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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없는 파열

 

"BBK를 내가 설립했다"는 이명박 후보의 광운대특강 영상이 공개됐다. 해보나 마나 이미 끝난 것 같았던 선거판은 다시 불타오르고 있다. 결국, 이번 대통령 선거는 BBK 공방으로 시작해 BBK 공방으로 끝나는 셈이다.

 

대통령 투표일 이전에 이미 뽑혀있고 오직 여론조사가 미리 선출해 둔 ‘경제대통령’에 대한 도덕성 검증이 대선 과정이었던 셈이다. 이 과정에서 한국사회에 소리 없이 다가오고 있는 위기의 극복책과 미래에 대한 토론, 정책선거는 완전히 실종됐다.

 

우리 곁에 다가온 위기에 대해서 말하는 경쟁 대선 후보는 찾아보기 어렵다. 한국사회의 위기, 열거하자면 한이 없다. 이 글에서는 그러한 심각한 위기 중의 하나에 대해서만 짚어볼 것이다. 바로 우리 곁에 있는 위기, 한국을 IMF 사태보다 더 참담하게 만들 부동산 거품 파열 말이다.

 

지난 10월 말 기준 전국의 미분양 주택 물량이 10만 채를 넘어섰다. IMF 사태 때보다 더 심각하다. 특히 민간부문의 미분양주택은 1995년 9월 이후 최다이다. 더구나 건설업체들의 축소보고 관행을 감안하면 실제 미분양 물량은 18만~20만 채에 이른다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다. 위기는 밤도둑처럼 소리 없이 우리 곁에 다가와 있다.

 

사필귀정이다. 고분양가와 과잉공급으로 단군 이래 최대 호황을 누려온 건설업체들은 미분양 사태 속에서도 분양가 한 푼 내리지 않았다. 심지어 평당 4500만원짜리 아파트가 공급되기도 했다.

 

사태는 엄중한데 국정 5년을 책임지겠다는 대통령 후보 가운데 부동산 거품 파열에 대해 말하는 사람이 없다. 7%, 8% 성장률만 얘기하는 이명박, 정동영, 문국현 후보야 그렇다 치자. 그분들에게 부동산 정책은 개발정책이거나, 좀 나은 경우조차 가격안정화를 위한 공급정책일 뿐이니까.

 

문제는 서민의 지갑을 채우겠다는 권영길 후보의 1가구 1주택 법제화 공약이다. 거주목적 주택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팔지 않을 수 없도록 초과소유 부담금을 물리겠다는 것이다. 부동산 거품을 일시에, 그것도 강제로 빼겠다는 것이다.

 

아연실색(啞然失色)하지 않을 수 없다. 권 후보 말대로 했다가, 서민은 지갑을 채우기는 커녕 길거리로 나앉을 판이다. 그는 정말 책임 있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인가?

 

낡은 진보의 착각

 

먼저 권영길 후보의 1가구 1주택 법제화 공약을 보자.

 

권영길 후보는 주택소유제한법을 주장할 뿐만 아니라 1가구 1주택을 강제로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처분 의무기간을 주어 살집 빼고 나머지는 모두 시장에 내놓으라는 것이다. 기간 내에 처분하지 않은 주택은 9%의 높은 ‘초과소유부담금’을 부과한다. 더 나아가 “초과소유부담금의 부과에도 2주택 이상을 계속 소유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강제매각”하게 한다는 것이다.

 

권 후보는 강제 매각 이후에 약 250만 채가 시장에 나오며, 신도시 10개 이상을 만드는 효과가 있다고 말한다. 집값을 낮추고, 투기를 막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과연 그럴까?

 

한마디로 권영길 후보의 1가구 1주택 정책은 부동산이 이미 금융 상품이 됐다는 현실을 무시한 정책이다. 권 후보의 주장을 듣고 있자면, 금융에 대한 이해가 있는지 의아할 지경이다. 14일, KBS 1라디오 ‘박인규의 집중 인터뷰’에 출연한 심상정 권영길 후보 선거대책위원장조차 1가구 1주택 정책을 적극적으로 홍보했다. 민주노동당의 대선 정책이라고 하더라도 의정활동에서 항상 높은 점수를 받는 심상정 의원이 과연 정말 1가구 1주택이 해법이라고 생각하는지가 궁금하다.

