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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를 마감합니다. 또 다른 한해를 준비합니다. 내일 나오는 신문은 2008년 새해 소망을 담아 그 화려한 지면을 선보일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은 한 해를 마감하는 마지막 송년의 날입니다. 신문지면 또한 송년 분위기를 살리는 데 포인트를 맞췄습니다. 신문 송년호를 장식하는 데는 역시 야경이 제격입니다. 많은 신문들이 하루를 앞당겨 송년 야경 사진을 실었습니다. 내일 아침 신문은 해 뜨는 장면을 담아야 할 터이니까요.

 

오늘 같은 날, 신문 지면의 이런 저런 내용을 따져보는 것은 물색없는 짓일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정리하고 매듭짓고 넘어가야 할 일이 많지만, 그 숙제를 그대로 안고 내일, 아니 내년으로 넘어가는 것이 또 송년의 마지막 날일 것입니다. 하루 이틀쯤은 소모적인 일상에서 조금은 거리를 두어 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신문들의 송년호에서 두어 개의 글들에 눈이 갑니다. <한겨레>와 <경향신문>의 글들입니다.

 

흔들림없이 나아가겠다는 <한겨레>

 

<한겨레> 김종구 편집국장은 독자들에게 보내는 편집진들의 편지인 ‘편집국에서’를 오늘 집필했습니다. 내년으로 창간 20돌을 맞는 한겨레 편집국장으로서 한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소감이 오롯이 전해집니다.

 

<한겨레> 안팎에서 ‘고난의 행군’이 시작된 것 아니냐는 걱정과 우려의 시각이 많다고 합니다. 10년 만에 다시 보수정권으로 넘어가는 정권교체기를 맞은 것도 그렇지만, 당장에 이명박 당선자 측이 대선과정에서 제기한 거액의 소송, 그리고 삼성 비리 의혹 보도에 대한 삼성의 광고 안 주기가 <한겨레>를 압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김종구 편집국장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겨레>는 “결코 흔들림 없이 계속 이 길을 걸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그가 걷겠다고 한 길은 언론으로서 너무나 간명한 길입니다. “비리 의혹이 있으면 마땅히 파헤치고, 유력한 대선 후보의 도덕성에 의심이 가면 진실 규명을 통해 유권자의 선택을 돕는 길”을 말합니다.

 

그런데 김종구 편집국장의 말처럼 이런 당연한 ‘언론의 길’이 결코 쉽지 않다는 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당연한 행동이 이례적인 일로 치부되고, 궤도 이탈이 오히려 정상으로 둔갑하는 세상”입니다.

 

“한겨레는 결코 흔들림 없이 계속 이 길을 걸을 것”이라는 그의 말은 그래서, 너무도 당연한 말이지만, 적지 않은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무엇보다 “이 세상에는 자본이나 권력뿐 아니라, 언론이 관심을  가져야 할 대상이 너무 많다”고 한 그의 말이 더 그렇습니다.

 

“허물어져 가는 공동체 모둠살이를 일으켜 세우고, 소외된 이웃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은 영원한 한겨레의 책무”라는 그의 다짐을 읽으면서 명치끝이 시리기도 합니다. 지나친 송년의 감상일까요?

 

뚝심있게 책읽기 칼럼 진행한 <경향>

 

<경향신문> 데스크 칼럼 ‘아침을 열며’에서는 조운찬 문화1부장이 <경향신문>이 지난 1년 동안 기획했던 ‘책읽기 365’를 마감하면서 이를 이어 내년에 선보일 ‘책읽는 경향’에 대한 기획을 소개했습니다. 경향 각지의 서치(書癡:책벌레)들을 모셔 ‘책읽는 문화’를 일궈볼 참이라고 합니다.

 

<경향신문>이 신문 1면에 ‘책읽기 칼럼’을 1년 내내 연재한 것은 한국 신문의 독보적이고, 야심찬 기획이었습니다. 대통령 선거라는 정치의 시절에 ‘책읽기 칼럼’을 이처럼 전진 배치한 것은 한마디로 무모해 보였던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경향신문>은 그런 기획을 뚝심있게 진행했습니다.

 

지난 1년을 지내놓고 보니, 사실 이만큼이나 실속있는 기획이 또 있었을까 싶습니다. 지난 1년여의 정치 과정이 얼마나 허망하고, 또 얼마나 천박했던가를 되돌아본다면 더욱 그렇습니다. 거짓이 진실을 가리고, 배금주의와 물질의 욕망이 양식과 양심을 누르고 기세를 떨친 그 배경을 살펴보면 우리의 정신문화를 가꾸는 데 소홀했던 우리의 자화상이 고스란히 투영돼 있습니다.

 

<경향신문>은 올해 대선 기간 내내 단 한 번의 정치 여론조사도 하지 않았습니다. 여론조사가 여론을 반영하기보다는 오히려 여론을 왜곡하고, 정치를 왜곡하고, 유권자의 선택을 왜곡할 수 있다는 여론조사 정치의 폐해를 꿰뚫어 본 것일 겁니다.

 

대통령 선거가 끝난 후 언론계 안팎의 분들에게 언론 매체에 대한 평가의 말을 들어보았습니다. 다들 좋은 점수를 주지 않았습니다. 노골적으로 당파성을 드러냈던 일부 보수언론은 물론 <경향신문>이나 <한겨레> 같은 신문들 역시 이러한 당파성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평가를 하는 분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한겨레>·<경향>의 송년 글에서 희망을 읽다

 

하지만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한겨레>와 <경향신문>의 오늘 ‘송년의 글’을 읽으면서 그래도 희망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많은 분들이 두 신문의 역할과 기능에 대해 비록 인색하게 평가했지만, 지난 10개월 여 동안 ‘미디어워치’를 통해 ‘신문읽기’를 계속해 온 사람의 눈으로 보자면, 이런 정도의 신문을 갖고 있는 한국 사회는 그래도 ‘희망’을 이야기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됩니다.

