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7년 6월 안양시 도심 중앙로 거리를 점거한 시위 ⓒ 기념사업추진위
6월 민주화항쟁 20주년 안양·군포·의왕 기념사업추진위원회(이하 안양권 기념사업추진위)는 오는 26일 오후 7시 전진상복지관 강당에서 '안양군포의왕 6월 민주항쟁과 7·8·9월 노동자투쟁 20년의 과제'을 주제로 하는 6월항쟁 20주년 시민토론회를 개최한다.
이날 토론회는 감마연구소 이금연 대표의 사회로 '안양권 6월 민주항쟁의 진행과정과 평가(이대수/ 나눔의교회.군포환경자치시민회 공동대표), '안양권 7·8·9월 노동자 대투쟁 과정과 의의'(이시정/ 사이버노동대학 사무처장), '6월 민주항쟁 20년의 의의와 과제'(손혁재/ 경기대 정치교육대학원 교수)에 대한 발제가 이어진다.
이어 정성희(민주노동당 안양지부장)씨, 시민단체, 노동조합 관계자 등의 지정토론과 참석자들의 전체토론을 통해 안양권에서의 민주항쟁과 노동자 대투쟁의 기록들을 발표하고 이를 토대로 지역에서의 역사 흔적들을 평가하고 정리하는 자리를 마련할 예정이다.
안양권 기념사업추진위는 "뜨거운 호응을 보였던 안양지역 그날의 함성은 끝나지 않았다. 우리는 20년 전 6월의 뜨거웠던 함성이 과거의 함성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안양·군포·의왕 시민 여러분과 함께하는 끝나지 않은 노래이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20년만에 안양도심에서 6월 항쟁을 재현한 시민대행진 ⓒ 최병렬

▲20년전 빛바랜 사진속에서 내 얼굴을 찾았다 ⓒ 최병렬
안양권 기념사업추진위는 6월항쟁 20년을 준비하며 87년 이전의 상황과 활동을 비롯해 6월 항쟁기간의 시위과정, 6월 항쟁의 성과 등을 기록으로 남긴다는 계획으로 지난 1월 10일 1차 좌담회를 시작으로 증언과 인터뷰를 통해 자료수집과 역사 정리에 나서왔다.
특히 6월 민주항쟁 20주년을 맞아 지난 6월 9일에는 당시 거리 시위 현장이었던 (구)안양경찰서에서 안양역까지 1.5㎞구간을 도보로 행진하면서 '독재타도! 호헌철폐!'를 외치며 당시를 재현하고 안양1번가에서 6월 항쟁 20주년 기념식과 사진전시회를 개최하였다.
이어 다음날인 10일에는 오후 7시 군포시 산본중심상가에서 '함께 불러요. 아침이슬'을 주제로 민중가요의 대표적 그룹인 '노래를 찾는 사람들' 공연과 판소리, 합창 등으로 청소년 및 시민들과 함께하는 '6월민주함성 끝나지않은 노래' 기념문화제를 개최했다.
추진위의 안명균 집행위원장은 "가두행진과 기념식, 문화제 일정으로 충분히 나누지 못한 이야기를 함께하는 자리가 되었으면 한다"며 "20년전 6월 민주항쟁과 7·8·9월 노동자 대투쟁 역사의 기록은 재정이 마련되는 대로 자료집으로 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20년전 각종 집회에 선보였던 그림사랑동우회 '우리그림'의 걸개 ⓒ 기념사업추진위

▲87년 6월 항쟁이후 안양지역에 뿌려졌던 각종 유인물들 ⓒ 최병렬
한편 경기도 안양에서는 1987년 당시 6월 항쟁 기간인 6월 19일, 6월 23일, 6월 26일 모두 세 차례의 대규모 집회와 시위가 전개됐다. 안양에서의 첫 대중 집회인 6월 19일 집회에 대해 시사월간지 <말>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9시 30분경, 1만여 명의 시민들이 도로에 앉아 대중 집회가 시작됐다. … 약 2시간 가까이 집회가 계속된 후 시위 초기에 잡혀간 사람들을 구출하자는 주장이 터져 나왔고 마침내 전경대에 달려들어 투구와 방패를 빼앗는 등 몸싸움이 벌어졌다." - 1987년 8월호
6월 23일 집회는 더욱 조직적이었다. 안양 중앙시장을 돌면서 동참자를 모으고 시위가 시작되자 학생들이 한 줄로 서서 중앙로에서 학생 2백여 명과 시민 1만여 명이 모인 가운데 열려 약 3시간가량 계속됐으며, 밤 10시경 경찰의 최루탄 발사로 해산됐다.
6월 26일 집회는 국민운동본부가 선포한 6·26 민주헌법 쟁취 국민평화대행진에 맞물려 무려 2만 명의 시민들이 안양1번가에서 우체국에 이르는 거리를 가득 메웠고, (구)안양경찰서 앞까지 행진하면서 모든 차량이 끊긴 일종의 '해방의 거리'로 만들기도 했다.
안양권에서의 6월 항쟁은 곧바로 사업장에서의 노조설립과 근무조건 개선을 위한 파업 등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7·8·9 노동자대투쟁과 연계돼 한 묶음으로 진행되고, 다양한 문화운동을 꽃피우면서 안양지역의 사회운동이 만개하는 시기가 열리는 촉진제였다.
덧붙이는 글 | 최병렬 기자는 안양지역시민연대 대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