 

부동산 거품은 심각한 문제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조차 이의를 달지 않는다. 그러나 부동산 거품의 급속한 파열이 과연 서민에게 좋은 일일까?

 

건설교통부 발표만 하더라도 10월 말 현재 미분양 물량은 10만 887채이다. 이 정도의 물량으로도 부동산 거품 파열이 임박했다는 경고의 목소리가 높다. 학계나 부동산 업계에서는 일반적으로 부동산 시가총액이 GDP의 4배를 넘어서면 부동산 거품이 심화단계를 거쳐 파열단계로 옮겨갈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더구나 현재 미국의 서브프라임(부실 부동산 담보대출) 쇼크로 전 세계 부동산 거품 파열의 위험성이 경고되고 있는 시점이다.

 

그런데 250만 채가 시장에 쏟아져 나올 경우를 상상해 보라! 250만 채면 현재 미분양 물량의 25배다. 총 주택수(1322만 2641채)의 18.9%나 된다. 감당할 수 없는 양이다. 권영길 후보의 주장은 부동산 거품 파열에 기름을 붓자는 얘기다.

 

부동산 거품이 파열되더라도 서민에게 피해가 없다면, 감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부동산 거품이 파열되면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것은 중산층 이하 서민이다. 그 피해는 서민에게 고스란히 돌아오고, 또 피해의 정도는 서민이 쪽박을 차는 수준이기에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권영길 후보의 부실한 부동산 정책

 

1가구 1주택 법제화를 통해 부동산 거품을 한꺼번에 걷어내겠다는 권영길 후보가 직시해야 할 현실이 있다. 한국은행은 총 주택 담보대출 276조원 가운데 저신용자에 대한 대출규모가 34조원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숨어있는 부실 대출 규모가 만만치 않다.

 

저축은행·단위농협·수협·산림조합·신협·새마을금고 등 서민금융회사의 가계 주택담보대출 44조 6000억원, 15조원 정도로 추정되는 자영업자의 주택담보대출, 여기에 정확한 통계가 잡히지 않는 대부업체 주택대출까지 합하면 60조를 넘는다. 부실 위험이 높은 주택담보대출 비율이 21.7%나 된다. 미국의 경우 서브프라임 모기지 규모가 전체 주택담보대출의 14%에 불과했다.

 

또한, 한국 서민층은 지난 5년간 부동산 폭등기 때 집을 사기 위해 금융기관에서 빌린 부채 때문에 부채 비율이 너무 높다. IMF 사태가 있던 1997년 15% 수준이던 금융자산 대비 금융부채 비율이 2007년 상반기 현재 42.8%다. 부동산 거품이 터질 경우 서민들의 참담한 몰락이 예견되는 근거이다.

 

더구나 한국 주택금융의 95%는 변동금리 상품이다. 여기에 대출의 형태도 원금과 이자를 장기간에 걸쳐 갚아나가는 방식이 아니다. 일정기간(3년~5년) 이자만 갚다가 만기에 원금을 한꺼번에 갚는 약탈적 방식이다. 대다수 서민들이 이러한 대출 방식에 고통받고 있다. 부동산 거품이 파열할 경우 서민층의 대규모 파산을 피할 수 없다.

 

권영길 후보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부동산 거품, 서민의 대다수가 약탈적 주택담보 대출에 얽매여 있는 현실을 도외시한다. 권 후보 말대로 금융대책 없이 250만 채의 주택을 시장에 쏟아내면 비극이 시작된다. 먼저 부동산 가격이 급락한다. 이는 금융공황으로 이어진다. 금융공황의 끝은 양극화된 금융현실이다.

 

양극화된 다음 부자들에게 세금을 걷어 서민들에게 돌려줄 셈인가? 양극화를 막고 해소하는 일이 진보정당이 할 일 아닌가?

