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보다 일본에서 더 유명한 탈북자가 있다. 안명진씨. 1968년 황해북도에서 출생. 김일성정치군사대학 졸업 후 조선노동당 중앙위 작전부에 소속돼 대남공작 특수요원으로 활동. 1993년 비무장지대에서 대남침투 특수훈련을 하던 중 휴전선을 넘어 망명했다.
그가 일본에서 유명한 이유는 '일본인 납북자'와 관련한 증언 때문이다. 1997년 안명진씨는 북한에 있을 때 요코다 메구미를 비롯한 일본인 납북자들을 직접 봤다고 증언, 파란을 일으켰다. 당시까지 '의혹' 수준에 머물러있던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문제가 현실 정치쟁점화 하는 순간이었다.
그가 지금까지 봤다고 밝힌 일본인 납북자 15명 가운데 6명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지난 2002년 9월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와의 회담에서 납치 사실을 인정했으나, 나머지 9명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북한이 1994년 자살했다고 통보한 요코타 메구미의 북한 내 행적에 대해서도 안씨는 북한측 설명과 다른 목격담을 전하면서 현재 김정일 일가의 일본어 가정교사로서 살아있을 거라는 주장을 펴왔다.
일본의 납치 피해자 가족들과 지원단체들은 이런 안씨의 말을 거의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다. 요코다 메구미는 아직 생존해있으며, 일본인 납북자가 북한이 인정한 13명 이외에 더 있다고 믿는 중요한 근거의 하나가 바로 안씨의 증언이다. 이제는 6자회담 차원에서 논의 테이블이 마련된 북ㆍ일 관계정상화가 한 발짝도 진전하지 못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의심받는 증언의 신뢰성

▲요코타 메구미씨의 납치전 소녀시절의 사진과 성인이 된후 북한으로 부터 제공받은 사진(맨 왼쪽) ⓒ 김재영
그런 안씨가 히로뽕을 밀반입해 국내에 유통시킨 혐의(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로 최근 경찰에 체포됐다. 중국에서 히로뽕 75g을 몰래 들여와 지금까지 4차례에 걸쳐 약 12g을 유통시킨 것으로 경찰조서에 나타났다. 중국 연변지역의 한 호텔에서 동거녀와 함께 히로뽕을 상습 투약한 혐의도 받고 있다.
<연합뉴스>가 이 뉴스를 타전한 9일 오전 서울 주재 일본특파원들 사이에서는 일대 소동이 벌어졌다고 한다. <연합뉴스>는 실명을 밝히지 않고 'A씨'라고 보도했으나 기사에 나온 피의자의 경력이 안씨와 일치하는 것을 알아챈 일본특파원들이 확인에 나선 것.
대부분의 일본 신문이 다음날 안씨의 구속 사실을 주요 뉴스로 전했고, 보수우익의 대변지 <산케이신문>은 납치피해자 가족과 지원단체들이 곤혹스러워하는 반응을 함께 다루기도 했다. 일본 언론들은 이어 안씨의 구속이 '납치문제'에 미칠 영향 등에 대한 다각도 분석에 들어갔다.
일본 언론들이 이같이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자명하다. 마약 밀수라면 당연히 돈이 목적이었을 것이고, 안씨가 돈을 위해 불법 행위도 서슴지 않는 인물이라면 그 동안 일본에서 한 증언들은 과연 믿을 수 있느냐 라는 문제가 제기되는 것이다.
일본 TV 겹치기 출연... 햇볕정책 비판도
안씨는 2002년 고이즈미 총리의 방북을 전후로 납치문제가 일본 사회의 최대 관심사로 떠올랐을 때 일본 언론에서 웬만한 스타급 배우 못지않은 대우를 받았다. 당시 앞 다퉈 납치문제에 관한 특집 프로그램을 편성했던 일본 방송사들은 서로 그를 '모셔가기' 위해 경쟁을 벌였다. 안씨가 받은 TV 출연료는 적어도 1회당 천만원 단위였을 것으로 보인다.
당시 일본에 주재하고 있었던 필자는 안씨의 얼굴을 TV에서 '지겹도록' 봐야 했다. 어떤 때는 하루에 시간대를 달리해 2~3개의 방송사를 오가며 '겹치기' 출연을 하기도 했다. 그는 단지 북한에서 목격한 사실만 전하는 게 아니라, 한국정부의 햇볕정책을 비판하고, 북한에 대한 강한 압박을 주장하는 등 정치적 주장도 서슴지 않았다.
그의 이런 거침없는 발언은 일본 방송사들로부터 큰 환영을 받았다. 무엇보다 '국민정서'와 일치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안씨는 출연하는 방송사에 가끔 '뉴스'를 안겨주는 감각도 있었다. 새로운 일본인 납북자의 존재를 거론하거나, 납북자의 행적과 관련 북한 측이 통보해온 내용을 뒤집는 새로운 사실을 기억해내는 식이다. 그러나 다른 목격자들은 다 북한에 있으니 이를 달리 검증할 방법은 없었다.
일본 매체에서 그의 '몸값'은 날이 갈수록 뛰었다. 당시 안씨와 가까웠던 일본 언론인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2003~2004년 즈음에는 보통 사람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큰 돈을 만졌다고 한다. 망명 후 한국가스공사에서 근무할 때 직장에서 만나 결혼한 부인과 헤어진 것도 이 때쯤이었다.
