 했는데 동네 어르신들이 둘러앉았다. 중절모의 신랑과 사각모의 신부. 둘 다 알록달록한 색 천을 둘렀는데, 가만히 보니 양손이 앞으로 꽁꽁 묶여있다.

"신랑 신부는 해질 때까지 양손이 묶인 채 술과 음식을 주는 대로 다 받아먹어야 하죠."
"아이, 불쌍해라!"


가이드의 설명에 여기저기서 안타까운 감탄사가 터져 나온다.

"후후. 재밌는 것이 또 있어요. 이 섬에서는 여자만이 신랑을 선택할 수 있데요. 처녀의 상징인 머리띠를 사랑하는 청년에게 주는 거죠. 그래서 그 머리띠를 훔치는 도둑신랑이 생기기도 하고요. 쿡쿡. 그런데 결혼한 다음에는 사정이 달라요. 이번에는 신랑만이 바람을 피울 수 있다나요. 재밌죠?"

이 때 여행에 관록(?)이 제법 붙은 내가 사진 좀 찍어도 되냐며 눈치껏 잔치마당 한가운데로 들어선다. 그런데 어라, 어르신들이 나를 붙잡고는 맥주를 거품 가득 권하신다. 한 잔, 두 잔. 일행들은 내게 엄지손가락을 세워 보이고, 난 조금 우쭐해진다.

그렇지만 쑥스러운 신부는 얼굴을 파묻고 사진 찍을 기회를 주질 않는다. 그때 뒤늦게 나타난 미국인 투어 팀. 신부 옷자락에 1달러 지폐를 줄줄이 달아준다. 아, 이런! 어르신들이 얼른 자리를 털고 일어나더니 직접 신부 얼굴을 들어주며 사진포즈를 잡아주는 것이다.

일행들은 배꼽을 잡고 웃고, 난 머리를 긁적인다. 새로운 음식이 차려지자 술잔이 돌고 노래가 날고 잔치는 더욱 무르익어갔다. 지구 반대편 땅의 결혼식, 어쩜 이렇게 비슷한지. 마을 청년들의 어깨너머로 바다 같은 티티카카가 지켜보고 있었다.

"아무도 이 도시를 빠져나갈 수 없다!"

(우로스 섬에서. 토토라로 만들었다.)
▲ 티티카카 호수의 배 (우로스 섬에서. 토토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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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멩이 바리케이트)
▲ 파업 (돌멩이 바리케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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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푸노로 돌아왔다. 그러나 파업은 쉽게 끝날 것 같지 않았다. 파업 구경도 하루 이틀이지 점점 더 지루해졌다.

이제 시간도 없다. 호텔 매니저건 파업노동자건 만나는 사람마다 물어보지만 대답은 한결같다.

"마냐나 테르미나르(내일은 끝날 것 같아)?"
"시Si(그럼)!"


그들은 '예스'란 대답 밖에 모르는 모양이다. 협상이란 늘 그렇듯이 오후면, 저녁이면, 다시 내일 오전이면 틀림없이 끝날 거라던 파업은 연일 계속되었다.

이제 하루 서너 차례 관광안내소에 들러 협상결과를 체크하는 것이 나의 일과가 되어버렸다. 덕분에 관광안내소의 프란체스카와 친해졌는데, 그녀는 내가 문을 열고 들어서기만 하면 벌써 '노 아 테르미나도(아직 안 끝났어)…'하며 미안해한다.

초조한 사람은 떠나야하는 여행자들일 뿐, 도시는 차가 안 다닌다는 점만 빼면 약이 오를 정도로 모든 것이 정상적이고 느긋하기까지 했다. 아내와 나는 금요일까지만 기다려 보기로 한다. 파업이 다음 주로 넘어간다면, 잉카축제(태양의 축제)가 끝나는 주말부터 쿠스코에서 여행자들이 몰려들 텐데 시정부나 노동자 측 모두 부담이 클 것이다.

드디어 금요일. 오전 10시부터 시작한 협상은 3차례나 반복되었다. 저녁 7시, 마지막이 될 것 같다던 세 번째 교섭. 초조한 마음으로 관광안내소 문을 열어본다.

"로 시엔토(미안해)!"

잘못한 거라곤 조금도 없는 프란체스카가 미안해서 어쩔 줄을 모른다. 결국 협상은 최종적으로 결렬된 것이다. 그녀도 파업이 다음 주까지 넘어가면 장기화될 것 같다는 염려를 덧붙였다. 이젠 더 이상 기다릴 순 없다. 볼리비아로 서둘러 가기 위해 잉카축제도 포기하고 나선 길이었는데, 축제가 끝날 때까지도 푸노에 갇혀 있는 꼴이라니!

그냥 파랗다고 해서는 설명이 안 되는 호수.
▲ 아, 티티카카! 그냥 파랗다고 해서는 설명이 안 되는 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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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하고 짜릿한 협상타결... 지루한 시간도 사랑하겠지

이젠 별 도리가 없었다. 아내와 난 기다릴 만큼 기다렸고, 배 삯이 10배 아니 20배라도 티티카카를 건너는 방법밖엔 없었다. 그동안 조금이라도 가격을 깎아두느라 뻔질나게 들락거렸던 여행사로 갔다.

"우리가 졌다. 손들었다고! 내일 아침 배, 로얄석으로 끊어줘!"라고 막 말할 참이었는데, "올라, 아미고(친구)! 끝났어! 마침내 파업이 끝났다고!"

야호! 너무 기뻐 두 손을 다 쳐들었다. 긴 기다림을 보상하고도 남을 달콤하고 짜릿한 순간. TV에서는 협상타결 소식을 바쁘게 전하고 있었다. 아내와 나는 '티티카카 송어구이'를 사먹으며 푸노에서의 마지막 밤을 기념했다.

"아마 내일이면 우린 볼리비아에 있겠지? 그리고 이 시간도 곧 그리워지겠지?"

그럴 것이다. 아내의 말처럼 우린 곧 이 곳을 그리워할 것이다. 언제나처럼. 1달러짜리 송어와 시리도록 파란 티티카카를. 프란체스카와 티티카카의 순박한 섬사람들을. 심지어 광장을 지키고 섰던 경찰들까지도. 그리고 할 일 없이 어슬렁거리며 지루해했던 이 시간들을 오랫동안 사랑하게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양학용 & 김향미 부부는 결혼 10년째이던 해에 길을 떠나 2년 8개월 동안(2003년 10월 16일~2006년 6월 4일) 아시아·유럽·북미·중남미·아프리카·중동·러시아 등 세계 47개국을 여행했다.
기자 블로그 http://blog.naver.com/wetravelin



태그:#남미여행, #페루, #티티카카 호수, #푸노, #파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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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섬 제주에서 살고 있다. 나이 마흔이 넘어 초등교사가 되었고, 가끔 여행학교를 운영하고, 자주 먼 곳으로 길을 떠난다. 아내와 함께 한 967일 동안의 여행 이야기를 묶어 낸 <길은 사람 사이로 흐른다> 이후, <시속 4킬로미터의 행복>, <아이들, 길을 떠나 날다>, <여행자의 유혹>(공저), <라오스가 좋아>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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