 

권 후보의 1가구 1주택 법제화는 서민 가계를 완전히 거덜낼 위험한 정책이다. 사회 양극화 해소책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양극화를 부추기는 정책이다. 부동산 거품의 가장 큰 피해자도 서민이고, 거품이 파열되었을 경우의 가장 큰 피해자도 서민이라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토지공개념과 금융공공성

 

나는 토지와 주택은 투기의 대상이 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국민의 주거권은 헌법으로 보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토지공개념은 반드시 실현되어야 할 목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목표만이 아니라 경로·과정·수단이다. 목표가 바르지 않으면, 과정이 바를 수가 없다. 하지만 과정이 바르지 않아도 목표가 바를 수 없다. 과정이야 어떻든 토지공개념이라는 목표에 도달하기만 하면 된다는 논리는 과정이야 어떻든 경부운하만 열리면 된다는 이명박 후보와 다를 바 없다.

 

아울러 목표와 수단이 동일한 것이라면 정책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권영길 후보의 1가구 1주택 법제화는 토지공개념의 법제화이고, 정책은 목표를 재진술한 것에 불과하다. 여기에는 어떻게 토지공개념에 도달할 것인가에 관한 경로와 수단이 빠져있다.

 

나는 부동산은 이미 금융 상품이기 때문에 금융의 관점에서 토지공개념에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아울러 부동산 거품 해소만이 아니라, 급격한 부동산 거품 파열에 대한 대책이 필요함을 역설해왔다. 부동산 거품을 걷어내는 과정은 부동산 거품의 급격한 파열을 막는 대책과 함께 가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서민의 삶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첫째, 금융공공성을 확보하고 금융양극화를 해소해야 한다.

 

금융은 재원의 배분을 담당하는 공공적 역할을 한다. 따라서 누구도 금융에서 배제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서민들이 은행에서 돈을 빌리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그래서 서민들은 주택을 담보로 대출을 받거나, 불법 사금융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서민은행 설립이 대안이 될 수 있다. 재원은 부실채권정리기금을 활용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 부실채권정리기금은 IMF 사태 직후 은행의 부실채권을 정리하기 위해 투입된 공적자금이다. 이 자금이 2012년엔 10조원 정도의 잉여금을 발생시킬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 정도면 서민은행 설립의 종자돈으로 활용 가능하다.

 

둘째, 정부는 시중은행에서 이미 대출된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3.5% 이하로 묶고 고정금리 2% 이하의 주택담보대출 상품을 출시해야 한다. 물론 이용 대상자는 1가구 1주택 서민이다. 부동산 거품이 파열할 경우 금리 폭등은 불을 보듯 뻔하다. 97년 IMF 사태를 생각하면 그리 오래 생각할 필요도 없다. 부동산 거품이 파열하기 전에 낮은 이자율의 주택담보대출 상품을 출시하여 부실주택담보 대출 규모를 줄여야 한다.

 

셋째, 무주택자들을 대상으로 장기모기지론과 연계된 사회주택을 공급해야 한다. 물론 부동산 거품파열을 예방하기 위한 사회적 비용은 크다. 그러나 부동산 거품이 파열되었을 경우의 사회적 비용은 상상할 수조차 없다. 사회주택 공급의 제도화를 통해 부동산 투기가 다시는 자리 잡을 수 없도록 해야 한다.

 

토지공개념, 그 출발은 금융공공성의 수립이다. 주택담보대출의 금리를 인하하고 고정금리를 바꾸는 것은 중소기업 대출경색에 숨통을 틔워주는 효과도 있다. 토지공개념은 장기저리 고정금리에 입각한 사회주택과 공공임대주택, 주거수당의 세 가지 방식으로 달성될 수 있다. 이 중에서 가장 시급한 문제는 주택담보대출과 관련된 금융공공성의 수립일 것이다.

 

BBK 공방의 와중에서도 위기는 시시각각으로 다가오고 있다. 하루 빨리 부동산 거품 파열의 심각성을 공론화하고, 금융공공성의 관점에서 서민 살리기 대책을 세워야 한다. 선거는 하루지만, 삶은 지속되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한국사회당 대통령 후보 금민입니다. 이 기사를 인터넷신문 데일리서프라이즈와 프로메테우스 등에 동시 송고합니다.


태그:#금민, #한국사회당, #권영길, #심상정, #부동산 거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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