통일부 직원을 북한 공작원으로 해설... 방송출연 중단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안씨 증언의 신빙성에 대한 의문의 목소리도 커져갔다. 우선 왜 망명한지 4년이 지나서야 일본인 납북자에 대해 입을 열기 시작했느냐는 지적이 나왔다. 그 사이에도 일본 잡지와의 인터뷰 등에서 자유롭게 말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하지 않은 것은 다른 배경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가 TV에 출연해 하는 이야기에서도 상당한 모순점들이 발견됐다. 하루는 북한 영상을 보면서 군사시설의 구조에 대해서 설명했는데, 알고 보니 그 시설은 그가 망명한 뒤 만들어진 것이었다. 또 일본에 돌아온 5명의 납치피해자 가운데 한 명인 하스이케 가오루를 북한에서 봤다고 증언했으나, 정작 하스이케 본인은 본 적이 없다고 부인한 일도 있었다.
그는 2006년 6월 후지TV에 출연해 결정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요코타 메구미의 남편으로 알려진 김영남씨가 노모와 상봉하는 장면을 해설하는 과정에서 화면에 나타난 한국 통일부 직원을 북한측 감시담당 공작원이라고 말한 것. 후지TV 측은 한국정부의 항의를 받고 공식 사과해야 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일본 방송사들은 더 이상 안씨를 출연시키지 않게 됐다.
막대한 일본 TV 출연료 수입이 끊기자 안씨는 당연히 돈에 쪼들렸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 씀씀이는 커질 대로 커진 상태였다. 그래서 안씨는 경제적 돌파구를 중국-북한 국경지대를 무대로 한 이른바 '탈북 비즈니스'에서 찾으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의 한 일본 지인은 "안씨는 최근 연변지역을 자주 드나들었고, 여러 건의 '기획 탈북'에도 관여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근황을 전했다. 이 지인은 "돈에 쪼들릴 것이라고 짐작은 했지만 설마 마약에까지 손을 댈 줄이야…"라면서 그의 구속 소식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목격한 일본인 납북자 수가 4개월 만에 4명 불어난 사연

▲요코다 메구미씨의 부모님(가나가와현 강연회에서) ⓒ 김재영
안씨의 구속 소식에 일본인 납치피해자 가족과 지원단체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당혹감'이 퍼지고 있다고 일본 언론들은 전하고 있다. <산케이신문>은 10일자에 "(마약 복용이) 사실이라면 유감이지만 그가 납치문제에서 커다란 역할을 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라는 지원단체 관계자의 말을 전함으로써 그 동안 안씨가 해온 증언의 신뢰성이 흔들릴 것을 미리 차단하려는 의도를 드러내 보였다.
그러나 <산케이신문>의 이런 바람과는 반대로 그 동안 안씨의 증언에 미심쩍은 점이 있다고 생각해온 사람들의 목소리가 구체적으로 표면화되기 시작했다.
재일교포 저널리스트 변진일씨는 11일자 <도쿄신문> 인터뷰에서 "2005년 3월 안씨를 우리 모임에 초청해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일본인 납북자 11명을 봤다고 했는데 4개월 뒤 일본 국회 증언에서는 그 수가 15명으로 불어났다"면서 "그 때 이상하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변씨는 "보통 사람의 기억은 날이 갈수록 흐려지는 법인데 그는 갈수록 새로워졌다"면서 "처음에 요코타 메구미에 대한 증언을 할 때까지는 좋았지만 그 뒤 너무 각광을 받다 보니 북한과 관련된 일이라면 뭐든지 아는 체하게 된 것 아니겠느냐"고 꼬집었다.
<도쿄신문>에 따르면 일본 내에서는 이번 사건이 안씨의 '입막음'을 위해 한국 정부당국이 꾸며낸 모략이라는 설까지 나돌고 있다고 한다. 그만큼 안씨가 돈을 위해 마약에까지 손을 댔다는 사실이 일본 사회, 특히 납치문제 관계자들에게 던진 충격이 컸다는 반증이다.
일본이 6자회담에서도 홀로 대북 강경책을 고집하고, 북한의 비핵화 조치에 대한 상응조치로서 대북 에너지-경제 지원에도 참여하지 않고 있는 이유는 바로 '납치문제의 진전'이라는 전제조건이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입장이다. 이는 북한이 2002년 9월 스스로 밝힌 일본인 납북자 관련 사실들을 믿지 못하겠다는 불신이 전제되어 있다.
북한이 사망했다고 통보한 요코다 메구미를 비롯한 납북자들이 아직 생존해있으며, 2002년9월 김정일 위원장이 인정한 13명 이외에도 일본인 납북자가 더 있다는 것이다. 이 '믿음'의 상당 부분을 그 동안 안씨가 쏟아낸 증언들이 지탱해왔다.
안씨의 마약사건이 이런 믿음에 어떤 영향을 줄지, 특히 북한의 영변 핵시설 폐쇄가 임박한 가운데 일본 내에서도 대북 정책의 유연한 변화를 주문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는 상황이어서 그 파장이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