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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있다. 19세기 프랑스 혁명과 러시아 혁명까지 역사를 쓴 사람들이다. 사람이 사람 목소리를 내고, 인민이 세상의 중심되기를 원한 사람들이다. 미슐레, 비코, 르낭, 텐, 아나톨 프랑스, 바뵈프, 생시몽, 푸리에, 오언, 맑스, 엥겔스, 라살, 바쿠닌, 레닌, 트로츠키가 그들이다.

 

에드먼드 월슨이 지은 <핀란드역으로>에서 두 가지 철로를 통하여 역사를 써내려간. 미슐레와 비코, 르낭은 부르주아 혁명을 사람들을 우리에게 소개한다. 우리는 인민을 억압했던 과거 역사를 없앤, 상업문명을 폐기한 사람들, 역사상 최초로 진정한 인간적인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그네들의 삶을 살기위한 노력을 만날 수 있다. 혁명은 그들에게 역사 자체였다.

 

프랑스 혁명을 “인간의 가슴이 그렇게 활짝 열리고 훤히 트인 적이 일찍이 없었다. 계급·당파·재산의 구별이 그렇게 완전히 사라진 적도 없었다”로 역사를 사는 길은 오직 삶이며, 행동으로 생각했다.

 

"오직 행동만이 우리를 달래준다. 우리는 정력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할 의무를 지고 있다-인간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인간이 되기 위해 분투하는, 인간처럼 사고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는 하등의 천지만물에 대해서도."(57쪽)

 

미슐레는 <프랑스 혁명사>에서 "민중이야 말로 주연배우다"로 표현한 것처럼 계급 타파와 민중이 주체가 되는 시대가 도래하리라 낙관했지만, 아나톨 프랑스가 1871년 파리코뮌을 세운 민중을 두고 “쓰레기 같은 놈들, 흉측한 놈들”이 말함으로써 역사는 미슐레가 원한 길을 열어주지 않았다. 

 

역사 철로는 여기 멈출 것인가? 다시 프랑스 혁명 정신인 "자유 평등 박애"가 구호가 아니라 삶이라는 영역, 실제 영역에서 적용되기를 원했던 바뵈프, 생시몽, 푸리에, 오언이다. 바뵈프는 <인민의 호민관>을 통해서 보통 선거권을 폐지하고 선거 참여에 높은 재산 자격 조항을 부과한 1795년 헌법을  통렬히 비판한다. 그는 정치적 평등뿐만 아니라 경제적 평등을 요구하면서 "굶주린 자들을 질식시키는 이 끔찍한 타협"보다는 내전을 원했다. 가진 자들이 동의할 수 없음은 물론이고 그는 투옥되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고. <평등한 사람들의 선언>에서 외쳤다.

 

"이제 토지의 개인 소유를 인정해서는 안 된다. 토지는 어느 누구의 소유도 아니다. 프랑스 인민이여! 두 눈을 크게 뜨고 가슴을 활짝 열어 완전한 행복을 맞아들이자. 우리와 함께 평등한 사람들의 공화국을 깨닫고 선포하자."(132쪽)

 

푸리에와 오언은 공동체를 통하여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하려고 했다. 그들은 세속과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살았던 시대가 산업과 상업으로 전 사회를 휩쓸고 지나가면서 얼마나 많은 악폐를 끼쳤는지 경험했기에 인간애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맨체스터 어느 방직공장 책임자가 되어 500명 노동자를 거느린 그였지만 생명 없는 기계는 끔찍이 아끼면서 생명 있는 인간은 경시하는 사회구조에 충격을 받았다.

 

인간 경시 풍조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공동체를 통한 사회주의 건설을 시도했지만 그들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자유 평등 박애를 구호차원에서 실제 생활에서 적용하려 했지만 역사와 사회는 그들이 주장한 것들이 아직도 현실에서는 실현되기 어려운 유토피아였기 때문이다.

 

공상에 가까웠던 사회주의 건설이 실패로 돌아갔다. 하지만 역사 철로는 아직 멈출 수 없다. 사회주의 건설에 가장 중요한 인물인 카를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그들 뒤에 등장했기 때문이다.

 

카를 마르크스는 인간에게 인간의 권리를 주지 않으려는 세력를 평생의 적으로 간주하고 일생을 바친다. 궁핍과 망명자로 살았던 맑스다. 스물세 살 마르크스는 “파도는 왜 으르렁거리는가? 우레와 같은 소리로 절벽에 부딪쳐 깨지기 위해서요”라고 심연에서 이글거리는 자신의 심정을 표현했다.