 

<한겨레>는 김종구 편집국장의 말대로 그들이 가야 할 길을 뚜벅 뚜벅 걸었습니다. 그 지면에선 적어도 들뜬 느낌이나, 절치부심하는 초조함 같은 것은 느낄 수 없었습니다.

 

<경향신문>의 지면은 차가울 정도로 냉정했습니다. 노무현 정부와 집권 여당의 행태에 대한 <경향신문>의 비판은 가혹하리만큼 냉정했습니다. 그 어떤 보수신문의 비난도 <경향신문>처럼 아프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명박  후보와 관련된 의혹과 삼성의 비리 의혹에 대한 검증에서 그 어떤 언론도 <한겨레>만큼 치열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송구영신의 오늘, 그 두 신문에서 읽은 두 개의 글은 이들 신문이 걸어온 길을 정직하게 드러냈습니다. 그것에 대한 평가가 어떻든 그들은 그런 길을 걸어왔습니다. 한 신문은 ‘스무살 전야’를 맞아 다짐한 것처럼, 또 한 신문은 정치의 시절에 엉뚱하게 ‘책을 읽자’고 말할 만큼 그런 ‘뚝심’으로 걸어야 할 길들을 뚜벅 뚜벅 걸어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여러 가지 다른 평가도 가능하겠지요. 하지만, 적어도 부정할 수 없는 것은 2007년 마지막 날 이들 신문 지면에서 확인하게 되는 것 또한 어제 오늘 다름없는 ‘평상심’으로 할 일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두 신문의 사설을 읽어보시면, 또 다른 신문들의 사설을 읽고 비교해보시면 왜 그렇게 이야기하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겨레>는 오늘 사설에서 ‘선입견은 위험하다는 이명박 당선자의 말’을 높게 평가하면서도 ‘특검 수용했다면 끝까지 당당한 태도 보여야’한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경향신문>은 전방위적입니다. ‘인수위의 월권을 경계’하고, ‘한나라당의 공천, 원칙과 정도 지킬 것’을 주문하는 한편 한·미 FTA에 대한 ‘노 대통령과 이 당선자의 의기투합’을 맹렬하게 비판했습니다.

 

다른 신문들과 방송들 역시 이 두 신문 정도만 된다면 한국의 민주주의는 ‘안녕’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합니다. 보수신문들의 의도적 여론몰이는 물론 대선 후보들의 합동 토론 하나 제대로 꾸리지 못한 방송사들의 무기력한 대응에서 나타나듯이 당연한 일이 이례적인 일로 치부되고, 궤도 이탈이 오히려 정상으로 평가되고 있는 오늘입니다.

 

지난 10개월여간  <오마이뉴스> ‘미디어워치’를 통해 미디어의 ‘희망’을 같이 키워갔으면 했습니다. ‘나쁜 기사’ 보다는 ‘좋은 기사’, ‘생각해 볼만한 기사’를 통해 공감의 폭을 넓혀 갈 수 있었으면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선거라는 블랙홀에 휘말리면서 이런 ‘작업’들은 힘을 잃었습니다. 지치지도 않는 ‘그들’을 탓해 보기도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그것을 넘어서는 ‘재미있는 이야기’들, 혹은 ‘절실한 이야기’들을 드러내는 데 실패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새 날을 기약하며  

 

미디어의 기사와 주장은 얼마나 힘이 있는 것일까요? 말할 나위 없이 ‘기사’와 ‘뉴스’는 사람의 관심을 모으고, 정치적인 쟁점은 논란을 유발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정신’과 ‘문화’를 주도해 간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신자유주의의 정책을 김대중·노무현 정권이 ‘완성’해 간 것처럼 우리 ‘정신’과 ‘문화’와 ‘재미’를 어느 샌가 ‘드라마’와 ‘개그’와 ‘미드’가 이끌어가게 된 것은 혹시 아닐는지요?

 

재테크가 주류를 이루는 신문의 경제지면, 헐벗은 사람들의 생활과는 동떨어진 세련된 ‘문화지면’, 정치 추문이나 법원의 판결, 목소리 큰 사람들의 주장이 판치는, 혹은 통계화 된 수치로 제시되는 박제화 된 갈등 기사들이 언제부턴가 조금은 다른 세상에 대한 전망 자체를 무장해제 시킨 것은 아닐까요?

 

송구영신의 오늘, 그래서 ‘희망’과 ‘막막함’을 함께 안고 새 날을 맞게 됩니다. 오늘 이 순간에도 지구는 정해진 궤도를 쏜살같이 달려가고 있을 것입니다. 칠흑같은 우주 공간 속에서 자전하면서 공전하는 지구의 쉼 없는 질주에 사람들이 새겨 넣은 달력의 숫자는 큰 의미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태양은 내일 또 그렇게 떠오를 것입니다.

 

그래도 지구와 달의 궤적에 금을 긋고 시간을 매겨 사람들은 새 해와 새 날을 기약합니다.

지구가 달려가고 있는 암흑 속의 반복되는 궤도일 망정, 우주라는 광활한 공간에서 보자면 보잘 것 없는 미약한 존재의 부질없는 몸부림일지언정, <미디어워치>도 그 궤적을 새롭게 추적해보고자 합니다.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새로운 접근으로 ‘전망’을 열어갔으면 합니다. 적으로부터 배우는 ‘지혜’와 ‘용기’도 가졌으면 합니다. 새해 건강하기 바랍니다.


태그:#대서보도, #한겨레,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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