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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SF소설 등의 장르소설에서 꾸준하게 활동하는 작가가 얼마나 될까? 그들이 발표하는 소설의 숫자는 얼마나 될까? 요즘 소개되는 해외소설과 비교해본다면 턱없이 적은 숫자다. 

 

그래서인가. 그 분야의 책이 나오면 일단 반갑다. 그리고 칭찬부터 해주고 싶다. 가뭄에 콩 나듯이라도 볼 수 있게 해준다는 사실만으로도 격려를 해주고 싶은 게다. 듀나의 <용의 이>를 바라보는 심정도 처음에는 그러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칭찬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당연한 일이다. 중요한 건 소설, 그것이다. <용의 이>의 내용은 어떤가? 이 소설집은 단편소설 세 개와 중편소설 한 개로 구성돼 있다. 세 개의 단편소설은 잔혹한 동화를 연상시키고 있다.

 

첫 번째는 ‘너네 아빠 어딨니?’라는 제목의 소설로 아빠를 죽인 자매 이야기다. 자매는, 정확히 말하면 언니는 아빠를 왜 죽였는가? 동생을 강간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물론 어린 나이의 아이가 그 행위가 무엇인지는 정확히 모른다. 하지만 큰 일이 일어나려 한다는 것을 알기에 저지른 일이다.

 

아빠를 죽인 그녀들은 어찌됐을까? 불행해졌을까? 엄마는 오래 전에 집을 나갔으니 그랬을 것 같기도 하지만 자매는 행복하게 산다. 마을 사람들이 아빠가 어디에 있냐고 물어도 지방에 갔다고 하면 되고 돈도 있으니 그렇게 나쁘지는 않다. 문제가 있다면 하나, 매일 밤 아빠가 살아난다는 것이다. 좀비가 되어 돌아오는 아빠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듀나는 이 소설을 잔혹하면서도 익살스럽게 그려냈는데 꽤 인상적이다.

 

두 번째 소설 ‘천국의 왕’은 죽은 사람들의 영혼을 지녀 영원히 살게 만드는 부자의 이야기다. 기술을 지닌 아버지는 그것을 이용해 작은 나라의 왕이 되려 한다. 하지만 아들의 마음까지는 얻지 못한 터, 조심스럽게 아버지와 아들의 대결 구도가 만들어지는데 이 또한 만나기 어려운 소설의 재미를 만끽하게 해준다.

 

세 번째 소설 ‘거울 너머로 건너가다’도 마찬가지다. 우주 속의 ‘지구’에서 벌어진 일을 짧지만 강렬하게 말해주고 있는데 강렬함이 만만치 않다. 낯설게 만날 수 있는 분위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소설의 응집성이 그만큼 뛰어난 탓일 게다.

 

중편소설 ‘용의 이’는 어느 행성에 떨어진 우주선에서 홀로 살아남은 여자 아이가 주인공이다. 그 행성에는 인간이라고 할 수 있는 존재가 없다. 아이는 막막하게 자신이 있는 곳을 살펴보다가 이상한 낌새를 알아채게 된다. 유령들이 있다는 것을, 그것도 아주 많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낯선 행성에 홀로 남겨진 여자 아이와 수많은 유령들의 만남, 이라는 소재는 확실히 눈길을 끌고 있다. 하지만 그보다 흥미로운 것은 유령들이 ‘여왕’ 타령을 한다는 것이다. 도대체 여왕이 누구이기에 그러는 것인가? 아이는 유령들을 통해서 그곳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알아보려고 한다. 또한 주변을 살펴보기도 한다. 그러는 가운데 여왕의 영혼을 만나게 되는데 기다렸다는 듯이 적대적인 세력도 등장한다.

 

엉뚱하다면 엉뚱하다고 할 수 있고, 그것을 넘어 황당하다는 생각까지 주는 소설이지만 그 재미는 녹록치 않다. 소설이 촘촘하게 이어지는 이유도 있거니와 많은 부분에서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끝에서 허를 찌르는 ‘쿨’함을 보여주는 것은 어떤가. 지지부진하지 않고 밀고 나가는 힘이 거세다. 익살스럽게 떠날 줄도 안다. 여러 모로 ‘용의 이’는 재밌다고 할 만한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다.

 

이 장르의 책이 나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일단 반갑고 칭찬부터 해주고 싶다고 했는데, 책의 내용을 보고 나면 그 반가움을 숨길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칭찬을 아끼고 싶지 않은 것은 또 어떤가? 듀나의 <용의 이>는 그렇게 만드는 힘이 있다. 기대치를 한껏 높여도 좋다.


용의 이

이영수(듀나) 지음, 북스피어(2007)


태그:#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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