 

"이제까지 철학자들은 세계를 단지 다양하게 해석했을 뿐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207쪽)

 

이런 맑스의 시각은 <공산당 선언>을 통하여 “시종일관 고성능 폭탄 같은 힘으로 가득 찬” ‘부르주아에 대한 선전포고문’으로 드러나게 된다. 역사를 해석하고 세계를 해석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세계를 변화시키는 주인공으로 인민이 자리하기를 간절히 원했음을 알 수 있다.

 

<자본>을 출간한 뒤 마르크스는 말했다. “내 건강과 내 삶의 행복과 내 가족을 희생시킨 작업”이었다고 술회했다. 말이 아니었다. 자본 1권을 17년 동안 쓰면서 런던의 빈민굴에서 세 아이를 병으로 잃었다.

 

이런 개인적인 고통을 겪으면서도 맑스는 자신이 가졌던 사회혁명이론에 의심을 가지지 않았다.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서유럽을 뒤덮을 것이라 확신했다. 하지만 그 예상은 빗나갔다. 예상은 빗나갔지만 사회주의 혁명은 러시아에서 이루어졌다. 핀란드로 망명했던 레닌이 4월 '핀란드 역'에서 돌아와 동지들 앞에서

 

"수병 동지 여러분, 저는 여러분께 인사를 드리지만 여러분이 임시정부에서 내놓은 모든 약속을 믿는지 어쩐지 아직도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저는 저들이 달콤한 말을 속삭이고 이것저것 많은 약속을 늘어놓으면서 여러분과 러시아 인민 전체를 속이고 있다는 것만은 확신합니다. 민중을 평화를 원합니다. 빵을 원합니다. 그런데 임시정부는 전쟁과 굶주림만 줄 뿐 빵은 한덩어리도 주지 않습니다. -지주들은 여전히 땅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프롤레타리아트의 완전한 승리를 거둘 때까지 사회혁명을 위해 싸워야 합니다. 세계 사회혁명 만세"(640쪽)

 

그리고 그날로부터 일곱 달 뒤 11월 6일(옛 러시아력 10월 24일) 최초의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났다. 미슐레, 바뵈프, 오언, 푸리에, 맑스, 엥겔스가 이상을 역사속에서 실현하고자 했던 혁명이 이루어졌다. 현실이 되었다.

 

하지만 러시아 혁명 90년이 되었지만 그들이 만들고자, 쓰고자 했던 역사는 보이지 않는다. 19세기 그들이 역사를 쓰고자 했던 계급을 통하여 인민을 억압했던 구조는 아직도 해결 요원하다. 이념 시대는 지났다고 외친다. 이상이 아니라 망상에 가까운 것이라 한다. 하지만 우리는 레닌이 한 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역사는 미적거리다가 승리를 놓친 혁명가들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616쪽)

 

자신의 의지로 역사를 만들 수 있다는 레닌이 한 말에, 사람은 유한한 존재라 믿고 있는 나에게는 오만한다는 생각이 들지만 역사마저 무시하려는 우리 시대 정신만은 재고해야 한다. 우리는 역사를 무시하면서 살아갈 수 없다. 19세기 그들은 역사를 만드는, 쓰는 존재로 자신을 바쳤다. 미적거리다가 역사의 진보를 저버리는 잘못을 범해서는 안 된다.

 

<핀란드 역으로> 가는 철로는 멈출 수 없다. 역사를 쓰기 원했던 그들의 사상과 집념, 삶에서 자신들을 드렸던 그들의 족적을 우리는 무시해서는 안 된다. 팍팍해진 삶은 물질이 부족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정신이 메마르고, 어쩐 그들이 그토록 극복하고자 했던 자본의 노예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우리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꿈을 버려서는 안 된다. <핀란드 역으로>는 그것을 알려주고자 한다.

덧붙이는 글 | <핀란드 역으로> 에드먼드 윌슨 지음 ㅣ 유강은 옮김 ㅣ 이매진 ㅣ 25,000원


핀란드 역으로 - 역사를 쓴 사람들, 역사를 실천한 사람들에 관한 탐구

에드먼드 윌슨 지음, 유강은 옮김, 이매진(2007)


태그:#사회주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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