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지나 작가는 <태왕사신기>를 쓰면서 두 명의 광개토대왕을 염두에 두었다고 한다.
한 명은 담덕이고, 한 명은 호개이다. 실제 두 사람은 비슷한 무게를 지닌 채 극 중반까지 함께 왔다.
호개와 담덕은 둘 다 쥬신의 별 아래에서 태어났고, 왕가의 핏줄을 타고 났다. 담덕은 왕의 아들이고, 호개는 왕의 바로 아래 자리 태대형 연가려 집안의 장손이다. 한 명은 어렸을 적부터 주목을 받으며 자랐고 한 명은 쥬신의 왕의 직분을 감당하고자 숨죽이며 살아왔다. 그러나 쥬신의 왕으로 인정받은 하늘의 사람은 이 중 담덕이다.
나는 '담덕이 왕이 될 재목이 아니다' 라고 딱 부러지게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생각해보면 나는 담덕보다는 호개에게 더 끌린다. 그래서 신녀가 목청을 돋우며 "하늘의 부름을 거역하는 것입니까?"라고 담덕을 추켜세우는 게 영 내키지가 않는다.
내가 고구려 백성이라고 생각한다면 과연 나는 누구를 왕으로 밀 것인가? 분명 나는 다른 부족장들과 신하들, 백성들처럼 호개를 고구려의 진정한 왕으로 생각할 것이다.
지금의 호개를 21C식으로 생각한다면, 그는 분명 엘리트 코스를 받은 상류층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그는 많은 학문과 무예를 배웠고 전쟁에도 많이 참여했었다. 3,4회 때 그의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호개를 생각해보면, 그는 매우 높은 직책인데도 불구하고 겸손했었다. 왕국에 갓 들어와 적응하지 못했던 태자를 위로하며 자신이 무예를 알려주겠다며 넉살좋게 웃던 호개였다.
호개는 주변에서 모든 사람들이 왕이라고 추켜세워도 왕의 자리를 탐내지 않았다. 도리어 왕의 자리를 얻고자 하는 어머니를 만류했었다.게다가 4회를 보면 길거리에서 말에 치일뻔한 기하를 살리기도 했었다. 기하는 단지 신당의 사제에 불과한 어린 소녀였다. 이런 그가 왕이 되고자 마음 먹은 것은 어머니의 죽음에 담덕이 관여했기 때문이다.
호개는 장성했어도 비겁한 짓을 피하려고 노력했었다. 그의 아버지 연가려가 화천회와 손을 잡고 모종의 음모를 꾸밀 때도 호개는 그 일에 깊이 관여하지 않았다. 그는 되도록이면 더럽고 비겁한 일을 하지 않고 왕의 자리에 오르고 싶어했다.
또한 다른 남자를 그린내라고 부르며 자신의 목에 칼을 겨누는 한 여자만을 사랑하고 아껴주는 멋진 사람이기도 하다. 그녀가 매번 자신의 곁을 떠나도 "당신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겠어요."라고 말하며 그녀를 끝까지 사랑할 것을 맹세하는 로맨티스트이다.
앞의 것은 호개의 개인적인 일이라고 단정짓더라도 신당의 대신녀가 "왕이 될 자는 네 개의 신물을 다 찾아야 한다."라고 말했을 때 그가 보여준 행동을 보면 왜 백성들이 그를 따를 수 밖에 없는지 이해가 갈 것이다. 그는 이 말을 듣는 즉시 행동으로 옮겼다. 백제에 신물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군대를 모은 것이다. 그리고 4만이 넘는 군인들이 그에게로 몰려들었다. 고구려와 백제의 전쟁에 명분도 있다. 백제의 화살에 맞아 죽은 고국원왕의 복수를 하고 고구려의 기강을 바로 세우자는 것이다.
호개는 남자다운 풍모에 그에 걸맞은 능력도 있다. 리더십도 뛰어나고 인성도 좋아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른다. 그는 일의 결과가 눈에 보이도록 이끌고 한 번 하고자 하는 일에는 주저하지 않는다. 단연 카리스마도 있어 한 나라를 이끄는 데 전혀 손색이 없어 보인다.
이에 비해 담덕은 부드러움을 전면에 내세운다. 그는 거의 화도 내지 않는다. 울고 싶을 때는 눈물도 보이고 애절하고 슬픈 눈도 한다. 감정에 솔직하고 매사에 거짓이 없다. 또, 호개와 비슷하게 무예도 곧잘 하지만 모든 일을 지혜로써 해결하려고 노력한다.
호개는 아랫사람에게 명령을 하지만 담덕은 자신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아랫사람에게 부탁을 한다. 바손의 대장간을 찾아가 "내 사람을 살리고 보호하는 무기를 만들어줘." 라고 하며 바손에게 도움을 청하고 "궁에 믿을 사람이 없어." 라고 하며 기하에게 손을 내민다.
담덕은 욕심도 없다. 왕이 될 기회가 있는데도 그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다. 자신의 아버지가 죽고 기하가 그 일을 행했다는 이야기를 듣고서야 왕이 되고자 결심한다. 인내심도 강하고 마음도 넓어서 자신을 배신한 여자에게 "나 때문에 힘들어하지마." 라고 작업성 멘트를 날리며 눈물을 보인다.
또한 그는 주변의 사람들에게 세세하게 신경쓰고 자신에게 충성을 다하고 죽은 근위대장 각단의 이름을 기억해달라며 관료들에게 소리친다. 자신의 아버지를 죽였을지도 모를 여자 그리고 자신을 칼로 찌른 여자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다시 만나 이야기를 해봐야겠다고 말하는 신중한 사람이기도 하다.
호개는 야망을 지니고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름이 알려지기를 원한다. 그러나 담덕은 일이 원만하게 해결되고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진다면 굳이 자신의 이름을 드러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는 명예보다도 많은 사람들의 행복을 추구하는 진정한 정치가다.
담덕은 주변을 깊이있게 관찰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가 태자시절 백성들의 삶을 살피며 백성들에게 도움을 주었던 것도 세상을 넓고 깊게 볼 수 있는 안목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쟁을 치루기전 아마 호개는 "자신과 함께 싸워 새 역사를 이룩하자." 라고 외칠 것이다. 그러나 담덕은 "목숨을 걸고 싸우는 놈은 필요없다. 어떻게든 살아서 내 곁에 있어." 라고 말한다.
나는 담덕이 호개보다 못하다는 이분법적인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게 아니다. 단지 담덕이 하늘의 선택을 받은 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호개에게 왕이 될 기회를 빼앗아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싶다. 단지 운명이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담덕이 왕위에 오른다면 그건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지금 담덕은 임시적으로 왕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담덕이 호개를 제치고 왕이 될 수 있는 그만한 이유가 반드시 필요하다. 단지 신물을 4개 찾았고 그 신물이 주인을 알아봐서 담덕이 왕이 되는 얼토당토한 전개는 앞으로 벌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한 나라의 왕 즉 대통령을 뽑는데 2000년전부터 정해져 있었다면 이건 아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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